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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브러험 링컨 Abraham Lincoln(5) 각 나라의 종교적, 법적 기초와 정치적 리더쉽 링컨의 마지막 정치활동

2020년 12월호(134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1. 8.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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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들의 내면 들여다보기 5]

 

에이브러험 링컨 Abraham Lincoln(5)1)
각 나라의 종교적, 법적 기초와 정치적 리더쉽

링컨의 마지막 정치활동

 

세 나라(영국-미국-한국)의 정치역사 속에서 발휘되는 리더쉽
이 시리즈를 시작할 때 2020년 미국에서 벌어진 제46대 대통령선거를 염두에 두지 않았고, 단지 위대한 리더들의 내면을 다루려는 중에 링컨을 먼저 선정하였을 뿐입니다. 하지만 2020년 말 우리가 경험하는 미국의 매우 혼란스러운 정치상황 속에서, 링컨의 재취임 연설을 돌이켜보는 것이 매우 적절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한국에 꼭 필요한 ‘정치적 감각을 역사적’으로 일깨우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단지 미국뿐 아니라, 미국이 정치적으로는 독립하였지만, 그 본질의 기원인 영국과도 연관된 것입니다. 한국인들 중에는 미국에 살아보아서 미국에 친숙하고 학문과 직업에서도 미국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미국(문화)과 미국정치를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미국정치는 영국정치와의 연관성 속에서 생각해야 동양의 우리로서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한국인 자신의 정치행위에 대해서도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적습니다. 즉 정치적으로 ‘미국의 독립’을 ‘영국과의 단절’로만 해석한다면, 본질을 빠트린 껍질만 다룬 것에 불과합니다. 정반대로 미국 정치는 그 시작부터 영국 정치와 철저히 연관되어 있으며 이 속에서 미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활동하였습니다. 한국의 정치를 지금의 패권국가인 미국과만 비교하는 것은 피상적인 관찰만 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 근원이었던 영국과의 역사적 연관성 속에서 바라본다면, 매우 넓고 객관적 시각을 가질 뿐 아니라 우리 자신도 정교하게 비교할 수 있습니다.


그 핵심은
첫째, 영국과 미국은 각각 ‘종교적 기초’에 근거한 ‘법적 장치’를 마련하였다는 것입니다.
둘째, 그 현실적 장치 속에서 각자가 소망하는 민주주의를 운영하면서, 시대마다 필요한 ‘사회개혁’(19세기의 핵심 사항인 노예제도폐지)을 각자의 방식으로 이루어내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연관성은 한국에서도, 물론 전혀 다른 맥락에서, 동일하게 이루어진 것이기도 합니다 :   

먼저, 500년 전 영국은 로마교황과의 특수한 관계 때문에 ‘수장령’(1534)을 통하여 정치가 종교를 지배하는 형태의 정-종관계를 시작한 이후, 영국정치와 사회개혁은 종교와 완전히 단절하지 않은 늘 밀접한 상태로 진행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노예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사회개혁에 대한 자각이 일어난 것은, 18세기에 강력하게 일어났던 J.Wesley(1703~1791)의 감리교운동 때문이었으며, 이것을 이은 것이 19세기 강력하게 사회개혁을 선도한 구세군운동이었습니다. 둘째, 웨슬리의 감리교전통을 이어, 노예선 선장으로 엄청난 이득을 취하는 상인이었다가 이 감리교운동으로 궁극적 회심을 체험한 후 목사로 변한, J.Newton(1725~1807)를 거쳐서 노예제폐지를 사회운동화하려는 욕구가 폭발합니다. 셋째, 그의 강력한 영향을 받아 국회에서 노예거래폐지(1807)와 궁극적으로 노예제도폐지(1833)를 이루어낸 사람은 W.Wilberforce(1759~1833)였습니다. 이렇게 종교적,정신적 혈통들이 3대로 이어가는 가운데,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감옥간 사람 한 명 없이’ 노예제도를 폐지해낸 정말 감탄할만한 정치역사를 완성했습니다. 물론 이 뒤에는 전적으로 자신과 가족의 삶을 희생해서 이 일에 전적으로 헌신한 10명 남짓의 ‘클랍함 공동체’가 있었긴 했지만 말입니다.

