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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Bye, My Old Car!

2019년 9월호(119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10. 9.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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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마 자동차에 얽힌 추억스토리]

Good Bye, My Old Car!

14년 동안 정들었던 ‘나의 애마’를 잘 기획된 것 같은 사건에 의해서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정리’라고 표현하는 것이 미안할 정도로 나의 일부가 되었던 차였지요. 중동의 전장에서 로봇을 조종하던 미군 병사가 그 로봇이 폭파되었을 때에 자기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아픔에 더해 우울증까지 겪었다고 합니다. 이는 AI와 로봇이 우리의 삶에 일상화 될 때 기계들을 지나치게 의인화시켜 그 관계를 정상적인 인간관계보다 더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위험을 상기시키는 보고입니다. 또 정반대로 3~5년에 한 번씩 차를 바꾸는 사람들처럼 최신기술과 기계를 함부로 갈아타는 일이 습관화되면, 오랫동안 깊이 발전시켜야 할 소중한 인간관계 역시 함부로 바꾸고 갈아타는 것으로 당연하게 여겨 스스로를 소외시킬 위험도 인간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오래 타던 내 애마에 ‘바이바이’하면서, 이 둘 중의 하나가 아닌 다른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인데 그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다가 ‘옳거니!’하고 찾아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사랑스런 ‘애마’와 같이 지내왔던 ‘기억’을 아주 소중하게 간직하는 겁니다. 그간의 모든 만남과 일들에 애마는 늘 함께 했으며 말없이 동승해 주었습니다. 그 추억을 나누면서‘이별가’를 대신하려 합니다.
 
처음에 이 애마를 마련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20~30% 연료비 절약과 환경에 대한 배려를 작정하고 LPG와 수동변속 차량을 제법 오래 탔지요. 그러다 갑자기 왼쪽 무릎에 염증이 생겨 1년 정도 치료를 받아야 해서 드디어 자동 변속 차량을 사용할 자격을 얻었다고 스스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대뜸 어떤 분이 저의 사정을 알고 차 한 대를 새로 구입해 드리겠다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정말 고맙고 감사한 마음으로 저희 둘이 차를 구입할 때(이번에도 LPG로)에 가졌던, 두 가지의 ‘기쁜 기억’이 저에게 남아있습니다.
 
하나는 자동차의 ‘색깔’입니다. 
15년 전만해도 자동차는 거의 대부분 대한민국 대표 삼색(검정, 흰색, 은색)으로 천편일률적이지 않았습니까?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고, 더구나 중고차로 되팔기에도 무난하기 때문에 그런 색깔을 선택한다 했는데, ‘현재’ 내가 타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미래’에 팔기 위한 색깔을 지금 선택하다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은 ‘깊고도 심원한 자주빛’을 선택한 겁니다. 구름 한 점 없는 대낮에 주차된 애마가 드러내는 깊고 찬란한 색에 감탄하곤 했지요.
또 하나의 기쁨은 ‘클래식 음악이 환상적으로 잘 들리는 스피커’가 장착된 겁니다. 천천히 달리거나 아무도 없는 숲길에서 정말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던 것은 물론이지요. 더 나아가 클래식을 전혀 몰랐던 제 아내와 같이 타고 다닐때에 클래식에 조금씩 친근감을 갖게 해주었고 드디어는 클래식에 뚜껑이 열리게 해준 겁니다. 그래서 저희 부부는 모두 클래식을 좋아하고 지금은 매월 연주회에 가서 실황을 직접 듣게 되었답니다. 그 이후 인문학적 대화(역사, 철학, 종교 등)를 이어가며 부부관계의 지평을 또 하나 넓히게 되었으니 정말 좋은 기억으로 애마는 남을 겁니다.
그렇지만 ‘안타까운 기억’은 나중에서야 차를 기증하시는 분이 과도한 재정 지출을 하신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라면 결코 그렇게까지 해서 새 차를 구입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지요. 그래서 한 달 월급 남짓한 금액을 서둘러서 마련해 그분에게 보내드림으로써 보충해 보았지만, 애마에게 작별을 고하는 지금까지 ‘아릿한 아픔과 같은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이 애마와 함께 한 14년의 긴 시간들은 ‘추억들의 블랙박스’ 속에 빼곡히 담겼습니다. 일을 마치고 저녁 늦게 귀가하기 전, 숲의 벤치에서 잠시 쉬다가 잠들었을 때에도 내 옆에서 얌전하게 기다려 주다가 집으로 데려다 주었던 친구입니다. 어머님이 뇌졸중으로 쓰러지셨을 때에 급하게 병원으로 이 애마로 모시고 갔고, 장례식에서도 앞장서서 진군해 나갔지요. 군대 간 아들이 휴가를 마치고, 무식한 군대차량 외에 일반차로는 처음으로 이 차를 몰고 자대까지 가게 했을 때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상기된 얼굴로 운전하던 아들이 ‘기억’나는 군요.
 
