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열아홉에서 스무 살로 갈아타고, 일본종단 여행에서 나를 만나다

2020년 5월호(127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6. 6. 17:56

본문

열아홉에서 스무 살로 갈아타고,
일본종단 여행에서 나를 만나다

 

 

‘이 시국에 일본을 간다고?’
일제강제징용 피해자 배상문제로 시작된 한일 관계가 서로 간의 경제제재로 점점 더 험악해 가는 가운데 결정한 여행이다 보니, 주변 사람들의 걱정이 많을 만했지요. 더군다나 아무리 다 컸어도 여자애 혼자 해외여행을 하는 것도 그렇고요.

저는 올해 1월 12일부터 30일까지 약 3주간 일본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일본의 제일 위에 위치하고 있는 홋카이도의 삿포로부터 최대 항구 도시인 시모노세키까지 기차로 종단할 계획을 세웠지요. 항상 안정적이고 공부만 하면 되는 상황 속에서 지내다가 지난해 겨울에 울릉도로 혼자 여행을 다녀온 경험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언어도 잘 통하지 않는 일본을 종단해야 했기에 어디에 머물고, 어디를 방문해야 할지 준비하는 것부터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래도 항상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일본행 비행기 티켓을 끊고 나니 한번 도전해 보리라는 용기가 솟아나더라고요. 그리고 드디어 비행기에 몸을 싣고 얼마 되지 않아 한국이 아닌 전혀 다른 곳에 도착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홋카이도 치토세 공항에 도착해 내리자마자 막막함과 두려움이 들이닥쳤습니다. ‘이제부터 정말 나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구나!’, ‘진짜 나 혼자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계획한 대로 여행을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맥이 쭉~ 빠졌습니다. 하지만 생각만 하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기에 일단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러자 황홀한 삿포로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눈 덕분에 사라진 걱정과 두려움
설국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홋카이도는 눈의 천국이었습니다. 워낙 눈을 좋아하는 저는, 부산에 살 때 어쩌다 눈이 내리면 눈밭에 신이 난 강아지처럼 정말 뛰면서 놀았지요. 그런 제 눈앞의 설경에 저의 기분이 얼마나 좋았을지 상상이 되시나요? 비록 제가 갔던 1월은 성수기가 아니었기에 축제도 없고 사람들도 많지는 않았지만, 덕분에 여유 있게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제가 머물렀던 ‘나에보’라는 곳은 마치 시골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그 겨울풍경은 아직까지 눈에 선합니다. 특히 기차를 타고 삿포로에서 도쿄로 내려가는 시간은 정말 최고의 시간이었습니다. 창밖으로 펼쳐져 지나가는 풍경을 그냥 보고만 있어도, 마음과 몸의 피곤함이 다 눈 녹듯 사라졌으니까요.

 

