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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 Umberto Eco [장미의 이름 Il Nome Della Rosa] 해체하기 재창조하기

2019년 11월호(121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11. 1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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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문화(사전)연구여행] & [고전(인, 되어가는)문학 비평]

움베르토 에코 Umberto Eco
[장미의 이름 Il Nome Della Rosa]
해체하기  재창조하기

아주 최근에 고인이 되어버린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1932~2016)는 철학자, 역사가, (문화)인류학자, 문학가, 방송인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서양에서는 아주 잘 알려졌습니다. 작가로서 쓴 첫째 소설인 <<장미의 이름 Il Nome Della Rosa 1980>>은 비교적 일찍 한국에도 번역되어(1986) 이제는 거의 고전처럼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서양에서 배운대로 분업적, 분석적인 현대서양문화의 특징을 따르기 때문에, 소설을 넘어선 그의 삶의 다양성과 전체성을 포괄하는 비평이 자리 잡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행복한 동네 문화이야기>의 새로운 [고전(인, 되어가는)문학비평] 시리즈에서 이 책을 먼저 선정한 이유는 최근까지 살았던 저자와 이 책의 복잡성과 다양성이 현대 서양문화(명)와 그 뿌리를 알려고 하는 [유럽문화(사전)연구여행]을 위한 좋은 출발점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피상적 유럽 열풍을 극복하는 치료책으로 이 책에 대한 비평이 될 것을 기대하면서 [장미의 이름 : 해체하기 재창조하기]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유명하다고 일단 알려지면 무비판적으로 따르기를 잘 하는 한국인의 사대 근성을 거스르기 위해서라도, 도전적 제목인 ‘해체하기’를 내세웠습니다. 정반대로 그를 존중하면서도 넘어갈 것을 생각하며 ‘재창조하기’라고 정해 보았습니다. 
    
“현대인의 삶은 비즈니스지만, 중세인의 삶은 삶 자체였다.”
저명한 중세사학자 야곱 부르크하르트Jacob Burkhardt(1818~1897)의 말입니다. 아마 저자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였을 것인데 그는 욕망, 열정, 죄의식, 선행, 살인, 공동체 등 총체적 삶이 넘쳐나는 중세를 평생에 걸쳐서 다양한 각도(철학, 미학, 역사, 문학)로 다루면서 몰입해 갔습니다. 그런데 그의 소설에서 중세의 핵심역사를 정확하게 두 가지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 생애의 첫 문학작품([장미의 이름] 1980)에서 첫째 역사(1327)에, 마지막 문학 작품([바우돌리노] 2000)에서 둘째 역사에 집중하였습니다. 중세의 둘째 핵심역사는 4차 십자군 전쟁과 콘스탄티노플 함락(1215)이었습니다.

중세의 핵심역사를 공부하다가 근본(로마교 신앙)을 역사의 길바닥에 버려버리다!
그러면 중세의 첫째 핵심역사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백여 년 후인 유럽에 잊혀졌 던 아리스토텔레스를 아랍을 통해 재도입한 역사입니다. 이렇게 되면 고대 그리스 시절에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사제지간에 끝나지 않은 토론, 논쟁이 중세 후반에 재현될 것은 불 보듯이 빤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중세에는 이미 자리 잡고 있던 (신)플라톤주의적 태도와, 새롭게 소개된 오랜 철학전통인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1)종합하거나, 아니면 2)전자((신)플라톤주의)를 배제하려는 시도가 일어난 거지요. 종합의 대가가 바로 현재까지 로마교가 신학적, 철학적 근거로 삼고 있는 토마스 아퀴나스였습니다. 아주 단순하게 말하자면, 신학은 (신)플라톤주의적으로, 철학과 기타 학문은 아리스토텔레스적으로 해서 서로 종합하자는 태도입니다. 움베르트 에코의 박사학위논문(1954)은 이런 로마교의 전통을 따라서 아퀴나스를 주제로 한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공부를 해 나가는 동안 자기의 깊은 내면에서 천지가 개벽할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로마교 신앙을 역사의 길바닥에 버린 겁니다. 19세기에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수도사들이 창설한 학교에서, 엄청난 재능을 가진 청년이 다니며 종교적 신앙을 가지고 로마교의 정수를 공부하다가 존재의 헛된 근간이 허물어져 버린 겁니다. 실제로 토마스 아퀴나스 자신도 평생에 걸쳐서 매우 방대한 <<신학대전>>을 써나갔지만, 마지막 생애에서 놀라운 체험을 한 후에 자기가 쓴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리라고 말한 후에 죽었습니다.  

