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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햄릿!!

2020년 6월호(128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8. 2.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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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햄릿!!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가혹한 운명의 화살을 참는 것이 장한 것이냐? 아니면 밀려드는 환난을 두 손으로 막아 이를 근절시키는 것이 장한 것이냐? 죽는다. 잠잔다. 다만 그것뿐이다. 잠들면 모든 것이 끝난다. 번뇌며 육체가 받는 온갖 고통이며, 그렇다면 죽음, 잠, 이것이야말로 열렬히 희구할 생의 극치가 아니겠는가? 잔다. 그럼 꿈도 꾸겠지? 아, 이것이 문제로다. 대체 생의 굴레를 벗어나 영원한 잠을 잘 때 어떤 꿈을 꾸게 될 것인지, 이를 생각하니 망설여질 수밖에…’


3학년 첫 단원 아라비안나이트를 겨우 녹화하고, 이제 햄릿을 준비할 차례입니다. 교실에서 학생들과 씨름하다가 이제는 컴퓨터와 씨름하는 날들이 며칠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온라인개학은 모두 다 처음이지만 불안한 시대에 다행스럽게도 정보화 강국이란 기반은 조성되어 있으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보고 있습니다. 판에 박힌 수업이 아니라 학생들이 감상의 주체가 되어 새롭게 감상할 수 있도록 이리저리 궁리합니다. 
햄릿에서 가장 유명한 대사!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부터 시작입니다. 이 부분을 읽을 때마다 가슴 한쪽이 뻐근해집니다.
16세기 기독교가 국교인 시절, 햄릿은 대담하게도 죽음 이후의 천국을 논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죽음은 어쩌면 달콤한 잠으로 생의 극치니 그것이 문제될 것은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만약 죽고 나서 끝없는 악몽을 꾼다면? 깨어있을 때 품었던 생각이 꿈속에서 투영되듯 삶의 미련이 죽음 이후에도 반복된다면? 죽음이 두려워 그저 운명의 화살을 맞고 이 땅에서 견디고 있다간 나중에 악몽 속에서 헤맬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서늘한 질문을 합니다. 차라리 원수를 갚다가 죽는 것이 영원한 잠 속에 빠져들 방법일 수도 있지 않겠냐며 결단을 촉구합니다. 그가 뱉은 말에 따라 제 마음도 출렁입니다.
햄릿의 마음이 되어 다시 이 단원을 바라보니, 저도 제 한 번뿐인 삶에 대해 어떻게 살아야만 영원한 잠을 잘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됩니다. 더불어 우리 아이들에게 죽음에 대해 생각하며 영성을 탐색하는 시간이 되길 소망하면서요. 당장 급한 시험 성적, 대학 입시에 발목이 잡혀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 잊고 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보태봅니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앞에 두고, 그를 죽일지 말지를 고민하는 햄릿을 보면서 그가 대하는 삶과 죽음의 자세에 대해 저도 제 상황에 대입해 봅니다.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 그 행동에 따른 결과를 어떻게 책임져야 할지도 함께 생각해 보면서 말입니다. 
‘오늘 기꺼이 하지 못한 행동이 후회로 남아 꿈속에서 저를 괴롭히지 않도록, 매 순간 당당하게 행동하자!’고 다짐하는 순간 꼬리를 물며 다른 질문이 달려듭니다. ‘잠들면 끝이 아니라 우리는 다음 날 아침 일어나 어제 한 행동을 오늘 책임져야 하지 않느냐’고요.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는 영원한 화두일 밖에요. 인간의 존재는 어쩌면 망설이는 그 순간에 현현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온라인개학으로 학교 수업을 비대면으로 실시하는 이 상황을 학생들이 어찌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지금 교사의 할 일은 교안을 제작하고, 업로드를 하고, 출석을 확인하는 일이기에 상부의 명령에 복종하면서도 과연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학교 교육이 될 수 있을까? 뼈아픈 반론 앞에 유구무언입니다. 가뜩이나 이미지로만 소통하고 우리가 몸을 지닌 존재란 것을 자주 잊는 학생들에게 온라인개학으로 오해를 빚을까 걱정이 되기 때문이지요. 마치 지식만 잘 조직해서 전달하면 학교 교육이 완성되는 것처럼 비춰질까 봐요. 
하지만 햄릿의 대사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우리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온 감각을 연 채, 생사를 걸고 번민해보는 것,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미지의 세계로 뚜벅뚜벅 내디딜 때마다 결정에 따른 결과를 가늠해 보는 것, 그것이 바로 햄릿이 전하는 말이니까요. 

 

알함브라 궁전에서의 필자

 

경기도 의정부시 발곡고등학교 교사 박희정

hwson5@hanmail.net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28>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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