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나 자전거 탈 줄 알아~” 이 한 마디 기적의 논리(?)에 반기 든 ‘박주혁’ 프로

2020년 10월호(132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11. 29. 21:10

본문

“나 자전거 탈 줄 알아~”
이 한 마디 기적의 논리(?)에 반기 든
‘박주혁’
프로

 

 

아버지는 사이클 국가대표, 아들은 100미터 18초
저희 아버지는 70년대 사이클 국가대표이자 감독으로도 활동하셨어요. 기억하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박일우’ 한국사이클로크로스연맹 부회장이셨고, 자전거계의 대부로 40년 외길을 달리셨으니까요. 반면 저는 중3까지 100미터 달리기를 18초에 뛸 정도로 운동신경이 진짜 없었습니다. 그러니 운동과는 당연히 거리가 멀었죠. 고등학교를 들어가기 위해 시험을 봐야 하는데 공부도 잘 못해서, 차라리 운동을 하는 게 어떤가 싶었습니다. 그나마 자전거는 잘 타니 사이클을 한 번 해볼까 해서 늦은 중3 때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만큼만 해!” 
아버지 이름에 누를 끼치지 않고 운동을 해야겠다고 시작은 했으나 많이 힘들었어요. 엄청나게 대단한 아버지 밑의 아들은 너무 힘들어요. 차범근 선수의 아들 차두리의 심정을 진짜 잘 알 것 같았죠. 주변에서는 “아버지만큼만 해”라고 하지만, 이게 아시안게임에서 금·은·동 따고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매달 따는 것인데,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특히 운동신경도 없는 제가 말이죠. 제 동생은 김치만 먹어도 근육이 나오는 체질이에요. 동생은 철저하게 아버지를 닮았고, 저는 철저하게 여리여리한 어머니를 닮았죠. 그러니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노력 말고는 없었어요. 동생이 한 말이 있어요. “우리 형은 하루도 쉬지 않는다!” 매일 선수들이 해야 할 운동 스케줄이 끝나면, 제 몫의 운동을 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잘하는 다른 선수들을 따라갈 수 있었으니까요. 진짜 열심히 했죠.

드디어 행운이 찾아오다
1988년 고2때 제주도 전국체전에 나갈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경기도에서 총 6명이 나가는데, 공교롭게도 우리 학교에서 대표로 나가는 선배가 갑자기 아파, 제가 대타로 로드 사이클 경기에 나가게 된 겁니다. 문제는 돈이 없어 무거운 시합용 바퀴를 친구에게 빌려 경기에 나간 것이죠. 거기에 태풍까지 와서 똑같은 코스를 3주에 걸쳐 세 바퀴를 도는데, 두 바퀴로 줄이게 되었습니다. 모든 게 불리했죠. 그런데 바람과 함께 무거운 바퀴에 에어로다이나믹 자세로 내리막을 막 달리고 있는데 저 혼자 선두로 달리고 있더군요. 무거운 바퀴가 도리어 득이 되는 순간이었죠. 친구가 열심히 제 뒤를 쫓아왔어요. 긴 오르막에 저와 친구는 둘 다 지쳤지만, 있는 힘을 내어 마지막 골인 지점을 향해 1, 2위를 다투는데, 기아를 바꾸는 순간 그만 ‘다다다다’하는 소리와 함께 체인이 홀라당 벗겨진 겁니다. ‘아~ 끝났다’ 했는데 친구는 완전 그로기 상태로 기어도 바꾸지 않고 달리고 있더라고요. 저는 체인을 다시 끼우고 젖 먹던 힘까지 발휘해 막판 전속력으로 달려 1등으로 골인했습니다. 1등을 하니, 통장에 100만원이 들어오더군요. 학생에게는 엄청 큰돈이었죠. 이 돈으로 쌀독을 채우고, 라면도 사고, 밀린 월세를 내고… ‘아! 자전거를 잘 타면 돈을 버는구나!’ 이게 저에게 자전거를 타는 가장 큰 동기가 되었어요.(웃음) 왜냐하면 아버지는 사이클 코치셨지만, 모든 것을 선수들에게 다 쏟아붓느라 집에 가져오시는 게 별로 없었어요. 경제적으로 어려웠죠. 이러니 제가 집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게 너무 큰 기쁨이었어요. 그러다 드디어 2000년 국내에서 제일 좋은 실업팀인 ‘한국수자원공사’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아! 아버지가 나를 믿어주지 않는구나’ 
그렇게도 공부하기 싫어하던 제가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수자원공사에서 월급도 주고, 대학도 보내준다 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죠. 그런 가운데, 실업 2년 차 때 국가대표가 되었고, 2002년 부산아시아게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국군 체육부대인 상무에서 러브콜이 온 겁니다. 하지만 저는 관심이 없었죠. 아시안게임을 위해 훈련하고 있었던 저는 금메달을 딸 자신이 있었고, 무엇보다 금메달을 따면 군대가 면제이니까요. 하지만 아버지는 안전하게 가라며 “상무도 나쁘지 않아~. 그리고 내가 봤을 때 금메달은 좀 어렵지 않을까?”이렇게 말씀하는 겁니다. 그때 ‘아! 아버지가 나를 믿지 않으시는구나’하고 생각했지만, 아버지는 저를 아주 객관적으로 판단하신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 당시 아버지 판단을 믿고 싶지 않았죠. 해외 대회도 나가고 이리 잘하고 있는데, 당연히 잘할 거라 생각했으니까요. 
결국, 아시안게임에 출전하지 못했고 상무로 가야 했습니다. 전역하고 나니, 도리어 좋은 경험이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2005년까지 금산구청 팀의 선수로, 그 뒤로 경륜선수 생활을 15년 하고 올해 은퇴했습니다.

