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내 삶을 버티게 해주는 기록의 힘! ‘사회일지’

2023년 7월호(165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4. 5. 18. 16:29

본문

내 삶을 버티게 해주는 기록의 힘! 
‘사회일지’

여행으로 가득한 20대를 살 수 있을까?
대학을 졸업하며 서른 전까지 하고 싶은 일을 도전하며 살겠다 다짐했습니다. 문예창작과를 재학하던 2015년에는 취업률이 낮은 예체능 계열 학과를 통폐합하던 시기였기에 우리 학과장님도 폐과를 막기 위해 총장실을 몇 번씩 오가곤 했죠. 친구들과 함께 건국대학교 학과 통폐합 반대 시위에 다녀오기도 하며 현실이 서럽던 날들이었습니다. 안정적인 직장, 좋은 직업은 사회가 원하는 것이었으나 유명 연설이나 기업가들의 강의에서는 늘 ‘20대에 도전하라. 최대한 많은 경험을 쌓으라’는 말이 빠지지 않았고, 이 모순 속에 갈등하던 저는 출판사, 방송사 취업 대신 모험을 선택했습니다.


방황이 아닌 도전으로 남고 싶었어요!
20대. 아직 책임져야 할 것이 내 몸뚱아리 하나밖에 없을 때, 보다 자유롭게 하고싶은 일을 다 해보며 무너지고 실수하고 혹은 그 모험이 틀렸다 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시기였습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무작정 요리를 배우고 자격증을 하나씩 따다가 한 삼촌을 만났죠. 50개가 넘는 자격증을 가지고 책을 하루에 1권씩 읽는다는 말을 듣고, 어쩌면 내가 목표한 바를 이룬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여러 자격증 공부를 하면서 시야가 엄청 넓어지셨겠어요!”하는 나의 감탄에 돌아온 대답은 명료했습니다. “그래봤자 돈 되는 건 하나도 없는데 뭐.” 아차 싶은 생각에 마음이 울적했습니다. 대학만 가면 모든 게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통폐합의 불안과 싸워야 했고, 사회인이 되면 어른들이 이끌어줄거라 믿었는데 세상에 훌륭한 어른들은 많이 없었습니다. 과연 20대를 여행으로 채우고 나서 내가 어른이 되었을 때 누군가 나와 같은 감탄을 한다면 나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요? 나의 도전이 방황이라 치부되기 싫었습니다. 그때부터 내 도전기를 적어야겠다고 다짐했고 나의 걸음들을 차곡차곡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언젠가 ‘사회에서는 모든 순간이 배움의 연속인 큰 학교’라고 말씀하시던 엄마의 영향도 있었죠. 불평과 불만은 최대한 빼면서 내가 사회에서 배우고 느꼈던 점을 긍정적으로 썼습니다. 삐뚤빼뚤 서툰 그림도 그려 넣고요. 
“일단 해보고! 아님 말고.”하는 입버릇과 습관이 기록을 꾸준히 이어가게 했습니다. 어디까지 가게될지 몰라도 일단 요리를 배웠고 무작정 그림일지를 그렸고 팔로우가 몇 명이건, 반응이 있건 상관없이 인스타그램에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서툴고 머뭇거리며 실수하고 수습하는 막내의 모습도 가감없이 다 그렸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작은 반응에 좋아하고 가슴 졸이며 기록하던 그때 모습이 참 무모하지만 기특하기도 합니다.


도전과 도전 속에 성장을 
요리자격증을 배우고 주방막내로 근무하다 요리 다큐 프로그램 취재작가로 근무했으며 지금은 지리산 자락으로 귀촌해 농사를 지으며 지리산이 내려다보이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20대를 모험으로 채우고 어느덧 서른에 가까워졌죠. 요리, 방송작가, 농촌 이 세 가지를 단어만 놓고 보면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각 사회에 따라 보이는 시야와 기술, 업무가 모두 달라 ‘처음’, ‘초년생’, ‘초심자’ 등 새로운 것에 적응하는 일은 같았습니다. 도전하는 설렘과 좌절과 실수를 건너는 시간, 그럼에도 일어서서 나아간다는 어떤 사회의 큰 틀 말이죠. 2022 백상예술대상에서 최우수 연기상을 받은 김태리 배우가 한 말에 크게 공감합니다. “배움은 그 누구도 챙겨주지 않고, 내가 훔쳐 먹는 것이다.”는 말과 함께 자신이 맡은 배역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서 내가 스스로 질문을 던져야 하고, 어깨너머로라도 계속 보고 또 보며 배워야 합니다. 어른이 된 후에는 더 그렇죠.
요리를 배워 요리사회일지를 썼고 그걸 읽은 피디님의 제의로 ‘한국인의 밥상’팀과 연이 닿아 취재작가 면접을 보고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문예창작과가 전공 학과임과 동시에 요리를 배웠기에 얻을 수 있는 기회였어요. 이후 방송작가로 매일 전국을 취재하며 생각보다 많은 청년이 농촌 곳곳에 내려와 공동체를 형성하고 공간을 꾸리며 새로운 농촌을 설계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게 밥상 10주년 촬영을 끝으로 2년의 밥상 여행을 마치고 지리산 자락으로 귀촌하게 되었죠. 그렇게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전국 어머님들의 따뜻한 밥을 얻어먹으며 여행하듯 답사와 촬영을 다녔기 때문이며 그 과정에서 농촌을 배우고 소통했던 것이 바탕이 되었답니다. 칼을 잡는 방법부터 시작해 요리를 하던 23살의 모습과 방송작가를 취재하며 전화 너머로 많은 이의 삶과 상처를 전해 듣던 24~26살의 모습, 농촌으로 무작정 내려와 농사를 배우고 카페를 열기까지 딛고 적응하던 26~29살의 모습까지 마치 다른 옷을 입은 듯, 다른 배역을 맡은 듯 온통 배울 것으로 가득한 다채롭고 재밌던 시간이었습니다. 그 업무와 형태는 달랐어도, 그 속에서 내가 성장하고 있었음은 늘 동일했습니다.


