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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브러험 링컨 Abraham Lincoln(3) (1809. 2. 12 ~ 1865. 4. 15)

2020년 10월호(132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12. 2.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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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들의 내면 들여다보기 3]

 

에이브러험 링컨 Abraham Lincoln(3)1)
(1809. 2. 12 ~ 1865. 4. 15)

 

링컨 속에 어떤 정신적,역사적 DNA가 있을까?
링컨은 자신의 과거를 속시원하게 꺼내놓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신중한 사람이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 어두운 과거가 우수에 차고 우울한, 내면을 응시하는 성격을 형성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잘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물론 링컨은 그런 어두운 과거와 그것이 형성한 자신의 부정적 성격(‘날카로운 혀’와‘침통한 감정’에 빠짐)을 이겨내었고, 오히려 그런 과거 때문에 인간과 역사를 냉혹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이해하거나 또는 정반대로 엄청나게 자비롭게 바라보도록 승화시킬 능력을 배양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더 포괄적으로 생각하면, 우리는 링컨 자신도 어쩌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에 내재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대대로 이어진 가족이 지녔던 기질,역사 같은 것이 그의 내면의 DNA를 형성했을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외할머니는 매우 특이한 삶을, 또 친할아버지는 격렬하게 생을 마무리한 분이었다는 사실에 우리는 충격을 받습니다. 그렇지만 그것보다 더 깊이 들어가 더 근본적으로 따지자면 링컨의 정신적, 역사적 DNA 속에 철저히, 지금은 영국인과 미국인이 공통으로 가진 ‘앵글로-색슨적’ 기질을 가진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 이 사실을 정작 이 두 나라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런지를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외부의 시각으로는 앵글로-색슨적 기질과 역사는 대륙적(독일적,프랑스적) 그것들과 확연하게 차이납니다. 앵글로-색슨적인 영국과 미국의 두 나라는 정치역사상 매우 놀라운 혁명의 역사를 순차적으로 쌓아갔습니다 : ‘영국명예혁명’(1688) - ‘미국혁명’(1776) - ‘영국의 노예해방’(1833) - ‘미국의 노예해방’(1863). 바로 이런 장점 때문에 영국과 미국이 역사를 이어가면서 지금까지 300여년 이상 세계를 통치할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니면 다른 무엇이 있겠습니까?


반면에 대륙(프랑스와 독일)은 단두대에 의해 피의 재난을 불러왔던 ‘프랑스혁명’(1789)에 이어, 20세기를 훌쩍 넘어서 지금까지 중국과 북한을 묶어놓는 탄탄한 기초가 되었던 ‘공산당선언’(1848), 그리고 20세기 내내 온 세상을 피의 제전에 불러들여 총체적인 불행에 빠트린 두 가지 전체주의(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 레닌-스탈린의 계급사회주의)를 산출한 나라들이었다는 점을 선명하게 지적해야 합니다.


이런 거대역사의 관점에서 본다면, 정치인 링컨은 분명히 전자의 탁월하게 좋은 전통에 서 있던 사람인 것입니다. 매우 급하고 당장에 눈에 보이는 결과를 손에 쥐기 좋아하는 우리 한반도인은 장기역사적 관점에서 본다면 전자와 후자 어느 쪽으로 지금까지 왔고, 또 앞으로 어디로 흘러갈까요? 지금 이 시대의 역사를 한 때 책임지다가 언젠가는 그 마당을 떠나 놀랍거나 혹은 허무한 족적을 남길 우리의 젊은이들은, 해방 이후의 매우 짧고 혼란스러운 한국정치사를 되돌아보면서 링컨처럼 정말 현명한 선택을 하는 지도자들이 될 수 있을까요? 