“야! 누가 자전거를 돈 주고 배워” 
경륜선수를 하면서 ‘사이클 아카데미’를 만들었어요. 탁구, 볼링, 축구, 수영, 테니스, 스케이트 등은 다 레슨을 받잖아요? 그런데 수백만 원짜리 자전거는 사는데, 배우지는 않는 거예요. 뭐가 잘못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당시 제가 골프를 치며 실내 연습을 하면서, 자전거도 이렇게 연습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필드에서 타는 것을 실내에서 코치에게 코칭을 받고 훈련하면 되겠다는 생각에, “야! 누가 자전거를 돈 주고 배워”라는 말을 들으면서 2013년 종자돈을 들여 사이클 아카데미를 시작했습니다. 때마침 4대강이 깔리고 자전거도로로 전국을 다닐 수 있게 되어서, 저의 계획은 주효했죠.

레슨을 위해 공부를 시작하다
저희 아버지가 사이클 국가대표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로부터 이론적인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남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게 고민이었죠. 엘리트 선수를 가르치는 것과 일반 동호인을 가르치는 것은 맥락이 다르거든요. 그때부터 페달을 빨리 돌리기 위해서는 동호인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를 비롯해 여러 가지 이론을 정립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반인들도 납득 할 수 있게 전달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학문적인 근거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운동역학, 운동생리학, 자전거 공학들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어설프고, 엉성하게 가르치면 안 되었기 때문이죠.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전 세계 최초 ‘사이클 트레이닝 가이드북’(자전거 교습서) 발간을 앞두고
사이클 아카데미를 운영하면서 자전거 교습을 위한 기준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까지 사이클은 어떤 기준을 가지고 운동하지 않고, 코치의 생각에 맞추어 훈련을 진행했으니까요. 이 훈련에 맞지 않으면 도태되는 거고, 맞으면 성장하는 거죠. 하지만 모든 콘텐츠에는 스타일이 있잖습니까? 예를 들어 배드민턴 라켓을 잡을 때도 이스턴그립과 웨스턴그립이 있듯이 말이죠. 자전거도 이런 스타일이 있는데 지금까지 그 누구도 말로 설명을 못 한 거예요. 그래서 제가 쓴 책이 전 세계 최초《사이클 트레이닝 가이드북》(자전거 교습서)입니다. 이 책은 자전거의 기본구조는 물론, 어떠한 근육을 어떠한 포지션에서 어떻게 써야하는지의 운동역학, 라이딩을 오래 하려면 에너지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의 운동생리학 뿐 아니라, 어떤 자전거를 타야 공기역학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고 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는지, 그리고 반동을 이용한 추진력과 라이딩 팁 등의 다양한 주제를 일러스트를 곁들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탈고는 다 했지만 사례가 없어 확신이 서지 않는다며 모두 거절하는 바람에 출판사를 못 찾았어요. 그래서 일단, 편집샵에 의뢰해 한 권을 출판하고 1인 출판 사업자 등록을 했습니다.

