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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2018년 5월호(제103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8. 5. 16.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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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통신 노익호의 지휘자 이야기 2]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길을 걷다 마주치는 사람들 중엔 ‘누구 닮았는데, 누구더라?’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길을 잃었을 때 ‘누구에게 물어볼까? ’생각하며 묻게 되는데 주로 만만하고 쉽게 뵈는 사람한테 묻게 됩니다. ‘만만하다’, ‘쉬워 보인다’, ‘구수하다’, ‘웃겨 보인다’등으로 분류되는 사람. 은행이나 거리, 슈퍼마켓에서 쉽게 만나질 수 있는 일상적인 사람. 이런 사람들 중엔 의외로 만나기 어려운 인물이 숨어 있습니다. 일종의 ‘숨은 그림 찾기’식 인물과의 만남이야말로 ‘재미 만 땅’ 아닐른지요. 이런 인물로 딱 안성맞춤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다니엘 바렌보임’입니다.

한번은 ‘다니엘 바렌보임’(이하 바렌보임)과 베를린 필하모니 콘서트홀의 연주자 대기실 앞 복도에서 맞닥뜨렸습니다. 아니, 맞닥뜨렸다기 보다는 연주가 막 끝난 피아니스트의 친필 사인을 받자고 모인 사람 중 하나로 보였습니다. 그가 걸친 두터운 밤색 체크무늬의 외투가 다소 폼이 안 난데다가 키가 가뜩이나 작은 저와 비교해도 별반 커 보이지도 않았으니까요. 그렇지만 비닐 레코드판 쟈켓이나 화보에서 익히 보아 눈으로 익혀두었던 바렌보임 같아서 물어보았습니다.

“SIND SIE BARENBOIM?”(당신 바렌보임이지요?) 돌아오는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NEIN!”(아니!) 아닌가벼하고 웃고 말았습니다. 그가 우째 좀 촌시러웠거든요. 대기실 문이 열리고 내 차례가 되어 러시아 출신의 피아니스트 ‘엘레나 바쉬키로바’(이하 바쉬키로바)를 만나 사인을 받고, 악수하고, 나도 기타리스트라고 같은 동류라고 힘주어가며 제 멋에 겨운 한마디 말을 던졌습니다. 근데 바쉬키로바 곁에 비교적 성의 없이 서성되는 남자가 있었어요. 우연도 참! 아까 그 남자가 아닙니까? 진짜 바렌보임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휘자 바렌보임은 뛰어난 피아니스트이기도 하니 후배를 키워주기 위해 방문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이때만 해도 유명인 이름 하나 덜렁 알았지 그의 부인이나 남편이 누구인지 혹은 몇 번 결혼했는지 쉽게 알 수 없던 때였고 관심도 없었습니다. 음악 외적인 문제니까요. 일 년 뒤 음악 뒷얘기나 잡사에 능한 후배 ‘김원기’가 얘기해줘서 알게 되었는데 ‘바쉬키로바’가 다니엘 바렌보임의 두 번째 부인이라는 거예요 글쎄.



  이제 누구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위키피디아는 이렇게 바렌보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 1942년 11월 15일~)은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이다. 유대인으로 아르헨티나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스페인의 국적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 독일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1950년 8살의 어린 나이에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피아노 연주회를 열었고, 1952년 이스라엘로 이주하였다. 1954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에드빈 피셔에게 피아노를 배우고 이고르 마르케비치(Igor Markevitch)의 지휘 교실에 참가했다.”


그의 나이도 나이인지라, 명실 공히 현존하는 최고의 지휘자답게 전설과 같은 얘기도 많이 있습니다. 1954년 어느 날,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그에서 매년 여름마다 열리는 음악제에 참가했습니다. 거기서 전설적인 지휘자 이고르 마르케비치가 주관하는 지휘강좌를 들었습니다. 특히 이때 지휘자의 또 다른 전설 빌헬름 ‘푸르트뱅글러’를 만나 그의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서 극찬을 받기도 했습니다. 젊은이의 장래를 생각해서 흔히 해줄 수 있는 칭찬은 거장들의 세계에선 용납할 수 없기에 이런 일화는 아주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물론, 이전, 그러니까 1952년(이탈리아)에도 지휘수업에 참가하여 지휘에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했으며 인도 출신 ‘주빈 메타’나 이탈리아 출신 ‘클라우디오 아바도’ 같이 일세를 풍미하게 될 이들과 같이 배우기도 했습니다. 


1989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죽고 나서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 자리를 놓고 세 사람의 당시 최고 지휘자 (‘첼리비다케’도 있었지만 고집불통인 성격 탓에 제외)가 경합을 벌였습니다. 로린 마젤, 제임스 레바인, 다니엘 바렌보임 이렇게 셋의 독주가 아닐까 했는데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은 절충안으로 엉뚱하게도 ‘클라우디오 아바도’를 선임합니다. 이때 분노한 로린 마젤과 제임스 레바인은 베를린 필과 예정되어 있던 모든 공연 스케쥴을 취소하고 맙니다. 반면 바렌보임은 섭섭함을 표시했어도 특유의 인심 좋은 동네 아저씨 컨셉으로 객원지휘를 해줍니다.(하하) 그 덕이라기보다는 바렌보임의 음악성을 존중하여 유대인을 터부시했던 베를린 필이 지금도 기꺼이 객원지휘자로 그를 초빙합니다. 그는 또한 정치가 뺨치게 시사문제에서도 강한 발언을 날리기도 하는 열정가입니다.


그는 연주에서 조차 열정이 남다릅니다. 한번은 피아노 독주를 베를린 필하모니 음악홀에서 가졌습니다. 베에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몇 곡을 역시 대가답게 연주했습니다. 이날따라 기분이 좋아진 바렌보임은 앵콜곡으로 몇 곡을 연주하며 갈채를 받았습니다. 문제는 신이 난 탓인지 쇼팽의 폴로네이즈 6번 ‘영웅’을 처음부터 너무 빠르게 치기 시작했습니다. 분명히 청중들은 저와 똑같은 심정이었을거예요. 저렇게는 도저히 칠 수 없는 속도라고 짐작이 되니 안타깝기까지 했습니다. ‘어쩌려고, 아아! ’그러나 바렌보임이 달리 천재가 아니더군요. 그 위기의 순간들을 다 지나가면서 끝을 냈는데 우리 모두는 안도와 정열에 넘친 거장의 연주에 더 맹렬한 박수를 후련하게도 쳐댔다는 웃지 못 할 얘기입니다. 


아무튼지간에 그에게는 다른 지휘자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기이한 면 한 가지가 있습니다. 미국식 지휘자들의 쇼맨쉽과는 전혀 다른데요. 심드렁한 지휘 모습을 보인다는 겁니다. 가끔 코를 문지른다거나 아랫배를 부빈다거나 말이죠. 이런 모습이 기이하게도 진짜 천재, 진짜 예술가로서의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가 아닌지 느낌표를 강하게 찍어봅니다.


 

칠레에서 노익호

Melquisedec.puentealto@gmail.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03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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