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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물속에 빠진다 해도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존 버닝햄

2021년 10월호(144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10. 11.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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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물속에 빠진다 해도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존 버닝햄


성악을 전공한다는 아이의 말에 귀가 번쩍했습니다. 노랗게 부분 염색을 하고, 목이 늘어난 검은 티에 체육복만 입고 다니면서, 심드렁하게 탭으로 게임을 하던 아이에게 의외의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생각보다 오래도록 상담을 했습니다. 성가대에서 만난 교수님의 지도로 성악의 길로 들어섰지만, 교회 쪽으로만 가라는 압력에 고민이 많다고 했습니다. 신앙심이 부족한 자신이 대학 입학만을 위해 신학대로 가야하는지에 대해서요.
우리는 존 버닝햄의《검피 아저씨의 뱃놀이》를 함께 읽었습니다. 수더분하게 생긴 아저씨의 모습이 부담 없다고 말합니다. 저도 이중섭의 ‘은지화’를 검색해서 보여주며 그 표정과 닮았다고 말해줬습니다. 조화로운 이 세계를 끌고 가는 지혜로운 어른처럼 보인다고 했지요.

아저씨 배 안에 있는 동물들은 실제 크기와 상관없이 비슷비슷한 크기입니다. 배를 타고 싶어 하는 꼬마들, 토끼, 고양이, 개, 돼지, 양, 닭, 송아지, 염소가 그렇습니다. 배는 아저씨의 마음 그릇이라고 말 했던 친구 이야기를 들려주니, 자기 생각에는 배의 세계는 꿈의 세계이고, 색채가 있는 세계는 꼬마와 동물들의 개성을 강조하는 현실 세계라고 짚어 냅니다. 내심 놀라면서 그림책을 함께 읽어 나갔습니다.

아저씨는 일이 그렇게 될 줄 알면서도 다짐을 받습니다. 싸우는 것이 본성인 꼬마들에게 싸워서는 안 된다고 하고, 토끼에게는 깡충거리지 말라 하고, 고양이에게는 토끼를 쫓지 말라고 하지만 그것이 지켜질 리 만무합니다. 마찬가지로 개에게는 고양이를 못살게 굴지 말라 하고 돼지에게는 더럽히지 말라 합니다. 공동체를 위해 조심하라는 경고를 무시하고 다들 제하고 싶은 대로 하다가 배가 뒤집히지요. 아저씨는 햇볕에 다들 말려주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집으로 돌아와 차를 마십니다. 그리고 덧붙입니다.
“잘 가거라, 내일 또 배 타러 오렴.”

신앙심이란 강요로 생기는 일이 아니니, 목사님이나 부모님 생각만 하지 말고, 스스로 성경을 읽고 받아들이며 천천히 다가가라고 말해줬습니다. 아무 일도 안 하는 것보다는 설령 물속에 빠진다 해도 걱정 말고 해보라고 덧붙였습니다. 다시 햇볕에 말리면 되니까요. 내일 또 배를 탈 수 있는 두 번째 기회를 잊지 말라고 했습니다.

학생들과 그림책을 가운데 두고 책을 읽다 보면, 아이보다도 제가 더 성장합니다. 작가의 위로에 내일에 대한 희망이 생깁니다. 수업이 끝나고 가벼이 차 한 잔을 마시며 잠시 숨을 돌립니다. 다음 수업을 기다리면서요.

의정부시 효자고등학교 교사
《그 겨울의 한 달》저자 박희정
hwson5@hanmail.net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44>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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