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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되찾는 한 해가 되었으면

2023년 1월호(159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3. 6. 24.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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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철의 한국사칼럼 34]

나를 되찾는 
한 해가 되었으면

 

과거를 되돌아보면 과연 나대로 살아왔나 반성해 봅니다. 내가 기준이기보다는 남들이 좋다고 여기는 것에 기준을 두고 살아오지는 않았나 생각해 보지요. 그렇게 한 해 두 해가 지나면 나는 없어지고 주변에서 만들어 준 나가 진짜 나인 줄 알게 됩니다. 우리 역사에도 그런 일이 수차례 벌어졌습니다. 우리 역사가 기준이 아니라 중국 역사가 기준이었고 중국 기준에 맞을 때 가치가 있다고 여겼답니다. 어떤 때는 우리가 직접 나서서 중국 기준에 맞추려고 하였지요. 그럼 역사를 통해 한 번 살펴볼까요?

첫째, 고조선의 마지막 왕은 위만조선의 마지막 왕인 우거왕입니다. 하지만 예전에는 고조선의 마지막 왕을 기자조선의 마지막 왕인 준왕이라 했어요. 위만은 준왕을 몰아낸 찬탈 군주라고 하여 위만조선을 정식 왕조로 인정하지 않았지요. 우리는 조선시대까지 위만조선의 역사 대신 중국 기자조선의 역사를 더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정통으로 인정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기자조선을 인정하지 않고 위만조선을 인정하고 있답니다. 

둘째, 고구려 연개소문의 성씨는 연씨이고 이름은 개소문입니다. 그런데 당태종의 아버지 이연과 한자가 같다고 하여 연씨로 부르지 않고 천씨로 불렸지요. 조선시대까지 천개소문으로 불리다가 20세기에 들어와 연개소문이란 본래의 성을 되찾았답니다. 성씨의 기준을 중국 황제의‘피휘’란 기준에 맞춰 우리 마음대로 성씨를 쓰지 못했던 것이지요.

셋째, 공주의 대통사에 관해 《삼국유사》에서는 공주는 당시 신라 땅이라고 하면서 법흥왕이 양나라 무제를 위해서 세운 절이라고 하였습니다. 원래 대통사는 백제 성왕이 아버지 무령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세운 절입니다. 대통사의 대통은 《법화경》에 나오는 부처 ‘대통불’에서 따왔어요. 그런데 중국에서 연호를 ‘대통’으로 바꾼 이후 대통사는 중국 황제를 위한 절로도 알려지게 되었답니다. 그러다 백제가 멸망하자 대통은 백제왕이 아닌 중국 황제를 위한 절로 굳어져 버렸지요.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넷째, 신라의 불교 공인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이차돈의 순교’입니다. 이차돈이 순교한 해는 528년이지요. 그런데 신라 말 고려 때 선종이 전해지면서 이차돈의 순교 연대가 527년으로 바뀌었어요. 527년은 인도의 달마가 중국에 선종을 전한 연대이지요. 이차돈의 행적을 중국 달마의 행적에 맞춘 것입니다. 그래야 이차돈의 업적이 돋보인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한국사 연표를 보면 527년으로 나와 있지요.

다섯째, 우리가 우리 역사를 잘못 부른 경우도 있습니다. 궁예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어요. 그러나 궁예가 역사에 남긴 흔적은 그대로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내가 궁예가 아니라고 해서 궁예가 하지 않은 것을 궁예가 했다고 하는 것도 옳지 못해요. 흔히 후삼국시대 궁예가 세운 나라를 후고구려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궁예는 고구려를 세운 적이 없어요. 궁예가 세운 나라는 고려였지요. 따라서 후고구려가 아니라 후고려라고 불러야 합니다. 왕건의 고려시대에도 후고려로 불렀고 조선왕조실록에도 후고려로 나온답니다. 지금 우리가 부르고 있는‘후고구려’란 이름은 20세기에 만들어낸 이름이지요. 

여섯째, 조선시대 경복궁의 문 이름에 흥례문이 있습니다. 광화문을 지나면 만나게 되는 문이지요. 세종 때 처음 이름은 홍례문이었는데 고종 때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문의 이름을 흥례문으로 바꾸었답니다. 홍이 청나라 건륭제의 이름인 홍력의 홍과 같았기 때문이에요. 흥례문 또한 기회가 되면 다시 홍례문으로 바꿔야 합니다. 그런데 일제 때 헐린 문을 2001년에 다시 세울 때 아쉽게도 원래의 홍례문이라 하지 못하고 흥례문이라고 했습니다. 

아직도 우리 곁에는 되찾아야 할 이름들이 많습니다. 저는 역사 속 이름들을 되찾으면서 항상 오늘을 살아가는 나를 잊어버리고 있는 건지, 아닌지 나 자신에게 물어보곤 합니다. 역사는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니까요.

 

 

명협 조경철, 연세대학교 사학과 객원교수
한국사상사학회 회장
naraname2014@naver.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59>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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