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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컷 한 컷에 역사를 담아내는 ‘연제관’ 다큐 사진작가를 만나다

2019년 12월호(122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1. 20.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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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김미경이 만난 사람]

한 컷 한 컷에 역사를 담아내는 ‘연제관’ 다큐 사진작가를 만나다

태안 안면도 갯벌에서 일하는 어르신들

사진에 미치다
형 소유의 니콘 카메라가 집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더 좋아해서 가지고 다니며 찍고, 분해 해보고 완전 부서지기까지 제 손을 떠나지 않았죠. 그때 사진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미치지 않으면 어설프기 마련인데 저는 약간 미치는 스타일입니다.(웃음) 사실 웨딩사진을 찍을 때도 마찬가지였죠. 돈벌이를 하는 것은 이차적이고 너무 좋아서 그 일을 했습니다. 이상하게 들리지 모르지만, 웨딩 촬영을 할 때의 주인공은 신랑 신부가 아니라 제 자신이었습니다. 예식장 무대에 올라가 촬영을 할 때면 아무생각도 나지 않는 겁니다. 무아지경에 빠지죠. 도리어 카메라를 놓고, 내빈석에 앉아있을 때 불안했으니까요. 좋은 장면이 나올 만한 곳이라면 어디에서든지 촬영을 했습니다. 저의 이 에너지 때문에 신랑신부들이 좀 힘들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냥 멋있는 사진이 아니라 진짜 좋은 장면들을 선사하고 싶었습니다. 사진에 미치게 되니 만나는 사람들과도 사진이야기 밖에 안하게 되더군요. 하지만 그렇게 행복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다큐 사진에 미쳐있는 지금에 비하면 말이죠.
 
웨딩에서 다큐로
제가 남을 위한 웨딩사진을 찍었잖습니까? 그렇다 보니 약간은 고정된 틀이 있어 제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불교 잡지사에 있을 때도 산이나 암자에 힘들게 올라가서 촬영은 고작 한 시간 하고 내려와야 했죠. 오랫동안 머물며 좋은 장면을 담아내야 하는데 말이죠. 이래서는 안 되겠다싶어 새롭게 뭔가를 구상하는 가운데, 역사적이고 의미 있는 것을 사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진으로 기록하되, 소외되어 있거나 이후에 사라질 수 있는 것들을 다큐로 찍어 남기고자 저만의 개념을 바탕으로 다큐를 시작했습니다. 수색 재개발 현장 사진을 찍은 것부터라면 다큐 사진 경력이 10년 이상 되겠지만,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2년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새 다큐를 촬영하다 다리가 부러지기도
큰기러기 철새를 주제로 다큐를 찍었습니다. 새는 말이 없잖아요. 그래서 사람보다 찍기는 좋더라고요.(웃음) 큰기러기는 9월부터 10월초에 우리나라에 도착해 다음해 3월, 다른 곳으로 옮겨갑니다. 
고양시 장항동에 한 장소를 정하고 반경 100m 내외에 있는 큰기러기를 찍었습니다. 이곳저곳이 아닌, 한 마을을 중심으로 집과 전봇대, 전깃줄, 그리고 갈대 등을 배경으로 큰기러기들을 집중적으로 촬영했지요. 그러다 보니 큰기러기의 습성들을 보다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볼 때 아무렇게나 이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러기들은 하루에 두 번, 아침과 저녁으로 강가에서 휴식을 취하고 먹이를 먹으러 논바닥으로 이동합니다. 물론 추운겨울에 야외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죠. 
어느 날, 큰기러기가 무리지어 날아가는 장관을 찍기 위해 급한 마음에 뚝방길을 뛰어 내려가다 넘어져,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해 지금도 약간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한 장면 한 장면을 놓치지 않기 위해 눈밭을 헤집으며 큰기러기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행복했습니다.

