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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래와 춤을!

2020년 6월호(128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8. 1.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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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문법, 요트이야기 6]

 

돌고래와 춤을!

 

 섬들을 통과해 루손 섬 북단에 진입하니 햇볕이 뜨거워지며 왼쪽으로 보이는 섬들에 나무들이 보이지 않고 야자수를 제외하곤 온통 낮은 풀들이 산을 뒤덮고 있다. 드디어 남쪽 나라 필리핀에 온 것이 느껴진다. 10여 년 전 아내와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 때 반년 동안 여러 섬들을 여행하며 살았었던 그 인연으로 1년에 한 번은 꼭 찾아와 겨울 휴가를 보내는 곳이라 제2의 고향 같은 곳. 설렘으로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가 속해 있는 가장 큰 섬인 루손 섬을 바라보고 있는데 스타보드(우현)에 앉아 있던 명기형이 “어, 돌고래다!”하고 외치며 긴급히 카메라를 집어 든다. 처음엔 잘 못알아듣고 “뭘 외치는 거지?”했다가, 돌고래라는 단어에 깜짝 놀라 옆을 주시하고 있자니 돌고래 지느러미들이 배 옆 4~5미터에 바싹 붙어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다. 
 기실 필리핀에 있을 때 돌고래들을 보고 싶어 돌핀 투어를 몇 번이나 참가했었지만,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어서 동경으로만 남아있던, 그 돌고래들이 범주 운항 중인 요트에 바짝 붙어 놀자고 한다. 급히 배 앞 쪽으로 달려가 폰카를 들고 정신없이 돌고래들을 찍고 인사를 했다. 멀리 있는 아빠를 그리워하는 7살 딸아이에게 돌고래를 보면 꼭 영상을 찍어 보여주겠다고 했었는데 실제로 이렇게 돌고래들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윗 지느러미 쪽에 흰 반점이 있는 돌고래 5~6 마리가 배 앞쪽에 열을 맞춰 오가며 5노트로 순항 중인 요트 앞을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고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 장관이었다.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돌고래 세 마리가 열을 맞춰 한꺼번에 물 위로 올라와 숨을 쉬었다 내려가며, 전진하고 있는 배 주위에서 강아지들 재롱을 부리듯 한참을 맴돌다 돌아간다. 이처럼 사람을 좋아하고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바다 동물이 또 있을까? 영리하면서도 예쁘고, 인간과 어울리길 좋아하는 돌고래가 왜 사랑을 받는 바다 동물인지 알게 되었다. 

 


 항해 중에 만난 동물은 돌고래만이 아니었다. 이시가키를 갓 출발했을 때, 강풍 속에서 일몰과 함께 매 과로 보이는 길 잃은 새 한 마리가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거처를 찾지 못해 하룻밤을 갑판 위에서 함께 보냈다. 새벽에 비를 맞는 모습이 처량해 보여 지친 게 아닌가 싶어 물과 스팸을 잘라줘도 먹지를 않고 버티다가, 날이 밝자마자 기운을 차린 듯 배 주위를 맴돌다 멀리 날아가 버리는 일도 있었다.
 항해 중에 만나는 새들은 반갑기 그지없다. 대한해협을 항해할 때도 우리에게 대마도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가장 먼저 알려주었던 것은 흰 갈매기였다. 망망대해에서 새를 보는 일들은 섬이 가까이에 있다는 신호이기에, 흥분되고 또 반가운 일이다. 한 번 도약질에 50미터를 날아다니는 물고기들이 많고, 그런 물고기들 중 몇 마리는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사이에 갑판 위에 올라와 바람과 볕에 저절로 말라있기도 했다. 돌고래를 보니 갑자기 큰 고래들이 또 보고 싶어졌지만 이번 항해 중에는 미처 찾지 못했다. 다음에 김선장과 함께 날을 잡아 우리의 동해에 출몰한다는 고래들을 보러 다녀야겠다.  
 
 루손 섬을 끼고 남쪽으로 내려오는 남은 이틀 반 정도의 일정이 이어진다. 날씨가 따뜻해지지만 오랜 항해로 몸은 서서히 지쳐간다. 4일 정도를 지나니 쪽잠을 자도 피로가 회복되는 느낌이 덜 하다. 루손 섬이 반대편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과 파도를 막아줘 루손 섬의 왼쪽은 비교적 큰 파도가 없이 잔잔하다. 하지만 바람이 너무 없는 것 같아 연말 일정을 맞출 수 있을지 조바심이 난다. 무풍과 역조류를 만나 낮 시간에 75마력 엔진 RPM을 1,400이상 올렸는데도 배는 4노트 정도로 나아간다. 거리에서 손해를 많이 봤다. 오키나와에 불어온 강풍에 일주일 정도 늦어진 출발 일정에, 연말 3주를 통째로 비워둬야 하는 안 좋은 상황이었기에 복귀 일정이 더 미뤄지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선장님 말씀대로 요트 여행은 ‘아무나’하는 것이 아니었다. 돈이 많은 부자보다 진짜 부자들인 ‘시간 부자’들이 할 수 있는 여행인 것이다. 바람이 안 불어 2노트로 가면 그냥 2노트로, 바람이 강해 7노트 이상으로 움직이면 그 속도에 맞춰 어디든 자유롭게 출발해 도착해 쉬고 또 놀면서,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여행이라는 것을… 그래서 세일링의 본고장인 유럽 사람들도 은퇴 후에 겨우 시간이 생겼을 때, 비로소 준비해 떠난다는 그 여행. 
 하지만 이렇게 구간구간 나뉘어진 여행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면 1년에 일주일, 혹은 2주일 정도로 나누어 한국에서 일본, 일본에서 필리핀, 혹은 필리핀에서 코나키나발루의 말레이시아까지 가는 여정 또한 현실적으로 가능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생활인들의 현실적인 요트 세일링 말이다.

 밤이 되니 바람의 방향이 바뀌며 15노트 이상 불어주었다. 교대 시간에 나와 보니 바람이 제법 분다. 세일을 펴니 속도가 4.5에서 6이상으로 빨라져 나중에는 엔진을 끄고 바람으로만 고요히 이동했다. 그렇게 낮에는 무풍으로 거리에 손해를 보고, 밤에 쌩쌩 부는 바람으로 거리를 만회하며 겨우 예정대로 일정을 맞출 수 있었다. 

 

임대균 (세일링서울요트클럽, 모아나호 선장) 

keaton7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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