영국적인, 철저히 영국적인 링컨  
링컨Lincoln은 원래 케임브리지에서 북쪽으로 2시간 정도 달리면 만나는, 멋지고 거대한 cathedral(예배당)을 가진 영국 중동부(우리의 원주나 춘천 정도)에 위치한 오래된 도시입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그 곳 사람과 링컨 대통령의 기질의 상관관계는 연구된 것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링컨은 혈통과 이름상으로 영국적 근원을 가졌을 뿐 아니라, 그의 총체적 삶을 그 근원부터 따져 명백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결코 대륙적(독일,프랑스)이 아니었고 철저히 영국적이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관념적,추상적,변증법적’(대륙의 합리론)이라기보다 ‘실제적,타협적,현실적’(앵글로 색슨의 경험론)이기 때문입니다. 철학자 중에서는 대륙적인 칸트나 헤겔보다 영국적인 냉혹한 홉스, 온건한 존 로크, 실천적 공리주의 벤담과 밀을, 시인에 있어서는 대륙적인 괴테나 쉴러보다는 영국적인 세익스피어나 번즈, 바이런을 절대적으로 의존했습니다. 그래서 링컨은 노예제를 반대하지만 그 해결에 있어서는 이상주의적이고 급진적인 ‘노예폐지론자’(abolitionist)의 길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대신 미국 전역이 노예확산으로 갈 수밖에 없게 만든 ‘캔사스-네브라스카법’(1854), 이어서 미국 대법원이 해방노예에게 불리하게 내린 ‘드레드-스캇 판결’(1857)이라는 급한 불을 꺼야 한다는 생각으로 활화산처럼 혹은 엄청난 소명의식으로 정치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이 되자마자 바로 노예제폐지와 노예해방을 실시하여 노예를 가진 사람에게 아무 보상을 해주지 않는 어리석은 짓을 - 20세기의 공산주의자들처럼 - 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현실에 있어서 명백한 사유재산인 노예를 해방시킬 때에, 소유주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주면서 오랜 세월이 걸려서라도 이폐해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정치이력 초기부터 가졌습니다. 또 해방노예들이 현실적으로 백인과 같이 살기 어렵기 때문에, 아프리카의 라이베리아와 같은 땅을 마련하여 그들을 옮겨서 자신들의 나라를 이루고 살아가게 할 점진적 대안까지 당시의 미국 휘그당과 함께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흑인들이 이미 미국화가 되었고 모두 다 돌아가려고 하는 것은 아닌 상황에서 그 비용도 엄청나게 많이 들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북전쟁, 즉 노예해방전쟁도 사실 노예제를 찬성하는 남부에서 링컨이 대통령이 된 것에 지레 겁을 먹고 그가 취임하기도 전에 미리 전쟁을 일으키는 바람에 링컨이 휘말려 들어가 일어난 것에 불과했습니다. 또 그가 노예를 즉각 해방시켜 그들을 군대에 동원하여 재빨리 남부를 굴복시키려 하지 않았고, 전쟁 후반부에 가서야 노예해방선언(1863)을 했습니다. 링컨의 소원대로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링컨의 근원이었던 영국에서 이미 이룬 영국적 전통을 이어갈 뻔 했습니다. 즉 윌리엄 윌버포스가 주축이 된 경건한 무리인 클람팜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가 전 생애를 던져서, 영국의회 내에서 지난하지만 합법적 투쟁을 끈질기게 한 끝에 ‘노예거래폐지’(1807), ‘노예제불법화’(1833)를 미국보다 30여년 전에 이루어내었던 그 전통말입니다. 그렇지만 노예는 내 재산이며 흑인은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한 남부인들의 완고함 때문에 60만명이나 희생되는 엄청난 재앙을 이룬 것은 점진적 폐지를 이루려는 링컨의 생각에서 나온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물론 건강한 자기비판과 확고한 공의를 향한 끝없는 인내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습관을 가진 링컨은 늘 자기가 수행할 수밖에 없게 된 이 전쟁이 과연 옳은 것인가 끊임없이 회의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 앵글로-색슨계열의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이 이룬 업적은, 외부에서는 단순하게 영국에게서 이룬 ‘독립’(Independence) 정도로만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이 역사를 자유로운 선거에 의해서 국민이 선출한 사람이 나라를 통치한다는, 당시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성취한 ‘미국혁명’(American Revolution)으로 확신합니다. 이런 확신은 미국의 자만심에서 우러나는 것이 아니라 명백하게 객관적,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영국에서 건너온 이런 앵글로-색슨의 전통을 확실하게 이어받은 링컨은, 노예라는 명백한 악을 제거하는 ‘노예해방혁명’을 이룩함으로서 - 그의 게티스버그 연설에서도 나타나는 것처럼 - ‘자유의 새로운 탄생’(a new birth of freedom)을 미래의 미국인들에게 선물했습니다. 그 뿐 아니라 더 중요하게도 - 역시 게티스버그 연설에도 나타나듯이 - 노예해방을 통한 자유가 단지 ‘미국만 아니라 그 어떤 나라’(that nation or any nation)도 이룩해야 할 과제로 표현하였습니다. 또 우리가 잘 아는 구절인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nation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이라고 말할 때에 미국을 확실하게 지시할 수 있는 정관사(the)를 쓰지 않았습니다. 이것도 그가 세계와 역사를 의식하여 유일하게 성취한 사례를 통해 앞으로 전제군주정과 독재의 폭압에 고통당하는 그 어떤 나라들이라도 이런 정치체제를 택할 용기를 주었던 것입니다.   


