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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즐기는 예술

2022년 1월호(147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2. 2. 1.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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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미정의 문화·예술 뒷이야기 1]

‘누구나’ 즐기는 예술

 

공연 예술계에 최근 자주 들리는 용어 중에 베리어 프리(barrier free)라는 말이 있다. 베리어 프리란 고령자나 장애인들도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물리적·제도적 장벽을 허물자는 운동을 말한다. 예술이란 원래 누구나 즐기고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나이나 신체적인 장애로 박탈당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인지 문화예술계엔 장애인을 위해 베리어 프리를 표방하는 공연, 전시가 늘어나고 있다.  


국립 현대무용단의 어린이 대상 무용 공연의 경우 시각장애인을 위한 무용 낭독공연이 있다. 이 연극은 마치 구연동화처럼 무용극의 한 장면을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말로 묘사해주는 공연이다. 이미 이 연극을 미리 봤던 나는 일부러 시각장애인용 낭독공연을 보았다. 낭독자의 디렉션에 따라 눈을 감고 낭독에 따라 온전히 상상력을 동원해가며 장면을 그려보는데 평소와 다른 방법으로 공연 보는 그 시간이 참 신선했다. 공연 보는 방법이 달라지니 상상력이 극대화 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제껏 눈으로 보던 익숙한 세상이 새로운 차원에서 열린 느낌이랄까. 시적인 표현으로 무용수의 동작을 듣는 것은 눈으로 직접 보는 것보다 더 많은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눈으로 좇느라 미처 느끼지 못했던 음악과 동작의 조화가 또 다른 방식으로 머릿속에 펼쳐지는 것은 말 그대로 색다른 경험이었다. 
‘어둠속의 대화’는 이보다 훨씬 이전에 시작된 체험전시 프로젝트이다. 이 체험전은 1988년 독일에서 시작된 이후 33년간 유럽, 아시아, 미국 등 전 세계 161지역에서 1200만 명 이상이 경험한 국제적인 프로그램이다. 지금은 20대가 된 필자의 아들도 6살쯤 이 프로그램을 체험하게 되었는데 그때의 강렬했던 기억들에 대해 지금도 이야기 하곤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북촌과 동탄에 상설전시장을 마련하여 운영하고 있다. 


인간은 아무리 낯선 상황이 주어져도 학습을 통해 적응하는 습성이 있다. 그 적응을 통해 익숙해지면 심리적인 안정으로 편안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더 이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지도 않고 자신을 낯선 환경에 내몰지도 않게 된다. 점점 더 편안한 상태에 안주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습성을 깨려면 적절한 자극이 주기적으로 주어져야 한다. 일부러 일상을 낯설게 하거나 평소 생각하는 방법을 바꿔줄 만한 신선한 시각적 자극을 받아야 한다. 창의적 인간이 되기 위한 이런 방법들은 우리들에게도, 장애인들에게도 똑같이 필요하다.


몇 년 전, 꽤 오랫동안 국립중앙도서관 장애인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했었다. 낭독봉사를 비롯하여 여러 종류의 장애인 봉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 내가 느꼈던 것은 우리가 지금 실시하고 있는 장애인 정책은 지극히 장애를 가지지 않은 우리 입장에서 만들어낸 정책이라는 점이었다. 장애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불편이 아닌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일상의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섣부른 판단으로 장애인들이 불편해 하는 부분을 예단하지 않게 되었고, 그들이 도움을 요청하기 전까지는 도와준다는 말을 하는 것조차 실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해외의 경우 이미 20여 년 전부터 장르별로 장애인들을 위한 공연들이 기획되고 있었는데 영국 노던 발레단, 미국 피츠버그 발레단 등에서는 이미 이 분야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공연 전 터치투어(시각장애인들이 무대 소품을 직접 만져보거나 무용 동작을 배워본 뒤에 관람하는 방식)와 같은 프로그램을 개발해 무용 음성 해설 공연을 하고 있다. 특히 영국에서는 무용 음성 해설이 법제화되어 있어서, 일정 횟수 이상의 공연에서 반드시 무용 음성 해설을 해야 한다. 이와 관련된 심포지엄에 참석차 내한한 무용 음성 해설가는 이렇게 말했다. 
“누구나 예술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음성 해설은 장벽 없는 공연 경험을 가능하게 해 준다. 무용을 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주 짧은 시간에 청각, 시각, 촉각 및 후각을 통해서 엄청난 양의 정보를 받아들이게 된다. 어떤 공연이든 한 순간에 여러 활동이 겹겹이 진행된다. 우리의 역할은 시각 장애인 관객이 공연 속에서 여행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다.”


새해가 밝았다. 새해에는 우리가 누리는 너무도 당연한 것들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없는지 살펴보는 여유를 가졌으면 한다. 그리고 더욱 창의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 우리의 활기찬 일상을 위해 적절한 자극에 기꺼이 뛰어들어보자.

서울 예술의전당 손미정
mirha2000@naver.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47>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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