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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간과 보름달

역사/조경철의 역사칼럼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7. 10. 17.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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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철 역사칼럼 3]

토끼 간과 보름달

 

 

  용왕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자라가 토끼 간을 구해온다는 이야기가 ‘별주부전’의 내용입니다. 토끼를 꼬드겨 용궁까지 데리고 가서 배를 갈라 간을 꺼내려고 하자 토끼가 말을 하죠. “내 간은 신비한 효험이 있어 많은 이들이 탐을 낸다. 그래서 간을 가지고 다니지 않고 아무도 모르는 깊은 곳에 숨겨 놓는다. 용왕의 병이 위중하다 하니 내가 돌아가서 간을 가져 오겠다”라고요.


  간을 몸속이 아닌 다른 곳에 둘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토끼 간이 그렇게 신비한 영약이라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용왕의 병을 고쳐야 하므로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자라가 다시 토끼를 육지로 데려다 주자 토끼는 깔깔대면서 말하기를 “내가 살다 살다 너 같이 미련한 놈은 처음 보았다. 세상 천지에 어떤 동물이 간을 몸 밖에 내놓고 다니냐. 하하 잘 가게나.” 용왕의 병을 고쳐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왔다 갔다 했던 자라는 멍하니 하늘만 쳐다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너무나 잘 알려진 별주부전의 간략 줄거리는 위와 같습니다. 별주부전은 나중에 판소리로도 만들어져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죠. 별주부전의 두 주인공 자라(거북이)와 토끼는 다른 동화의 주인공으로도 많이 등장합니다. 여기서 토끼, 특히 토끼 간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요? 용왕의 불치병을 고치는 특효약으로 토끼 간이 등장하는데, 하필이면 그 많은 동물 가운데 왜 토끼 간일까요?

< 경남 사천시 비토섬의 토끼와 거북이 조형물 >

 

  어린이들은 토끼가 “똑똑해 보여서요”, “잘 달리니까요”, “귀가 쫑긋 해서요” 등등 토끼의 특성으로 대답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토끼 간이 특별한 이유를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제가 한번은 의대생인 제자에게 토끼 간을 한번 분석해 오라고 했지요. 간이 영양가가 있기는 하지만, 토끼 간이 소 돼지 등 다른 동물의 그것에 비해서 특별히 약효가 뛰어나지 않다고 하더군요.


  매년 한가위가 되면 그날의 주인공은 밤하늘의 보름달입니다. 사람들은 보름달을 바라보며 저마다의 소원을 빌죠. 저는 중학교 때 이런 소원을 빌어본 적이 있습니다. 옥상에서 개를 키웠었는데 이름은 당시 유행한 홍콩 배우 ‘성룡’의 이름을 반쯤 따와 ‘아룡’이라고 했습니다. 아룡의 앞발을 잡고 들어 올려 보름달 안에 담고 소원을 빌었죠. “우리 아룡이 내년에도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해 주세요”라고요.

 

  보름달하면 떠오르는 동물이 토끼입니다. 여러분은 단박에 달에서 떡방아를 찧는 토끼를 떠 올릴 것입니다. 그런데 실은 토끼가 빻는 것은 떡이 아니라 ‘불로초’이죠. 토끼가 신비의 약인 불로초를 빻고 있는 장면은 5세기 고구려인이 그린 ‘개마총 고분벽화’에도 보입니다. 꽉 찬 달 안에 토끼가 불로초를 빻고 토끼 옆을 지키고 있는 동물이 두꺼비입니다. 두꺼비가 눈을 뜨고 지킬 때도 있겠지만, 언젠가 잠을 잘 것이고 그 때 토끼가 불로초를 그냥 놔두지 않았을 것이니, 개마총의 토끼는 지금으로부터 1,500년 동안 불로초를 야금야금 먹었겠죠. 그럼 토끼 간은 1,500년 된 불로초가 되는 셈입니다.

 

< 고구려 개마총 고분벽화: 달 토끼 두꺼비 >

 

  오랜 옛날 사람들은 달을 바라보며 가족의 건강을 빌었습니다. 고구려 때 아니 그 이전 고조선시대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달을 보며 건강을 소원했죠. 달 속에 불로초를 빻고 있는 토끼를 생각하면 18세기에 ‘별주부전’이란 고전소설이 뚝딱 만들어진 것은 아닐 것입니다. 별주부전에 등장하는 토끼, 자라를 포함한 여러 요소들, 특히 토끼 간도 여러 동물 중의 하나로 등장한 게 아니라 달을 보며 사람들이 건강을 빌었던 시간이 100년, 500년, 1000년 이렇게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용왕의 병을 고치는 토끼 간으로 등장하였겠지요.

 

  이제 토끼를 놓친 우리 불쌍한 별주부는 올 한가위를 어떻게 보낼까 걱정입니다. 잠깐 별주부가 이 글을 읽는다면 희망이 생긴 셈이죠. 이제 토끼를 잡으러 진짜 달나라로 가면 되니까요.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모든 가족 여러분께 불로초가 한가득 담긴 보름달을 선사합니다. 즐거운 한가위 보내시기를 바라며 온 가족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조경철
나라이름역사연구소 소장, 연세대학교 사학과외래교수
naramame2014@naver.com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 96호 >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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