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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왕, 경덕왕, 대통령

역사/조경철의 역사칼럼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7. 12. 9.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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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철 역사칼럼 4]

문무왕, 경덕왕, 대통령


과거, 나라는 어떻게 잘 다스렸는가?

  ‘문무왕’은 신라 31대 왕으로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루었습니다. 문무왕의 아버지는 태종 무열왕(‘김춘추’)이고, 어머니는 김유신의 누이동생인 ‘문희’이죠. 문무왕은 일단 삼국을 통일하기는 하였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외부인 당나라와 일본 특히 후자의 침략이 정말 걱정이었지요. 그래서 무너진 성벽을 수리하고 성벽을 새로이 쌓아서 이를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긴 전쟁을 치른 백성들에게 다시 일을 시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백성들이 존경하는 ‘의상스님’을 불러서 백성들을 설득하려고 했습니다. 왕의 부르심을 받은 의상은 왕에게 물었습니다. “역사상 무너지지 않은 성은 없습니다.” 왕은 말이 없었죠. “성을 높이 쌓아 나라를 지키는 건 한계가 있습니다. 인(仁)과 덕(德)으로 나라를 다스린다면 풀로 경계를 삼아도 넘어올 사람이 없습니다.” 문무왕은 의상스님의 말을 듣고 성 쌓은 일을 그만두고 인과 덕으로 나라를 다스려갔지요.


  이러던 문무왕도 죽음이 가까워오게 되었고, 그래서 ‘지의스님’을 불렀습니다.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스님이 대답합니다. “대왕께선 삼국을 통일하시고, 인덕으로 백성을 다스리고, 불법을 중흥시키셨으니 당연히 윤회의 세계를 벗어나 부처님 나라로 가실 겁니다.” 왕이 말했습니다. “난 아무래도 일본이 걱정되니 죽어 동해바다를 지키는 용이 되고 싶소.” 스님은 “무슨 말씀을, 용이 신령스럽긴 하지만 윤회와 고통을 반복하는 동물에 불과하옵니다.” 왕은 다시 다짐하며 말하기를 “아닐세. 나는 윤회를 벗어나는 일보다도 나라와 백성을 지키는 게 더 큰 일일세.” 그래서 문무왕은 죽어서 신라를 지키는 용이 되려고 바다에 묻혔지요.


< '동해 문무왕 수중릉' 앞에서의 필자 >


나라는 왜 위태로워졌는가?

  그 후 ‘경덕왕’은 신라 35대 왕으로 불국사와 석불사를 건립하였습니다. 왕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었는데, 자신의 뒤를 이을 왕자가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그는 왕비와 이혼까지 하고 새 왕비를 맞아들였지만 새 왕비에게도 아들이 태어나지 않았죠. 그래서 의상스님의 제자인 ‘표훈스님’을 불렀습니다. 왕이 “나에게 아들이 없는데 어떻게 방법이 없겠소?” 스님이 대답합니다. “저에게 방법이 있습니다.” 왕이 “무엇이오?”라고 질문하자, “딸을 아들로 바꾸는 방법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아니 그런 방법이 있었소? 빨리 알려주시오”라고 왕이 말하자, “이는 운명을 바꾸는 일이라 하늘에 뜻을 물어봐야 합니다. 하늘에 올라가 알아보겠습니다”라고 대답했지요.


  일주일 뒤 표훈이 다시 왕을 찾았을 때에 왕은 다급히 물었죠. “그래 어떻게 되었소?” 표훈은 머뭇거리듯 말하였습니다. “딸을 아들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런데...”라고 말을 머뭇거리자 왕은 “빨리 말하시오”라고 다그칩니다. “딸을 아들로 바꾸면 나라가 위태로워집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그러자 왕은 “괜찮소. 빨리 그대로 시행하시오”라고 하고 나가버립니다. 그래서 드디어 경덕왕은 아들을 얻었는데, 이 사람이 바로 ‘혜공왕’입니다.


  혜공왕은 태어나서 여자들의 노리개를 갖고 놀았으니 물론 후사도 없었지요. 여자를 남자로 바꾸었으니 최초의 트랜스젠더라고나 할 수 있을까요? 경덕왕은 후사를 얻었지만 혜공왕에게 후사가 없자 여기저기서 서로 왕이 되려고 반란을 일으켰지요. 그 와중에 혜공왕도 죽었고 소위 신라의 하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점점 쇠퇴해진 신라는 이렇게 해서 천년의 사직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나라는 어떻게 다스려야 하나?

  나라를 다스리는 최고 통치자의 덕목 가운데 가장 중요한 건 ‘다른 사람 특히 아래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무왕’은 성을 쌓으려고 의상스님을 불렀지만, 스님은 반대로 성을 쌓지 말고 인과 덕으로 나라를 다스리라고 했지요. 문무왕은 기꺼이 이를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죽어서도 자신보다는 나라와 백성을 생각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문무왕은 신라 황금기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반면 ‘경덕왕’은 불국사와 석불사를 짓는 등 신라 문화의 전성기를 살다갔으나 유교적 사고에 집착하여 자신의 아들만이 왕위를 계승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무리한 방법을 택했습니다. 경덕왕이 물었을 때 표훈은 이렇게 답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엔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이 있었습니다. 누가 다스리는가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다스리는가가 중요합니다.” 표훈은 권력의 비위를 맞추었고, 경덕왕은 나라가 어떻게 되든지 오직 아들만을 얻기 바랐던 것이죠.


  요즘 전직 대통령 문제로 세상이 시끄럽지요. 예전에는 차벽을 앞세워 산성을 쌓았는데 얼마나 차벽을 높이 쌓아야 자신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저는 묻고 싶습니다. 아직도 나와 가족의 이익 챙기는 것을 나라를 다스리는 일보다 우선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라를 경영하고 있다면 정말 큰일입니다. 모름지기 최고 통치자는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보다는 나라와 국민을 우선시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조경철

나라이름역사연구소 소장, 연세대학교 사학과외래교수

naraname2014@naver.com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 98호 >에 실려 있습니다.

 

< 조경철의 역사칼럼 바로가기 >

[조경철의 역사칼럼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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