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벚꽃이 절정일 무렵, 헌책방과 벚나무 가득한 들길로 아이들을 이끌었답니다. 올해는 학교를 옮겨 그럴 생각도 못 하고 수업 준비에 코를 박고 있었는데, 교무실로 아이들이 우르르 찾아왔어요. 날씨도 좋은데 바깥 수업을 하고 싶다며 간절한 표정을 짓습니다. 어디를 나가자고 해도 고3의 부담감으로 아이들이 시큰둥할까 눈치를 살폈는데, 아이들이 도리어 나가자고 하니, 표정 관리를 위해 애를 써야 했어요. 활동지도 만들고 미션도 줘서 한 시간 동안 바깥 정취를 맛보게 해야 하는데, 즉흥적으로 나가게 되니 내심 걱정도 되었지요.
아이들 출석을 부르고 사진도 몇 장 찍고, 산책하면서 본 풍경을 단톡에 올리고 그 이유를 적으라 하면서 개천을 걸었습니다. 평소 외톨이로 있던 아이가 조카 사진도 보여주고 자신의 인생 만화 영화도 조잘조잘 얘기해줍니다. 매니큐어를 화려하게 했던 아이라, 혹시 센 언니인 줄 알았는데, 순박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아이였어요. 산책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아이는 한숨을 쉬듯 말합니다.
“아, 정말 너무 행복했어요.”
그 말을 듣자마자 나까지 행복감이 밀려왔습니다. 지각을 밥 먹듯이 하고, 혼자서 지내면서, 마음을 열지 않는 아이들과 일부러 상담을 해도 말 한 마디 듣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운데, 수업 중에 활동을 안 해서 걱정했던 아이가 자기 입으로 ‘행복하다’라고 하니, 이게 웬 횡재인가? 싶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어요.
4월에는 아이들 이름을 외우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만약 이름을 못 외우면 아이스크림을 사 주기로! 십 분 정도 남기고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줬지요. 이름을 다 외우긴 했지만, 아이스크림은 화룡점정이었어요.
언젠가부터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으로 남기는 커녕 아이들로부터 따돌림만 받지 않아도 좋다고, 하지만 눈높이를 낮추고 나니, 무엇을 해도 기쁘고 감사합니다.
4월의 첫 날, 아이들과의 봄나들이를 마치고 가벼운 마음으로 한 주를 마칩니다.
의정부시 효자고등학교 교사
《그 겨울의 한 달》저자 박희정
hwson5@hanmail.net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40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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