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동양문화(명)와 서양문화(명)가 유사하지만다르게 중심(종교)에서 파생해 나간 역사

2019년 4월호 (114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5. 9. 20:05

본문

[옛 문화의 황혼에서 새 문화의 여명으로 21]

동양문화(명)와 서양문화(명)가 유사하지만 다르게 중심(종교)에서 파생해 나간 역사

내가 만약 내리막길로 달리는 고장난 버스를 타고 있다면?
   미친 운전수가 모는 버스를 우리가 타고 있다고 합시다. 어떻게 해결할까요? 운전수를 제압하여 끌어내린 후에 정상인이 운전하면 됩니다. 그런데 내리막길로 달리는 고장 난 버스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어떻게 해서든지 버스에서 빨리 뛰어내려야 합니다. 내리는 과정에 몸이 크게 다치는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말입니다. 한 사람이 잘못한 경우는 그 사람만 고치면 되지만, 우리가 속한 사회의 구조, 시스템 자체가 망가진 경우는 고장난 버스에서 내리듯이 그 구조, 시스템 전체를 바꾸어야 합니다. 정말 조심스럽게 한 번 물어봅시다. 서양문화(명)가 혹시 이런 과정에 서있는것은 아닐까요? 서양의 초강대국의 대통령인 트럼프(미국)와 푸틴(러시아)이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고, 또 그런 서양의 공산당을 흉내 내고 있는 동양의 초강대국인 중국의 시진핑이 도무지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지도자들은 그야말로 한 때 왔다가 또 시간이 되면 사라집니다. 그렇지만 현재 80억의 지구촌이 굴러가는 구조, 체제, 시스템인 서양문화(명) 전체가 내리막길로 달리는 고장난 버스와 같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비록 이것이 3차 대전이 일어나서 지구가 한꺼번에 폭삭 망하는 것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매우 어두운 미래를 예상하는 사람은 지나치게 비관적일까요? 아니면 드디어 우리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서 모든 지구인들이 지구를 벗어나서 태양계를 정복할 뿐 아니라 온 우주를 향해 뻗어나갈 것을 기대하는 낙관적인 사람들을 우리가 의지할까요?