엘리트 선수들의 살 길은 정말 제한적
어떤 회원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공부와 운동은 평생 함께 가야 할 친구다”라고요. 그 말이 저에게 무척 와 닿았어요. 운동이 평생 함께 가야 할 친구이기에 운동선수들은 무조건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고 저는 말합니다. 대학에서는 운동만 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 친구들이 사회에서 계속적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충분한 교육을 제공해야 합니다. 엘리트 선수들이 저처럼 이렇게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것이죠. 스포츠 엘리트들이 사회에 나와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요. 그게 너무 안타까워요. 

라이딩을 처음 하는 분들에게 한 말씀
스키를 배울 때 가장 먼저 넘어지는 것부터 배우잖아요? 안전하게 넘어져야 내 몸이 덜 다치니까요. 자전거도 마찬가지죠. 로드바이크는 적은 힘으로 빠르게 멀리 가는 것이 목적입니다. 자동차로 따지면 스포츠카인 거죠. 편하게 타려고 만들어진 자전거가 아니에요. 무엇보다 자전거의 이해가 충분해야 하고 기본기를 잘 알아야 합니다. 내 자전거가 어떤 타입인지? 아주 빠르게 달리는 자전거인지? 편하게 달리는 자전거인지? 카메라도 렌즈마다 다루는 기술이 다르듯이 자전거를 다루는 기술을 명확하게 활용해서 자전거를 타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누구도 이런 것들을 제시하지 않아서 저는 이 기본기부터 이야기하고 싶은 거예요. 

완벽한 운동, 사이클
사이클은 단언컨대 가장 완벽한 스포츠예요. 당기는 힘, 미는 힘, 양쪽 발의 힘의 균형, 페달링의 속도, 최대 산소 수치량, 최대 심박 수, 평균 심박 수, 최대 파워, 평균 파워 등 이런 모든 것들을 객관적으로 다 수치화할 수 있어요. 그러니 나의 몸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고, 부족한 기능을 높이기 위해 피드백 같은 운동 처방을 내리는 것이 가능합니다.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의 체력관리의 모든 것을 수치화 할 수 있는 운동은 자전거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이 이 완벽한 스포츠를 잘 활용했으면 좋겠어요. 자전거를 탈 줄 아니까 그냥 타는 것이 아니라, 비싼 돈을 들여 자전거를 샀으면 그만큼의 가치를 내가 다 쓸 수 있게 만들어야죠. 

앞으로의 계획
저희 아버지가 사이클 선수 지도자를 하셔서 저는 사이클 엘리트 선수 지도자는 절대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게 너무 힘들다는 것을 아니까요. 하지만 공교롭게 고2 학생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친구에게 엄청나게 많은 숙제를 줘요. 먼저 자전거를 타라는 게 아니라 자전거에 대한 이론적인 것들을 스스로 공부하도록 하고, 알아 가는데 막힘이 있다면 저에게 질문하고, 토론할 수 있도록 만들고 있죠. 그래야 진짜 자기 것이 되니까요. 자전거 선수로 성공하는 것은 당연하고, 이후 연구원이나 교수가 되어 많은 사람에게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나누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 친구를 만난 것은 불과 한 달 밖에 되지 않았지만, 저에게는 엄청난 책임감과 부담입니다. 하지만 제대로 해보려 합니다. 

 

수백만 원의 자전거를 사서 “나 자전거 탈 줄 알아!”하는 논리 하나로 타는 것을 박주혁 프로는 ‘기적의 논리’라고 했습니다. 이 답 없는 논리를 깨기 위해 자전거를 기본부터 가르쳐주고자 하는 박주혁 프로의 열정을 인터뷰 내내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젊은이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리고 인터뷰어인 저 자신이 9월 말 동해안 300km 라이딩을 계획하고 있는 시점에서 박주혁 프로를 만난 게 큰 행운이었습니다. 

 

 

아이윌사이클링-사이클아카데미
   사이클&MTB 피팅&교육, 박주혁프로
     유튜브 ‘사이클연구소_사이클랩’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32호>에 실려 있습니다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는 

  • '지역적 동네'뿐 아니라 '영역적 동네'로 확장하여 각각의 영역 속에 모여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스토리와 그 속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문명, 문화현상들을 동정적이고 창조적 비평과 함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국내 유일한 동네신문입니다.
  • 일체의 광고를 싣지 않으며, 이 신문을 읽는 분들의 구좌제와 후원을 통해 발행되는 여러분의 동네신문입니다.

정기구독을 신청하시면  매월 댁으로 발송해드립니다.
    연락처 : 편집장 김미경 010-8781-6874
    1 구좌 : 2만원(1년동안 신문을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예금주 : 김미경(동네신문)
    계   좌 : 국민은행 639001-01-509699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