놀라운 외할머니와 특이하게 죽은 친할아버지, 그리고 그의 막내아들 
링컨의 외할머니는 역시 영국에서 건너온 가난한 집안의 처녀였습니다. 그런데 돈이 제법 있는 집안의 청년이 이 처녀를 자기 집의 청소부로 삼았는데, 이 처녀가 청소하다가 그 집에 많은 책을 신기한 듯이 꺼내어보며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 청년은 글을 가르쳐줄 것을 제안하였고, 이런 가운데 둘이 사랑에 빠져 그녀는 임신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가난한 여자를 부자 집에 들이기가 두려웠던 청년은 그만 다른 곳으로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 처녀는 딸을 낳게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너무나 놀랍게 당당하게도 교회로 데리고 갔으니 주위로부터 얼마나 많은 구설수에 올랐겠습니까? 그런 가운데 그녀를 주의깊게 바라보던 한 착한 청년이 그녀와 결혼하려고 하였고, 그녀가 이런 동네에 사는 것이 힘드니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자는 제안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도망다니는 인생을 살기를 거부하고 이 동네에서 자신이 당당하게 인정받고야 말겠다고 버티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그와 결혼하여 그 동네에 오랫동안 살면서 여러 자녀를 낳고 건실하게 가정을 일구어 결국 그녀가 옳았다는 온 동네의 인정을 받고야 말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낳은 딸이 바로 링컨의 어머니 ‘낸시’입니다. 아마 이 딸은 자라면서 이런 사실을 잘 전해 들었을 것이며, 어머니로부터 자신에 대한 정당한 확신이 있다면 매우 당당한 삶을 살아야 하며, 그것이 궁극적으로 인정받기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선의의 투쟁을 해야 한다는 DNA를 물려받았을 것입니다. 낸시가 토마스 링컨과 결혼한 후에 새로 이사한 곳에서도 계속 혼외자식이라는 억울한 비난이 그녀를 따라다녔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성실한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비록 그녀는 링컨이 8세 때에 요절했지만, 자기 어머니와 자신의 확고하고 성실한 삶을 어린 아들에게 물려주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링컨에게서 보는 명백하고 객관적 근거에 바탕을 둔 정의에 대한 꺽을 수 없는 확신과 그것을 이룰 끝없는 인내심, 그리고 불쌍한 처지를 당한 사람에 대한 지극한 연민의 마음은, 이런 가족적 DNA에 근거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가난했던 링컨의 할아버지는 미국이 인디언을 서쪽으로 밀어부치면서 확장해 나가던 개척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전혀 다른 문화를 가진 인디언과의 피할 수 없는 마찰이 일어났고, 한 인디언이 밭에서 일하던 그를 도끼로 죽이고 옆에 있던 막내아들 토마스를 인디언 마을로 데리고 가려 했습니다. 그런데 15세의 큰 형이 집에서 보고 있다가 총으로 그 인디언을 죽여 가까스로 막내를 구출했습니다. 아버지가 없는 집안에 장자가 모든 것을 승계하고 다른 아들들은 가족을 떠나야 하는 당시였기에, 막내 토마스는 이른 시기에 형을 떠나서 매우 어려운 삶을 전전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매우 근실하게 땅을 일구면서 주와 주를 옮겨 다니며 개척자의 피곤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 토마스가 위에서 말한 낸시와 결혼하여 태어난 아들이 바로 아브라함 링컨입니다. 정말 척박한 맨땅에 두 손으로 모든 것을 일구어야 했던 농부 아버지와, 인간 중에서 최상층 문화인 글과 말의 세계에 절대적 가치와 매력을 느끼는 아들의 관계가 좋을 리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정치적 삶이라는 추상적 세계에 매력을 느낀 아들은, 그런 불안한 어린 시절과 고통스러운 청년기를 보내었기에 땅 몇 마지기와 집이라는, 눈에 보이는 것을 성취한 것에 그저 만족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는 아버지에 대해 불만을 많이 품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 아들 모두가 가진 공통의 요소는 얼마나 인생이 뼈저린 고통과 넘쳐나는 슬픔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는가 하는 자각이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아버지는 ‘눈에 보이는 세계’인 얼마 안되는 땅을 손이 문드러지도록 경작했습니다. 또 동일하게 아들은 노예제도에 대한 온건한 타협책인 ‘미주리 타협안’(1820)을 물거품이 되게 만든 악법 ‘켄사스-네브라스카법’(1854)이 통과되어 미국 전역에 노예제도가 확산될 수밖에 없는 정치계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악마들이 들끓는 전쟁터에 뛰어들어 후회없이 살다가 결국 순교자가 됨으로서 궁극적 승리를 쟁취한 겁니다.     