 

노예제의 잔인함을 드러내기 위해서 노예제 폐지론자에 의해 널리 알리고자, 노예였던 Gordon이 등에 맞았던 채찍에 의한 상처를 의료적으로 진단해 나타낸 사진(National Portrait Gallery, Smithsonian Institution)

   
반면에 영국에서 자유를 얻은 미국은, 스스로의 자유가 중요하다면, 동일한 인간인 흑인의 자유도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악과 위선을, 대통령이 15번이나 바뀌는 87년 동안(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까지)에도 여전히 품고 있었습니다. 이런 위선의 근본 이유는 미국의 독립선언서/헌법에 명시된 인권의 종교적 기초가 ‘이원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대부분의 독립투사들이 가졌던 종교적 확신을 따른 ‘천부인권론’이라고 번역되는 ‘(절대)종교적 기초’입니다. 하지만 또 다른 무리의 독립투사들인 제퍼슨이나 프랭클린이 가진 것과 같이, 18세기 당시 종교를 거부/대항하는 유럽의 세속주의적 관점인 ‘계몽주의/합리주의’에 기초한 ‘세속적 인권론’도 공존했던 겁니다. 사실 계몽주의와 기독교는 서로 상극일 수밖에 없습니다. 또 계몽주의는 시대를 따라서 변화무쌍하게 일어나는 철학적 경향의 하나에 불과하였고, 그 다음에 일어날 철학적 경향인 낭만주의,사회주의,급진주의의 도전 앞에는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미국의 정치는 한 발은 ‘종교적 기초’위에, 다른 한 발은 언제 바뀔지 알 수 없는 ‘세속적 기초’위에 섰던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예제도라는 악을 폐지하는 미국인의 능력은 그만큼 약할 수밖에 없으며, 그 결과가 바로 60만이나 되는 청년이 죽어야 하는 남북전쟁이었습니다. 링컨 자신도 젊었을 때에는 기독교에 대해 비판적인 계몽주의,낭만주의,사회주의적 영향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생애의 후반에 갈수록, 신의 무한하고 신비한 섭리에 복종해야 할 존재로서의 인간을 자각하는 가운데 현실정치를 펼쳤습니다.


이에 비해서 민주주의 정치역사가 일천한 한국은 어떤가요? 한 때 기독교의 부흥전도사이자 미국 프린스턴에서 정치학박사를 받은 이승만은, 해방 이후 특히 한국동란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독재가 불가능하다는 미국정치정신뿐 아니라, 그 미국정치의 근원이 되었던 영국의 정치에서 어떤 것도 배우지 못한 독재적인 인물임이 증명되었습니다. 그 이후 30년에 걸친 군인 독재자들의 암울한 시기를 지난 후, 한국의 대통령들은 개인적으로 불행(귀국불가,총격사망,자살,감옥)했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한국정치역사에도 커다란 고통과 상처를 남기고 말았습니다. 그 근본 이유는, 위에서 영국과 미국을 비교하는 가운데 알 수 있듯이, 한국정치의 종교적 기초는 아예 없든지, 아니면 언제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는 세속적 인권론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좌파정권이 들어서고 난 뒤에는 개별법들뿐 아니라, 앞으로 헌법 자체도 전체주의적,사회주의적으로 바꾸려고 시도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좌파정권은 결국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목표로 하는 ‘프로레타리아(보통사람의) 독재’라는 거짓된 명목으로 그 당과 당을 좌지우지하는 최고의 엘리트가 지배하는 철저한 세속정치구조를 만드는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속에서는 한 번의 정치패배는 생명을 비롯한 모든 것의 패배이기 때문에, 죽기살기로 정권을 잡고 놓지 않으려는 전통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모습은 조선시대 후반, 당쟁에서의 패배가 바로 개인의 죽음(유배)과 패가망신을 의미하므로, 필사적으로 당쟁에 몰두하는 구조와 완전히 빼닮지 않았나요?


