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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뽕의 나라, 중국

2018년 11월호(제109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8. 11. 12.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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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체성과 사회]


짬뽕의 나라, 중국




  중국이 짬뽕의 나라인 거 아시나요? “당연한 걸, 왜 물어봐!”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먹는 짬뽕이 아니라 ‘정체성과 시스템이 뒤범벅 된 원조 짬뽕의 나라’인 중국입니다. 9월말, 9박10일 동안 중국의 난징, 쑤저우, 상하이를 보고, 듣고, 경험했던 것과 사전 중국여행을 통해 연구했던 내용을 중심으로 어째서 중국을 이런 무시무시한 짬뽕의 나라라고 말할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중국이 한족의 나라라구요? 

  중국은 현재 14억의 인구를 가진 세계인구 1위 국가입니다. 인구의 92%를 한족이 차지하고 있지만, 56개의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입니다. 인구만 보면 마치 한족의 나라인 것처럼 쉽게 판단할 수 있으나 중국의 역사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원래 한족의 나라가 아니란 사실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중국의 역사는 남방계 한족이 지배한 한, 송, 명나라를 제외하고는, 한족이 오랑캐로 여기던 이민족이 한족을 지배했으며, 한족은 피지배계층으로서 거의 천민취급을 받으며 살아왔습니다.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 그리고 한족보다 더 오랜기간 지배했던 수, 당, 요, 금, 원, 청나라 모두 서북, 북, 동북에서 밀고 들어온 오랑캐가 지배한 역사입니다. 이런 중국이 자신들의 역사를 어떻게 바라볼지, 자신들을 어떻게 정의할지가 중국여행전부터 가졌던 의문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육자고도’라고 불리우는 난징, 이어서 가장 화려하게 진화하고 있는 상하이를 도착하자마자 달려간 곳은 바로 박물관이었지요. 


  박물관을 들어서자마자 구석기 시대의 사료들부터 하나씩 보면서 나도 몰래 입이 쩍 벌어지더군요. ‘어? 한국에 있는 것들이 다 여기에 있네. 도대체 이렇게 방대하고 다양한 사료들이 어디서 나왔을까’. 과연 중국이란 나라의 방대함 때문에 왜 중국대륙이라고 말하는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엄청난 전시품의 규모에 혼미해진 정신을 다시 가다듬고, 박물관에 달려왔던 원래의 목적으로 돌아가 사료들을 찬찬히 비평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특히 268년이나 중국을 철저히 지배한 만주족의 청제국은 가장 최근의 역사이고, 팔기라는 시스템을 통해서 아주 적은 숫자의 만주족이 중국 전체를 완벽하게 장악하였다 했는데, 이 내용이 너무나 놀라워서 관련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습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이와 관련된 역사나 내용은 거의 찾지도 못하였고, 청나라 도자기나 예술품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오랑캐나 이민족의 역사라 할지라도 자신의 역사로 일단 받아들이기로 하였다면, 과거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속에서 실패와 성공, 반성과 배움의 과정을 통해 성장한다면 위대한 나라가 될 수 있을텐데라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태평천국의 난의 정신과 역사를 공산주의와 연결하려는 과감한 시도


  이런 생각 가운데,‘태평천국의 난 기념관’에서는 막스-쑨원-모택동이 태평천국의 난에 대해 평가한 말을 가장 마지막에 인용하며, 아편전쟁이후 서양에 대한 저항정신의 뿌리가 마치 지금의 공산주의로 이어진 듯 전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보여주어야 할 과거 역사속의 수치와 뿌리는 숨기고, 말도 안 되는 것을 자기네 역사처럼 짬뽕해서 전시하는 가운데, 겉으로는 56개의 다민족을 포용하듯 ‘하나의 중국’을 외치지만, 이런 중국 속에서 중국의 젊은이들은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우리와 만나게 될까요?