인간행위의 최고의 가치 : 정치!
한국과 같이 역사가 유구한 나라에서는 정치라고 하면 매우 신물나게 기피하고 싶어합니다. 그렇지만 남자들 셋만 모여도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두 주제가 군대와 정치라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혐오하면서도 또 동시에 늘 화제거리로 삼는 것은, 너무나 싫어하면서도 너무도 가까이 하고 싶어 하는, 매우 역설적인 인간의 심리를 드러낸 겁니다. 그런데 인간이 이런 지킬박사와 하이드 같은 태도를 정치에 대해서 가지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배꼽에서 동방으로 동진하여 멀리 떨어져 나간(창세기 3:24,4:16) 아시아인들은 점차로 절대자를 없애는 과정을 밟아왔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글을 연재하며 계속 밝혀왔습니다 : 1) 메소포타미아(다신교) → 2) 인도서부(힌두교의 만신론) → 3) 인도동부(인간이 신이 된다는 불교) → 4) 중국(신은 아예 제거되어 인간들의 삶만 남은 유교, 인간이 세상을 벗어나 신선이 되는 것을 추구하는 도교). 이렇게 신을 점차로 제거해간 가운데도 현실정치는 지속되어야 하니, 결국 인간이 법을 정하고 정치의 궁극적 기준을 결정하는 신의 자리에 올라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정말 비참하게도 온갖 전횡,폭력의 역사가 반복되는 정치계를 만들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보통 사람들은 정치를 온갖 똥물이 범벅이 된 세계라고 간주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정치권력을 한번 잡으면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을 보니 결코 잡은 것을 놓기 싫어지는 마력도 무시할 수 없는, 매우 역설적 상황에 동양인들은 처한 것입니다. 흔한 예로 고려에서 조선으로 바뀌어서 천년이 지나는 동안 바뀐 것은 단지 왕씨에서 이씨로 바뀌는 역성혁명 뿐이니, 사실 동양에서는 혁명이랄 것도 없이 단지 정권 쟁탈만 허무하게 반복되는 역사 밖에는 남는 것이 없는 셈입니다. 


