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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처음이자 마지막인 해외 여행

여행/일본 규슈 공동체여행기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7. 6. 15.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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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녀 여행기]

엄마와 처음이자 마지막인 해외 여행

 

  78세 된 엄마와의 7박 8일 일본 큐슈 여행은 일본으로 떠나기 전날 시작되었습니다. 엄마를 집에 모셔와 이런 저런 짐을 챙기며, 여행할 때 입을 엄마 바지를 사고 밤 12시쯤까지 엄마의 바짓단을 줄이는 것으로 말입니다. 바느질 한 번 제대로 한 적이 없었고, 의레껏 엄마에게 맡기며 ‘엄마! 이것 줄여줘’라고 내밀기만 했던 철없는 딸이었지요. 이젠 거꾸로 50대가 되어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바늘귀를 넣고, 대충 짐작으로 엄마 키에 맞춰 새로 산 바지단을 자르고, 의자에 앉아 박음질을 하는 동안 지난 시간의 많은 상념들이 스쳐 지나갔지요.

 

  엄마는 30년 넘게 고혈압 약을 드신 가운데 혈관성 치매가 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빨리 병원에 방문해 약을 처방받아 느리게 진행되었지만, 그래도 가장 두드러진 것은 지남력(orientation)이 없고 최신 기억이 입력되지 않습니다. 이것 외에는 잘 움직이고 잘 드시고 잘 주무시고, 무엇보다 남을 괴롭히지 않은 착한 치매 증상만 있을 뿐이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만약 엄마가 치매를 앓지 않았다면 거의 요조숙녀처럼 별로 말씀도 안하실 분입니다. 그런데 이젠 당신의 속마음 표현을 너무나 잘 하셔서 제가 놀라고 당황하여 심지어 우습기까지 할 때도 많지요. 그런데 희한한 것은 우울증 없는 착한 치매에 걸린 엄마가 저는 너무 좋은 거 있죠.

 

  여행준비 마지막으로 막내 여동생은 저에게 신신 당부합니다. 엄마가 예전보다 잘 못 걷는다며 꼭 지팡이를 가지고 가라고요! 그런데 웬걸 일본에 도착한 엄마는 지팡이가 무색할 정도로 잘 걷으시는 거 있죠. 솔직히 말하면 딸인 제가 지팡이를 챙기는 것을 자꾸 까먹었지만,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지요. 걸으실 때 땀을 흘리긴 했지만 젊은 사람도 소화해 내기 힘든 일본 큐슈 여행을 새벽부터 저녁까지 잘 견디어 같이 간 사람들이‘할머니 체력 짱이다’라고 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엄마는 나가사키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여행이 끝날 때 까지 “여기가 일본여? 일본말이 많이 써 있네”를 연발했지요. 차를 렌트해서 아리타, 아소산, 구마모토성, 미쯔비시 조선소, 나고야성, 시마바라성, 데지마, 글로버가든 등 열심히 돌아다니며 아무리 설명해도 금방 까먹는 것은 물론이지요. 달리는 차 창밖으로 빽빽이 우거져 있는 일본 삼나무와 산들을 보며 “일본에는 이렇게 산이 많아서 일본놈들이 우리나라를 욕심내서 쳐들어 왔나 벼”를 연신 지치지도 않고 말하십니다. 피곤해 차안에서 자고 있는 지친 우리들에게 “귀경 안하고 뭐 혀! 보고가야 한국에 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를 할 것 아녀”라고 되려 성화하는 통에 “알았어 엄마! 볼게”응수하지만 저와 동료들은 또 금방 곯아떨어집니다.

 

  5월 2일 출발해 다음날 아리타현 도자기 마을을 돌아다니며 드디어 엄마를 휠체어에 태우려 했을 때 처음에는 쑥스러워 괜찮다 하셨지요. 그렇지만 엄청나게 많은 인파 속을 헤메고 다니는 동안 좀 지나니 “타니까 넘 편하다. 난 편한디 니가 뒤에서 미니까 힘들겄다”라고 하시며 은근 즐기시는 것 같았죠.


[데지마의 시간의 종 앞에서]


  5월 7일, 나가사키 시내에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 전차를 타고 데지마에 도착했습니다. 데지마出島는 일본과 유럽 간의 유일한 무역지이자, 난학蘭學(네델란드학) 및 일본 근대화에 필요한 중요한 발신지로서 역할을 한 곳입니다. 사실 ‘조선도 이러한 기회를 잡고 받아들였다면...’하는 부러운 마음을 내내 안고 엄마와 함께 돌아다녔지요. 그런데 데지마 길 한쪽에 긴 나무로 만든 사다리 모양의 종탑이 있었습니다. 네덜란드에서는 예로부터 반시간 간격으로 시간의 종을 친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2시 반에도 3시를 예상하고 행동하라는 의미로 3번을 치는 거죠. 이 ‘시간의 종’을 발견하고, 순간 일본의 근대화와 연결된 데지마 옛터의 종과 엄마 인생의 시간이 오버랩 되었습니다. 데지마 시간의 종은 멈추었고 또 금방 일어난 최근의 기억은 전혀 하지 못한 채 돌아가실 때까지 영원한 현재를 살아가는 엄마의 시간과의 대비가 저를 잠시 시간의 블랙홀에 빠지게 했지요. 한편으론, 기억하실 수 있을 더 젊으셨을 때에 같이 많이 다녔으면...하는 아쉬움이 제 마음속 뼈저리게 사무쳤습니다. 여행을 다 마치고 일본 나가사키 공항을 빠져 나오며 다들 바삐 움직이고 통과하는데 엄마 혼자 누가 듣든지 말든지“사요나라”라고 인사하십니다. 이런 엄마 손을 잡고 나오며 일본이 처음이자 마지막 해외여행이 될 것이라 생각했었지요. 하지만 현재 엄마의 컨디션으로는 내년 추석 즈음에 예상하는 또 다른 공동체여행인 [대만 문화여행]의 일정도 거뜬히 소화해낼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제 얼굴에 미소가 퍼져나갔습니다. 무엇보다 일본 여행을 함께한 동료들은 엄마가 과연 치매걸린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적재적소에 맞게 쏟아내시는, 너무나 시원시원하고 유쾌한 화법으로 여행 내내 도리어 힘을 준 엄마에게 고마움을 흠뻑 느낀 여행이었다고 했습니다.



김하선(필명)

hasun2001@hanmail.net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92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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