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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7년! 칠레에서 20년! 18일간의 고국견문록

2019년 11월호(121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11. 20.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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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방문기]

독일에서 7년! 칠레에서 20년! 
18일간의 고국견문록

 

27년 전, 외국으로는 처음 첫 발을 내디딘 곳이 베를린이었습니다.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초대형 수퍼마켓에서부터, 도로 곁에 분명하게도 선이 그어져 있던 자전거도로. 선진국이라지만 도리어 자연으로 돌아가 버린 듯한 사람들의 행동 양식들. 그런 얘기들을 쓰고 싶었더랬습니다. 그러니까 신판 ‘서양견문록’말이지요. 그런데 이제 거꾸로 고국방문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독일에서 7년, 칠레에서 20년을 살다보니 외국에서 사는, 외국인이 되어버린 사람이 고국을 다른 나라 보듯 볼 수 있는 ‘타자의 시선’이 가능해진 겁니다. 참 신기한 경험이네요. 9월 추석 즈음 고국방문을 하고 왔더니 꼭 가보지 않은 외국의 한 나라를 여행하고 온 기분이 드니까요.

 

인천 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제2여객터미널에 내려서부터 놀라움이 배가 되었습니다. 그토록 큰 인천공항에 제2여객터미널이 있다는 것은 두 배로 커졌다는 얘기 아니겠어요? 입국절차를 밟기 위해 복도를 지나오면서 그 귀한 서양난이 창가 쪽으로 쭈우욱 늘어서서 반겨주니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1983년 가수 정수라가 불러 대히트를 친 ‘아! 대한민국’이 제게는 이때를 위함으로 미리 지어진 곡이라는 사실로… 밝혀지는 순간이었답니다.(1983년, 뭐 한국에 대단한 거 없었잖아요!) 초스피드의 입국절차. 게다가 스으윽 한번 날 쳐다보곤 검사대를 거치지 말고 그냥 나가시라는 세관원의 배포!(제가 사는 칠레라면 어림도 없죠) 
경유지였던 디트로이트 공항도 예전에 비해 입국, 출국심사가 어지간히도 많이 빨라졌던데 인천공항의 혁혁한 성과가 입소문을 넘다보니 조그만한 나라 한국을 대놓고 따라한 게 분명합니다. 콧대 높은 나라를 입국심사 하나만으로도 이겨버린 이 기분을 뭐라 해야 할지. Bic 볼펜의 신화가 모나미 153의 신화로 바뀌어진 야릇한 기분! 뭐, 그런 뿌듯한 기분이 들었단 말이지요.


어머니께 효도하며 본 아파트
어머니의 “익호야! 보고 싶구나~”라는 간절한 호소덕분으로 고국방문이 이루어진 만큼 한국에 있는 동안 어머니랑 꼭 붙어 지냈습니다. 이틀간 정말 효도했지요. 어머니는 주로 침대에 누워 TV를 보셨으니 내가 할 일은 똑같은 포즈로 침대에서 같이 뒹구는 거였습니다. 마침 시차적응으로 피곤했던지라 어머니랑 지내는 게 아주 쉬웠습니다. 그저 푹 잠을 잘 잤습니다. 

 

어머니는 김포시의 새로 지은 아파트에서 막내부부랑 같이 삽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요즘 짓는 새 아파트 수준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서민층을 겨냥한 아파트로 보였지만 발전될 대로 발전된 최첨단 시스템이 모두 발현된 듯 한 최첨단 아파트! 그래요, 제겐 그렇게 보였습니다. 마침 독일에 놀러갔다 돌아온 여동생이 이렇게 말해주어서 제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오빠! 동독이 서독보다 더 삐까번쩍하더라! 게다가 HdK(과거 서베를린에 위치한 음대)보다 지금은 한스 아이슬러 음대(과거 동베를린에 위치한 음대)를 더 알아준대~”
뭐, 물론 자기가 거기 나왔다고 은근 뻐긴 셈이 되긴 했지만 제가 과거 한스 아이슬러 음대에 시험 쳤다가 낙방한 경험이 있어 그저 “동상~ 좋았겠다”면서 올려주었습니다.
아참, 아파트! 
정말 살기 좋은 나라 대한민국이더군요. 아파트를 어쩌면 그리도 편리하게 지어 놓았는지. 칠레 주택에서 사는 장점을 페북에서 나날이 외치던 제가 대한민국의 아파트 하나, 그것도 뭐 김포시, 고급 아파트군도 아닌, 일반 아파트의 시설물 하나로 간단히 무릎 꿇었습니다. 문과 문틀을 이어주는 기존 경첩의 개념을 뛰어넘어 어떻게 주름잡은 경첩(?)으로 틈 하나 없이 매달 생각을 했는지.


