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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로 40년, 더 깊은 바이올린 소리를 길어내고픈 - 정호진 교수

2019년 12월호(122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1. 19.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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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로 40년,
더 깊은 바이올린 소리를 길어내고픈 

- 정호진 교수 -

 


violin. 정호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졸업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 Magister 과정 졸업
미국 Chautauqua 국제음악제오케스트라 악장 역임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 악장 역임.

현재,
Ensemble TIMF악장
Budapest Summer Music Festival 의 
Head of Strings 및 전임지휘자
서울 쳄버 오케스트라 단원


 

음악영화 ‘랩소디’로 바이올린을 선택하다
제가 음악을 하게 된 계기는 어릴 적 부모님의 영향이 컸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외국으로 출장을 다녀오시면 항상 LP판을 선물로 사오셨고, 집에서는 TV 대신 클래식 음악을 많이 틀어주셨어요. 부모님께서 학창시절 첼로와 바이올린을 배우셨기에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셨고, 저희도 자연스럽게 음악을 하게 됐습니다. 형은 5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지만 저는 음악보다는 활동적인 것을 좋아해서 태권도를 배웠지요. 그러다 우연히 ‘랩소디’라는 음악영화를 보고 나도 연주해 보고 싶다는 강렬한 마음이 들어, 형과는 다른 악기인 바이올린을 선택했습니다. 음악은 보통 어릴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을 하는데 저는 취미로 즐겁게 배우다 많이 늦은 초등학교 6학년에 본격적으로 시작해 불과 몇 달 남기고 있었던 예원학교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연습했던 기억이 납니다. 

음악에 대한 좌절과 절망
음악은 노력한다고 바로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꿰뚫을 수 있는 직관도 있어야 하고, 무작정 많이 연습하기보다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시간과 조건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신체적으로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하고요. 무엇보다도 음악은 시간예술이기 때문에 한 번 마친 연주는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실력을 보여도 기교에서 한 번 실수를 하면 절대 돌이킬 수 없는 기록이 되기 때문에 완벽에 대한 압박감도 심합니다. 설사 그런 과정을 다 견딘다 해도 음악가로서의 길은 대부분 정해져 있어 이런 어려움들을 견디며 계속 가야하나 하는 고민들과 수많은 좌절도 겪었습니다.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 유학시절에는 졸업시험을 마치고 알 수 없는 심각한 왼쪽 손목에 통증이 생겨 연주가로서의 생명이 끝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좌절과 절망을 겪기도 했습니다.

