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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백배 즐기기

2023년 1월호(159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3. 8. 4.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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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백배 즐기기

우리를 잠 못 들게 하던 월드컵은 끝났습니다. 이제 야구이야기 좀 해볼까요?

지금부터 20년 전인 2003년, 야구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제가 잠실야구장의 티켓부스에서 일일 알바를 한 적이 있습니다. 아직 티켓 판매가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티켓부스 밖에는 잠자리채와 뜰채 등 온갖 장비를 갖춘 아저씨들이 줄을 서 있었고, 티켓 예매 시작 후 너도나도 외야석 자리를 예매하려고 난리여서 외야석은 금방 매진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벤트로 외야석에 당첨되어서 온 사람들에게 외야석이 매진이라 티켓값이 조금 더 비싼 내야석으로 티켓을 발권해주었더니 절대 안 된다며 외야석 자리를 달라고 아우성치느라 티켓부스는 도떼기시장 같았습니다. 저는 나중에야 그날 잠실야구장에서의 경기가 이승엽선수가 홈런 신기록을 세울 수도 있는 역사적 현장이었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KBO의 전설 국민타자 이승엽선수에게도 무관심했던 제가 kt위즈의 팬이 된지도 어언 7년이 흘렀습니다. 2015년, 집 가까운 수원에 kt위즈가 야구를 시작하면서 처음 야구장을 가보았습니다. 
경기장에 들어설 때부터 가슴을 들뜨게 만들었던 우렁찬 응원소리가 야구장의 첫인상이었죠. 그런데 3루 응원석에 있는 원정팀의 육성 응원이, 스피커를 쩌렁쩌렁 사용하는 우리 팀보다 더 크게 들리는게 아니겠어요? 특히 구단의 역사가 오래되어 팬층이 두터운 롯데와 삼성, 기아, 두산의 육성 응원소리는 어마어마했습니다.
그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등에 커다란 보냉백을 짊어지고 관중석을 돌아다니며 생맥주를 판매하는 맥주보이였습니다(물론 저는 술은 안 마시지만요). 이렇게 편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속에서 주변을 둘러보니 관중에는 여자분들도 꽤 많았고, 연령층도 3~4살 어린아이부터 어르신들까지 상당히 다양했습니다. 그 중에 가족단위로 응원을 온 관중들이 많더군요. 저도 7살, 4살의 조카들을 데리고 온 가족이 같이 갔었는데 저의 부모님까지 3대가 다함께 신나는 응원가를 따라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지요. 이것이 야구가 가진 장점이 아닐까요? 야구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기 진행에 있어 여유가 있기에 가족, 연인, 친구들이 술을 마시거나 그러지 않고도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어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코로나로 2~3년간 야구장에 갈 수 없었던 지난 시간동안, 야구의 직관(직접관람)에서 느낄 수 있는 그 짜릿한 현장감이 얼마나 그립던지요. 
하지만 야구장의 흥겨운 분위기에 취해 야구를 직관하다보면 야구 경기 자체가 아니라 응원에 푹 빠져 야구경기를 전체적으로 보는 것이 부족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작년에 수원야구장에 갈 때에는 야구 경기의 흐름에 좀 더 집중해보고자 응원단이 있는 1루 쪽 응원지정석이 아닌 포수 뒤편의 중앙지정석에 자리를 잡고 경기를 관람해보았습니다. 물론 중앙이다 보니 원정팀 NC 다이노스 응원을 온 관중들과 섞여 앉게 되어, 상대팀보다 더 큰 목소리로 응원하려고 박수도 더 크게 치고 응원도 열심히 했지만 경기 전체를 보고 팀의 작전을 같이 예상해보는 것은 중앙지정석이 더 좋았습니다. 경기장에 직접 가서 보더라도 내가 어떤 목적으로 경기를 보는지에 따라 어느 자리에 앉는지도 중요하더군요. 그뿐 아니라 같이 간 친구들과 그날의 경기와 작전, 그리고 감독의 입장 등에 대해 다양한 대화를 해보는 것도 단지 야구를 관람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나의 생각의 폭을 넓히는데 도움이 많이 되어 더 뿌듯했답니다.


야구장에 가는 또 다른 이유는 좋아하는 선수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TV에서 야구 중계를 보면 플래카드와 스케치북 외에도 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한 다양한 도구들을 볼 수 있듯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가장 좋아하는 선수가 한 명씩 있기 마련이지요. 저 역시도 KT위즈의 대체불가 유격수이면서 발이 빨라 치타심이라는 별명을 가진 심우준선수의 팬입니다. 야구장의 응원 분위기에 휩쓸려 야구를 보다가 심우준 선수를 좋아하면서부터 유격수 뿐 아니라 야구선수들의 포지션에 대해 관심도 생기고, 야구의 타율도 예민하게 보게 되었습니다. 안타와 점수가 많이 나는 경기만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방망이를 잘 휘두르는 타자가 공격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며 제일 중요한줄 알았건만, 유격수의 수비가 얼마나 중요하던지요. 
이렇게 야구장의 응원 분위기에 묻혀 좋아하는 선수들을 마음껏 응원하다가 우리 팀이 승리하면 마치 내가 이긴 듯 기분이 하늘을 찌를 것 같이 둥둥 떠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9회에 끝내기 역전승이라도 하는 날에는 같이 간 친구들이 그날로 하루 야구팬이 되기도 하고요. 하지만 내 자신은 특별히 노력하지 않고 선수들의 노력에 내가 대신 만족한 것 같은 현타가 올 때면 야구 관람에 대해 고민을 해보게 됩니다. 

2022년 KBO 시상식에서는 바람의 아들(이종범선수)의 아들, 키움 히어로즈의 이정후선수가 5관왕에 올랐습니다. 이정후 선수는 본인의 실력으로도, 그리고 훈훈한 외모로도 두터운 팬층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인기스타를 중심으로 야구를 대하다보면 스타 개인의 성적과 더 나아가 사생활 등에 일희일비 하게 됩니다. 행여 내가 좋아하는 선수의 개인적 문제가 불거지기라도 하면 야구 자체가 갖는 매력은 놓치고 그 스타플레이어에 대한 실망으로 인해 야구에 대한 흥미까지 잃게 되지요. 
특정 선수를 통해 야구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좋지만 그것에 머물지 않고 직접 야구를 해보는 건 어떨까요? 마음 맞는 친구들과 어릴 적 손 야구 ‘짬뽕’ 놀이를 하듯이 직접 야구 글러브를 끼고 캐치볼을 해보고, 배트를 휘둘러 공을 맞춰보고, 조그맣게 만든 마운드에 서서 공을 던져보니 야구경기를 볼 때에도 선수들의 움직임이 달라 보였습니다. 그냥 경기를 볼 때에는 입으로 온갖 훈수를 두고 왜 저렇게 못하냐고 나불거렸지만, 직접 야구경기를 하면서 야구 경기 전체를 파악하고 다른 팀원들 모두와의 손발이 딱 맞게 되는 것이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실감했습니다.

얼마 전 ‘보는 스포츠’ 프로야구가 ‘하는 스포츠’로 열광하는 MZ세대에 외면당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MZ세대가 스포츠를 직접 즐기고 해보는 것을 추구하는 것은, 그저 스포츠를 보면서 그 승리를 대리만족하는 것보다는 훨씬 좋겠죠? 하지만 그럴 수 없다 해도 ‘내가 감독이라면’이라는 생각 하나만으로도, 앞으로 내 인생에 펼쳐질 수많은 상황에 응용할 많은 전략을 야구 속에서 연습하고 발견할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군포시 수리동 이송아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59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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