서양문화(명) 최장기간인 2500년을 총체적으로 평가해본다면
   이런 전망들을 단기간의 관점에서 보면 어떤 전망이 옳을지 쉽게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장기간, 즉 서양문화(명)라고 하는 것이 발흥한 BC 5세기 이후부터 AD 1500년까지 서양에서 지속되었고, 그 이후 대항해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전 지구를 재패하기까지, 총 2500년이라는 최장기간을 한꺼번에 고려한다면 판단하기가 훨씬 수월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최장기간 2500년은 비교할 대상이 없는 유일한 사례라는 난제가 있습니다. 서양인 자신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과연 잘 보고 판단할 수 있을까요? 혹시 등잔 밑이 어둡다는 진리가 여기에도 적용되는 것은 아닐까요? 지난 500년 동안 3대륙(아프리카, 북남미, 호주)에 이어 마지막으로 오랜 문화(명)지대인 동양(거대한 중국, 인도를 포함해서)을 정복함으로 전 세계를 지배해 보았던, 그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에 자신이 결코 실패할 리가 없다고 잘못된 확신을 가진것은 아닐까요? 그러면 정반대로 동양문화(명)의 그 무엇이 이런 상황에 구세주로 나설 수 있다고 판단하고, 또 동양의 오랜 전통문화에 돌아가면 된다고 생각하여, 동양을 찾아와서 머리 깎고 중이 되거나 인도에서 구루가 된 서양인들을 우리는 가상히 여기고 존경해야 할까요? 그렇지만 서양문화(명)를 총체적으로 대체할 동양문화(명)가 나올 수 있다는 기대는 일찍 접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동양의 정신문화(명)의 핵심이 힌두교, 불교, 유교, 도교라면 이 종교들은 하나같이 현실을 초월한 혹은 탈피한 정신세계를 찾습니다. 그러다 보니 모든 인간들이 비비고 사는 매우 현실적 역사에서 떠난 체제를 만들 뿐이어서, 역사에 대한 그 어떤 대답도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특이하게 다행스러운 한반도인의 위치
   이런 중에 동양의 끝자락, 한반도에 오래 살았던 우리 한국인들은 지난 100년 동안 다행히도 동양전통과 급격하게 단절되었고, 또 다행히도 그만큼 급속하게 서양에 접속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동양문화(명)와의 급속한 단절이 다행인 이유는 그 단절이 서양의 제국주의를 흉내내어 한반도를 강점했던 일본이 만들어준 선물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실패한 동양문화(명)에서 억지로나마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또 서양문화(명)와의 급한 접속이 다행인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어슬프게 서양을 흉내낸 일본을 통해 서양문화(명)를 36년 동안 아주 조금만 맛보다가, 둘째, 지난 70년 동안 서양문화(명)의 막내격인 미국을 통해 서양문화(명)의 끝자락을 약간 체험하였기 때문입니다. 해방이후 이 짧은 시간동안 우리는 얼마나 미국병이 들었던가요? 꼬마들은 미군이 던져주는 츄잉껌이나 쵸코렛을 받으려고 뒤를 졸졸 따라다녔으며, 청년이 되어서는 과거시험을 보던 조상들로부터 받은 열정을 새로운 목표인 미국유학으로 투사하여 얼마나 처절하게 노력했으며, 장년이 된 이후에는 많은 사람들이 미국으로의 이민을 꿈꾸었고, 결행했고, 성공도 했고, 노년이 된 후에는 자녀들은 미국에 놓고 자신들은 한국에 돌아와서 사는 양다리 걸친 삶을 살고 있나요? 그런데 화려하게 부풀어 오른 이 모든 열기들이 이제는 다 식고 지났습니다. 즉 우리는 할 만큼 다 노력해 보았는데, 과연 칼로 자르듯이 피를 흘리며 동양문화(명)에 단절해 버리고, 또 미친 듯이 서양문화(명)에 접속해 본 결과, 과연 우리가 영위하는 지금의 삶과 문화는 정말 의미가 있고 오래가며 영속적 가치를가진 것일까요? 그런데 이렇게 열기가 식은 바로 지금이야말로 위에서 말한, 매우 특이하게 다행스러운 한반도인의 장점을 사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즉 이제야말로 차분하게 동양문화(명)와도, 또 서양문화(명)와도 거리를 확실하게 유지한 채, 특히 현재 세계를 쥐고 흔드는 구조, 시스템, 체제인 서양문화(명)를 총체적, 근본적으로 반성하여 전혀 새로운 문화(명)를 확실한 기초 위에 세울꿈을 꾸어 보는 겁니다.
동양의 다른 민족들이 이것을 할 수 있을까요? 중국인이나 인도인은 동양문화(명)의 발생지였고 핵심이었으므로, 그것을 떠나거나 벗어나기가 여간 어렵지 않을 겁니다. 또 동양의 최고 끝자락에 처해 살았던 일본인은 어떨까요? 이들은 자신은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을 아예 작정하는 강력한 일본적 섬나라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 동양문화(명)뿐 아니라 근현대에 서양문화(명)도 언제든지 근본적 관점이 아니라 실용적 관점에서만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 서양문화(명)의 본질을 파악하고 반성하고 새로운 문화(명)를 만드는 일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일본인이 세계의 지도자가 되는 일은 정말 온 세상 사람들이 도시락 싸들고 말려야 할 일인것을 우리는 체험적으로 알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동양문화(명)와 서양문화(명)가 유사하지만 다르게 중심(종교)에서 파생해 나간 역사
   동양문화(명)와 서양문화(명)의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모두 유사하지만 전혀 다르게 중심에서 파생해나간 역사를 이루 었다는 겁니다.