미국에서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하야했을 때, 정의를 우선적 잣대로 들이밀며 그를 감옥에 보내려는 시도도 있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정치적 패배는 생명을 포함한 모든 것의 패배라는, 중세기적 정치형태에서 벗어난 링컨이 마련한 온건한 정치전통을 따랐습니다. 링컨은 남북전쟁 후에 60만이 죽은 전쟁의 책임을 남군에게 전적으로 돌리지 않았습니다. 그 책임을 지고 감옥에 간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였으며, 그는 재산의 배상을 요구하지도 않은‘자비’를 재취임연설에서 명백하게 선언하였습니다 : "With malice toward none, with charity for all"(그 누구에게도 (보복하는) 악을 행하지 말고, 도리어 모든 사람에게 (용서하는) 자비를 베풀자). 일반적으로 정치적 수사에서 단골로 오르는 메뉴는 ‘정의’, ‘공의’이지, ‘자비’는 들어가지 않으며, 언급된다고 하더라도 악세사리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링컨의 ‘자비’는, 한 번 봐주거나 인격의 너그러움을 포장하는, 동양식의‘위선적이며 상대적인 자비’가 아니라, 절대종교에 근거하는 ‘총체적 근본적 용서를 의미하는 절대적 자비’였습니다. 이 절대종교를 기초로 이룬 놀라운 정치적 전통은, 정치적 패배가 감옥,죽음,알거지의 길로 직행이라는 부끄러운 전통을 가진 우리와는 전혀 상반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정치는 인생이 정치판에서 한 번 해 보는 게임에 불과하고, 그 판에서 물러나면 끝이라는 전통은 물론 없기에 보복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링컨처럼, 절대적 섭리 가운데서 정치계로 부르심을 받아 그 분의 절대적인 뜻을 따라 행동하다가 순교로 생을 마감하더라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는 전통은 더더구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우파’의 기초인 ‘가족주의적,유교적 전통’이나 ‘좌파’가 근거하는 ‘사회주의적,공산주의적 전통’ 모두 물질,가족,명예,돈이 전부인 세속주의 자체에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중국이 황제식 공산주의를 신봉하며, 또 일본이 서양문화/문명을 피상적으로 받아들인 가운데 형성한 정말 암울한 정치적 상황을 생각하면, 우리가 훨씬 낫다고 자위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앞에서 말한 부실하거나 텅 비어버린 한국정치의 근본 기초와 철학으로 한국사회는 언제든지 내부적 위기로 몰릴 수 있습니다. 게다가 둘러싼 4대 강국의 강력한 외부 도전이 닥칠 때에는, 조선 말기에 나라가 50년 이상을 갈기갈기 찢어진 무서운 현상이 재현될 수 있습니다. 정치에서 관건이 되는 것은 ‘누가 근본적 판단을 할 것인가’입니다. 링컨처럼, 인간 밖에 그 판단 기준을 두지 않는다면, 기준 없이 살 수 없는 인간은 자신 혹은 자신이 만든 이데올로기를 그 기준과 종교로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좌파가 기초하고 있는 사회주의,공산주의 이데올로기도 19세기에 생긴 시대적 산물에 불과합니다. 이 이데올로기는 창조주의 뜻을 따르는 종교적 기초를 철저히 대적하고, 대신에 좌파 이론 자체를 종교로 삼게 되고, 역사는 무시무시한 죽음과 파괴로 진행되고 말 것입니다. 정신이 물질을 우선한다는, 모든 문명과 당대의 상식과 헤겔의 사상을 ‘가짜’로 만들고, 대신 그것을 완전히 뒤집어 물질에서 정신이 나온다는, 포이에르바흐가 만든‘유물론적 종교적 선언’입니다. 이것을 ‘진리’라는 ‘프로파간다’로 만들어서 반복적 ‘세뇌공작’을 통하여 물질화된 인간에게 집어넣으려는 것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의 기본 구조입니다. 절대종교의 전제를 어느 정도 가진 미국에서 그 악인 노예제도를 폐지하는 데 60만의 피가 필요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철저히 세속적 민주주의 전통만 가진 우리는 앞으로 남한과 북한의 사회적,역사적 악을 제거하기 위해 한국동란에서 흘린 엄청난 피와 철저한 파괴와 함께 얼마나 더 많은 희생을 해야 할까요?         

링컨의 ‘게티스버그연설’(1863)과 ‘재취임연설’(1865) 사이의 두 사건 : 

대통령 링컨의 정치적 생애에서 일어난 다섯 사건은 다음과 같이 단계적으로 승화되어 일어났습니다 : 

 