로마교 신앙은 버렸지만, 중세의 역사를 다시 주워서 문학화(역사소설)하다! 
그런데 이런 다음에 그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이며,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행동할 것 같습니까? 신앙은 버렸지만, 그 땅바닥에서 그가 사랑하게 된 중세와 그 역사를 다시 주웠습니다. 영원한, 영속적 가치를 추구하는 종교가 무너졌을 때, 인간이 취하는 차선책은, 영속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오래가는 가치라도 붙잡는 겁니다. 물론 자살로, 허망한 삶으로 생애를 끝내는 길도 있기는 합니다. 욕망이 총체적으로 분출하고 충돌했던 역사가 어느 시대인들 또 현대인들 반복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다시는 쳐다보고 싶지 않았을 역사로 돌아가서 시궁창을 들여다보는 용기를 발휘합니다. 공주(신학, 철학)를 공부하면서 염증을 느꼈지만, 그 가운데 사랑하게 된 시녀(역사, 미학, 문학)의 화장기 하나 없는 아름다운 얼굴이 아른거리니 어쩔 수 없겠지요. 그래서 중세의 핵심 역사 둘에 몰입해 역사소설, 추리소설 형식으로 문학적으로 창조해낸 겁니다. 하나([장미의 이름])는 서방(라틴)교회의 역사(1327)를, 다른 하나([바우돌리노])는 동방(비잔틴)교회의 역사(1215)를 다룸으로 중세 역사를 문학적으로 갈무리한 겁니다.

내 사랑,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poetics에 왜 2권(‘희극’)이 빠져있을까?
<<장미의 이름>>이 분석하고 이해하기 쉬운 이유는 그가 이 책을 출판하고 난 뒤에 독자들의 반응을 보면서 이 책을 쓸 때의 작가의 생각이 어떻게 움직였던가를 [Postscript to The Name of the Rose]([장미의 이름] 창작 노트, 1992)에 그대로 보이고 있고, 또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용어, 사건을 설명한 [The Key to the Name of the Rose]까지 나왔기 때문입니다. 전자의 책에서 그는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의 열렬한 숭배자’(p.86)라는 사실을 거침없이 드러냅니다. 그는 아마 청년기, 중세와 아퀴나스를 공부하던 중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매혹되었고, 그중에 아주 특이한 점을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은 시학의 서론에서는 비극과 희극을 다룰 것을 말하지만, 정작 본론에서 소개된 것은 비극(1권)만 있고 희극(2권)은 없는 겁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삼단논법적으로 역사를 추론했을 것입니다 :
1) 아리스토텔레스가 서론에 이미 소개했기 때문에, 반드시 희극에 대한 것을 썼을 것이다.
2) 또 그가 쓴 다른 주제들에 대한 글들은 거의 대부분 전수되었다.
3) 그러므로 희극에 대한 것이 빠진 데는 역사적 이유(음모)가 있다.
그는 바로 이 사실을 자기가 만들려는 역사, 추리소설 창작의 기준점으로 삼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웃었느냐 웃지 않았느냐 하는 중세에서나 가능한 신학적 토론을 문학적으로 되살려 냅니다. 다시 말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2권으로 있어야 할 희극에 대한 부분이 전수되지 않은 것은 음모 때문이었는데, 이런 음모를 만든 사람들은 엄격주의적인 신학 경향을 가진 프란시스코 수도원의 전통을 따르는 수도사였다는 설정입니다.

