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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반대의 속성을 지닌 한 존재로서의 인간

2019년 10월호(120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12. 15.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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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한국미술 시리즈 7]

정반대의 속성을 지닌 한 존재로서의 인간 - 김지영 작가

"우리나라 석조 건축술인 그랭이 공법을 도입하여, 다른 크기, 모양, 색의 돌을 끼워 맞추면서

내가 원하는 형태나 이미지를 시각화한다. 현재 진행 중인 이런 작업들은

‘나의 정체성’을 쌓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김지영, 합(合) 25x25x20cm 마천석, 자연석

우리가 미술작품을 감상할 때의 첫째 원칙인 작가를 존중함에 따라서 작가의 말을 먼저 소개했습니다. 그가 궁극적으로 목적하는 ‘나의 정체성’은 무엇일까를 조심스럽게 찾아가 볼까요? 물감으로 그린 작품과 달리 조각된 작품은 대체로 그 의미가 명백하게 잘 전달되는 편입니다. 그중에서도 이 작품은 너무나 선명해서 의미를 파악하기가 아주 쉽습니다. 
먼저 휙 지나가듯이 사진들을 훑고, 순간적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동영상에 습관화된 우리의 시각을 이 작품에 조용히 고정해 볼까요? 대신에 우리의 마음의 시각을 조금씩 움직여 별로 크지 않은 남해안에 널려있는 몽돌이 태곳적부터 오래 마모되어온 과정들을 연상해 보면서 말입니다. 또 그 기나긴 시간에는 비기지 못하겠지만, 이 단단한 돌을 인내심을 가지고 돌 자체의 새로운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오랜 시간 꾸준히 다양한 각도에서 예술적 형태를 잡아간 작가가 흘린 땀방울과 그 냄새를 바로 눈앞에서 보고 맡는다고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한 면은 너무나 자연스럽지만, 다른 한 면은 그것과는 정반대로 철저히 인위적인, 한 돌 안의 두 실체이지요. 즉 별도의 두 개체가 아니라 결코 떨어질 수 없는 한 실체인 돌로 구성되게 한 이 작품은 자기를 바라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여러 가지 상상의 나라를 펴게 만듭니다. 우리가 취하고 만들어 보는 여러 사물, 사건, 조직, 역사, 문화 등에 대해서 ‘이중적인 그러나 한 실체’인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겠지요. 우리가 더 의미 있게 하려고 노력하며 만드는 것마다 이상한 것이 되거나 역사의 쓰레기로 전락하는 현실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겠네요. ‘Flying Shame’(비행기 타는 것, 부끄러운 줄 알아라!) 운동을 일으키는 스웨덴 출신의 환경주의자 그레타 툰베르그 Greta Thunberg를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서양인들이 편리하도록 만들어놓은 비행기를 동양인들이 멋모르고 많이 타고 다니는데, 그것이 사실 환경파괴의 주범임을 19살짜리 소녀가 예리하게 지적하고 나선 겁니다. 저 자신도 필요할 때 비행기를 이용하며 타고 다녔지만 내내 찝찝함을 피할 수 없었는데 19살짜리에게 한 수 배우며 잘못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을 축소해 한 개인에게 적용하여본다면, 자연스럽게 태어났지만 삶과 역사를 관통하는 가운데 심각하게 왜곡된 일그러진 자화상으로 변해버린 존재로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와 같이, ‘한 실체, 정반대의 두 정체성’으로 존재하는 인간 말입니다. 그런데 작가는 이런 점을 의식하여서인지 이 작품을 한 단계 더 승화시키는 탁월한 장치를 마련해 두었는데 눈치채셨어요? 그것은 바로 이 작품 아래에 스테인리스 밑판을 설치해 작품이 그대로 비치도록 한 것이죠. 이중적인 그러나 한 실체’가 이제는 투명한 거울 앞에 그대로 드러난 꼴이 된 겁니다. 이 작가가 가지고 논 돌에서부터, ‘무언가를 만드는 인간’ homo faber이 만든 모든 역사적, 정신적 작품들을 비롯해 가장 작게는 거울 앞에 다시 비친 일그러진 자화상을 가진 인간 자신을 모두 포함하며 환하게 비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이런 모습을 보지도, 보이지도 않으려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지요. 그것은 거울(이 조각에서는 스테인리스의 밑판)을 제거하는 것인데, 이것은 문제 해결의 열쇠를 없애는, 절망과 죽음에 이르는 지름길을 걸어갈 따름입니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서 작가가 열심히 다룬 돌보다 밑판이 더 중요할지도 모르는 역설이 발생한 셈이네요. 인간의 이런 정신적, 영적 고통을 가장 정직하게 토로하며 거기서 궁극적으로 탈출해 위대한 역사적 인물이 되었던 옛사람의 고백을 들어보실래요?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신의 법을 섬기지만, 내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경기도 군포시 서인성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20>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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