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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훈 감독 영화 ‘황제’와의 대화시간을 가지다

2018년 5월호(제103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8. 5. 11.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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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훈 감독 영화 ‘황제’ 와의 대화시간을 가지다



 만약 여러분들이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황제’, 피아니스트‘김선욱’그리고‘자살’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영화를 만든다면 어떤 영화를 상상하시나요? 사실 베토벤의 황제를 아는 사람은 이 곡의 강렬함과 장엄함으로 인해 자살이라는 키워드와 연관시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민병훈 감독의 영화‘황제’예고편이나 메이킹 필름을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의 간단한 배경, 분위기는 알 수 있지만 베토벤 황제와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찾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죠. 그래서인지 영화‘황제’는 이 연관성을 어떻게 만들어 갔는지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보도록 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려면 일반적인 영화관에서는 볼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단체나 개인이 신청을 해야 하죠. 여기서 이 영화의 특별함은 더욱 부각 됩니다. 영화를 신청해서 상영날짜가 정해지면 민병훈 감독과 배우, 스텝진이 달려와 함께 영화를 보고, 대화까지 할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됩니다.‘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에서도 2018년 3월호에 실렸던 민병훈 감독을 초청하는 특별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영화‘황제’는 넓은 바다에서 물결들이 파도를 만들어가는 잔잔함을 피아니스트‘김선욱’씨가 바라보는 뒷모습으로 시작합니다. 이 첫 장면에서 느껴지는 영화 배경의 잔잔함은 시작뿐만 아니라 영화가 진행되어 배우들이 내면의 고통을 표출하는 가운데에서도,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까지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꿈 속 환상처럼 안개 낀 물가에 집을 형상화한 듯한 기둥들과 그 기둥을 휘감으며 휘날리는 천들, 드넓은 황무지나 초원, 폐허의 공터 속에 피아노를 치는 피아니스트 김선욱. 이런 영화의 각 장면들은 줄거리들을 따로 떼어놓고 보아도 마음을 치유할 것 같은 자연의 아름다움에 젖어가게 합니다.

베토벤의‘월광’과‘비창’의 연주는 이런 장면들의 아름다움과 함께 어우러져가면서도 우울함과 좌절감에 자살하려는 인물들의 심리를 잘 드러냅니다. 마치 그 고통과 아픔을 이해한다는 듯이 어루만져주는 것 같죠. 


 영화 속에서 민병훈 감독이 말하는 해소와 해결은 음악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사실 각 인물들 사이의 갈등과 우울감, 좌절감. 그래서 죽기 위해 목을 매거나, 약을 먹는 모습은 영화 마지막에 당위성이나 논리적인 연관성이 없이 갑자기 해소되어, 보는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합니다. 하지만 음악이 그 연결고리로 이어준다고 생각하면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베토벤의‘황제’나 그 음악을 듣고 피아노 앞으로 모여드는 각 인물들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아마도 감독 스스로가 김선욱의 베토벤‘황제’를 듣고 힐링 받는다고 느꼈던 그 감성을 들려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가 주는 잔잔함의 여운이 가시기 전에 감독과 배우, 스텝진과 대화를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과 함께 민병훈 감독의 생각뿐만 아니라 촬영스타일, 특정 장면에서 배우가 가졌던 생각들, 후배 감독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들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오고 갔습니다. 


질문 1: 감독님께서 액자 속에 거울이 있고 거울 안에 또 다른 액자가 있는 3단계를 통해 인물들의 갈등이 해결되는 지점을 만들어주셨다고 하셨는데, 사실 복잡하기도 하면서 난해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촬영을 하려면 이런 부분들이 먼저 배우나 스텝들에게 잘 전달이 되어져야 했을텐데 감독님은 어떻게 하셨나요?

민병훈 감독: 이 영화를 1년 반 정도 촬영을 했어요. 그런데 김선욱씨도 저에게 물어봐요.“제가 이거 왜 치는 거예요? 제가 왜 돌아봐요? 왜 제가 이런 허름한데 앉아있어요?”그런데 저는 답을 직접 이야기해주지 않았습니다. 감독은 큰 그림을 잡는 사람입니다. 각 영상의 장면들이 한 조각씩 모여서 그림이 되고 큰 바다를 향해서 나가게 되는데 저는 그 큰 그림을 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어떤 때에는 이런 세세한 부분들을 저의 동료들이나 배우와 스텝들에게 일일이 상의하기 보다는 그들에게 맡깁니다.


질문 2: 그러면 연기하는 서장원 배우는 연기를 할 때 굉장히 애매했을 것 같아요. 감독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때에는 어떻게 하셨나요?

배우 서장원: 그 연기를 하기 위해서 생각을 하거나 연습을 할 때, 가짜의 연기를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감독님 같은 경우는 즉흥적이지만 거기서 그 순간만 나올 수 있는 신선함, 진실된 감정을 원하셨고, 그 부분에 다가가기 위해서 전체적인 틀만 잡고서 그 순간에 몰입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질문 3: 영화중에 목까지 물에 잠기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때의 심정은 어땠나요?