중세 역사의 핵심 쟁점, 옛 사조인 신플라톤주의와 신사조인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충돌
앗시시의 프란시스코는 중세에서 공부나 철학이 아닌 무소유, 무지배의 실천적 삶으로 당시 로마교에 회개, 개혁 / 이슬람선교 / 고아, 객, 과부 돕기를 실천하는 운동을 일으킨 사람이었고, 그의 사후에 이를 발전시키려는 수도원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렇지만 역사가 흐르면서 근본정신은 퇴색하고 부정적으로 발전한 결과, 엄격주의적이 되어 웃음을 금지하는 신학체계까지 만든 겁니다. 그렇지만 이런 흐름 뒤에는 근본적으로 이원론적인 (신)플라톤주의적 전통을 기독교에서 확립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이 있었습니다. 즉 플라톤의 이데아-현상의 이원론은 기독교가 가진 것 같은 천국-세속의 이원론에 적합하게 여겼으며, 이를 따라서 천국의 열쇠를 쥐고 있는 로마교는 세속을 지배할 권리가 있다는 신학의 기초를 세웠고, 중세 내내 교황과 황제의 투쟁역사를 만들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이 소설의 배경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근본을 뒤흔들 초강력 바람이 십자군원정과 동방과 접촉에서 알게 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그의 백과전서적 지식체계였습니다. 물론 겉으로는 동방을 정복하러 떠났지만 동방에 정복당한 꼴이 된 셈이 되어 실제로는 이미 유럽인 고대 그리스에 있었던 아리스토텔레스를 재수입한 것이니 본래를 회복한 셈인 겁니다. 중세의 유럽은 겉으로는 신학논쟁을 일삼았지만, 속으로는 로마교가 삶의 실제인 돈과 지배권을 전부 장악한 상태로 진행되어 왔는데, 이교도라고 여기는 동방의 이슬람, 유대인들이 물질적 삶에서 훨씬 더 잘 사는 것을 발견한 겁니다. 세상의 일에 더 집중하게 만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체계가 이렇게 잘 살게 된 배경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중세의 실재론과 유명론 논쟁은 과연 성경이 말하는 것인가?
이런 가운데 중세에서 실재론(realism)과 유명론(nominalism)이라는 신학적 논쟁이 가장 먼저 점화됩니다. 즉 옛 사조인 천국(이데아)-세속(현실)의 이원론과 신플라톤주의적 신학을 고수하는 전통의 프란시스코 수도원은 실재론을 내세웠지요. 그래서 실재는 저 건너편, 천국에 있으며 현실은 지나가는 현상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반대로 신사조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을 따르는 전통의 베네딕트 수도원은 유명론을 주장하는데, 본질이란 이름(형상)뿐이며 개별자는 질료가 그 속에 채워진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 첨예하게 대치하는 논쟁이 [장미의 이름]의 중요한 신학적 중추를 형성합니다. 
둘째 주인공이자 악의 화신인, 프란시스코 수도원 출신의 호르헤가 끝까지 웃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그 이원론을 따라서 웃음은 천박함, 가벼움인 세속을 천국인 교회에 끌고 들어온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첫째 주인공인 바스커빌의 윌리암은 천국은 이름뿐이므로 철저하게 역사, 현실이 중요하다는, 그래서 웃음은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는 아퀴나스, 로저 베이컨, 오캄의 윌리암을 따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은 과연 이 논쟁에서 어느 편을 설까요? 혹시 이것이 헛된 논쟁이라고 말하지 않을까요? 성경은 분명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이 영원하니라’(고린도후서 4:18)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세상(물질적인 것을 포함한 모든 것)을 창조하고 난 뒤에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심히 좋았더라’(창세기 1:31)라고 했습니다. 얼핏 보면 앞은 이원론을, 뒤는 일원론을 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떻게 이해할까요? 여기에 필요한 것은 성경구성에 대한 근본적 이해입니다. 구약성경은 천여 년에 걸쳐 아주 많은 사람들이 모든 주제를 다룬, 총체적이지만 차원은 옛 시대적인 책으로 물리적 전쟁을 승인합니다. 그런데 신약성경은 30여 년의 짧은 기간에 10명도 채 되지 않은 사람들이 좁고 제한된 주제를 다루지만 차원은 아주 높은 책입니다. 예수는 구약성경을 부인하기라도 하듯이 칼을 든 자는 칼로 망하며, 원수를 사랑하라고 선언합니다. 구약성경의 하나만 붙드는 유대교(주로 오경)와 이슬람(제한된 일부만)에 비해서, 움베르트 에코가 섰던 기독교의 원래 전통은 이 둘을 동시에 경전으로 받아들입니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길은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차원, 역사를 전격적으로 열었던 예수가 걸어갔던 길을 가며 그의 해석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즉 아브라함의 육신의 후손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가졌던 진실된 믿음을 하나님을 향해 절대적으로 던지는 자들이 진실된 아브라함의 후손이고, 눈에 보이는 교회당은 예배드리는 건물일 뿐이며,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는 진정한 공동체가 성전이라는 태도 말입니다. 물질세계 자체를 더러운 것으로 여기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 자체를 부인하는 것일 뿐입니다. 물질, 성, 지배에 대한 관심은 지상세계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므로 그 자체로 더러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룩한 것입니다. 하지만 절대신이 마음에 없으면 물질욕, 성욕, 지배욕 자체가 오히려 하나님이 되므로 사도 바울은 마치 그것을 철저히 거부하듯이 묘사하고 있을 뿐입니다.          

