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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자는 마음을 열고 청중은 귀를 열어야 된다! 2015년 파가니니 콩쿠르 1위 젊은 바이올리니스트‘양인모’를 만나다

2020년 10월호(132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12. 5.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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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김미경이 만난 사람]

연주자는 마음을 열고 청중은 귀를 열어야 된다!
2015년 파가니니 콩쿠르 1위
젊은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를 만나다

 

 

가을의 서곡을 알리는 듯 높고 청명한 하늘 아래, 강남으로 발길을 재촉했습니다. 젊은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를 만나기 위해서였죠. 사회적 거리두기의 모든 절차를 밟고, 조용한 스터디카페에서 편안한 차림의 양인모 바이올리니스트를 만났습니다. 함께 간 학생기자, 고등학교 1학년 배유진 학생이 직접 그린 캐리커쳐를 선물하자 기발하다며 웃음으로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꾸게 된 계기와 현재의 목표가 궁금합니다 - 배유진(학생기자)
 아버지께서 전축으로 클래식 음악을 항상 틀어 놓으셔서,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클래식에 친숙했습니다. 바이올린은 6살 때 시작했는데, 같은 동네 살던 바이올린 선생님이 예쁘셔서 제가 좋아했던 것 같아요. 연주자가 되겠다고 생각한 것은, 2001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사라장’의 차이콥스키 협주곡 연주를 보면서였죠. 곡도 멋있고, 청중들의 기립박수에, 멋진 연주자까지… 현장에서의 감동은 7세인 저에게도 그냥 음악을 들을 때와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그렇게 바이올리니스트의 꿈을 가지고 준비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마포 이원문화센터’에서 첫 독주회를 가졌습니다. 그전에 콩쿠르도 많이 나갔지만, 콩쿠르와 독주회는 좀 다릅니다. 콩쿠르는 심사위원 앞에서 평가받는 자리라면, 독주회는 청중들과 소통하는 시간이죠. 첫 독주회를 통해 사람들 앞에서 연주를 계속하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좀 더 진지하게 진로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콩쿠르에서 인정받으며 자신감이 생기면서 자연스레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저는 목표가 자주 바뀝니다. 더구나 이 코로나 시국에 목표를 잡는 것이 더욱 힘들고요. 그래서 구체적인 목표보다 ‘앞으로 연주자의 역할이 어떻게 바뀔 것인가?’를 계속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음악이 왜 필요하고, 음악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요. 그냥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음악이 많은 사람에게 여러 모양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이런 점에서 앞으로 좀 더 시야를 넓혀 사람들을 더 이해하고, 나의 주변과 맞물려 돌아가는 연주자가 되고 싶은 게 목표이기도 합니다.

 맞물려 돌아간다는 게 어떤 의미죠?
 음악은 시간예술로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고 굉장히 추상적이잖아요. 그러기 때문에 제가 하는 음악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사람들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궁금하거든요. 하지만 매번 청중들에게 피드백을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것을 아는 것이 쉽지 않더라고요. 저는 2015년 파가니니 콩쿠르 1위로 군 면제를 받았지만, 군 복무 대신 500시간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방에서 음악을 가르치기도 하고,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연주도 하면서 많은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하는 일에 단순한 보상을 받기보다, 그것이 어떤 영향력을 끼치는지 안다면 음악을 계속할 힘이 되겠죠. 이런 의미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제 역할은 사람들이 놀다 갈 수 있는 ‘감성의 놀이터’를 마련해 주는 것이라 말하고 싶어요. 클래식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 클래식을 어려워하시는 분들도 뭔가를 느끼게 하고, 사람들에게 더 다양한 감정, 감성을 가질 수 있게 하니까요. 

 2015년 파가니니의 콩쿠르에 나가기까지
 항상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은 아니지만, 콩쿠르에 계속 도전을 했어요. 그러면서 좌절도 여러 번 했고요. ‘서울예고’를 3개월 다니고 자퇴한 후, 다음 해 바로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에 입학해 1년을 다녔습니다. 그리고 2013년 ‘미국 보스톤 뉴잉글랜드’음악원으로 유학 간 게 큰 계기가 되었죠. 그곳에서 학사와 최고연주자과정을 하며 6년을 보냈습니다. 무엇보다 입학식 때 하신 총장님 연설이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유럽에서 겪은 경험을 말씀하셨지요. 독일에 도착해 숙소까지 택시를 탔는데, 라디오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1번이 흘러나왔답니다. 그런가 보다 하고 기사분에게 말을 시키니 “조용히 음악을 듣고 가자”고 했다더군요. 숙소에 도착해서도 내리지 않고 곡을 끝까지 같이 들었는데, 음악이 끝나자 택시 운전자가 “너무 아름답지 않느냐?”고 한 말 한마디에 감동을 받았다고 해요. 총장님은 이런 문화를 학교에 만들고 싶다고 하셨지요. 
 한국에서는 음악에 대해 솔직히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죠. 하지만 보스톤에 있으면서 음악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고, 주위 사람들과 대화하고, 선생님에게 질문도 하면서 제가 원하는 음악이 무엇인지 좀 더 뚜렷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2015년 ‘파가니니 콩쿠르’전에 2014년 ‘예후디 메뉴인 콩쿠르’가 미국 텍사스에서 열렸어요. 거기서 2등을 하면서 좀 더 전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런 환경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자신이 없어요. 조언해 줄 사람이 있는 가운데, 자신의 환경들을 만들어가면서 자기 음악을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거든요. 


