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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가는 액자를 만듭니다. ‘아트홀 금화’

2019년 8월호(118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10. 20.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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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生生) 기업 스토리]

500년 가는 액자를 만듭니다.
 ‘아트홀 금화’

 

삼각지역 3번 출구로 나가면 표구사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습니다. 그 가운데 그리 크지 않은 매장이지만, 루브르 박물관까지 달려가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고자 애쓰는 배첩* 장인 안병목 대표가 운영하는 특별한 표구사 ‘아트홀 금화’를 소개합니다.

 

 

가난을 떨치고자 서울로 상경
일단 먹고 살려고 표구일을 시작했습니다. 70년대 서울에 올라오면 돈은 둘째 치고, 먹고 자는 것이 중요했죠. 1974년 중학교를 졸업하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망우리 공동묘지 밑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당시는 서울에 올라가 먹고 잘 수만 있다는 것만으로도 성공한 거죠. 가난한 시골에서 보리밥만 먹다가, 흰쌀밥을 먹는데 너무나 좋아서 3개월 동안 쌀밥에 간장만 먹어도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대단하게 돈은 못 벌어도 명절 때 깨끗한 옷 한 벌 입고 시골로 내려가면 인기도 최고였죠.
처음에는 표구와 관계된 일을 하면서 어깨 너머로 표구를 배웠습니다. 가르쳐 주는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꾸 보고 직접 만들어보면서 기술을 익힌 거죠. 그러다가 인간문화재 김표영 선생님과 충북 지방무형문화재 배첩장 홍종진 선생님 밑에서 체계적으로 배첩을 배워 지금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국내도 아닌 중국에서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문제를 일으키고 소비자에게 불편을 드리는 일도 많았지만 지금 기억해 보면 그런 경험이 다 지금의 자산이 된 것 같습니다.