‘왜?’를 묻고, 묻고 또 묻는 유대인 스승
제가 빈 국립음대에서 유학을 하던 중, 여름 캠프에서 잠시 만났던 ‘야이르 끌래스’(Yair Kless) 교수님이 기억에 남습니다. 유대인으로 텔아비브 음악원 학장으로 계시다 연구년에 유럽으로 건너와 오스트리아 빈(Wien)과 그라츠(Graz)에 정착하신 분이셨죠. 이분은 그전까지의 선생님과는 다르게 항상 저에게 질문을 던지셨어요. 어떤 곡이든 ‘왜?’를 매번 물으셨습니다. “왜? 우리가 여기서 끊어야 하지?”, “왜? 여리게 연주를 해야 돼?”라고 이유에 대해 묻고 또 물으셨지요. 제자들에게도 학생들의 수준에 맞게 지도하면서 굉장한 끈기와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 주셨어요. 제 손목의 통증을 아시고는 새로운 주법과 테크닉을 알려주며 통증이 완화되도록 도움도 주었던 분이었습니다. 
또 다른 분은 폴란드 태생의 지휘자로 여러 교향악단의 음악감독도 역임하고, 폴란드 슈제친예술대학(Szczecin University of Art) 지휘과 교수인 ‘뾰트르 보르코우스키’(Piotr Borkowski)입니다. 제가 40세가 훌쩍 넘어 지휘를 배우기 위해 여름 캠프에 신청을 하고 일주일간 가르침을 받은 분으로, 바이올린을 하면서 지휘를 배우러 간 저를 신기해하셨죠. 이때의 인연으로 지금까지도 선생님과 연락을 하며 기회가 될 때마다 지휘를 배우고 있습니다. 이분 또한 ‘야이르 클래스’(Yair Kless)교수님처럼 모든 것에 굉장히 자세하게 질문을 던지는 분이셨어요. 질문 뿐 아니라 해결방법에 대해서도 매우 구체적으로 주법과 테크닉을 자세히 알려주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뾰트르 보르코우스키’(Piotr Borkowski)선생님의 스승도 ‘보그슬로우 마데이’(Boguslaw Madey)라는 유대인이셨다고 하더군요.
두 분의 선생님을 경험하고서는 ‘왜?’라는 질문을 자주 던지고 현답을 찾기 위해 생각하는 것이 유대인들의 교육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휘에 관심을 갖다
지휘는 여러 가지 악기를 조화롭게 하여 음악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옛날부터 지휘를 하고 싶었습니다. 한 악기를 전문적으로 알고 연주도 하지만 전체를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죠. 또 부천시립교향악단에서 단원 생활을 할 때 임헌정 지휘자님이 제가 합주 연습을 이끄는 모습을 보고는 지휘를 권하기도 하셨고요. 무언가 지휘자로서의 자질이 제게 있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웃음) 또 제가 원하는 음악을 지휘하며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나의 심장을 뛰게 하는 곡
프란츠 슈베르트의 현악 5중주입니다. 슈베르트가 31살이란 나이에 작곡한 유작이자 50분 동안 연주하는 대곡이죠. 유학 시절 살던 오스트리아 빈의 아파트 근처에 슈베르트가 살던 집이 있었습니다. 오스트리아는 유명한 음악가들이 살았던 집을 그대로 보존해놓아 그 당시의 생생함도 느낄 수 있고 최고의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는 곳입니다. 제가 바로 이곳에서 공부할 수 있었던 기회를 가진 것에 매우 감사하고 행운이었다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이곡은 슈베르트가 빈에서 느꼈던 향수, 멜로디, 리듬 뿐 아니라 자신이 죽어가는 듯한 느낌마저도 잘 들어 있는 곡입니다. 곡 중의 첼로 피치카토는 마치 죽음이 가까이 오는 것을 느끼는 슈베르트의 심장 소리처럼 다가오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유학시절에 가졌던 빈의 향수가 떠올라 가장 좋아하는 곡이기도 하고요. 

제자들에게 ‘성실’을 강조
음악가는 한마디로 ‘성실’입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자신이 하고 있는 공부에 매우 성실할 것을 강조하죠. 결코 고리타분한 단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재능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성실은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연주가는 앉을 때나 서 있을 때 자세를 바르게 해야 하고, 무엇보다 기본기를 잘 익혀야 합니다. 누구나 좋아하는 곡만 연주하는 게 아니라 연습곡들을 많이 연주해서 팔과 손의 각 부분을 바르게 하는 훈련이 중요한데 그래야 좋은 연주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항상 머리와 가슴과 행동으로 해야 하는 것이죠.

앞으로의 계획
바이올린이라는 악기를 40년 넘게 다루었지만, 아직도 바이올린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습니다. 더 연구해서 좋은 소리로 연주하고 싶은 곡들도 많고 개선해야 될 주법들도 있죠. 바이올리니스트로 좋은 음악을 연주할 뿐 아니라, 지휘를 제대로 공부해서 여러 음악들도 지휘해보고 싶습니다. 교수, 연주가, 지휘자, 아빠 등 여러 역할을 잘 하기가 쉽지 않지만, 바이올린은 저와 짧지 않은 시간을 함께 하면서 희노애락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친구이자 가장 큰 부분이기에 성실하게 끝까지 잘 하고 싶은 바람입니다.

 

한세대 교수, 바이올리니스트 정호진
tarjane98@hanmail.net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22>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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