다큐의 어려움
사람을 촬영하는 다큐는 서로 간의 교감이 중요합니다. 마음의 문이 열리지 않으면 찍기가 힘듭니다. 촬영의 의도를 이해하고 흔쾌히 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단호히 거절하며 찍기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냥 쉽게 주변의 사물들을 찍을 수도 있지만, 저는 어려워도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사진을 담아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가장 어려운 것은 사람들을 설득하는 작업입니다. 새벽이든 저녁이든 카메라 앵글을 언제 들이대도 자신들의 민낯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을 열게 하는 것이죠. 그리고 트릭이나 연출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어야 하는데, 언제나 거치적거리는 게 꼭 있습니다. 그것만 치우면 좋은 장면이 되는데 말이죠. 하지만 치우고 찍고 싶은 유혹을 냉정하게 물리치고 있는 사실대로 촬영해야 합니다. 바로 이 냉정함을 유지해야 제대로 된 다큐로서 역사적인 기록을 남길 수 있습니다. 

행주 나루터의 마지막 한강 어부들


다큐 사진 속 사람들 설득하기
현재 작업 중인 한강의 마지막 어부들의 다큐를 처음 찍을 때의 일입니다. 어부들을 만나러 행주대교 근처 선착장에 갔는데, 덩치도 크고, 인상도 험상궂은 분이 어구 손질을 하고 계셨어요. 선뜻 말을 걸기가 힘들어 그냥 돌아왔죠. 다음날 용기를 내어 그분에게 다가가 이러저러한 내용으로 사진을 찍고 싶은데 어떠시냐고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귀찮다는 듯이 퉁명스럽게 전에도 찍은 적이 있다며, 사진이 필요하면 전에 찍었던 사람 전화번호를 알려 줄 테니 연락해보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그때와 지금의 기록은 다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나루터의 역사입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쳐 내려오는 나루터인데, 5년 전에 한 번 찍은 것으로 다 담아 낼 수 없는 것이죠. 5년 후에 누군가가 다시 기록해야하고, 제가 찍고 난 후에도 계속 기록해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역사의 한 부분을 만들고 있는 여러분들은 소중하고 중요한 분들입니다.”라고 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하시더군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이 33명 어부 중 핵심 인물이었습니다. 단순히 사진을 찍자는 것이 아니라, 왜 그 사진을 찍는 것이 필요한지를 진실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설득 후, 친해지기 위한 필살기
하지만 이리 설득이 되었다고, 그냥 막 셔터를 눌러대는 것이 아니라 앞서 말한 것처럼 교감이 있어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철저한 서비스 정신(?)으로 녹아들어가야 하죠. 이분들과 친해지기 위해 믹스커피는 입에도 대지 않는 제가 믹스커피를 주는 대로 마시고, 커피의 적당한 물량공세도 필요합니다. 또 새벽 5시정도면 어부들이 선착장에 나오는데, 5시전에 먼저 도착해 있다가 고기 잡으러 나가기 전 40~50분 정도 컨테이너 막사에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야기 중에 웃기지 않은 부분에서도 웃어드려야 하고요(웃음). 하지만, 카메라 앵글 속에서는 냉철해야합니다. 이래줬으면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담아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분들에게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굉장히 따뜻합니다. 이제는 다큐 현장에 가면 제 동네처럼 편안하기까지 해요. 