  돈을 사랑하지만, 영업시간만 운영합니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정반대 시스템을 짬뽕하는 가운데 하나로 만들려는 지극히 동양적 발상을 가진 나라가 중국이라는 생각이 여행내내 들었습니다. 박물관과 기념관, 각종 시설은 마치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적어도 오후 5시가 되기 전까지는요. 그 시간이 되면 일제히 관람객들을 황급하게 쫓아내고는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도 황급하게 ‘칼 퇴근’합니다. ‘이게 뭐지, 도대체?’ 고객을 이렇게 쫓아내는 서비스가 분명 유럽에서 말하는 워라벨(워크-라이프-밸런스의 줄임말. 일과 가정의 균형을 중요시하는 의미)은 아닐텐데. 더 기가 막힌 것은 도심공원에서 저녁 9시만 되면, 공원관리요원들이 무한반복 되는 음성방송을 확성기로 틀어놓고 여기저기에서 여유를 만끽하고 있는 공원내의 관광객과 시민들을 호통 치듯 몰아냅니다. 그 속에 있던 사람들은 마치 야밤에 공원에서 딴 짓하다가 단속에 걸린 사람 취급을 당하며 황급히 공원을 떠납니다. 어릴 적 경험했던 ‘통행금지' 시절의 장면이 오버랩되더군요. 껍데기는 자유가 있는 민주주의 시스템이 돌아가지만, 속은 통제가 지배하는 사회였습니다.



우전(Wu Zhen)의 서비스 공약문


  이런 어색한 경험을 뒤로하고, 잠시나마 ‘우전’이란 곳에서 멋진 운하와 어우러진 마을들을 즐기면서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그곳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은 ‘우전의 서비스 헌장’이었습니다. “모든 물건은 정찰제를 실시하고, 어떠한 상거래의 속임 행위나 금품을 요구하는 행위는 하지 않으며, 이런 행위를 발견할 즉시 신고해달라”라는 안내문이었습니다. 상하이 공원에서 경험했던 통제와는 전혀 다른 자본주의의 멋진 사례를 보는 듯 하였습니다. 또, 중국의 지하철이나 고속철은 우리나라나 유럽의 것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공산당이 통제하고 있습니다. 지하철을 탈 때마다 배낭검사를 합니다. 처음에는 순진한 생각에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있으니까 시민들의 안전을 생각하는 차원에서 이러는구나’라고 생각했었지요. 하지만, 고속철을 탈 때도, 박물관, 기념관 등 거의 모든 공공시설과 교통시설을 이용하려면 검색대와 카메라를 통과해야 하는 것을 보고 숨이 턱 막히더군요. ‘잘못하면 꼼짝없이 갇힐 수 있겠구나’. 


  중국은 겉으로 보기에 기술과 시스템은 자본주의를 받아들여 엄청나게 급성장하여 성공한 것처럼 보입니다. 창업국가 하면 다들 이스라엘을 떠올리지만, 최근엔 스타트업의 숫자로 따지면 단연코 중국이 앞섭니다. 투자규모와 창업규모는 미국을 능가할 정도입니다. 스타트업들의 성공은 하루가 다르게 하늘을 찌를 기세입니다. 하지만, 이런 성공의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같이 미국이나 선진 비즈니스모델의 카피캣(복사판) 이란 점은 자본주의의 껍데기를 쓴 공산주의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이런 짬뽕시스템 속에서 창의적인 게 과연 나올 수 있을까요? 돈을 위해서라면 앞뒤가리지 않고 일단 베껴서 성공하고보자라는 중국사람들에게 자본주의 시스템은 당근인거죠. 이 당근은 공산당이 중국체제를 통제하고 불만을 잠재우기에 딱 좋은 도구입니다. 그래서, 좌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QRCode가 신용카드를 제치고 결제시스템의 표준이 된 나라는 지구상에서 중국 밖에 없을 겁니다.


  최근 뉴스위크 기사에 따르면 짬뽕나라의 더욱 소름 돋는 현실을 엿볼 수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인공지능 CCTV와 SNS 등 최첨단 기술을 활용하여 사회신용제도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모든 중국 사람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한 데이터로 신용점수를 만들고, 이 점수가 일정 수준에 미달되면 각종 불이익을 받게 하는 사회통제 시스템을 개발한 겁니다. 정부에 반대하는 의견을 주장하다 찍힌 한 기자가, 고속철 티켓을 구매할 수 없었고, 사회보장혜택도 받지 못해 불이익을 받게 되어 결국 당에 대해 공개사과를 했다는 사례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많은 인구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궁극적으로는 공산당의 권력을 유지하고자하는 속셈인거죠. 끔찍하게도 세계최초의 디지털 독재국가의 등장을 예고하는 셈입니다. 이런 무시무시한 나라 바로 옆에 사는 우리의 현실이 정말 걱정됩니다.


  정체성과 삶의 문화, 그 사회를 지탱하는 시스템이 짬뽕된 가운데 엄청난 스타트업들이 배출된다하더라도 세상의 패권을 쥘 만한 창의성과 능력이 그 속에서 과연 만들어질 수 있을까요?


서울산업진흥원 수석연구원, 추광재

caleb.kj.choo@gmail.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09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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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happytownculturestory.tistory.com/371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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