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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이 훌쩍 넘어 혼자 떠난 나의 첫 유럽 여행 2

2019년 9월호(119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10. 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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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여행기]

서른이 훌쩍 넘어 혼자 떠난 나의 첫 유럽 여행 2

 

봄에서 여름 사이, 회사에서 한 달여간의 재충전 휴가를 받았습니다.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에 처음으로 유럽을 방문해 3개 나라, 15개 도시를 걸었습니다. 지난 8월호 매력적인 이탈리아와의 만남에 이어, 스위스와 스페인에서 경험한 인상적인 기억들을 적어봅니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피렌체, 베네치아에서 2주를 보내고, 스위스로 넘어가기 위해 기차에 올랐습니다. 조금 먼 거리지만 기차를 선택한 것은 한 국가를 넘어 지역 공동체로 연결된 유럽 연합을 물리적으로 경험해 볼 수 있는 가장 단순하고 직접적인 방법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탈리아에서 스위스로 넘어가는 기차에서는 별다른 절차 없이 ‘이곳은 스위스다’라는 방송만 간결하게 나왔습니다. 대륙과 연결되어 있지만 분단된 국가에 살고 있어 비행기 외에 다른 방법으로 다른 나라에 가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던 저에게 이 순간은 짧고도 묘한 인상을 남겨주었습니다.

스위스, 유럽의 가장 높은 곳 융프라우에서 만년설 하이킹을 하다

스위스, 자신의 매력이 무엇인지를 아는 곳
국경을 넘은 뒤 목적지인 체르마트로 가는 기차로 갈아타는 순간, 스위스라는 나라는 자신의 매력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스위스 기차는 그 자체가 ‘풍경을 보기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일반적인 기차보다 훨씬 큰 창을 가지고 있었어요. 이탈리아에서도, 그리고 철도가 발달한 일본에서도 이렇게 창이 크고 넓은 기차를 본 적이 없었죠. 기차는 마치 알프스라는 천혜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는 것이 자신의 본분이라는 듯이 ‘자, 창밖을 봐요!’라고 말을 거는 것 같았고, 여행하는 내내 스위스 곳곳의 모습에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유럽의 가장 높은 곳에서 만난 여행자들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는 융프라우에 오르기 위해 인터라켄 호스텔에서 나흘을 머무르면서 만났던 다양한 여행자들은 저에겐 알프스의 봉우리만큼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먼저 이곳을 여행하는 인도인의 비율이 상당히 높았는데, 그들은 보통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엄마와 아빠, 자녀까지 3대가 함께 여행을 다니곤 했어요. DSLR 카메라를 들고 말이죠. 한때 어느 곳을 가도 중국인 여행자가 가득했던 것처럼 이제는 인도인들이 곳곳에 있었는데, 이런 모습은 세계의 흐름이 변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작은 움직임 같았습니다.
두 번째는 휴가로 스위스에 온 비슷한 또래의 중국인 청년을 기차에서 만난 것이었어요. 가까운 지역의 사람이어서인지 반갑게 말을 건넨 그는, 제가 한 달 동안 휴가를 받아 여행 중이라고 하자 무척 놀라고 부러워하면서 ‘중국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몇 번이고 반복해 말했습니다. 저는 제 상황이 무척 예외적이고, 한국의 직장인 또한 높은 강도의 업무를 많은 시간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거듭 설명하며 왠지 모를 동질감과 함께 우리가 얼마나 여유 없는 삶을 살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죠.
세 번째 만남은 호스텔에서 만난 한국인 여행자들이었어요. 네 명이 함께 쓰는 방에서 저를 포함해 세 명이 제 또래의 한국인 여성 여행자였는데, 그들은 모두 퇴사한 뒤 한 두 달간 유럽 여행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다른 나라의 여행자들이 여름휴가로 잠시 들른 것에 비해 한국 여행자들은 퇴사를 한 뒤 한 달여 간 길게 여행하고 있다는 점이 조금 달랐는데, 저는 이 모습이 한국 사회의 세대 변화와 연결되는 것 같았습니다. 최근 베스트셀러였던 「개인주의자 선언」이나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에서도 볼 수 있듯이 지금의 세대는 사회가 요구하는 것을 바쁘게 쫓아가며 급하게 살아가던 것에서 조금 벗어나기를 원하고, 그런 모습 중 하나가 바로 3년에서 5년 정도의 사회생활을 마친 후 떠나는 긴 여행 중 하나가 아닐까 싶었죠.
융프라우에서 만난 다양한 여행자들은 세계의 흐름이 변하는 중에 유사하게 살아가는 동북아시아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또 같은 지역과 세대를 살아가는 여행자들을 통해 나와 내 주변의 환경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고 있는가를 생각해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여행의 마지막 도시, 스페인 바르셀로나
발끝이 닿는 곳마다 자연과 사람이 위화감 없이 어우러지는 풍경으로 평온함을 안겨주었던 스위스를 떠나, 긴 여행의 마지막 나라인 스페인으로 갔습니다. 마드리드와 세비야, 그라나다까지 여러 도시를 방문했지만 스페인에서 딱 하나의 도시를 꼽으라면 단연 바르셀로나였지요. 제게 바르셀로나가 특별했던 이유는 바로 건축의 거장‘가우디’와의 만남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미술과 건축에 약간의 관심이 있었음에도 바르셀로나에 도착하기 전까지 가우디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아니, 잘 모르는 정도가 아니라 솔직히 ‘참 별로다’라고 생각했어요. 그의 건축물 몇 가지를 사진으로 보았을 때는 조금 괴상하다고 느꼈었고, 착공 후 100년이 훌쩍 지났는데도 현재까지 완공이 안 된‘라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스토리 덕분에 그의 유명세가 과해진 것이 아닌가 싶었던 거죠. 대충 아는 것이 모르는 것보다 못한, 딱 그런 상태로 바르셀로나에 도착했습니다.