다큐의 매력
‘힘들게 사진을 찍었으니 작품이 되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1000컷, 2000컷을 찍어도 그 안에서 쓸 수 있는 것은 한 두 컷이 나올까 말까합니다. 이 한 두 컷으로 때론 꺼진 마음에 불이 확 붙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찍다보면‘아! 이 정도는 되겠지’하고 돌아설 때, 진짜 좋은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한 컷 한 컷을 위해 끝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즉 다큐 현장에서는‘어느 때에 이런 장면이 나올 것이다’라는 상황을 그리면서, 그 장면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마치 포수가 사냥감을 기다리듯이 말이죠. 이런 장면을 동물적으로 찾아내는 직관과 함께 어떤 렌즈를 쓸 것인가 하는 순간적인 판단력도 중요합니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가 몇 퍼센트일 것 같나요? 차이가 클 것 같지만 2%입니다. 그런데 2%가 굉장히 촘촘합니다. 이것을 넘어서기가 힘든 것이죠. 저는 2%를 다큐의 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제 사진에 취하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만족하는 그 즉시 창의력이 떨어지거든요. 새로운 것을 위해선 완전히 틀을 깨야 합니다. 배우가 연극이 끝나면 완전히 새 옷을 갈아입고 전혀 다른 역할을 하듯이 다큐 사진도 그래야 합니다. 저는 사람들의 표정을 담아낼 때 얼굴을 잘 찍지 않습니다. 
실루엣 같은 흑백사진 하나 속에 담긴 한 사람의 뒷모습, 걸어가는 모습만 봐도 그 사람의 희노애락의 인생을 담아내는 그런 사진을 찍고 싶습니다.
 
다큐는 사명
다큐는 환경의 제약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것들을 귀찮아하지 않고 참아내는 인내가 필요한데, 다큐에 대한 본인 스스로의 사명감이 없다면 힘듭니다. 예를 들면 태안 안면도 갯벌에서 굴과 조개를 캐는 허리가 굽은 어르신들을 촬영하기 위해선 물때를 잘 맞춰야합니다. 그런데 안면도에 서너 번 정도 내려가도 한 번 성공할까 말까 합니다. 설사 물때가 맞더라도 날씨가 받쳐줘야 하는데, 어르신들이 너무 연로해서 더울 때나 추울 때는 아예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죠. 

기억에 남는 다큐
발로 직접 뛰기에 촬영한 곳은 다 기억에 남습니다. 수색재개발 지역의 경우 사람들이 다 떠나고 1년 이상 버려진 공터로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떠났지만 흔적들이 그곳에 남아있었죠. 참외와 방울토마토가 열리고, 집 화단에서 볼 수 있는 꽃들이 아무렇게나 피어있었습니다. 이런 장면들을 1년 정도 찍었는데 저에게 의미 있는 작업이었지만, 사진발표는 하지 못했습니다. 당시엔 다큐 사진에 대한 개념이 부족했기에, 밀도 있는 사진을 찍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다시 찍고 싶어도 그곳은 이제 아파트촌이 되어버렸어요. 이렇게 다큐는 한 번 지나가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답니다.

앞으로의 계획
현재 진행되는 작품들인 안면도 갯벌에서 일하는 어르신들의 모습과 마지막 한강어부들을 담는 다큐를 마무리 해야겠지요. 이 두 다큐작품들을 긴 호흡으로 지속해서 촬영해가며 내년 중 완성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내년 하반기 다큐 작품으로 책을 내고자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전통춤 협회에서 의뢰해 전시할 사진을 찍고 있는데 식상한 공연의 모습이 아닌, 연습장면 위주로 촬영을 하고 있습니다. 도리어 연습장면이 더 사실적이거든요. 전통춤에 대한 작품은 12월 19일 성남시청에서 공연과 함께 콜라보 전시를 합니다. 특히 전통춤을 소재로 한 작품은 내년 중순 개최되는‘중국 핑유 사진전’에 참가신청을 해놓은 상태입니다.  
 
‘위험은 변화하지 않은 자들에게만 온다’는 말을 항상 마음속에 가지고 살아간다는 연제관 사진작가. 깊은 통찰력으로 실루엣 사진 한 컷에 대상의 모든 것을 담아내려 노력하고, 특히 역사성을 담은 다큐 사진을 남기고자 애쓰는 작가의 사진에, 내년에는 어떤 새로운 변화들이 담겨질지 기대하며 인터뷰를 마쳤습니다. 

 

다큐 사진작가 연제관
yjk805@hanmail.net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22>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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