1) 링컨의 제15대 대통령 당선과 취임(1860~1861) 
    →  2) 노예해방선언(1863.1.1) 
         →  3) 게티스버그연설(1863.11.19)
             →  4) 미국 헌법수정 제13조의 국회통과(1865.1.1) 
                 →  5) 대통령 재선과 재취임연설(1864/1865.3.4)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미처 취임도 하기 전에 연방군이 주둔하고 있는 섬너포대가 남부의 연맹군에 의해 공격당함으로, 그는 전쟁에 ‘수동적’으로 끌려들어갔습니다. 적어도 그는 먼저 쏘지 않으려고 참았으며, 그런 가운데 취임을 위하여 살해의 위협을 피해 비밀스럽게 밤에 수도 워싱턴으로 들어가는 수모를 겪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벌어진 전쟁이 1년 이상 진행되며 점점 장기화될 것이 확실시되는 가운데, 이제는 물 건너간 노예문제의 점진적,평화적,보상적 해결이라는 수동적 방식 대신, 그가 능동적,적극적으로 해야 할 일은 대통령직권을 사용한 ‘노예해방선언’이었습니다(1862.9.22 선언, 1863,1.1 국회통과 효력발생). 그 이후 남군이 전쟁의 판을 뒤집으려고 위싱턴이 있는 북쪽에 전진하여 전투하였지만, 북군이 오히려 승리하여 앞으로의 전황에서 결정적 변화를 가져온 것이, 5만명 정도가 사망한 게티스버그 전투였습니다. 이 고통스러운 전쟁터의 한 장소를 국립묘지로 헌정하면서, 이 전쟁의 근본 의미를 살핀 것이 바로 ‘게티스버그연설’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의 영적,정신적 결정체이자 ‘말로 된 실체’인 ‘게티스버그연설’과 ‘재취임연설’에 몰입하고 있습니다. 링컨의 정치에서 중요한 ‘두 행위’가 이 두 연설 사이에 있었는데, 바로 ‘링컨의 재선’과 ‘미국 헌법수정 제13조의 국회통과’입니다. ‘말과 행동의 일치’라는 링컨 개인이 가진 아름답고 훌륭한 인격이 국가적 차원의 놀라운 외적 결과로 나타난 겁니다.  


먼저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으로 ‘링컨의 재선’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재선에 패배했다면, 전쟁에 대한 책임을 져서 자신의 생명까지도 내어놓을 각오까지 물론 했을 것입니다. 전쟁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적극적 책임은 없지만, 그 전쟁을 받아들여 수행한 책임은 피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 ‘국가적’으로는, 재선의 패배로 남부와 타협한다면, 미국의 정치발전은 크게 후퇴하여 영구히 노예제유지국가로 남을, 극히 부정적인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링컨은 절대자의 큰 섭리 속에서 자신과 국가의 역사가 묘하게 역설적으로 진행되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즉 전쟁이 길어져 전쟁피로감이 점차 커져갔고, 믿었던 그랜트 장군이 많은 출혈을 내는 전황을 유지하는 가운데, 링컨을 밀었던 공화당 내부에서도 패배감이 높아졌습니다. 그런 중에 링컨은 재선에 실패하더라도 백악관을 넘겨주는 날까지 연맹군을 부술 것이라고 맹세했습니다. 하지만 각료들에게는 봉인된 문서의 봉투에 각각 서명을 하라고 요구했는데, 그 안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 지난날들과 마찬가지로, 이 정권이 재선되지 않을 확률은 지극히 높습니다. 나는 당선인과 협력하여 선거와 취임 기간 사이에 연방을 구하는 것이 나의 사명이 될 것입니다. ”전쟁을 끝까지 수행하겠지만, 선거의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하고 링컨의 신념인 연방의 구출이라는 목적에 봉사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중에서도 최선을 다하여 그랜트 장군에게 더 많은 군대를 보내었고, 드디어 셔먼 장군이 아틀란타를 정복함으로 전황이 결정적으로 변화되어, 선거에서 세 개의 주를 제외한 나머지 주에서, 또 전쟁에 참여하고 있는 북군 중에서는 78%의 찬성이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재선될 수 있었습니다. 현실적 사정에 따라서 민심이 변하고, 그 민심에 따라 정치가 결정되는 상황 속에, 링컨이 국가를 위한 그리고 절대자의 뜻을 행한다는 정치적 확신인 노예제폐지를 끝까지 유지하는 것은 정말 고통스러웠을 겁니다. 물론 전쟁에서 연패하고 민심도 땜질식의 평화를 요구하여 재선에 실패하는 것이 신의 섭리였다면, 링컨은 역시 그 암울한 길도 머리숙인 가운데 말없이 따랐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11월 8일의 재선에 성공하자, 링컨은 즉각 그 다음의 정치적 계단을 밟아 올라갔습니다. 바로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링컨’(2009)의 핵심 내용인 ‘미국 헌법수정 제13조(Amendment XIII)의 국회통과’(1865.1.31)입니다. 이 영화가 한국에서 많이 유행되지 않았던 이유는, 미국인들이 잘 보는 법정사건을 다룬 영화가 한국에서 그만큼 유행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즉 전제군주적 전통이 오래 계속된 한국인의 의식 속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공정한 ‘법’이 있느냐가 아니라 ‘누가 지금 통치자로 있느냐’는 겁니다. 이점에서는 일본이나 중국도 동일하지만, 그래서 한국의 정치가 이 두 나라에 비해서 이만큼이라도 발전된 것에는 어느 정도 조선 정치의 근간이 되었던 유교의 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선의 유교는 군주와 토론하고 상소하며 심지어 대들 수도 있었지만, 일본이나 중국의 유교는 그야말로 철저하게 어용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국인의 내면에는 ‘절대종교’와 그 종교에 의한 ‘절대법’에 대한 경험이 전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권을 장악하는 자가 법도 마음대로 만들고 시행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정치적 전통이 지금도 상존합니다. 그러나 미국은, 믿을 수 없이 변덕스러운 인간 내부가 아닌, 인간 밖에 계신 절대자에 의한, 혹은 어떤 절대적 기준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따라서 행동해야 한다는 의식이 매우 강하며, 그렇게 만든 법을 절대적으로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기본 구조를 형성합니다. 링컨은 자기 직권으로 했던 ‘노예해방선언’(1862)이나 변화무쌍한 정권들의 하나로서 국회를 통한 선언(1863.1.1) 정도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더 나가 대통령 개인의 확신이나 그 정권이나 그 시절의 정치권(행정부,사법부,국회)의 결의를 초월하여 어떤 항구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하여, 최고의 에너지를 퍼부어서 헌법 개정을 시도한 겁니다. 한국에는 인기없는 이 역사적 장면이 물론 미국에서도 인기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스필버그가 영화화하기로 작정한 것은 아마 이 역사적 장면을 영구히 시각화시키려는 ‘일종의 사명감’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링컨은 수많은 대화와 정치적 타협이 오가는 중에, 심지어 찬성표를 얻기 위하여 심약한 정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정치적 보상이라는 낮은 차원의 타협까지 이루어 냅니다. 이런 그는 순백색의 성에 사는 흠이 없는 인물이 아니라, 인간 사회 중에 가장 타락한 흙탕물과 같은 정치판에서 연꽃을 피워내는 것과 같은 겁니다. 그런 가운데 늘 무전 앞에 머무르며 날마다 전황의 변화를 예민하게 챙겼습니다. 앞에 앉은 공대 출신 무전수와 유크리트 기하학 공리로 대화하는 장면은 종교,철학,기하학,수학,정치,국방이 총체적 하나의 진리가 되어야 한다고 확신하는 이 위대한 인물의 움직임을 그린 듯이 재현합니다. 신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자유롭게 창조되었다는 종교적 확신, 그리고 그것을 정치적 신념으로 승화시켜서 단 2항으로 이루어진 미국헌법수정 13조라는 마지막 꽃을 피우기까지 차근차근 성취해 나간 것은, 인류 역사상 천년에 한 번 나올 만한 위대한 인물의 행동이었던 겁니다.  