 파가니니 콩쿠르 1위, 전과 후의 차이 
 파가니니 콩쿠르 1위를 한 날, 바로 연주 일정이 스무 개 정도 잡히더군요. 큰 연주로, ‘파비오 루이지’가 지휘하는 덴마크 방송교향악단의 초청을 받아 협연했고, 제노아에서 파가니니가 생전에 사용하던 악기인 ‘과르네리 델 제수’로 리사이틀 무대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독일 오케스트라 협연 등 굵직굵직한 연주 스케줄이 이어졌는데, 사람들은 이례적인 케이스라고 했습니다. 모든 콩쿠르가 이런 것들을 보장해 주진 않거든요. 가장 큰 차이는 전에는 오디션이나 콩쿠르 같은 평가 받는 자리에 익숙했다면, 이제는 청중 앞에서 연주하는 것이 더 많아지고 익숙해진 것이지요. 그러면서 연주자의 책임감이 뭔지 깨닫게 되었고,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기서 더 발전하려면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연주자로서 롤 모델이 있나요?
 연주자로서 존경하는 사람은 많은데, 롤 모델은 없습니다. 그 사람처럼 되기보다, 존경하는 연주자들의 특정한 부분을 닮고 싶어요. 예를 들어, 기돈 크레머의 상상력 있는 연주, 정경화 선생님의 절도 있는 연주 등을 보면서 제 자신의 연주로 만들고 싶은 것이죠. 그러기에 다른 연주자들로부터 계속적인 충격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연주자를 봤을 때 ‘와~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지’라고 제가 충격을 받아야 발전할 수 있거든요. 이런 충격이 어디서 올지 모르니 연주회장에서 항상 오픈된 마인드로 귀를 열고, 같은 연주자이지만 그 사람의 장점이 뭔지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기만의 연주 스타일은 본인도 노력해야 하지만, 다른 사람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해요. 위대한 예술가도 처음에는 다 모방을 했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갔으니까요.

 탐구하고 싶은 작곡가는?
 “파가니니 뿐 아니라 앞으로 어떤 작곡가를 탐구하고 싶냐?”라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작곡가 슈만을 좋아합니다. 슈만 곡을 연주할 때 꼭 제 이야기를 하는 것 같거든요.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에 슈만의 자서전을 읽었는데, 제 상황과 비슷한 거예요. 물론 슈만이 저보다 더 심각했어요.(웃음) 슈만이 자신의 힘든 삶의 여정들을 예술로 승화해 간 것이 멋졌습니다. 하지만 슈만은 바이올린 곡은 별로 작곡하지 않았어요. 대신 슈만의 피아노곡, 교향곡을 들으며 ‘예술이 이렇게까지 개인적일 수 있구나’하는 것을 느꼈죠. 저는 슈만 곡을 연주할 때 악보를 보면 슈만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설득력 있는 연주를 할 수 있을 것 같고, 슈만을 더 탐구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연주자로서 현대음악에 대한 관심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현대음악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습니다. 저는 항상 200~300년 전의 곡들만 연주하잖아요. 물론 그것의 가치도 있지만, 그와 동시에 아무리 연주하기 어렵고, 듣기 힘들더라도 현대음악에 관심을 갖는 게 연주자의 어느 정도 의무인거 같아요. 지금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곡가들이기에 현 상황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죠. 현대음악은 듣기 좋은 음악이라기보다는 실험적인 것이 많은데, 무엇보다 현시대에 음악을 대하는 태도와 음악이 현실을 어떻게 반영하는지 등을 보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만족하지 않는 연주자
 연주하며 ‘그래 바로 이거야’라고 깨닫는 경우도 있지만, 아냐! 뭔가 좀 더 있을 것 같은데…’, ‘더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데…’하는 경우가 저에게는 더 많았어요. 콩쿠르를 준비하며 연습을 한다는 것은 똑같은 것을 계속 반복하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될 수가 있어요. 그래서 내가 못하는 게 뭔지, 어느 부분이 왜 안 되는지를 계속 찾아 가야 하는데 쉽지 않죠. 왜냐하면 우리는 스스로 위안을 받고 싶어 하고, 또 계속 잘하는 것을 연습하려 하거든요. 그래야 내가 잘 한다고 느끼니까요. 그러기에 쉬이 만족감을 갖는 연주자는 물론 없겠지만, 계속 연주를 발전시키려면 결코 만족하지 않는 연주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은 제 인생의 ‘부분일 뿐’
 놀라시겠지만, 음악은 제 인생의 작은 부분입니다. 절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단순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음악은 저에게 즐기며 사람들과 나누는 것일 뿐입니다. 물론 사람마다 목표는 반드시 있어야 하고, 거기에 매진해야 합니다. 저도 파가니니 콩쿠르에 나가기 위해 그렇게 했으니까요. 하지만 더 큰 의미에서 음악은 도구일 뿐, 음악자체가 삶의 목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와는 달리 음악에만 빠져 있는 사람들도 있죠. 저는 일상에서 더 많은 경험을 해야 음악도 좋아진다고 믿어요. 한 가지에 집중, 몰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삶의 다양한 측면들을 함께 알아갈 때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요? 연주자도 음악만 알고 살 수는 없어요. 그래서 저는 음악이 아닌 다른 분야에도 관심을 가지고, 음악가 친구들보다 다른 영역에서 일하는 친구들을 더 자주 만납니다. 그 친구들과 이야기 할 때 더 재미있고요. 

