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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할까요? 바다의 문법에 몸을 맡기다!

2019년 10월호(120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12. 31.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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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할까요?
바다의 문법에 몸을 맡기다!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 보이저 1호가 60억 km 밖에서 지구를 찍었을 때 지구는 창백한 푸른빛이었다. 지구 전체 표면의 70% 이상을 덮고 있는 바다가 태양의 빛을 그렇게 푸르게 반사했으리라. 그렇다. 우주적 관점에서 지구는 한 방울의 물이다. 그리고 그 물 위를 튀어나온 1/4 남짓한 공간에 육상동물인 우리 인간의 삶과 우리가 알고 있는 그 길고 긴 인간의 역사가 있었다. 
9미터가 되는 작은 요트를 타고 33시간 동안 대한 해협을 건너고, 남해와 서해의 800km 거리의 섬들을 항해하며, 도시 촌놈이 바다의 문법들을 처음 배워갈 때, 바다는 평온하고 잔잔하고 아름답고, 때론 미친 파도로 4톤짜리 요트를 통째로 들까부를 정도로 무서운 종잡을 수 없는 존재였다. 진도 앞바다에선 2미터가 넘는 파도 앞에 틸러(요트 키를 움직이기 위한 자루)를 잡고 수 시간 배를 조종하며 온몸의 근육이 부서져라 버티기도 하고, 아무런 물결조차 느껴지지 않는 신안 앞바다를 맞이하며 ‘사이렌’에 홀린 것이 아닌가 하는 몽환적 감상에 빠지기도 했다. 옛 바다 괴물의 전설들은 들물 날물이 몸을 부딪칠 때 ‘쏴아~’하며 우는 바다의 울음들과 크게 소용돌이치며 휘도는 신비한 물결의 움직임들 사이에서 유래되었다는 사실을 바다의 여러 얼굴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바다의 시간은 육지의 시간과 다르다. 눈앞에 보이는 섬은 최소 세 시간을 항해해야 겨우 닿을 수 있고 항해가 기본 10시간이 넘어가는 일은 예사다. 올 1월 겨울 제주로 향할 때는 여수에서 출발한 요트가 바람이 없어 16시간을 이동해 밤중에 겨우 항구에 다다랐다. 그렇게 바람을 타고 먼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항해는 명상과 극단적인 모험 사이를 오가며, 도시인으로 살아오며 내가 몰랐던 생의 감각들을 새롭게 일깨워주었다. 그리고 이 경험을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주고 싶은 마음에 작년에는 다산-추사 프로젝트로 완도에서 제주도의 100km 세일링 트립(sailing trip)을, 올해는 인천 개항지 답사 프로젝트로 왕복 140킬로미터의 항해를 진행했다. 그리고 서울 소재의 한 고등학교에선 올해 최초로 요트 자율동아리가 개설되어 요트 세계 일주를 목표로 학생들에게 세일링을 가르치고 있다. 

요트 세일링을 처음 배우고 선장이 되어 자주 드는 생각은 ‘내가 유럽쯤에서 태어났었다면 5살 때 아버지의 손을 잡고 요트를 처음 배웠다는 영국, 이탈리아의 젊은 세일러들처럼, 혹은 아빠의 요트를 타고 홀로 4만 킬로미터가 넘는 지구 한 바퀴를 돌고 온 호주의 16세 여자아이처럼, 좀 더 일찍 바다에 나가 지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이 바다의 문법들을 일찍 배우고 즐길 수 있었을 텐데...’하는 아쉬움이다. 그래서 조금 늦었는지 모르겠지만 3면이 바다인 사실상의 섬인 대한민국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요트를 조종해 바람을 타고 이 바다의 문법을 배우고 즐기는 일들이 일상 그 자체가 될 수 있도록, 사람들에게 ‘이 재밌는 일’을 가르치고 경험시키며 함께 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요트 세일링 문화의 저변 확대를 바탕으로, 한 세 대쯤 뒤에는 아메리칸 컵과 롤렉스 컵 등의 권위 있는 세계 대회에서 한국인 챔피언이 등장하는 멋진 일을 상상해 본다. 한국의 요트 스포츠 문화는 이제 시작점에 있고 선발대의 두세 번째 줄 즈음에 서 있는 나는 이제 어떤 일들을 해야 하나 고민하며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와 기획들을 진행하고 하고 있다. 이 일들을 통해 요트를 타고 항해를 하는 사람들이 ‘럭셔리 요트’의 왜곡된 이미지가 아닌, 태양과 파도와 바람, 펼쳐진 흰 돛의 아름다움을 보고 행복을 느끼는 행운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또 바다의 문법을 배우고 읽는 새롭고 신비한 일들 속에서 누구나 섬과 섬, 대양과 대양 사이에서 ‘요트 세계 일주’라는 창백한 푸른 점 위를 오가는 낭만적인 모험들을 꿈꾸는 세상이 오길 기대해 본다. 

 

임대균 (시인, 모아나호 선장)
keaton70@naver.com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20>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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