그런데 링컨은 정반대로 그 정치계에 자신의 생애를 걸어야 한다는 절대적 소명을 느꼈으며, 또 그렇게 처절하게 살다간 링컨은 당대와 현대의 미국인 뿐 아니라 다른 시대와 다른 나라의 사람도 존경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평시에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연설에 매우 특출났다고 소문이 나기 시작한 링컨이 정치와 관련하여서 몇 번의 일리노이주의 의회의원과 한번의 미국의 하원의원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정치에는 절반만 발을 들여놓은 정도로 시들했으나, ‘켄사스-네브라스카법’이 통과되자(1854), 갑자기 그의 정신은 벼락 맞은 듯했으며, 순교하기 전까지의 12년의 세월을 그 벼락의 불꽃을 이어가며 노예해방에 자신의 생애를 몰입했습니다. 만약 링컨의 최종 목표가 대통령직을 차지하는 것이고 그 도구가 노예해방이라고 - 거의 대부분의 정치가들이 그렇듯이 -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온 세상의 몰매를 맞아야 합니다. 만약에 그도 거의 대부분의 정치가들처럼 정치적 지배력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살았다면, 그의 생애를 걸쳐 했던 말과 행동이 도무지 그에게서 나올 수 없습니다.


그가 이렇게 정치에 몰빵할 수 있었던 가장 깊고 넓은 기초는 매우 복잡한 서구적 정치성향때문이었습니다. 원래 동양인들과는 정반대로 세상의 배꼽에서 태양을 등지고 서쪽으로 이동해갔던 서양인들은, 신으로부터 점차로 멀어져간 동양인과는 전혀 다르게, 서로 합치될 수 없는 두 문화가 뒤섞인 가운데 현재까기 이르게 되었습니다. 첫째는 신과 동양과 전제군주정을 철저히 반발한 가운데 생겨난 그리스문화이며, 둘째는 그 서구에 나중에 침투해 들어간 기독교문화가 그것입니다. 르네상스 이후로 형성되어 전세계화된 현대서양문화는, 신과 밀접한 관계를 추구하는 기독교적 요소가 점차로 줄어들고 대신에 신에게 반발하고 도전하는 2천 년 전의 그리스문화의 요소가 점점 더 많아져가는 경향을 띄면서 19세기 중엽의 링컨 시기까지 이르렀습니다. 이런 점에서 미국독립선언서도 인간의 평등이라는 기초를 1)신에 의해 인간이 그렇게 창조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2)자연 그 자체로도 그렇다고 주장한 것입니다(‘by God and nature’). 그렇지만 이런 후자 즉, 신을 배재한 자연주의적 관점에서는 링컨이 보였던, 인간과 보편진리를 위하여 생애를 던지며 불사르는 열정이 나올 수가 없으며, 자신이 알게 모르게 ‘신의 도구’가 되었다는 확신은 더더구나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의 짧지만 가장 유명한 두 연설, 게티스버그 연설과 재취임연설에 신에 대한 언급이 명확하게 나오는 것이며, 특히 생애의 마지막 해 죽기 얼마 전에 작성된 후자는 노예제를 250년간 유지한 인간의 죄악에 대한 신의 준엄한 심판을 받아들인 결과가 60만명의 죽음이라는 것을 명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청년 때에 회심하여 신에게 헌신하는 삶을 살기로 했지만 인생 후반으로 갈수록 타락해 가기 쉬웠던, 흔히들 말하는 보통의 종교인과는 정반대의 길을 링컨은 걸어간 겁니다. 즉 어렸을 적에는 교회 지도자들의 위선을 비웃으며 함부로 입을 놀려 기독교 교리까지 날카롭게 비판하기도 했지만, 나이가 들어가고 성숙해지면서 점차로 신을 단지 인정하는 이신론이나 낭만주의에서 벗어나며, 종국적으로 믿음과 행위가 정확하게 일치하는 진정한 종교인의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그러면 좌우를 막론하고 정치판은 똥통이며 정치가는 똥물에 쩔은 사람으로 간주하는 동양인에게는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서양에서는 무엇이 정치라는 판을 이렇게 놀랍고 위대한 영역으로 여기게 만들었을까? 그것은 링컨이 그렇게 사랑하고 정통한 성경이 바로 정치를 인간행위의 최고요, 최고의 가치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고,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어다니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 하나님이 인간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세기 1:26~28). 온 세상의 정원사로 창조된 인간 존재의 근본목적이 바로 다스림, 정치인 것입니다. 물론 동양에서와는 완전히 다르게, 그 다스림의 기준이 인간 자신에 있지 않고 신의 법에 있다는 점은 명백한 차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복하고 다스리라’라는 말은 인간 마음대로 하라는 ‘자유방임’이 아니라, 오히려 신의 법에 충실해야 할 책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빅터 플랭클의 말처럼 어떻게 나왔는지, 또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죽은 몸뚱아리조차 스스로 어떻게 처리할지 알지 못하는 피조물 인간에게는, 스스로 (영원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고 결정할 수 있다는 말만큼 모순된 것이 없습니다. 