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신(新) 무릉도원 ‘명상’ -작가 왕열

2019년 8월호(118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10. 12. 20:55

본문

[현대 한국 미술 시리즈 5]

신(新) 무릉도원 ‘명상’

- 작가 왕열

 

73 x 60.6 cm 천에 먹과 아크릴  [2017. 박정수「미술 읽어주는 남자」에서 발췌]

 

한 여름에 아주 시원한 그림 아닌가요? 
그런데 자세히 보면 어두운 면이 아래쪽에 깔려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화가의 의도랍니다. ‘아랫부분의 검은 색은 도시풍경이면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재를 의미합니다.’ 이런 ‘외면’에 비해서 훨씬 더 중요한 ‘내면’에 대해서는 이렇게 해설하는군요.
‘이것은 인간 내면의 중요한 본질인 신(神)에 관한 대변이며, 정신의 측면이 구체적으로 발현되었다고 보면 됩니다.’ 이렇게 해서 작가가 만들어가는 ‘신 무릉도원 시리즈’는 외연과 내면의 동시성을 가짐을 보이려고 한 것 같습니다. 하여간에 이 뜨거운 여름에 복잡하고 검은 도시를 떠나서 푸르고 시원한 하늘, 골짜기, 바다로 떠나고 싶은 도시인들에게 호소력 있는 그림입니다. 그런데 작가는 공간탈피 정도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 이동’, 혹은 ‘신으로의 이동’으로 차원을 높이기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목도 신 무릉도원-명상으로 붙이고 있군요. 


전체적 그림보기에서 더 세밀한 관찰로 전진해볼까요? 우리에게 익숙한 유튜브(YouTube) 동영상을 보던 습관에서 벗어나서, 정지해있는 그림의 세부에 상상력을 동원해 우리 눈을 집중하면서 말입니다. 
먼저 아래쪽에 외롭게 우두커니 혹은 자신 없게 서 있는, 그리고 전체 그림에서 겸손하게도 조그마한 공간만 차지하는 약간 여윈 말 한 마리가 보이는군요. 아무래도 이 그림의 주인공인 것 같은데, 고개가 약간 아래로 처져 있어서 여간 안쓰럽지 않습니다. 주인공이라고 하기에는 영 그렇지만, 주인공이 맞긴 합니다. 특히 장소가 정치적 중심지로 으레 광장 한가운데 떠억 버티고 서서 고개를 힘껏 쳐들고, 자기 위에 탄 영웅의 영광에 동참하는 말의 동상에 비하면 더욱 대조가 됩니다. 이것을 자신 없어함, 아니면 자기 현실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정직함으로 해석할까요? 


여기에 더해 색깔까지도 전체를 지배하는 초록에 확연하게 구분되는 검정이니, 이 말의 외로움이 더 절절하게 다가오지 않나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선호하는 초록을 가슴에 품고 싶은 마음은 한결같지만, 절대로 초록이 될 수 없어서 늘 검정으로만 머무를 수밖에 없는 스스로를 반추 혹은 자책하는 걸까요? 그렇지만 작가는 이런 천편일률적인 이원적 해석을 피하고 다양한 차원을 표현하려는 듯이 주황의 흔적들을 조금, 그리고 아래쪽의 흰색의 배경을 남겼군요. 
아하, 그래서 좀 더 자세히 보니 초록의 풀, 나무만이 아니라 그 배경 안에 푸른 흔적도 면면히 보이네요. 아마 이 외로운 말은 초록의 숲만 아니라 푸른 바다와 파란 하늘을 꿈꾸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도 되겠지요.


자 이제 이 그림을 ‘작가를 존경하는, 좋은 의미에서의 포스트모던적으로’ 과감하게 해체해볼까요? 먼저 21세기 한국미술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결코 현실을 돌파한 적이 없었던 오래된 동양적 이원론의 전형을 드러낸 이런 ‘무릉도원적 말’을 이제는 벗어날 수 없을까요? 


불금부터 주일 밤, 심지어 월요일 오전까지 쉬고 노는 시간을 아무리 연장시켜도, 멍 때리는 월요일이 저승사자처럼 꼬박꼬박 다가오며, 또 여름에 휴가에서 현실을 도피할 수는 있지만 돌아오면 마주할 동일한 답답한 현실은 도무지 벗어날 수 없다고 믿는 우리들! 하지만 정반대로 상무(尙武)적인 서양인들, 정복적 유목민족들이 표현하기 좋아하는, ‘머리를 하늘을 향해 힘껏 치켜세우고 발을 쳐들고 휘저으며 히힝거리는 소리를 환청으로라도 안겨주는 것 같이 교만하게 묘사된 말’은 이제 그들도 제발 지겨워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만인을 향한 만인의 적자생존의 경쟁을 유발하는 문화를 21세기에 극단적으로 창조해놓고서도 자신들도 어쩌지 못하는 그들 말입니다.


그렇다면 전혀 다른 ‘제3의 말’은 꿈꿀 수 없을까요? 그러기 전에 이 ‘말’(馬)이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라는 정의부터 잘 내려야 하겠지요.

 

 

경기도 군포시 서인성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18>에 실려 있습니다.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는 

  • '지역적 동네'뿐 아니라 '영역적 동네'로 확장하여 각각의 영역 속에 모여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스토리와 그 속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문명, 문화현상들을 동정적이고 창조적 비평과 함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국내 유일한 동네신문입니다.
  • 일체의 광고를 싣지 않으며, 이 신문을 읽는 분들의 구좌제와 후원을 통해 발행되는 여러분의 동네신문입니다.

정기구독을 신청하시면  매월 댁으로 발송해드립니다.
    연락처 : 편집장 김미경 010-8781-6874
    1 구좌 : 2만원(1년동안 신문을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예금주 : 김미경(동네신문)
    계   좌 : 국민은행 639001-01-509699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