배우 서장원: 이탈리아 로마 외각에 있는 호수였거든요? 물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먼저 손을 담가 봤었는데 사우나의 급냉탕이라고 할 정도로 차가웠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 두려움을 이겨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들어갔던 것 같아요. 순간적인 감정이 있었고, 굉장히 좋았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뒤에 요트가 지나가면서 NG가 났습니다. 결국 5번 정도 찍었는데 나중에는 감각이 마비되었죠. 그렇게 그 장면을 찍기는 했는데 사실 많이 아쉬웠어요. 처음 들어갔을 때 NG가 나지 않았다면... 제 나름대로 느낌이 좋았거든요. 그런데 점점 익숙해지니까 제 스스로 계산을 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 장면은 제가 보면서도 아쉬운 장면으로 남아 있어요.


질문 4: 대화 초반에 김선욱씨가 연기를 잘할 것 같다는 감독의 촉이 있었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하면 이러한 감독의 촉을 얻을 수 있을까요?

민병훈 감독: 영화상영 개인 신청이 들어오면 살고 있는 아파트에 가서 개인 상영을 하기도 합니다. 사실 이것이 더 즐거울 때가 있습니다. 오히려 그런 개인 상영을 통해서 제가 더 많이 배우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저에게 감독의 촉이 있으니 그 집을 둘러보며 여기서 영화를 찍으면 되겠다는 생각도 함께 하게 되죠. 제가 어디를 가든지 여기에서 촬영을 하면 어떨까 다 둘러 보거든요. 사실 이것은 제 직업적인 것입니다. 제가 지하철이나 마트에서 남성, 여성분들을 보면 저에게 오는 분들도 많아요.“왜 저를 그렇게 쳐다보세요!”그런데 저는 습관적으로 쳐다보는 거예요. 저는 경찰서도 자주 들어가요. 왜 들어왔냐고 물어보면 다리가 아파서 잠깐만 들어왔다고 하는거죠. 그렇게 앉아서 가만히 둘러보면 경찰들이 일하는 것을 보면서 이렇게 돌아가는구나 하고 알 수 있어요. TV를 통해 보는 것들은 가짜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까요. 


질문 5: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요?

민병훈 감독: 제 주변에“감독님, 제가 영화를 진짜로 좋아하거든요? 저 영화 다 봐요”라며 매일 몇 편씩 본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저는“그래요? 그럼 이 영화는요? 저 영화는요?”라고 물어봅니다. 물론 대다수가 다 못 봤다고 하죠. 다들 KFC, 맥도날드만 먹고 세상에 있는 음식들을 다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아요. 물론 그런 영화들도 보셔도 됩니다. 대신에 저는 제발 예술 영화도 보시라고 말해요.


질문 6: 감독님께서 말하였듯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주겠다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영화를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영화관에서 상영을 하지 않듯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시기 때문에 그 길이 쉽지 않아 보입니다. 감독님과 유사하게 쉽지 않은 길을 가는 분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있나요?

민병훈 감독: 취미 생활이 자신의 잡(job)이 되어야 해요. 취미생활로 시작하면 다 취미생활로 끝나더라고요. 그리고 마음이 변하죠. 골프가 별로인데, 바둑으로 가볼까? 요즘에는 컬링? 이렇게 가는 것처럼 자꾸 바뀌는데 만약에 어떤 일에 소명의식을 가지고 일을 하려고 한다면 자신의 직업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일주일에 5일 이상은 나의 헌신적인 일이 되어야하고 거기에 투여하는 시간이 있어야한다는 것이 첫 번째 조건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먼저 내가 독자가 되어야합니다. 내가 사서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야하는 것이죠. 자기 스스로가 그런 확신이 있어야합니다. 이런 확신과 헌신적인 투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런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분을 대부분 투잡, 쓰리잡으로 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주객이 전도된 것이죠. 그런 경우에는 거꾸로 영화감독이라고 하기보다 다른 직업인 피씨방 사장이나 대리운전기사라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메인이 된장찌개인데 찌개된장이 되면 안 되잖아요. 된장이 메인으로 정착이 되고 나머지 것이 조화롭게 맞도록 해야해요.


 2시간이 넘는 대화의 시간들이 끝나고 단체사진과 함께 비매품 OST CD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영화 음악감독과 김선욱 피아니스트의 주옥같은 곡들이 들어간 CD였습니다. 집에 돌아와 다시 이 음악들을 듣다보면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삶의 무거움과 그날의 열띤 대화의 시간들이 함께 떠오르게 됩니다. 이미 자살을 한 사람들에게 위로와 안식을 주고, 자살을 하려는 사람들에게‘그래도 다시금 살아볼까?’라는 의지를 주려고 했던 영화‘황제’. 이 영화와 함께 제가 왜 이 세상을 살아가야하는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됩니다.



편집기자 송바울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03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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