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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작물은 농부의 발걸음을 듣고 자라납니다.

농업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7. 9. 16.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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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이야기]

농작물은 농부의 발걸음을 듣고 자라납니다.

 

 

  귀농하여 올해 다섯 해째 농사를 짓는데, 휴우, 드디어 ‘유기농산물’인증을 받았네요. 그간 무농약 2년, 유기전환 2년에 이어 올해 유기농산물 인증을 받은 겁니다. 저는 처음 농사지으면서 가족과 친구들과 나누어 먹을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농산물을 생산하겠다고 마음먹고 친환경 농업만을 추구해 왔지요. 즉 인간과 자연 환경의 조화 속에 ‘지속가능한 농업’을 실천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면서 제 농업의 비전을 ‘몬산토’보다는 ‘카길’에서 찾았습니다. 사실 유기농업보다는 ‘자연농업’을 지향하지요. 아직 갈 길은 멀지만요.

 

  농사를 시작하면서 첫 작물로 ‘고구마’를 심었더랬습니다. 그 후 다른 작물로 확대하려 했으나 생각보다 어려웠죠. 그래서 한 우물만 판다는 심정으로 고구마만 철저하게 재배하겠다고 마음을 바꿨습니다. 현재는 약 만 평의 밭에서 밤고구마, 호박고구마에 이어, 올해는 자색고구마까지 키우고 있지요. 자색고구마라고 하면 맛없는 건강식으로만 알려져 있는데, 제가 자색고구마를 재배해 보니 달콤합니다. 그리고 고구마를 가공하여 ‘고구마말랭이’도 만들고, 올해는 고구마와 엿기름만으로 ‘고구마 조청’을 개발하였고, 앞으로도 다양한 고구마 가공품을 생산하고자합니다.

 

  농사가 결과로 보면 순조로운 듯하지만, 어느 해나 우여곡절은 있을 수밖에 없는데 올해는 유난히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요즘 비정규직 문제로 조금 시끄럽습니다만, ‘비정규직 농업인’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데 심각한 문제입니다. 말로는 ‘경자유전’(耕者有田, 경작하는 사람이 땅을 가진다)는 정책을 떠들어 대지만, 현실은 ‘농지의 임대차 문제’가 가로 막고 있지요. 농지를 임대해준 사람이 마음이 바뀌어 농지를 회수해가면, 하루아침에 농지를 잃는 농업인이 되는 겁니다. 이게 바로 비정규직 농업인인데, 제가 그렇게 해서 올해 7천 평의 임차농지를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4년간 지으며 땅힘을 키워서 겨우 올해 유기농으로 전환된 바로 그 농지를 말이죠.


  또 고구마순을 심고 나서 뿌리도 내리기 전에 밤손님(?)이 찾아와 고구마순을 뜯어먹고 비닐을 찢어 놓고 놀다가 사라지는 일이 유난히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고약한 손님은 세계적으로 멸종위기종이라고 보호하는 동물인 고라니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너무 많이 번식해 농부의 입장에서는 유해동물인 셈입니다. 그런데 올해는 유난히 가뭄이 심해서 그로 인한 피해도 엄청 많았습니다.


  또 통상 고구마는 빗물을 이용해 농사를 짓기에 물이 없는 곳에서도 잘 자랍니다. 그런데 올해는 가뭄으로 고구마가 말라죽어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거기에 진딧물까지 기승을 부려 고구마 잎이 오그라드는 사례가 비일비재 하였죠.

 

 

  ‘오뉴월에는 하룻볕도 무섭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상적인 상태에서 하루만 볕을 쬐어도 동식물이 부쩍부쩍 자란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올해는 역으로 하룻볕 차이로 작물들이 버쩍버쩍 말라 죽어가는 것입니다. 땅은 갈라지면서 작물은 죽어가면 농부의 가슴은 시커멓게 타들어갑니다. 그런데 말라 죽은 자리에는 야속하게도 잡초까지 무성하게 자랍니다. 이놈의 잡초는 가뭄도 타지 않는 듯합니다. 잡초제거에는 정말 손이 많이 가고, 또 작물이 죽은 자리는 보식을 해주어야 합니다. 보식도 2~3번 한 곳도 많지만 아예 포기한 곳도 많아서 늘 안타깝지요.

 

  또 이런 때에는 농부들 사이에 물 인심까지 사나워집니다. 물 때문에 곳곳에서 싸움이 벌어지곤 하죠. 저도 겨우 물 장치를 하여 물을 줄 수 있는 기반을 갖추었는데 물을 주지 않으려는 기득권자의 갑질 때문에, 낮에는 물을 주지 못하고 기득권자가 물을 주지 않는 밤 시간에 밤잠 못 자가며 물을 주어야만 했습니다. 주로 밤 10시경에 물을 주기 시작해 새벽 3시에 물을 끄는 일을 몇날 며칠을 하였지만, 그마저도 기득권자의 횡포로 물을 주다말다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죠. 또 물을 줄 때는 스프링쿨러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수시로 점검해야 하나 컴컴한 밤에 후레쉬로 점검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어떤 때는 스프링쿨러가 넘어져 두둑을 무너뜨린 적도 있었지요.


  그래서 농사는 항상 하늘과 같이 짓는다고 말하나봅니다. 제 아무리 사람이 난다 긴다 해도 자연의 섭리 앞에서는 힘없는 나약한 존재일 뿐입니다. 힘없는 존재인 저는 최선을 다해 농사를 짓는 수밖에 없죠. 농작물은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하지요. 그래서 눈만 뜨면 새벽녘에 밭을 한 바퀴 돌고 오는 것이 버릇처럼 되었습니다. 이른 새벽에 밭을 둘러보며 음악을 크게 틉니다. 음악을 알아듣는 고구마로 키우려는 거지요. 비록 클래식음악은 아니지만요.^^ 그리고 이 때 사진을 찍어 친구들과 가족에게 전송하여 굿모닝을 대신하기도 하죠.


  그래도 지구는 돌고 돕니다. 그렇게 무덥고 불같은 햇볕도 이제 힘을 잃어가고 감사한 수확의 계절이 서서히 다가오는군요. 밭에는 무럭무럭 고구마가 크고 있고, 일찍 심은 곳은 조기수확하여 그 자리에 조만간 김장무를 파종할 작정을 하니 마음이 약간 활기차지는 시간입니다.

 

호천참살이농산 대표 박호천
bhc57@hanmail.net
010-5597-7160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 95호 >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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