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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기생 서화가 죽서(竹西) 함인숙(咸仁淑)

2019년 11월호(121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11. 18.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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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미술사가 황정수 칼럼 1]

평양 기생 서화가 
죽서(竹西) 함인숙(咸仁淑)

함인숙의 노안도-황정수 소장

 

죽서(竹西) 함인숙(咸仁淑)은 평양에서 출생하여, 20세기 전반 특히 1910년대에 평양과 경성에서 활발히 활동했던 기생 출신의 서화가입니다. 그녀의 기명은 비취(翡翠)였으며, 서화가로서는 죽서(竹西), 소교(小橋), 죽교(竹橋)의 아호를 썼습니다. 기생에게도 수업과정을 개방하여 근대기 여성 서화교육의 효시가 되었던 평양의 ‘기성서화회(箕城書畵會)’에서 서화를 수련했답니다. 

함인숙은 이미 석연(石然) 양기훈(楊基薰, 1843~미상)의 지도를 받고 있었는데, 기성서화회에서는 주로 수암(守巖) 김유탁(金有鐸)에게 지도를 받았습니다. 당시 양기훈은 이미 도화서 화원 화가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거물이었지요. 그는 장승업(張承業)과 동갑으로 서울을 중심으로 남쪽은 장승업, 북쪽은 양기훈이 대표한다 할 정도로 화명을 떨친 인물이었답니다. 평안도, 함경도, 황해도, 강원도 지역의 대부분의 화가들이 양기훈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김윤보(金允輔)와 김유탁, 문화선(文化善) 등 근대 평양화단을 형성한 화가들이 모두 그의 제자이며, 함경도의 지창한(池昌韓), 평안도의 차대도(車大道), 황해도의 김익효(金益孝) 등도 대부분 양기훈의 영향을 받은 화가들입니다. 양기훈은 특히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기러기 그림으로 유명한데, 그는 능라도에 있으면서 갈대밭에 앉아있는 기러기를 늘 봤기 때문에 그린 것이라 말하곤 하였지요.

함인숙은 양기훈에게 배웠을 뿐만 아니라 기성서화회에서 양기훈의 장남인 소석(小石) 양영진(楊英鎭)에게서 그림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평양화단의 중심인 두 부자에게 모두 배우는 특별한 인연을 맺었지요. 더욱 재미있는 일은 얼마 후 함인숙이 양기훈의 소실로 들어간다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함인숙은 양영진의 어머니 자격이 되는 것이지요. 함께 그림을 그리고 배우기도 한 사이가 모자지간(母子之間)의 관계가 되는 기이한 운명을 맞게 된 것입니다. 

함인숙은 1915년 9월 ‘조선물산공진회(朝鮮物産共進會)’평남관에서 기생인 임기화(林琪花)와 함께 관람객들이 요구하는 내용에 담하여 휘호(揮毫-붓을 휘두른다는 뜻으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을 이르는 말)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녀는 본래 ‘사군자’와‘갈대와 기러기’그림에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공진회에서도 그녀의 ‘안진도(雁陳圖)’라는 작품이 전시되기도 하였지요. 같은 해 10월에는 경성에서 열린 ‘가정박람회’에서도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 박람회는 그림 값으로 ‘평남협찬회’를 보조하고자 기획된 것이었고, 함인숙이 수입 중의 일부를 자선사업에 기탁하였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평양의 여류화가로 이름을 알린 함인숙은 이후 경성으로 활동영역을 옮깁니다. 김규진(金圭鎭)이 경성 소공동에 차린 ‘서화연구회’의 여성회원으로서, 일본인 여성과 사회 지도층 신여성, 그리고 여타의 기생들과 함께 교육을 받습니다. 또한 1916년에는 양영진의 전시회에 작품을 내어 함께 전시했는데, 이때 <매일신보>는 함인숙을 ‘평양여류화가의 제일인’으로 소개하였지요. 그리고 일본 후쿠오카에서 1920년에 열린‘공업박람회’조선관에서 역시 평양 출신의 김유탁, 기생 화가 전춘홍(田春紅)과 휘호한 바도 있답니다.

이처럼 함인숙은 1910년대 각종 박람회나 전국 각지의 서화회에서 관람객에게 작품을 그려 주며 큰 인기를 끌었던 유명 인사였습니다. 하지만 1920년대 이후의 행적은 모호하여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입니다.

 

 

 

 

 

 

 

 

 

 

 

 

미술사가 황정수
galldada@hanmail.net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21>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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