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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진아, 공연장에서는 말이야…

2023년 4월호(162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3. 12. 24.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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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진아, 공연장에서는 말이야…

 

직장이 공연장이다 보니 보통은 퇴근 후 여러 공연장을 찾아가서 공연을 본다. 공연을 본다는 건 시간, 돈, 체력을 투자해야 하는 일이다. 일부러 찾아가서 공연을 보았는데 기대에 못 미치거나 몰입을 방해하는 분위기가 생기면 그날 저녁시간을 허비한 것 같아서 속상하다. 오죽하면 ‘관크’라는 말이 생겼겠는가? 관크는 ‘관객 크리티컬’의 줄임말로, ‘공연 관람 중 관객의 관람을 방해하는 모든 행위를 이르는 말’이다. 원래 크리티컬(critical)은 온라인 게임에서 상대에게 결정적인 피해를 입힐 때 쓰던 말이었는데, ‘관객’이란 단어와 결합해 ‘관크’라는 말이 생겼다.

공연 애호가들끼리 모이면 각자 자신이 경험했던 관크에 대해 이야기하곤 한다. 듣다보면 ‘정말 공연장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고?’ 느낄 만큼 상식적이지 않은 일들도 많았다. 생각나는 관크 몇 가지를 소개해보면 가장 대표적인 관크는 핸드폰 벨소리다. 관크 중 가장 강력하고 다수의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라 할 수 있다. 

피아니스트 중에 연주 환경에 극도로 예민하고 까탈스럽기로 유명한 연주자는 폴란드 출신의 쇼팽콩쿠르 우승자 ‘크리스티안 지베르만’이다. 평소 그는 공연의 녹음·녹화와 사진 촬영을 일절 금지하는 등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까칠한 피아니스트’로도 불린다. 그래서 롯데콘서트홀에서 있었던 작년 그의 내한공연에서는 관객 모두가 그의 기질을 잘 알기 때문에 벨소리나 기타 공연 중 낯붉히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서로 조심하는 분위기였다. 대망의 앵콜 곡에서 그날의 아름다웠던 공연과 정치적인 현실에 대한 짤막한 코멘트를 남기고 연주를 시작했다. 처량하다 못해 처절할 정도로 한 음 한 음 꾹꾹 마음을 담아 건반을 누르며 연주를 마쳐갔다. 그런데 결국 끝나기 5초쯤 전에 사고가 났다. 어떤 관객이 연주 도중 네이버뮤직으로 음원을 찾아본 것이다. “이 음악을 찾지 못했어요.”라는 기계음이 또렷하게 객석에 퍼져나갔다. 그것도 아주 조용하게 연주되고 있는 마무리 부분에서였다. 관객들은 연주보다도 지베르만의 반응이 어떨지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었다. 다행히 나이를 먹은 지베르만은 마음이 여유로워졌는지 그냥 넘어가 주었다. 저 한 문장이 연주자 뿐 아니라 한껏 몰입한 2천명의 관람객에게 끼친 영향을 과연 핸드폰의 주인은 알까? 저 사고는 실수라고 볼 수 없는 상상을 초월하는 이기심이었다.

그러고 보니 또 생각나는 사고가 있다. 2017년 예술의전당에서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베를린 필과 협연했던 때의 일이다.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 1악장이 끝난 뒤 객석 1층에서 울린 낭랑한 기계음이 악장 사이의 정적을 깨뜨렸다. 단순한 벨소리가 아니라, 방금 전 연주되었던 라벨 피아노 협주곡 1악장이었다. 누군가 몰래 녹음을 하다가 잘못 눌러 방금 전 녹음한 음악이 재생된 것이다. 차분히 다음 악장을 준비하던 베를린 필하모닉 상임 지휘자 사이먼 래틀과 조성진은 한동안 2악장을 시작하지 못하고 기계음이 멈출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벨소리로도 지탄 받을 일인데 연주를 몰래 녹음까지 했다는 사실에 부끄러운 건 나머지 관객들의 몫이었다.
벨소리와 관계된 관크는 한도 끝도 없이 사례를 들 수 있을 만큼 많지만 연주, 감상을 방해하는 관크에 벨소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공연 중 과도하게 몸을 많이 움직이는 관객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 흥을 이기지 못해 머리를 흔든다거나 직접 지휘를 하는 관객도 있다. 본인은 심하게 몰입했을지 모르지만 주변의 다른 사람에겐 덩달아 주위가 산만해져서 음악 감상 자체가 방해된다. 비슷한 경우로 주변에 아이들이 보인다면 위험한 신호라고 생각해야 한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집중력이 높지 않다. 그래서 공연장마다 입장 연령을 정해두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좀처럼 가만히 있지 못하고 몸을 움직이거나 부모와 소근 거린다. 아이들에게 클래식을 들려주고 싶은 부모님의 마음은 정말 이해하지만 다른 사람의 관람을 방해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공연장은 소리의 울림에 최적화되어 설계된 공간이기 때문에 공연 중 바닥에 무언가를 떨어뜨리면 차원이 다른 소리가 난다. 떨어뜨리는 물건의 종류도 상상초월이다. 핸드폰이나 프로그램 북을 떨어뜨리는 경우도 있고 짐작도 안 될 만한 무언가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한 번은 쇠로 된 물건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 적도 있는데 도대체 저런 걸 왜 공연장에 가지고 오는 건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계절성 관크라는 것도 있는데 겨울철엔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패딩을 선호한다. 하지만 패딩을 입고 지속적으로 소리를 내는 건 또 다른 문제가 된다. 공연장에서 몸을 움직일 때마다 나는 패딩소리는 의외로 신경 쓰이는 방해가 된다. 그래서 외국은 클록룸(cloak room, 물품보관소)을 넉넉하게 마련하여 테러 위험에도 대비하고, 옷으로 인한 민원도 예방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공연장을 운영해 보면 우리나라 관람객은 외투나 겉옷을 맡기는 경우가 아직은 소수다. 

위 관크의 예는 공연장에 익숙지 않거나 어쩌다 실수로 이루어지는 관크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음악애호가나 마니아가 만드는 관크도 있다. 일명 ‘안다 박수’ 관크다. ‘안다 박수’는 ‘나는 이곡이 언제 끝나는지 알고 있다’는 표시로 곡의 마지막음이 끝나자마자 관객들이 곡의 여운을 즐길 틈도 주지 않고 박수소리를 내는 경우를 말한다. 힘차고 역동적으로 끝나는 경우는 별 상관없지만, 극도의 섬세함으로 곡의 여운을 느끼게 마무리 하는 곡도 있는데 이런 곡에 안다 박수는 나머지 관객들의 그날 연주에 대한 감상을 제대로 망치는 행위가 된다.

이렇게 쓰고 보니 자신은 생각 없이 공연장에서 한 행동이 누구에겐 관크가 될까봐, 가뜩이나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클래식 감상이 더욱 멀어지게 되는 계기가 될까봐 살짝 걱정이 된다. 공연장 매너는 복잡하게 배워야 하는 것도 아니고 어려운 것도 아니다. 나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방해가 되는지 한 번만 생각하면 금방 답을 얻을 수 있는 아주 간단한 매너라고 이해해 보자. 공연 감상으로 감동을 얻기 위한 자리에 모였으니 서로 조금만 배려하고 이해하면 분명 그 시간은 빛나고 귀한 시간으로 반짝일 수 있을 것이다.

 

서울 예술의전당 손미정
mirha2000@naver.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62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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