문화(명)의 핵심으로서의 종교, 종교적 존재로서의 인간
   먼저 문화(명)의 핵심은 언제든지 종교라는 사실을 먼저 지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종교를 좁은 의미로 보면, 예배 드리고, 목사, 신부와 같은 사제가 있으며, 교리와 정기적 모임과 공동체가 있는 형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면서 유사종교와 같은 것이 많이 생기게 되어, 전통적인 좁은 의미의 종교로는 이런 종교현상들을 다 파악할 수 없습니다.
종교 비슷한 것들이 아주 많이 생긴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즉 인간이 삶을 영위하기에 필요한 가장 중요한 중심점, 중심 가치관 같은 것들을, 밖에서가 아니라 인간 스스로 만들어내어 그것으로 개인의 삶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행동해 나가는 것입니다. 18~20세기에는 여러 사람들이 동의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행동을하며 가치관이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되어 이런 역할을 하였습니다. 계몽주의, 국가(나치), 계급(공산)사회주의와 같은 것이지요.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와 서는 이런 가짜 종교들이 실패했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았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만의 개인적 이데올로기들을 만들어서 그것을 중심으로 삶의 모든 행동들을 정돈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넓은 의미에서 본 종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은 합리적이든 비합리적이든 어떤 하나의 핵심 주장 혹은 가치관을 절대적인 중심으로 삼고 삶을 영위해 가는, 진정한 의미에서 종교적 존재인 셈입니다. 이런 중심이 없다면, 잘되었든 못되었든 일관된 행동을 할 수 없고 결국 파탄에 이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삶을 영위하기로 작정한 사람이라면 결국 자기종교(자기교)를 가지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더 이상 살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고 자살하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그렇게 내린 판단 자체를 절대적으로 여기고 자살을 감행하기 때문에 종교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 피상적으로 매우 세속적이며 무종교적 사회로 여겨지는 21세기야말로 인간이 진정한 종교적 존재임을 가장 잘 말해준다는 것은 매우 역설적인 사실입니다. 이것이 바로 넓은 의미에서의 종교의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런 21세기의 종교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매우 종교적 요소를 가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절대로 타인에게 검증하고 증명할 수도 없고, 하려고도 하지 않고, 자신만이 가진 철학이나 심지어 고집이 바로 이런 자기교의 교리가 됩니다. 자신이나 자신의 능력이나 성취를 밖으로 드러내며 자기를 찬양하고, 자기 의견만을 주장하는 설교를 밖을 향해서 해대는 겁니다. 이런 종교적인 인간은 그런 종교적 확신을 중심으로 하나의 총체적인 세계관과 일체의 삶을 형성하고 그것으로 다시 눈에 보이는 문화와 문명을 일구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종교는 인간이 만드는 문화(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동진하는 인류를 따라서 형성된 종교의 모습
  여기서 중국문화(명)를 다룰 때에 이미 보았던 점을 다시 상기해 봅시다. 태양에게서 모든 에너지를 얻는 인간은 아프리카 혹은 지중해 동부에서 출범하여 떠오르는 해를 늘 사모하면서 동진에 동진을 거듭해 왔습니다. 이런 과정에 수많은 종교들이 만들어지거나 변화되었습니다. 세계의 배꼽에서 최초로 동진하면서 절대종교는 메소포타미아에 이르러 다신교로 전환되었습니다. 인간이 다시 메소포타미아에서 떠나 더 동진하여 히말라야산맥 남쪽으로 내려가 산맥으로 위가 막히고 아래가 두 바다로 막힌 거대한 삼각형 웅덩이와 같은 형태의 대륙인 인도의 동쪽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형성된 종교가 다신교를 넘어 만신교, 범신론을 주축으로 하는 힌두교로 전환되었습니다. 여기서 다시 약간 동진하여 인도의 서북쪽에서 부처는 인간이 신을 만들어 섬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아예 신이 된다는 불교를 창시하였습니다. 혁신의 관점에서 본다면 정말 종교상의 혁명인 셈이지요. 그러다 히말라야 산맥의 북쪽으로 열린 초원지역을 통하여 인류는 더 동진하여 넓고 넓은 광대한 대륙 같은 중국에 이르러서는 아예 신이 불필요한 무종교사회에서의 종교를 만들었습니다. 바로 역사에 뛰어들려는 유교와 정반대로 역사를 초월하려는 도교를 창안한 겁니다. 인류는 더 동진하여 일본열도에 이르러서는 유교도, 불교도 일본식으로 변하여, 아예 모든 인간은 부처다 라고 주장하는 불교 진화의 끝판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물론 인간은 더 동진하여 가느다란 베링 해협을 건너서 북미대륙에, 다시 남미대륙으로 정착해 들어간 역사를 추적할 수 있고, 이들의 종교는 대체적으로 조상숭배와 물신숭배와 같은 원시적 상태 그대로 였습니다. 여기서 인간들이 동진하는 차례로 절대종교에서 더 멀리 떠나가는 양상을 선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

