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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대만을 통한 중국 여행’을 위한 '사전공부여행' - 영화로 생각해 보는 중국의 역사와 철학 -

인문학/황혼과 여명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7. 8. 4.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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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대만을 통한 중국 여행’을 위한 '사전공부여행'

   - 영화로 생각해 보는 중국의 역사와 철학 -  

  2018년 가을에 있을 두 번째 ‘공동체 여행’의 주제는 ‘2018년 대만을 통한 중국 여행’입니다. 지역을 중국 자체가 아니라 특이하게도 대만을 잡은 이유는 중국은 그야말로 너무 넓고, 너무 크고, 너무 다양해서 어느 한 곳에 가더라도 중국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중국이지만 중국이 아닌’ 대만이라는 한 지역을 통해서 중국을 간접으로 경험하며 배우기로 한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하려면 천천히 그리고 오랫동안 공부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지만 <2017년 큐슈를 통한 일본여행>에서 했던 것처럼, 이렇게 중국에 대한 ‘사전연구여행’을 제대로 한다면 1년 후의 여행도 매우 풍성해질 것을 기대합니다.

  이 가운데 할 수 있는 것은 중국의 매우 다양한 요소들(역사, 철학, 사상, 인물....)을 나누어서 배우는 것인데, 그 중에 하나가 중국 자체에서 만들어진 영화 속에 나타난 중국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영화 속에 나타난 중국의 역사와 철학을 다루어 보기로 하고, 중국의 근대 역사에 대해서는 1997년에 제작된 [송가황조 宋家皇組 The Soong Sisters]를, 중국의 고대 철학에 대해서는 2007년 개봉된 [묵공墨功]을 잡아보았습니다.

 

  특히 영화 [송가황조]의 인물의 한 사람인 송미령과 그 남편 장개석의 자취가 대만에 아주 강하게 남아있을 것이므로, 이런 ‘사전연구여행’은 풍성한 유물들을 만나기 전에 매우 중요한 역사적 교훈을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놀랍게도 이 두 주제는 동일한 모습을 가지는데, 그것은 바로 중국이 매우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그 시대의 문제와 씨름하며 살아갔던 사람들을 그린다는 점입니다. 물론 한 사람은 진시황의 중국 통일 직전, 소위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의 사람이고, 세 명의 송씨 여자는 이 시대에서 아주 먼 후세대인 20세기의 사람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이 글을 쓰는 목적은 이 두 영화를 비평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라는 손쉬운 수단을 통해서 중국을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영화는 이런 목적을 위한 작은 수단인 셈이지요. 그래서 이 영화를 본 분들이 영화배우의 멋진 얼굴이나 화려한 장면을 기억에 남기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웃에 있는 나라이지만 잘 몰랐던 중국을 제대로 알고 싶은 열망을 가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특히 이 두 영화의 경우는 단조로운 한반도의 역사에 비해 복잡하고 다면적인 중국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는데 아주 적절하다 할 수 있습니다.

 

송가황조 宋家皇組 The Soong Sisters

 