장인의 길을 걷다
흔히 액자 같은 것을 만드는 것을 ‘표구’라고 하는데 이 말은 일본에서 들어온 말이고, 우리나라에서는 ‘배첩’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액자는 거의 없고 병풍이나 족자를 만드는 일이었죠. 예로부터 삼분화 칠분표(三分畵  七分裱)라 해서 그림의 완성은 30%가 화가의 몫이고 70%는 배첩장의 역할로 매우 중요했습니다. 사실 그림이나 글 같은 지류 작품들이 만들어지는 곳마다 보이지 않지만 배첩을 만드는 사람들이 함께 있었던 겁니다. 문헌에 보면 보리, 밀, 쌀로 풀을 써서 배첩 작업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제일 좋은 것은 생보리를 삭여서 풀을 만든다고 하는데 그것을 연구해서 배첩을 하는 것입니다. 일반 표구사는 그런 내용을 전혀 모릅니다. 
지금까지 이러한 배첩에 대한 책을 아무도 쓰지 않았는데, 제가 자료를 모아 책을 만들어 올 가을에 출판할 예정입니다. 원고는 6년 전에 다 준비해놓았는데, 과연 이 책이 필요할까 고민하다 이번에 내놓기로 결정한 거죠. 표구하는 분들이 그렇게 많지만 이러한 자료에 대해 관심과 지식이 거의 없는 것이 사실이거든요. 어찌 보면 표구에 대한 전문적 자신감이 부족하다고도 말할 수 있는데, 저는 그것을 바꾸고 싶은 것입니다. 문화재청에 공식적인 인정을 받은 표구공으로서 문화재 수리를 하다보면, 종종 대학 교수들이 와서 자문을 하는데, 그것조차 너무나 빈약할 때가 많거든요. 혹자는 이 일이 사양산업이라고 말하는데, 그저 밥벌이로 그치는 일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연구하고 기술을 발전시켜 전문성을 높이는 것이 저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표구의 역사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에는 액자가 아니라 족자 같은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액자는 서양에서 들어온 것이죠. 이러한 액자와 비슷한 것으로 광화문이나 양반집 대문에 붙은 현판이 있었습니다. 나무로 테두리를 만들고 모서리에 봉황이나 닭의 형상을 달아 놓아 장식을 했죠. 정식적인 액자의 시초라고 하면 구한말 일본에서 얼굴을 비치는 거울이 들어왔는데, 장식용 테두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서양화가 본격적으로 그려지면서 액자가 성행하게 되었죠.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표구는 일본식이 대부분입니다. 일본은 우리나라나 중국과 비교해 종이 만드는 방식이 조금 다릅니다. 결이 있고 그 결을 따라 종이가 잘 찢어집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만든 한지는 결이 없이 질겨 잘 찢어지지 않습니다. 여기에 도침질(다듬이질)을 해서 면이 고르고 부드럽기 때문에 먹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 번지지지도 않고 아주 잘 나갔죠. 중국으로 바치는 조공 물품 중에 이 한지가 있었던 만큼 종이 만드는 기술의 우수성이 매우 높았습니다. 일본은 아직도 우리가 만드는 한지 기술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여기에 일본의 표구라는 것이 서양의 방식을 그대로 흉내 낸 것에 불과한데, 우리가 일본의 표구를 따르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닉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핵심은 풀과 종이
표구사 어디를 가도 저와 같은 방식으로 표구를 하는 곳이 없습니다. 저는 한국전통 표구방식, 배첩을 이용해 액자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 풀과 종이입니다. 종이는 한지가 우수하다고 하지만, 종이의 두께, 생산지를 정확하게 고려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풀은 제가 직접 밀가루를 삭혀서 풀을 쒀서 작업을 합니다. 이 과정에서 불순물을 최대한 빼서 작업을 해야 오래가는 액자를 만들 수 있습니다. 어떤 때는 일반 지물포에서 파는 풀을 사용할 때도 있는데, 그 때도 풀을 세 번 이상은 끓여서 최대한 불순물을 제거해서 사용합니다. 문화재를 수리할 때도 맞는 종이와 풀을 사용해야 하는데, 풀을 만져보면 그 풀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원칙은 정직
욕쟁이 할머니가 욕은 해도 밥은 맛있어서 손님이 계속 오는 것 같이, 제가 손님들에게 때론 과격하게 말을 해도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기 때문에 다시 찾아오시는 것 같습니다. 병풍이든 액자든, 제가 정직하게 하지 않고 잇속을 차리면 그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가격에 맞는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어 줘야 명품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표구는 당장에 이것이 잘 만든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드러나지 않습니다. 사람들도 어떤 것이 좋은 표구인지 잘 모르고요. 세월이 지나야 비로소 그 진가가 드러나는 것이 저의 일이죠. 시간이 흘렀으니까 어쩔 수 없어가 아니라, 세월의 흔적이 최대한 드러나지 않게 하는 것이 진짜 표구의 가치이고 실력인 것입니다. 그런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직하게 제품을 만드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삼각지 표구단지
표구는 인사동이 원조이고 홍익대 앞이 두 번째라 할 수 있습니다. 인사동이야 문화재나 골동품이 많았기 때문에 일제시대부터 발달한 것이고, 홍대 앞은 미대로 유명하니까 자연스럽게 발달한 것이라 할 수 있죠. 그런데 제가 있는 삼각지에 표구상이 많은 이유는 조금 특별합니다. 이전에 근처에 미군들이 많이 살았는데, 본국으로 돌아 갈 때 선물,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발소 그림들을 많이 사 갔다고 합니다. 그런 그림을 파는 곳이 이곳에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액자를 만드는 사람들이 따라온 것이죠. 

 

앞으로의 계획
파주에 540평 규모로 전수관을 짓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아내는 그림을 그리고, 저는 후배들을 양성하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전통적인 궁중 배첩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고, 더더구나 그것을 실제로 표구에 사용하는 사람은 저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문화재는 건드리면 손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제대로 된 문화재 복원을 하려면 작품의 역사를 이해하고, 오래갈 뿐 아니라 사후 관리를 세심하게 하는 것이 필요한데 현재는 너무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전수관을 통해 제대로 된 문화재 복원뿐 아니라, 앞으로 통일이 되면 북한에 있는 많은 문화재를 살리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여기에 2016년부터 매해 참여하고 있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의 살롱전을 통해 한국의 전통 배첩 기술을 계속적으로 외국에 알리고 싶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에는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약탈해 간 문화재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는데, 더 안타까운 것은 그 문화재의 수리를 한국이 아닌 일본에 맡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대로 된 한국의 전통 배첩 기술로 이 문화재를 수리할 뿐 아니라, 한국의 우수한 문화를 알리고자 박물관 한 구석에 작업장을 직접 만들어 시연을 하고 있습니다.

* 표구는 일본에서 들어온 용어로 조선시대에는 배첩이라고 불렀는데, 글에서는 둘을 병용해서 사용했습니다.

2014~2017, 문화재수리기능인협회 
2016~2018, 프랑스국립예협회 살롱전 Salon SNBA 전통배첩 시연회

 

아트홀 금화 02-798-9431
배첩장 안병목  010-8517-5349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18>에 실려 있습니다.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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