도로 위에서 만나는 사람은 남자 아니면 여자입니다. 바쁜 일정에 몰려 꼬리물기를 할 수 밖에 없어 급하게 여수의 밤거리를 달릴 때였지요. 그런데 그런 나를 교훈하려는 듯이 매우 빠른 속도로 앞을 스치고 좌회전하며 사라져서 저를 정말 깜짝 놀라게 한 어떤 남자가 생각나네요. 얼굴은 보지는 못했지만 조폭처럼 생겼을까 아니면 샌님처럼 말끔하게 차려입고 속도를 뽐내는 젊은이일까 상상했던 추억도 있습니다.
정반대로 너무 느릿느릿 진행해서 자기만 쏙 빠져나가고 신호등이 바뀌어 뒤따르던 나의 애마만 주저앉아 쉬어야만했을 때, ‘여자군!’하면서 짜증내지 않고, 기다리는 그 짧은 1분 동안 보도블록의 강아지풀들을 조용히 바라보다 멋진 시 한 수가 불현듯이 떠올랐던 ‘기억’도 소중하군요.
 
마지막으로, 업무상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지금까지 20만 킬로 정도를 뛰며 한 번도 길가에 퍼져 주저앉은 적 없이 전국 방방곡곡으로 성실하게 나를 실어 나르던 애마와 이런 갑작스러운 작별을 하게 될 줄을 몰랐습니다. 무인자동차가 나올 때까지 앞으로 6년은 더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저의 업무상, 차가 남게 되면서 이 애마가 ‘정리’ 대상으로 고려되곤 했지요. 14년 된 멀쩡한 차가 시세로 볼 때 쓸모없다고 여기는 자동차문화를, 한국의 피상적이고 깊이가 없는 다른 문화현상들과 함께 탄식하곤 했지만, 여기에 몸을 두고 사는 사람으로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좁은 아파트 주차장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 생긴 겁니다. 얼굴 모르고 지내도 되는 현대의 대규모 단지의 아파트 주차장속에서 어떤 ‘이웃’의 차가 주차된 애마의 옆 부분을 치고 지나간 겁니다. 그런데 그 분은 정직하게도 즉각 자신이 찍은 사진과 함께 보험으로 ‘보상’하겠다며 연락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런 정직에 대해 제가 오히려 무엇을‘보상’할까 생각하다가 그 분의 ‘보상’을 받지 않고 애마를 이참에 그냥 폐차하기로 작정한 겁니다.
 
다만 정직에 대한 ‘보상’을 나누어 가짐으로써 ‘무면’(얼굴 몰라도 되고), ‘무명’(이름 몰라도 되는) 현대사회의 ‘이웃’끼리라도 서로 신뢰하는 문화를 만드는 작은 일에 나의 애마가 마지막 사명을 감당하고 장렬하게 전사했다는 ‘기억’으로 만족하면서 이별을 고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위에서 말한 기계/기술 만능시대의 두 가지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요.

 

경기도 군포시 금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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