수정 제 13 조 (노예제도 폐지)
[1865년 2월 1일 발의, 1865년 12월 18일 비준]


Section 1. Neither slavery nor involuntary servitude, except as a punishment for crime whereof the party shall have been duly convicted, shall exist within the United States, or any place subject to their jurisdiction.


제 1절. 노예제도 또는 강제 노역 제도는 당사자가 정당하게 유죄 판결을 받은 범죄에 대한 처벌이 아니면 미국 또는 그 관할하에 속하는 어느 장소에서도 존재할 수 없다.


곧이어 남북 전쟁은 승리로 종료(1865.4.9.)되어 모든 분쟁은 마무리될 것이지만, 일주일도 채 안된 가운데 뒷목에 총탄을 맞고(1865.4.14), 바로 다음날 순교할 것이 링컨의 생애였습니다. 이런 그의 생애를 총결산하는 것이 제16대 대통령으로의 ‘재취임연설’(1865.3.4)입니다. 이것이 그의 마지막인 것을 암시나 하듯이, 그의 신학적,철학적,정치적 최대 역량이 나타난 연설이 다음호에 실릴 글의 주제입니다. 


1) 우리는 비록 보통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인류에 놀라운 공헌을 남겼던 위대한 리더들이 가졌던 내면세계를 살펴보는 시리즈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한반도, 한민족의 다음 시대를 열어갈 젊은이들 중에서 이런 사람들이 많이 배출되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이기 때문입니다. ‘내면세계’란 단순히 감정,느낌같은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졌던 (1) 순결한 종교적 확신, (2) 높은 윤리적 기준, (3) 고상한 정치사회적 이상, (4) 그런 것들을 현실 속에서 구현해내는 지혜와 인내, (5) 많은 사람과 맺고 발전시켰던 건강한 관계들, (6) 가족적,육체적 (좋거나 나쁜) DNA나 역사들을 발전, 극복하는 능력들을 말합니다. 

 

 

행복한 동네문화 만들기 운동장(長) 송축복
010-6844-0609/segensong@gmail.com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34>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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