이어서 우리는 세상의 배꼽에서 동쪽으로만 가지 않고 정반대로 또 다른 넓은 대륙인 유럽이 있는 서쪽으로 가는 인류는 없었나 라고 물을 수 있고 긍정적 대답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서양에서 형성된 종교의 모습을 살펴보려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서양인들 중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종교가 형성된 것에 대해 말하는 대표적 이론인‘ 축의 시대’(Axial Age)라는 개념을 먼저 점검해 봅시다

소위 ‘축의 시대’ (Axial Age - K.Jaspers / K.Armstrong)에 대하여
  유신론적 실존철학자였던 칼 야스퍼스 K.Jaspers는 2차대전 직후에(1949) 약간은 자신 없어하면서도 종교현상을 관찰한‘ 역사의 근원과 목적’(Vom Ursprungund Ziel der Geschichte)라는 책을 펴내었습니다. 여기서 그는 역사상의 한 시대를 ‘축의 시대’(Achsenzeit, Axial Age)라고 명명하였습니다. 즉 전세계 인류에서 공통으로 나타난 현상이 바로 종교가 BC 8-3 세기에 동시대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겁니다. 이 시기에 동양에는 페르샤의 자라투스트라Zarathustra, 인도의 우파니샤드Upanishads와 부처, 중국의 공자와 노자와 장자가 나왔습니다. 반면에 서양에는 호머와 파르메니데스, 헤라클리투스와 소크라테스가 나왔으며, 그 중간인 팔레스타인에는 엘리야, 이사야, 예레미야와 같은 예언자들이 이스라엘 종교를 시작했습니다. 이 ‘축의 시대’라는 개념을 거의 그대로 계승하여 더 전개시킨 사람이, 로마교 수녀원에서의 훈련을 견디지 못하고 포기하고, 간질환자임을 알아 스스로 적극적으로 치료한 카렌 암스트롱 K.Armstrong이라는 종교학자입니다(A History of God 1993).
그런데 이런 논의에서 핵심적인 쟁점은 팔레스타인에서의 종교에 대한 Jaspers의 해석입니다. 그가 젊은 시절에 영향을 받은 독일의 성경학은, 19세기의 헤겔Hegel의 변증법적 해석을 종교에 도입한 벨 하우젠 J.Wellhausen에 의해서 주도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BC 8세기 팔레스타인에는 문자도 없었을 것이며, 당연히 모세의 법도 없었을 것으로 추론하여, 이스라엘 종교의 출발은 예언자였다고 주장했던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그 이후에 무려 BC 18세기의 바빌론 제국의 작품인 Hammurabi법전이 AD 20세기 초에 발굴, 해독되었고, 이 법전은 BC 15세기로 추정되는 구약성경의 모세의 법보다 훨씬 더 복잡한 구조를 가진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즉 Jaspers는 지금부터 150년 전에 있었던 독일의 왜곡된 구약성경 연구에 근거하여 이스라엘 종교가 마치 BC 8세기에 출범한 것처럼 해석한 것입니다. Jaspers의 다른 종교들에 대한 해석은 맞을지는 모르지만, 이스라엘 종교에 대한 해석은 완전히 왜곡된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종교는 처음부터 문자가 있었던 이집트에도, 메소포타미아에도 있었던 법과 비교할 수 있는, BC 15세기의 모세의 법에서 공식적으로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물론 족장의 종교의 시작으로는 그 전에 아브라함과 심지어 그 이전의 노아까지도 거슬러 가기도 합니다.
그 종교의 역사가 진행되면서 BC 10세기 경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잘 아는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가 실제로 역사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또 이스라엘의 타락으로 BC 8세기경부터 예언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해 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즉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종교를 시작한 존재가 아니라, 그 종교 역사에서 등장한 셋째 존재였던 셈입니다. 이것을 거의 그대로 21세기인 지금도 여전히 활동 중인 K.Armstrong이 따르고 있으니, 결국 한 세기 전에 잘못된 해석의 전철을 계속 밟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선명히 밝히는 과정에서 세계의 배꼽과 같은 팔레스타인에서의 절대종교, 유일신 종교, 언약종교가 그 이후에 동쪽으로 파생해 나간 종교들과 서쪽으로 파생해나간 철학들과는 완전히 구별되는 것임을 선명히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제는 유럽대륙을 향해 서진할 수 있었던 인류에 나타난 종교 혹은 철학 현상을 살펴볼 때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서진하는 인류들에 나타난 매우 중요한 특징 하나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왜 서양에서는 처음부터 종교는 약화되었고 무종교적 철학이 우위를 점하는 전통이 시작되었는가’하는 겁니다.