  이 영화에서는 중국의 격동의 현대사 20세기를 살아갔던 한 가정에서 태어난 세 자매, 송아령, 송경령, 송미령을 중심으로 스토리를 전개하긴 합니다. 그러나 사실상 20세기의 중국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들은 따로 있습니다. 이 세 자매를 20세기 초에 자신이 미국에 가서 공부하고 선교사로 파송 받았던 감리교 재단에서 만든 Wesleyan College에 유학을 보내면서 길러낸 아버지인 송자수, 또 그가 도왔던 혁명을 시도한 손문(이 사람의 아내가 둘째 딸인 송경령), 그리고 손문의 제자였던 장개석(이 사람의 아내가 셋째 딸인 송미령), 마지막으로 공자의 후손으로서 재산가인 공상희(이 사람의 아내가 첫째인 송아령)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첫째 딸은 돈과, 둘째 딸은 나라와, 셋째 딸은 권력과 결혼했다는, 간략한 도식으로 회자되는 집안 이야기가 되는 셈입니다. 물론 여기에 중국의 중요한 현대사들인 청의 멸망과 신해 혁명의 성공(1911), 손문의 죽음(1925)과 국공내전을 전후로 공산당과 국민당의 투쟁이 배경으로 깔리면서 중요한 인물의 하나로 장개석을 납치했던 장학량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이 영화는 너무나 큰 중국을 아주 작은 여성적, 개인적 관점에서 바라보려고 시도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영화를 통해서라도 비좁은 한반도에서 너무나 작고 일차원적인 삶을 살고 있는 우리를 넘어서 다른 세계와 삶을 보게 한다는 점에서 필요한 영화인 것 같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서 중국의 현대사를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생각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 뿐 아니라 20세기의 모든 중국인들이 가진 생각과 관심은 ‘어떻게 하면 서양문화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인가’하는 것인데, 과연 성공했을까요? 이 질문은 지난 세기뿐 아니라 지금 21세기의 중국에서도, 동양의 한 나라인 한국과 일본에도 매우 중요합니다. 서양의 기술만 배우고 이론은 동양적인 것을 가진다는 태도를 동양의 삼국이 가지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다. 서양의 본질인 문화, 철학, 신념, 종교를 본격적으로 배우고 다루지 않을 수 없는데, 이것에 있어서 중국은 실패한 것 같습니다. 선교사 송자수와 그의 딸들이 미국에서 배웠던 감리교는 재물과 성과 권력을 사랑하는 그들 속의 중국인 본연의 오래된 속성을 바꾸어 놓지 못했습니다. 또 철저히 민주주의를 신봉한답시고 공산당과 싸웠지만 자신의 정권욕과 부하들의 부패를 극복하지 못하고 대만까지 쫓겨난 장개석이나, 정반대로 철저히 서양의 마르크스 이론을 밀어붙여서 전 중국을 석권한 이후(1949)에도 자신의 정권욕을 채우기 위해 대약진운동(1959)과 문화혁명(1966~1976)으로 엄청난 사람을 죽였던 모택동이나, 심지어 서양의 본질을 꿰뚫었지만 단지 서양을 흉내 낸 삼민주의를 부르짖은 손문도 실패한 중국역사를 이어갔던 인물들에 불과할 뿐입니다. 다시 이 영화를 통해서 중국을 비롯한 동양 삼국을 돌이켜 보면서 본래의 질문에 돌아가게 됩니다. 우리는 과연 서양을 따라잡았는가? 더 나아가서 우리가 따라잡아야 할 서양은 과연 무엇이었던가? 

 

묵공墨功  

 

