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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휴전선 걷기 동행 5

2019년 3월호(제113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4. 21.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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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명 여행기 나라다운 나라, 나다운 나 5]

아들과 휴전선 걷기 동행 5

아들이 학생을 가르칠 때 첫 날 들려준다는 문장을 되뇌어 아들에게 돌려준다.
“고통은 잠깐이지만 포기는 오래 간다(Pain is temporary, quitting lasts forever.)며? 공부해야 하는 지금의 고통을 참으라. 당장 힘들다고 포기하면 그에 따른 고통은 영원히 계속된다는 거 아냐?”
아빠가 자기 수제자네, 하며 껄껄껄 웃어대던 아들이 멋을 잔뜩 넣어 표정을 메이킹한다. 손짓까지.

“거참.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다니. 학생에겐 당연히 이래야 공부를 할 것이고 그래야 나도 수입이... 포기는 또 다른 것을 얻게 한다(Giving up is another gain.)란 유명한 말도 있어. 이것까지 알려주면 공부해야 하는 아이들은 뭘 선택하겠어? 포기해서 또 다른 것? 적용은 사람 따라, 환경 따라 달라져야 하는 거 아닌가?
늙었지? 힘없지? 겁 많지? 그러나 배운 것은 남보단 좀 더 많은 것 같으니까 이런 아빠에겐 뒤의 문구가 적절하지 않겠어?”
“아들이 사업가가 다 됐군. 학생을 소비자로 여기다니. 근데 말은 맞다. 다 맞아. 늙었고 힘없고 겁 많고…”
이렇게 서로 조화하지 못하고 대화만, 말장난만 하며 걷다보니 갈림길이 나왔다. 삽다리 사거리의 이정표를 보니 가야할 길의 반대쪽에 파주출판문화단지가 있다. 저 곳을 놓치다니. 삽다리 사거리에서 출판단지가 있는 문발리까지는 5~6km쯤 된다. 걸어서 한 시간 반 거리? 초행의 걷는 길이 어찌 순탄하기만 할까. 거슬러 걷기로 한다.

“출판단지에서 서울로 가면 되네?”
“아빤 다시 이 길을 혼자 걸어와야 하고? 
이게 무슨 낭비야. 시간이나 힘이나.”
“낭비일까? 얻은 게 아닐까? 몰랐으면 지나쳤을 것이고 그러면 돌아오지 못할 더 먼 데서 후회할 거 아냐. 다행이지.
아들아, 힘없는 아빠에게 힘 좀 보태주라. 해낼 수 있어. 아빠 생각해주는 아들이 고맙지만 ‘하지마라’라는 말은 할아버지한테서도 어릴 적 무진장 들었거든? 이제 아들한테서까지 ‘하지마라’ 들어야겠냐?”

십여 분, 아무 말 없이 앞서 걷기만 하던 아들이 속도를 늦춰 아빠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는다. 원시인들의 삶을 들려주면서…
“원시인들은 말야… 걸어다니는 자연사백과사전이었다. 옛사람들 모두가 다. 하지만 몇몇 동물을 가축화하고 야생의 식물을 작물화하면서 백과사전이었던 지식은 다 사라지고 현대의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는 사람들이 되면서 자연에 관심도 없고, 있다면 놀러가기 위한 자연일 뿐. 이러다보니 모두가 자연박사였던 그들의 지식은 모두 잊히고 말았다. 지금의 현대인이다.”
“아빠도「총·균·쇠」에서 읽은 것 같다. 근데 그 말을 굳이 왜 하고 있는 걸까? 아빠의 지금과 무슨 관련을 지어 말한 거니? 그렇다면 적용이 거꾸로 된 듯 싶네 그려. 그러니 더 걸어야지. ”또 몇 걸음을 앞서 걷다가 돌아보던 아들이,
“그래. 걸으란 얘기야. 걸어서 원시인이 되라고.”
이러며  아직 닿지 않은 출판단지 쪽을 향해 두 손을 입 앞에 모아 소리를 지른다.
“울 아빠 원시인이다! 자연사백과사전이 되든,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이 되든 걷는 건 좋은데, 20일 내리 걷지는 않기. 이건 아들 말을 들어줘야 해. 고집 피우지 말고.”
아들은 발걸음을 멈췄고 아빠가 앞질러 걷는다. 
돌아서며,
“그래. 그러려고 했어. 내 나이로 위축되는 게 아니라 내 나이를 직시하고 인정해야지. 고집 피우며 나이 먹은 것을 절대 유세하고 싶진 않다.”

출판사들이 나타났다. 이걸 놓칠 뻔하다니... 강화도 평화전망대 입구에서 만난 일본 여인 두 분도 오고 싶어 하던 곳. 북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다. 아들은 아메리카노로 쓴 커피를, 아빠는 카페라테로 단 커피를 마신다. 헌책방에 들러 책 한 권씩을 고르기로 한다. 십분도 안 돼 찾았다며 아들이 호들갑이다.
“뭔데?”

또바기학당, 문지기(文知己) 오동명
momsal2000@hanmail.net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13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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