죽으면 다 허무로 돌아가는 헛된 삶을 사는 인간이 어떻게 영원한 가치를 남길 것인가에 대한 대답은 오직 신만이 준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 신의 법대로 하는 행동, 그 중에서 정치야말로 그 가치를 구현하는 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의 법대로 하는 정치는 인간 행위의 최고 가치에 해당할 뿐 아니라, 인간의 존재의미를 확실하게 찾는 길입니다. 그래서 링컨은 신의 법에 따른 세상과 인간의 통치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제도인 노예제도의 폐지는 신이 자신을 부르는 명백한 소명으로 알고 속으로 부르르 떨었고, ‘신의 도구’로서의 자기 존재의 의미를 점차로 확실하게 의식해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링컨은 정치에 뛰어들기로 작정하기 전부터,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오랫동안 관심을 가졌던 분야가 두 가지입니다 : 1) 유머,비유,속담,격언,우화, 2) 문학(특히 시). 이 두 가지는 링컨에게 양방향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첫째는 어린 시절부터 경험했던 가족과 자신의 불행을 극복하게 만들었다는 겁니다. 그의 유머는 단지 웃기는 상황이나 모양에서 한 번에 웃음을 터트리게 만들고 허무하게 사라지는 한국식 개그가 아니라, 삶과 인생의 실제가 심각하게 반영된 것입니다. 마치 유대인의 유머와 비슷하지요. 그래서 그가 빠져들어갔던 비유,속담,격언,(이솝)우화와 같이 유머를 통해 그는 현실의 고통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또 슬픔과 고통의 문학(특히 세익스피어의 희곡과 번즈, 바이런의 시)은 그의 슬픔을 대변해주어 감정이입을 통해 그것이 자신만의 유일한 것이 아닌, 인간보편적인 것임을 알게 됨으로써 자신의 슬픈 감정을 상대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둘째는, 정반대의 방향에서, 그가 익힌 유머와 문학은 그의 정치에 결정적으로 도움을 주었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링컨’ 2012)에서도 남북전쟁 중에 벌어진 의회에서의 노예해방선언이라는 결전을 치러야 할 매우 긴장된 상황에서도 웃기는 말을 하는 링컨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이 긴장을 풀고 잠깐 쉬면서 다시 자신의 생각을 상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곤 했습니다. 또 그는 매우 준비되고 절제된 연설을 읽어내려갔는데, 거의 완벽해서 심지어 시에 가까울 정도로 유려하고 탁월한 문장을 구사하였습니다. 이렇게 문학적으로 탁월하게 구성된 연설의 껍질 속에 링컨의 종교적,도덕적,정치적 확신이 완벽하게 녹아진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11월호에서는 그의 유머와 문학을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그 결정판으로서 정치사상사에서 최고의 반열에 오른 두 연설인 ‘게티스버그 연설’과 ‘대통령재취임 연설’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1) 우리는 비록 보통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인류에 놀라운 공헌을 남겼던 위대한 리더들이 가졌던 내면세계를 살펴보는 시리즈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한반도,한민족의 다음 시대를 열어갈 젊은이들 중에서 이런 사람들이 많이 배출되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이기 때문입니다. ‘내면세계’란 단순히 감정,느낌같은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졌던 (1) 순결한 종교적 확신, (2) 높은 윤리적 기준, (3) 고상한 정치사회적 이상, (4) 그런 것들을 현실 속에서 구현해내는 지혜와 인내, (5) 많은 사람과 맺고 발전시켰던 건강한 관계들, (6) 가족적,육체적 (좋거나 나쁜) DNA나 역사들을 발전,극복하는 능력들을 말합니다. 

 

 

행복한 동네문화 만들기 운동장(長) 송축복
010-6844-0609/segensong@gmail.com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32>에 실려 있습니다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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