  영화 [묵공墨功 Battle of Wits]은 시대를 훨씬 앞으로 당겨서 서주西周(BC 1045~770)시대에 이어서 특히 혼란스러웠던 동주東周(BC 770~256)시대, 즉 진나라로 통일(BC 221)되기 이전의 춘추전국시대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작은 나라들 사이에서 중국 전체를 차지하기 위한 엄청난 전쟁의 살육이 그렇게 오랫동안 진행되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엄청나게 많은 실천적 해결책을 제시한 사상가들이 등장했다는 겁니다. 이들 사상가들을 제자백가(諸子百家), 즉 100가지나 되는 해결책을 내놓은 사상가들과 그의 학파들이라고 부릅니다. 그 중에 한 가지가 바로 이 영화가 다루려는 묵적(墨翟), 즉 묵자(墨子)와 그의 제자들인 묵가(墨家)이며, 이들의 주요철학이자 현실적 방책이 바로 비공(非攻), 즉 공격하지 않고 수비함으로 적을 물리치는 것인데 이것을 영화에서는 묵공(墨功)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이 영화는 중국의 유덕화(혁리 분)와 한국의 안성기(항엄중 분)가 주연하였으며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묵공’을 영화한 것으로, 동양 삼국이 모두 관여해 만들어졌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실제로 21세기의 아시아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야 할 동양 삼국에게 주는 비공이라는 메시지도 명쾌하고 분명하여 더 탁월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영화를 통해서 더 분명히 그리고 깊이 생각해야 할 점은 동양의 사상은 유일하게 유교가 아니라 제자백가가 있었다는 겁니다. 유교가 동양 삼국에 널리 퍼진 것은 정주적인 정권의 이데올로기에 봉사하기에 딱 적합한 종교였기 때문에 정치가들이 채택해서 백성들에게 강요한 종교정치체제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한반도에서는 한술 더 떠서 지난 조선시대 5백여 년 동안 국교로서 신봉하기까지 했으니, 한민족의 55%의 DNA속에 흐르는 기마민족적인 활달하고 진취적인 기상을 거의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동양에 존재했던 수많은 사상가들을 균형있게 연구하고 찾아볼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는 가운데, 서양에 대해서도 제대로 연구하고 찾아볼 시간적 여유가 없어 그들 문명이 만든 부정적인 결과에 굴복한 삶(일본제국주의, 6.25와 분단사태)을 살게 된 겁니다.
  이런 가운데 19~20세기에 들어와서 묵가를 비롯한 중국의 다양한 사상이 재조명되는 것은 동양 삼국의 사성적, 정치적 발전에 매우 중요한 기여를 하게 된 것일 수 있습니다. 특히 묵가(墨家)의 사상체계는 제자백가 중에서도 (절대)종교적 성격이 가장 강한 사상이었음에 우리 모두는 놀랍니다. 특히 세 가지 점에서 그렇습니다.

 

  첫째는 적을 적극적으로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방어를 잘 함으로서 공격을 하지 못하게 하는 이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묵가는 단순한 정치이론을 넘어서 철학적이요 종교적인 데까지 나가는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을 죽이면 살인이 되고 여러 사람을 죽이면 인간백정이 되지만, 수만 명을 죽인 사람(나폴레옹, 스탈린)이 영웅이 되는 세상을 철저히 비웃고 꾸짖은 겁니다.
  둘째는 이것을 위해서 자신은 그 어떤 희생이라도 각오하는 삶을 실제로 산 사람들이 있었다는 겁니다. 영화에서 주인공 혁리는 이것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희생적인 삶을 주장하는 절대종교는 기독교가 거의 유일한데, 현실 속의 기독교인들은 돈을 너무나 사랑하고 가족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며, 권력에 목을 매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기독교인들은 묵가에게 배우고 부끄러워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는 유교의 허구와 위선에 대해서도 철저히 적대적이었다는 겁니다. 맹자의 묵자 비판은 허무맹랑할 뿐이라는 것을 이제는 삼척동자까지도 다 그 허구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유교의 인(仁)은 결국 자기애(自己愛) 밖에 더 되느냐는 것이며, 진정한 사랑은 ‘겸애(兼愛)’,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하라’ 라고 주장한 겁니다.          

  그런데 묵가는 절대종교가 아닌 사회철학이었기 때문에 자기희생을 통해서 사회를 변혁하려는 시도는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아마 묵가가 지난 2천년동안 인간의 무수한 욕망으로 부글부글 끓는 기름덩어리와 같은 중국에서 사라진 이유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제안과 대안은 너무 자극적일까요? 기독교인들이여, 진정으로 예수의 복음에 다시 돌아가서 먼저 자기와 자기 가족을 희생하라! 그리고 21세기의 동아시아와 온 지구를 새롭게 하라! 그렇지 않으려면 아예 예수를 언급하지도 말고 먼저 묵가에게 배우라.

 

행복한 동네문화 만들기 운동장(長) 송축복
segensong@gmail.com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 94호 >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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