이참에 ‘롯데월드타워’도 보고
고국 방문 후반 즈음, 처가 댁 식구들과 근 500m에 달하는 ‘롯데월드타워’에 올라 관람을 했습니다. 63빌딩이 뻔히 있었지만 ‘뭐하러 본다냐’라며 그동안 전망대에도 가보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뻔하게 유명한 롯데월드타워를 굳이 갈 필요까지야 있겠는가 싶었지만, 처가댁 식구들이 분명히 칠레에서 온, 게다가 촌뜨기 라이프 스타일을 강조하는 내게 한방, 아니 친절하게 놀래켜 주려는 선량한 뜻을 헤아려 전망대에 올라 갔더랬습니다.
읔! 가지가지로 놀랬죠. 일부는 바닥이 유리라 500m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었고 툭 트인 시야들 하며. 아니, 어느 사이에 우리나라의 건축술이 이리도 대단해졌는지 혀가 내둘려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놀란 것은 외국인들이 우리 한국인을 쳐다보는 눈빛이었습니다. 그리고 태도까지 말입니다. 전에야 서양인들을 우리가 쳐다보고, 그것도 우러러 보지 않았던가요. 이젠 거꾸로 그들이 우릴 우아한 존경의 눈빛으로 쳐다보는, 분명 그런 감을 느꼈단 말입니다.


대한민국 지자체의 결과물
가족여행으로 단양엘 놀러갔었습니다. 예전 기억으로 그저 시골로만 기억하고 있던 곳이었지만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단양강의 ‘잔도길’이라는 산책로를 걸으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어쩌면 뿌리를 뽑고야마는 그 근성이 이룩한… 지자체의 결과물. 이 한 예를 보면서 감동이 뭉클 일었습니다. 암벽에 가까운 돌산인데 어떻게 시설물을 설치했을까 하는 궁금증은 차치하고도 걷는 내내 잔잔히 클래식(분명 ‘지화자 좋을시고’가 아니었음) 음악을 들을 수 있어서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이렇게 잔도길에 클래식 음악을 틀어야 된다…로 결정되기까지 온갖 까다로웠을 공무원들의 노고를 그려보며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평균 문화수준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할 말은 많으나
18일 정도 한국에 머무는 동안, 운 좋게도 페북 친구들과 <행복한 동네문화 만들기> 커뮤니티를 5일 간의 짧은 기간 동안이지만 치열하게 만났습니다. 왜 운이 좋았냐고요?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저를 돌아보게 되었고, 앞으로의 인생을 어찌 살아야하는지 잣대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행복한 동네문화 만들기>팀들이 보여주던 하염없는 받아들임의 태도는 제가 평생에 이를 수 없을 문화적 고품위였습니다.
어쨌든, 세 팀을 모두 만난 곳이 안국동 주변이었습니다. 한 팀은 덕수궁 건너편 현대미술관, 다른 한 팀도 역시 안국동에서 만나 식사와 커피. 산책을 하며 하하 호호식 대화가 많았지만, 평균 이상의 문화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대화가 오가는 것을 보고 대한민국이 겉모습뿐만 아니라 안 모습까지도 성숙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행복한 동네문화 만들기> 커뮤니티는 윤보선 가옥 행랑채를 변호사 사무실로 사용하는 곳에서 만났습니다. 황경태 변호사를 처음 마주하며(그간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에 기고하는 법률 칼럼을 통해 알고 있었음) 그의 법철학을 잠시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변호사들은 돈만 밝히는 줄 알았는데, 세상을 이롭게 만들기 위해 이렇게 건전한 생각을 실생활에 적용시키려는 사람이 다 있다니 하면서 말이지요. 기회가 되면 이날 만난 분들에 대해서 일일이 다 쓰고 싶습니다.


끝말
예전에는 고국을 방문하고 칠레에 돌아오면 고국앓이를 했더랬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습니다. 그런 증상이 없어졌어요. 왜냐하면 이제 이웃집 드나들 듯 하고 싶어진 탓입니다. 내년에 또 방문하고 싶은 거 있죠?(웃음)

 

 

 

 

 

 

 

 

 

 

 

 

 

 

칠레에서 노익호
melquisedec.puentealto@gmail.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21>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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