과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완전히 차이가 날까?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의 [옛 문화(명)의 황혼에서 새 문화(명)의 여명으로] 시리즈에서 서양철학의 시초가 되었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뿐 아니라, 그 이전의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을 집중적으로 살피는 이유도 사실 움베르트 에코의 이 소설이나 그의 모든 저작활동과도 직접 연관됩니다. 과연 유럽문화(명)의 본질은 무엇인가 하는 겁니다. 유대인 역사가 마틴 버넬Martin Burnal은 무려 3천 페이지에 달하는 <<블랙 아테나>>Black Athena라는 대작을 통해, 유럽문화(명)가 자신의 근본으로 여기는 그리스문화(명)는 사실상 유럽인들이 검둥이로 하시하는 이집트, 그리고 그들이 멸시하는 유대인을 비롯한 셈족에게서 온 것이라고, 온 생애를 통해 연구하고 피 토하듯이 증언합니다. 그 증언의 하나로 고대 그리스어의 40%가 아시아-아프리카적 기초를 가졌다고 자세히 소개합니다. 유럽인의 세계제패가 완료된 시점인 19세기에 그리스의 학문(철학)은 유일무이하게 창조되었다는 이데올로기를 학문의 이름으로 온 세계에 퍼트린 만행을 매우 방대한 자료로 증언합니다. 우리는 그에게서 더 나아가 유럽문화(명)의 근본으로 삼고 있는 그리스 철학 자체가 그리스 신화에서 나왔으며, 그 신화는 동방(이집트, 아시아)의 신화를 베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드러내려고 합니다. 
[장미의 이름]에서 나오는 유명론(nominalism)과 실재론(realism)의 논쟁, 그 구체적 사례로서의 웃음에 대한 논쟁은 사실 그리스의 철학 중에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중에 누구를 택할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그렇지만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모두가 본질을 무언가 둘로 나누는 이원론적 구분을 견지한다는 사실에서는 동일합니다. 즉 플라톤은 ‘이데아-현상’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상-질료’로 나누는 것이지요. 이런 ‘이원론적 구분’은 플라톤이 철저히 형향을 받았던 그 이전의 철학자들인, 그리스(서쪽)의 이태리 식민지에서 철학을 했던 파르메니데스, 피타고라스와 그 반대편(동쪽)인 헤라클레이토스에게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고대 서아시아-이집트의 이원론적 태도의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논쟁이나 이것을 잇는 중세적 논쟁 모두 세상의 배꼽의 종교에서 떨어져 나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헛된 역사적 소모에 불과한 것인 겁니다. 아마 움베르트 에코가 말하려고 하는 것도 이런 역사의 허무함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움베르트 에코는 어느 편?  악의 화신과 선의 화신이 서로 그렇게 닮았을까? 
움베르트 에코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중세적 적용인 유명론을 도입한 아벨라르의 결론에 독자도 도달하기 바란다고 저자는 선언합니다(p.12). ‘장미는 존재하지 않는다’. 즉 장미란 이름으로 존재할 뿐 실체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는 거지요. 분명히 유명론의 편에 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저자는 통속적 재미위주의 소설이 하는 것처럼 바스커빌의 윌리암(유명론)이 궁극적으로 승리하게 마무리하지 않습니다. 호르헤는 자신의 신학적 확신(웃음은 악의 근원이다)을 외치면서 그 웃음을 소개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권을 영구한 비밀에 부치기 위해 냉혹한 계산으로 많은 사람을 시기, 질투하게 하고 살해, 자살로 몰아가며 궁극적으로 모든 것을 불태워버리는, 정녕 ‘악의 화신’이었습니다.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적 냉철한 이성으로 계속해서 벌어지는 죽음(자살, 타살)과 악(동성애, 집착)을 해결하려고 포기를 모르는 가운데 노력하지만 결국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모든 것이 태워지는 수도원을 바라만 보고 떠날 수밖에 없는 바스커빌의 윌리암은 ‘선의 화신’이었습니다.  
여기서 저자는 막판 뒤집기를 시도합니다. 즉 호르헤와 윌리암은 서로에게서 자신을 본 겁니다. 마치 지킬박사와 하이드가 한 몸인 것처럼 말입니다. ‘생사가 걸린 문제인데도 두 분이 오로지 상대의 갈채를 받기 위해서 싸워온 것인 양 서로 상대에게 감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략) 일주일 내내 두 사람은 교묘한 약속 아래, 서로 두려워하고 서로 증오하면서 은밀히 서로를 찬양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즉 선(신, 성녀, 정통)과 악(악마, 창녀, 이단)의 대립은 모두 공허한 대립의 유희라는 말입니다. 제가 이미 말씀드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허무한 동질성을 말하는 걸까요?  