가우디와 함께 걷는 공간, 그라시아 지구
운이 좋게도 제가 바르셀로나에서 다섯 밤을 머물렀던 집은 번화가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지만, 가우디의 건축물들과는 아주 가까운 ‘그라시아 지구’에 있었습니다. 이 지역은 한 블록을 지나면 동네의 마당 같은 공터가 있는 독특한 구조로 기획된 지역이었는데, 바르셀로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상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어요. 구석구석 개성 있는 가게도 많아 우리나라 상수동이나 연희동 골목을 걷는 느낌이 들기도 했었죠. 바르셀로나는 이번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였기에 많은 것을 보려고 분주하기보다는 ‘적게 보고 많이 느끼자’는 생각으로 하루에 한두 개 가우디의 건축물을 보는 것 외에는 별다른 계획을 잡지 않았는데, 그것만으로도 정말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바르셀로나는 ‘가우디의 놀이터’라고 말하기에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도시 곳곳에 가우디의 건축물이 자리 잡고 있었지요. 가우디 건축물 방문의 시작이었던 까사 밀라에서 저는 이미 가우디에 대한 ‘오해’를 깨끗이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런 의미를 모르고 볼 때는 괴상해 보이기만 했던 가우디의 정형화되지 않은 건축은 알고 보니 ‘뭐 이렇게까지 디테일해!?’ 싶을 만큼 감탄의 연속이었죠. 독특해 보이기만 했던 가우디의 건축물은 무엇 하나도 그냥 만들어진 것이 없었고, 아주 작은 것이라도 각각의 기능을 갖춘 하나의 건축물을 완성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생명체처럼 말이죠. 각지지 않은 곡선의 특이한 모양새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건축에 필요한 기능을 빠짐없이 담고 있는 건축물에 대해 사람들이 감탄하자, 그는 “나는 그저 동물이나 나무 등 자연 속에 이미 만들어져 있는 원리를 ‘발견’해 사용했을 뿐이지, 내가 새롭게 생각해 낸 것은 하나도 없다.”라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우디가 죽을 때까지 자신의 생애 40여 년간 건축에 힘을 쓴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누구든 기회가 된다면 꼭 가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 건축물은 거대한 외관보다도 그 안에 한 걸음 들어갔을 때,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말로 다 할 수 없는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성당의 높은 곳에서 들어온 빛은 가장 아래 지하 예배실까지 비추도록 설계되어 있었고, 각 탑에서 울리는 종소리는 모여 그 자체로 성당이 하나의 오르간처럼 울려 퍼져나갔는데 ‘가난한 자들을 위한 성당’을 만들고자 했던 가우디의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았죠. 이렇게 한 달여간의 긴 여행이 저물어가고 있었습니다.

가우디 사후 100주년 완공을 목표로 현재도 건축 중인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바르셀로나)

한 달 여행의 환상과 실제, 그리고 오늘의 일상
벌써 여행에서 돌아온 지 두 달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하루라도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듯이 한 달을 꽉 채운 후, 한국으로 돌아온 저는 시차 적응이 필요 없을 만큼 빠르게 일상으로 복귀해 출근하고 퇴근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이죠.
여행을 가기 전에 저는 한 작가가 표현한 것처럼 ‘빨리 크느라 제대로 크지 못해, 어울리지 않는 여러 개의 기관을 기워 붙인 듯 괴상한 얼굴을 갖게 된 한국’을 갑갑해하고 미워하면서도 어떻게 보아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제가 갔던 나라들은 공통적으로 오래된 것을 소중히 여기고 발전시키는 태도가 있었고, 이런 모습은 세계사를 주무르던 승자의 역사, 하늘이 준 선물이라 불릴만한 자연, 그리고 넓은 대지와 천재들의 영혼이 깃든 도시의 유물들을 가지고 있던 덕이기도 했죠. 그런 태도가 무척 인상적인 한편, 그들과 달리 강대국 사이에서 섬처럼 고립되어 별다른 자원도 없는 작은 땅을 물려받아 온 힘을 다해 살아내야만 했던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더 중요한 게 무엇인지 생각할 여력도 없이 오늘을 살아내는 것이 전부일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구나’라고 이해하고 나니, 이제는 우리도 조금 다르게 살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게 무엇이 될지는 계속 고민하고 찾아봐야겠지만, ‘무엇이든 시도해 볼 수 있는 마음’이야말로 이번 여행에서 얻은 가장 큰 즐거움이었던 것 같습니다. 

 

서울시 노원구 이한나
brightlife.lee@gmail.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19>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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