 창작의 욕구 - 작곡, 해석의 자유로움 - 연주
 낙서하는 수준이지만 8세부터 작곡을 했어요. 그때부터 창작의 욕구가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컴퓨터 음악과 R&B, 재즈 장르도 좋아해서 컴퓨터로 작곡을 하며 창작의 욕구를 발산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연주자로서 곡을 해석하는 자유로움 또한 창조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정해진 음이 있어도 이 음을 어떻게 연주할지, 음과 음 사이에 간격, 음이 다음으로 이어지는 형태 등을 해석하는 것은 순전히 연주자의 몫이거든요. 더구나 음악은 쉬이 사라지니 계속 연주를 해야 하는데, 매번 연주가 같을 수도 없으니까요.

배유진 학생이 양인모 바이올리니스트를 직접 그려 선물한 캐리커쳐

 

 연주 준비를 하며 갖는 아쉬움
 연주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지휘자와 충분한 대화가 힘들다는 것이죠. 보통 연주 하루 전에 리허설을 한 번 하고, 공연 당일에 드레스 리허설을 한시간 한 후에 최종 무대에 섭니다. 그러니 대화할 시간이 없어요. 특히 지금은 개인의 시간이 중요시 되면서, 단원들도 시간이 되면 퇴근하는 문화가 정착되어 더 힘들어 졌죠. 옛날에는 지휘자가 권위자였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원하는 시간만큼 할 수 있었고, 프로그램도 마음에 맞지 않으면 당장 바꾸었어요. 그 때가 좋다는 게 아니라, 좀 아쉬울 때가 많아요. 깊게 곡에 대해 이야기해보면 더 좋은 연주가 나올 수 있는데, 그게 어려워졌으니까요. 그러기에 지휘자뿐 아니라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계속적으로 관계를 가지고 만나고 대화하며 파트너쉽을 가지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꼭 필요한 거죠.

 
 연주자로서의 고민 
 앞으로 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 그리고 같이 작업하고 싶은 연주자들을 찾는 것이 큰 숙제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든 생각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연주장도 점차 없어질 것 같고, 기획사, 음반 시장도 어려울 것 같아요. 조금 사치를 부릴 수 있다면, 스튜디오를 장만해 좋아하는 음악가들을 초대해 같이 연주하고, 녹음도 직접 하며 연주를 인터넷에 올리고 싶어요. 그러려면 무엇보다 음악적으로 뜻이 맞는 사람을 찾는 게 중요하겠죠.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와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 이 듀오는 서로를 잘 알고 이해하는 가운데 함께 작업을 해왔죠. 이런 네트워크를 위해 올해 10월, 뮤지션들이 많은 독일 베를린에 갑니다. 그곳에서 지속적으로 같이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싶습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양인모 바이올리니스트는 홈스쿨을 하고 있는 배유진학생에게 본인도 검정고시 합격하고 미국으로 유학 간 경우라며 홈스쿨을 하며 더 많은 경험들을 할 수 있다고 격려를 듬뿍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오기까지 많은 후원자들의 도움을 받았고, 이런 분들에게 너무 고맙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연주를 들려줄 뿐 아니라, 그냥‘아~ 좋은 연주다’라고 끝나지 않는, 청중들 속에서 연주를 듣고 위안을 받거나,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각나고, 연주한 곡에 관심을 갖고 찾아보는 등의 반응을 들을 수 있는 연주를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청중들과 떨어져 음악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에 영향을 주고자하는 열망을 젊은 연주가인 양인모 바이올리니스트에게서 가득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32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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