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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마을의 제갈량 ‘정정식’대표를 기억하며

2019년 10월호(120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12. 15.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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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이 지도자다 1]

수동마을의 제갈량 ‘정정식’대표를 기억하며

 

침체된 농촌 마을 살리기 운동을 위해 15년을 달려오다 한 달 전 54세의 일기로 그 발걸음을 멈춘 정정식! 그는 평창군 내에서 마을 전체가 힘을 합쳐 만든 것으로 가장 잘 알려진 ‘수동영농조합법인’의 대표이자, 회계 등 모든 사무업무까지 감당했던 사무장이었습니다. 그는 조용했지만, 늘 열정을 품고 도전하고 헌신했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정대표는 1966년 강원도 주문진에서 태어나 청소년기를 보내고, 강원대학교 회계학과를 입학합니다. 졸업 후에는 캠퍼스 커플이었던 현재의 아내와 함께 결혼을 하고, 한국 청년들이 일반적으로 걷는 길처럼 서울로 취업을 해서 40세까지 젊음을 보냅니다. 하지만 건강이 나빠져 처가가 있는 평창의 시골 마을로 2005년경 내려오게 되지요. 

정대표는 시골로 내려오면서 ‘농촌 마을 살리기 운동’을 해보자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폐업 직전이었던 찜질방을 인수해서 4년 만에 그 지역에서 가장 장사가 잘 되는 곳으로 바꾸어 놓을 정도로 사업에 매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찜질방 사업이 번창하자 건물 주인이 계약 연장을 거부하는 바람에 4년 동안 쌓아 놓았던 모든 것들을 포기하는 아픈 경험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일을 계기로 정대표는 완전히 새로운 방향 전환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강원도에서 최고의 우수 마을이 되어보자’라는 목표를 가지고 달려가는 ‘조수행’ 이장의 ‘삼고초려’ 앞에 본격적인 마을 살리기 운동가로 서게 된 것이지요. 사람들은 조수행 이장과 정정식 대표 사이를 유비와 제갈량, 혹은 바늘과 실로 비유할 만큼 둘 사이는 참으로 돈독했습니다. 

2009년 무임 사무장으로 헌신한 정대표는 그해 5월부터 조수행 이장과 본격적인 마을 살리기 운동을 진행합니다. 가장 기초적인 마을 청소로부터 시작해 제초작업, 화단 만들기, 꽃 심기 등의 외적 운동을 이루어갔고, 더 나아가 온 마을 사람들의 정신적 하나됨을 위해 결의 대회를 하는 등 작은 실천들을 더해 나갑니다. 이러한 운동들이 잘 이루어져 관공서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방림면 소재에 있는 수많은 마을들의 ‘부러움과 시기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전의 직장 경험과 회계학의 전공을 가장 잘 활용했던 사람이자, 마을 사업 평가 자료 등 모든 프로젝트를 작성해 전체를 조율할 줄 아는 정대표의 열정과 헌신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것이었지요. 

2010년 3월, 드디어 정대표는 마을 사람들 전체가 조합원이고, 조합원 전부가 수동마을 사람인‘수동영농조합법인’대표로 서게 됩니다. 이후 그의 행보는 더욱 빨라집니다. 그해 12월에는 목표로 삼았던 ‘강원도 우수마을’로 선정되어 5억의 지원금을 받아 영농조합을 위한 땅을 구입하고 가공시설인 ‘장 공장’을 짓게 됩니다. 그리고 장수 마을, 녹색 농촌 체험, 대마(삼) 사업, 산골음악회, 겨울 체험을 비롯해 무려 14개 사업을 추진함으로써 수십억의 지원금을 유치하게 됩니다. 수많은 아이디어를 내고, 실체화 시켜갔던 정대표의 노력과 마을 전체가 하나 되어 노력한 결과였습니다.

수동 사람들은 정대표를 기억할 때, ‘꼼꼼함의 대가’였다고 다들 입을 모읍니다. 한번 목표가 생기면 달성할 때까지 철저하게 준비하고 도전하는 사람이었죠. 어떤 분들은 그는 ‘내성적이고, 술과 담배를 전혀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다만 마을 사업에 올인한 나머지 두 명의 딸들과는 친밀하지 못했다고 어떤 분은 말하기도 합니다. 

이런 열정을 가진 정대표에게도 시련은 다가옵니다. 그 시련은 2009년부터 4년동안 동고동락했던 조수행 이장이 사임하고, 외지에서 들어온(귀농인) 분이 새로운 이장으로 선출되면서부터 시작됩니다. 2013년부터 2019년 현재까지 새로 바뀐 이장의 고소로 횡령 등 17가지 죄목을 통해 법적 싸움을 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16가지는 무죄로 판결이 났고, 나머지 한 가지는 민사소송이 진행 중인데 무려 6년 이상 법적 싸움이 진행되었다는 사실은 정 대표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상황’ 가운데 처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그로 인해 정신과적 치료를 받게 되었는데, 그의 내성적인 성격을 생각할 때 그것이 얼마나 큰 고통이었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억울함 마음도 있었지만, 그가 가장 힘들어했던 것은 온 마을 사람들이 하나로 달려오며 만들어갔던 ‘마을 살리기 운동’이 좌초되는 것이었습니다. 정대표는 끝내 그 괴로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2019년 8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하나로 움직였던 수동 마을은 싸움과 상호 비방 속에 쪼개지게 되었고, 불신의 골이 너무 깊어 예전처럼 하나가 되는 것은 불가능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가 땀 흘렸던 자리에는 그의 흔적만이 남아있습니다. 그와 함께 했던 많은 사람들은 그를 그리워하며 어떻게 새롭게 나아갈 것인지 고민해 보지만 그의 빈자리는 더욱 커 보입니다. 무엇보다, 하나 남은 민사소송건도 잘 마무리가 되어 정대표의 소원처럼 다시 수동마을이 살아나고 주민들이 진심으로 하나가 되길 바라봅니다.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편집부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20>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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