왜 서양에는 처음부터 종교는 약화되고 무종교적 철학이 우위를 점하게 되었는가?
 신문에 할애해야 하는 지면의 성격 때문에 지금은 결론부터 먼저 도식적으로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방금 말한 동양인들이 동진하면서 종교가 파생해 나간 것과 비교해서, 서양의 긴 역사를 통하여 서양인들이 어떻게 동양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절대종교에서 떨어져 나갔던가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즉 동쪽으로 퍼져나간 인류가 만들어나간 동양의 종교들은 결국 상대종교에서 무종교까지 이르게 되었고, 한 번 만들어진 종교는 21세기까지 고인 물과 같이 동양의 각 사회 속에 깊이 침전, 누적되었습니다. 그 동안 동양이 만든 문화(명)는 상대종교와 무종교 때문에 발생하는, 변화없는 무한반복의 역사가 만들어내는 허무함, 우울함, 어두움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내면을 표현한 표현예술(음악, 미술, 문학) 속에서 누구나 이런 사실을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반면에 서양에서는 처음부터 종교가 빠른 속도로 도외시되었을 뿐 아니라, 종교를 대체한 철학도 과학이 대체하고, 그 과학을 다시 기술이 대체하고, 다시 그 기술을 AI가 대체하는 상황이 21세기에 이르게 된 겁니다. 서양문화(명)는 무언가가 부글부글 끓으며 힘이 있으며 변화가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20세기에 양차대전(2차대전에서 유럽인만 7천만명 사망)과 같은 재앙을 전 지구에 뿌리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겁니다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14호>에 실려 있습니다.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는 

  • '지역적 동네'뿐 아니라 '영역적 동네'로 확장하여 각각의 영역 속에 모여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스토리와 그 속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문명, 문화현상들을 동정적이고 창조적 비평과 함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국내 유일한 동네신문입니다.
  • 일체의 광고를 싣지 않으며, 이 신문을 읽는 분들의 구좌제와 후원을 통해 발행되는 여러분의 동네신문입니다.

정기구독을 신청하시면  매월 댁으로 발송해드립니다.
    연락처 : 편집장 김미경 010-8781-6874
    1 구좌 : 2만원(1년동안 신문을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예금주 : 김미경(동네신문)
    계   좌 : 국민은행 639001-01-509699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