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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되는 일을 하지 않을 용기

2022년 12월호(158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3. 5. 5.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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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미정의 문화·예술 뒷이야기 11]

후회되는 일을 하지 않을 용기 

 

다사다난했던 2022년의 달력이 마지막 한 장밖에 남지 않았다. 매년 연말이면 각 분야마다 시상도 하고 MVP도 선발하며 한 해를 정리한다. TV를 켜면 방송사마다 연예대상, 연기대상 등이 한 해의 피날레를 장식하곤 한다. 개인적으로는 매년 이맘때가 되면 늘 하는 루틴 중에 ‘올해의 베스트’라는 작업을 하곤 한다. 이것에 대해서는 전 칼럼에서도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한 해 동안 내가 읽었던 책 중에 감명 깊었던 책 베스트, 올 한해 새로 만난 사람 중 인상에 남는 사람 베스트, 올 한 해 봤던 공연·전시 중 가장 멋졌던 작품 베스트 등을 선정하는 작업이다. 나는 이 작업을 거의 20년 넘게 해 오고 있는데 다음 해의 새해 목표를 정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하고 지난 한 해 동안 내가 무엇을 했는지 정리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하여 계속 해 오고 있다. 이런 연중 이벤트를 가지고 있는 내가, 얼마 전 있었던 바둑 대회의 한 장면을 본 후 올해부터는 그 방법을 조금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최근 삼성화재배 월드 바둑 마스터즈 대회가 있었다. 이 대회에서 신진서 9단이 우승, 최정 9단이 준우승을 했다. 세계대회 3관왕에 오른 한국 랭킹 1위이자 세계 최강인 신진서, 9단 만큼이나 한국 랭킹 27위인 최정 9단이 주목받았다. 여성 기사로는 세계 최초로 메이저 세계대회 결승에 올랐기 때문이다. 이 대회는 이미 8강에 7명의 한국인이 올라가며 화제가 되었던 경기였다. 그리고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 4강전에서 나왔다. 최정 9단이 우리나라 랭킹 2위인 변상일 9단과 만난 경기였다. 최정 9단과 변상일 9단의 전적이 5전 5승으로 변상일 9단의 완벽한 우세였기 때문에 변 9단의 승리를 예측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경기의 결과는 최정 9단의 완벽한 승리였다. 당연히 이기리라 자신했던 한국 랭킹 2위 변상일 9단은 패색이 짙어지자 계속 울었고, 심지어 머리 위로 안경을 올린 채 자기 뺨을 수차례 때리면서 일명 ‘비매너 논란’이 불거지게 되었다. 바로 앞 상대인 최정 9단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며 변상일 9단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바둑 팬들과 언론은 프로답지 못한 변상일 9단의 행동에 대해 예의와 매너를 중요시 하는 바둑계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고 성토했다. 


떠도는 동영상을 보면 변상일 9단의 평소답지 않은 행동이 의아하기까지 하다. 한국 랭킹 2위이지만 세계대회 타이틀이 전무한 변상일 9단에게 이번 대회는 기회임과 동시에 너무도 큰 부담이었을 것이다. 아마 극도의 긴장 상태가 계속되며 자신의 패배를 인정해야 하는 현실에서 멘탈 관리에 치명상을 입은 듯 했다. 반면 변상일의 반대편에 있던 최정 9단은 긴 심호흡을 하고 허리를 편 채 가부좌의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대국이 끝난 뒤 변상일 9단은 최정 9단에게 사과하였고 최정 9단도 각종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변 9단의 그와 같은 행동은 자신의 대국에 영향이 없었고 변상일 9단이 바로 사과했다며 비난보다는 격려해달라고 변호해주었다. 자신의 행동을 이성적으로 관리하지 못한 변상일 9단은 어쩌면 이날의 행동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 바둑 대국의 한 장면은 며칠 동안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올해의 베스트 방법을 조금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올해부터는 새로운 계획을 위해 좋았던 순간을 기억하기 보다는 먼 훗날 두고두고 후회하지 않기 위해 지난 한 해 동안 한 행동 중‘잘못했다고 생각하는 일, 후회스러운 일 베스트’를 꼽아보기로 하였다. 지금부터 매년 연말에 후회되는 행동을 꼽아보며‘새해에는 그런 행동, 생각, 말 등을 하지 말아야지’하고 결심하다 보면 먼 훗날 스스로에게 창피스러운 일은 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어있을 것 같다. 그러면 나는 자신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을 사랑하는 이유 중엔 좋아하는 행동을 해 주어서 사랑하는 경우도 있지만 자신이 싫어하는 행동은 하지 않기 때문에 사랑하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새해에는 후회되는 행동은 하지 않는 용기를 키워보는 한 해를 만들고 싶다.

서울 예술의전당 손미정
mirha2000@naver.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58>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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