재창조하기 1) : 기독교역사의 본질에 돌아가기 
저자의 작품을 이렇게 해체했으니, 그를 존경하는 의미에서 재창조해볼까요? 저자는 그가 살았던 이태리에 있었던 기독교 중에서도 후반부인 로마교에만 머물렀습니다. 즉 그는 역사의 고고학자로서 로마교 층까지는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엄청난 열정, 에너지, 철저함으로 파고들어 갔지만, 더 아래층에는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로마라는 종교도시의 가장 아래층에는 고대 기독교의 본질이자 영구히 꺼뜨릴 수 없는 진실한 불이 있습니다. 그것은 개인의 생명과 공동체의 역사적 기초를 무너뜨리는 250여 년의 핍박에도 불구하고 원수에 대한 신적 사랑으로 정복한 승리의 역사가 있습니다. 만약 역사가 움베르토 에코가 이 역사에 천착하여 문학을 했더라면 전혀 다른 소설이 나올 수 있었을 겁니다. 헨리크 시엔키에비치의 <<쿠오바디스 도미네>>와 같은 소설 말입니다. 중세를 소설화한다고 하더라도 헐리우드 식의 선의 단순한 승리나, 이렇게 허망한 결과도 아닌, 모든 욕망의 유혹을 이겨낸 참 종교의 역사를 가상적으로 다루는 전혀 새로운 작품으로 말입니다.    

재창조하기 2) : 독자를 지배하는 대신 끊임없이 대화하는 저자 
로마교 신앙을 버리되 배꼽의 종교의 본질에 들어가지 않은 그가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포스트모더니즘’의 길이며, 그가 사랑한 아리스토텔레스와 중세적 유명론의 길을 따르는 ‘기호학’semiotics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저자들의 경향을 따라서 그는 독자와 자신을 철저히 구분합니다. 심지어 그는 독자는 자신이 창조하는 것이며 자신의 ‘밥’(‘내가 만든 텍스트의 밥’ p.77)이라고까지 서슴지 않고 말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2차대전의 쓰라린 경험을 한 유럽이 그 이후에 이 모든 혼란, 파괴의 원인을 저자 위주(독재)의 철학, 문화관이었다는 것을 반성하는 의미에서 발전한 겁니다. 이제 텍스트는 저자와 독립해서 우두커니 서 있고, 독자는 저자를 만나지 않고 단지 자기 마음대로 처리할 텍스트만 가진 겁니다. 즉 과거에는 저자 독재주의가 있었다면, 현재는 독자 독재주의나 철저한 상대주의가 만연한 것이 유럽이 만든 쓰레기 같은 문화현상인 겁니다. 그런데 이런 시대적 흐름을 찬성하고 거기에 발을 담금에도 불구하고, 움베르토 에코는, 특이하게도 독자는 자기가 창조하는 것으로, 온 세계가 자신의 문학적 천재성을 찬양하며 갈채하는 가운데 영웅적으로 죽음을 맞이한 저자 독재의 역설적 삶을 살았습니다.
아버지의 유언장을 받은 자가 진짜 아들이라면, 그곳에 표시된 보물이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이 진짜 보물임을 알아챌 것입니다. 또 진정한 아버지는 비록 죄지은 아들에게 나가라고 호통치지만, 그 서슬 퍼런 책망은 사실 아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일 겁니다. 이렇게 진정한 아버지는 진짜 아들과 끊임없는 발전적 대화를 이어가는 관계를, 그리고 저자와 독자가 이러한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상호 독재에서 자유하는 길이 아닌가요? 서로에게 이런 자유를 주는 길은 욕망에 노예된 현재의 인간끼리는 결코 불가능하지만, 죽음으로써 그 욕망과 인간과의 고리를 단호하게 끊은 고대 기독교의 진실에 돌아간다면 가능할 것입니다.

 

 

행복한 동네문화 만들기 운동장(長) 송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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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21>에 실려 있습니다.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는 

  • '지역적 동네'뿐 아니라 '영역적 동네'로 확장하여 각각의 영역 속에 모여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스토리와 그 속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문명, 문화현상들을 동정적이고 창조적 비평과 함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국내 유일한 동네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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