사회일지를 통해 사명감을 느끼다
사실 한 사회를 끝내고 퇴사할 때마다 엄청 큰 불안이 따른 건 사실입니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낯선 세상에 또 도전해서 넘어지지 않을 수 있을까? 사람들 말처럼 실패하면 어떡하지? 등 낮밤으로 예민하고 불안해서 고민하던 날이 많았습니다. 수많은 선택의 순간이 있었고 그 갈림길에서 믿을 수 있는 건 나뿐이었습니다. 내 선택이 맞는지는 오직 나만 증명할 수 있었으므로 긴 터널을 지나듯 참 불안한 시간도 많았지만, 그렇게 기록된 나의 일기가, 나의 치부책이 이렇게 사회일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회일지를 기록하면서부터는 제 이야기를 기다리는 인스타그램 속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 존재만으로 어떤 사명감이 생기더군요. 이 상황을 무조건 극복해야겠다. 난 반드시 잘 살아야겠다. 잘 해내야겠다는 의지를 만들었습니다.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솔직한 고민과 이겨내는 과정을 일기로 적고 그 속에서 사회일지를 발췌하니 저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한테 작게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 오히려 제게 힘이 되었습니다. 많은 날 속에서 제 버팀목이자 책임감이 되어 주는 건 꼭 사회일지가 아니더라도‘기록’이 주는 힘인 것 같습니다.


어른이 되어가는 행복
학교에 ‘문예창작과’, ‘작가’, ‘웹툰작가’ 등 다양한 타이틀로 강의를 나가면 진로 고민을 하는 친구도 많고 추후에 따로 이메일이나 문자로 고민 상담이 오기도 합니다. 본인이 쓴 독립출판물을 보내주는 친구도 있었고요. 요즘도 제 유튜브나 사회일지를 보고 카페로 상담하러 오는 10대 후반, 20대 초반 친구들이 있습니다. 지난 시간동안 제가 불안을 극복하면서 배운 것들을 이 친구들에게 과감히 이야기할 힘이 생겼습니다. 제 짧은 인생만큼의 얕은 견해이지만 사회초년생이던 20대 초반의 제가 꼭 듣고 싶었던 말들이었거든요. 어른들에게 돈으로도 비굴해져도 보고, 함양에 와서도 첫 카페를 열었을 때 이용당하고 건물주에게 쫓겨난 경험도 있습니다. 세상이 무너지고 우울하던 시절에 제게 이렇게 이야기해줄 선배들을 기다리며 울며 좌절하던 시간이 있었는데, 모쪼록 사회일지를 통해서 제가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넬 수 있는 어른에 가까워질 수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행복한 하고재비 김민선
카페오도재 / 010-8857-0013
(경남 함양군 마천면 지리산가는길 534) 
인스타그램@mings_social
(*하고재비-무슨 일이든지 안 하고는 배기지 못하는 사람을 일컫는 경상도말)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65호>에 실려 있습니다.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는 

  • '지역적 동네'뿐 아니라 '영역적 동네'로 확장하여 각각의 영역 속에 모여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스토리와 그 속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문명, 문화현상들을 동정적이고 창조적 비평과 함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국내 유일한 동네신문입니다.
  • 일체의 광고를 싣지 않으며, 이 신문을 읽는 분들의 구좌제와 후원을 통해 발행되는 여러분의 동네신문입니다.

정기구독을 신청하시면  매월 댁으로 발송해드립니다.
    연락처 : 편집장 김미경 010-8781-6874
    1 구좌 : 2만원(1년동안 신문을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예금주 : 김미경(동네신문)
    계   좌 : 국민은행 639001-01-509699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