눈 덕분에 알게 된 일본인
홋카이도의 눈은 지금까지도 생생히 기억에 남아있지만, 이 눈 때문에 일본사람의 치명적인 약점도 알게 되었습니다. 첫날 저녁식사 후 무거운 짐을 메고 숙소로 들어가는 길이었어요. 조금 급하게 신호등을 건너다가 그만 빙판에 미끄러져, 뒤로 꽈당 넘어지고 말았지요. 가방을 메고 있지 않았다면 정말 뇌진탕이라도 걸릴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었죠. 아파서 어쩔 줄 몰라하는 저를 마치 투명인간처럼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 순간 고통과 부끄러움, 서운함과 분노가 뒤범벅되어 교차되었지요. 한국에서는 사람이 넘어지면 괜찮은지,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왔는데, 이런 일본인들의 행동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일본인들은 왜 이렇게 행동하는 거지?’
머릿속에 계속 맴돌던 이 질문의 답을 여행 중에 만난 한 일본 분을 통해 듣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넘어진 사람에 대한 배려에요.” 하지만 의문이 더 생겼습니다. 배려는 다른 사람을 위해 내가 희생하고 섬기는 것이 아닌가? 도리어 다른 사람을 위한다고 하지만, 타인의 일에 간섭하기 싫은 무관심이 아닐까? 목숨이 위태로운 더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데, 그때도 못 본체 지나가는 게 맞을까? 이렇게 생각의 폭을 넓히자 타인을 향한 일본인들의 이런 사고방식이 위험하고 참 두려운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전에 읽었던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의 내용이 생각났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일본인들의 이러한 행동 원인을 알려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온’(恩)의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고 합니다. ‘온’은 상대방에게 주는 부담, 채무 그리고 무거운 짐을 말합니다. 이것은 윗사람에게서 받는 것이 기본적인데, 윗사람이 아니거나, 자신과 동등한 사람이 아닌 또 다른 사람에게 ‘온’을 받는다는 것은 불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갚아야 하는 빚을 지기 싫어하는 것입니다. 서로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보니, 사람이 다치고 넘어진 상황에서도 타인에게 함부로 ‘온’을 줄까 봐 걱정하고 염려해서 그냥 가만히 보고만 있거나 모른 척 지나가는 것이지요. 부족하면 도움을 받고, 또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도움을 주면서 살아가야 건강하고 따뜻한 사회가 될 텐데, 이런 문화 속에 살아가는 일본인들이 참으로 불쌍하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일본인을 통해 나를 보다
그러고 보니, 일본사람과 대화를 할 때 정말 질문한 말에 대한 답만 주고받는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상대방에게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상대가 불편해할까봐 대화를 피하는 모습이 많이 보였죠. 그런데 이런 일본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어떤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도 그동안 다른 사람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고, 좀 더 완벽한 모습만 보이고 싶어 했지요.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잦은 실수도 많이 하고, 부족한 모습들을 보면서 처음부터 완벽하게 하려고 하는 생각을 바꾸고, 대화가 힘들다고 피하는 것이 아니라 힘들수록 더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다보면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 모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좋은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일제강점기의 상징 관부연락선을 타다
시모노세키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수단을 일부러 비행기가 아닌 배를 타고 왔는데, 현재는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잇는 부관훼리를 이용하지만, 일제강점기 때에는 일본인들이 조선 사람들을 강제로 끌고 가는데 사용했던 뱃길이었다고 합니다. 돌아오는 전날 밤엔 이 배에서 1박을 하면서, 밤이어서 그런지 내가 마치 그때 당시의 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불안함 때문에 마음이 불편해 잠을 편히 자지 못했고, 그 당시 일본에 끌려간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나라를 잃고 노예처럼 끌려가는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착잡했겠죠. 
첫 나홀로 해외여행을 되돌아보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한국과 일본이 여러 가지 이유로 계속 대치상황에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에 일본에 다녀왔지만, 저는 이번 여행에서 홋카이도의 눈을 통해, 일본인들뿐 아니라 나를 더 깊이 볼 수 있는 눈이 생긴 게 된 것 같아 참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다른 나라들도 혼자 여행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과 그 세계인 속의 나 자신에 대해 더욱 알아가고 싶습니다.

 

경기도 군포시 한수정

hansujeong0112@gmail.com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27>에 실려 있습니다.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는 

  • '지역적 동네'뿐 아니라 '영역적 동네'로 확장하여 각각의 영역 속에 모여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스토리와 그 속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문명, 문화현상들을 동정적이고 창조적 비평과 함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국내 유일한 동네신문입니다.
  • 일체의 광고를 싣지 않으며, 이 신문을 읽는 분들의 구좌제와 후원을 통해 발행되는 여러분의 동네신문입니다.

정기구독을 신청하시면  매월 댁으로 발송해드립니다.
    연락처 : 편집장 김미경 010-8781-6874
    1 구좌 : 2만원(1년동안 신문을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예금주 : 김미경(동네신문)
    계   좌 : 국민은행 639001-01-509699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