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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한도, 스승과 제자

2020년 12월호(134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1. 8.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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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철의 한국사칼럼 21]

 

세한도, 스승과 제자

 

김정희필-세한도 (국가문화유산포털)

세한도(歲寒圖)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가 제주도에 유배갔을 때 그린 그림입니다. 유배기간이 길어지자 사람들의 발길과 소식이 하나둘 끊어졌는데 제자 우선(藕船) 이상적(李尙迪 1804~1865)만은 달랐습니다. 하루는 이상적이 중국에서 가져온 수 많은 책들을 보내주었는데, 이는 하루 이틀 마음먹어서는 이뤄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추사는 한 폭의 그림에 글을 써서 이상적에게 보내주었습니다. 그 그림이 유명한 ‘세한도’입니다.


‘논어’(論語)의 “날씨가 추워진 후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라는 구절에서 그림 제목 ‘세한’(歲寒)을 따왔다고 합니다. ‘송백’은 봄 여름 가을 겨울 항상 푸르지만, 사람의 마음은 그러하기 힘듭니다. 권세와 이익이 있으면 마음을 주다가 권세와 이익이 흩어지면 마음을 거두지요. 그런데 우선 이상적은 추사가 잘 나갈 때나 어려움에 처해있을 때나 송백처럼 한결같았습니다.


세한도에는 한 채의 집과 네 그루의 송백나무가 있습니다. 세 그루는 곧게 위로 올라갔고 한 그루는 꼿꼿한 나무에 기대어 있는데 사람들은 꼿꼿한 나무는 제자 이상적이고 나이 먹고 힘이 빠진 나무는 추사 김정희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제주도 유배로 어려움과 실의에 빠진 김정희의 처지를 반영하며, 세한도의 전체적인 분위기도 차가운 겨울 분위기로 제주도 유배의 어려움을 보여준다고 하네요.


하지만 나는 세한도를 볼 때마다 따뜻한 분위기를 느낍니다. 나이 먹은 고목은 쓸쓸한 게 아니라 당당하게 보이지요. 꼿꼿한 제자 나무에 기댄 추사는 더 이상 쓸쓸하거나 힘이 없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한결같은 제자에게 기댈 수 있는 사람만큼 당당한 사람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보다 따뜻한 관계가 또 어디에 있을까요? 더운 여름에 보면 시원하고 추운 겨울에 보면 따뜻한 그림이 세한도입니다.


추사 김정희가 찍었는지 우선 이상적이 찍었는지 모르지만 세한도에는 둘만이 아는 비밀을 간직한 ‘장무상망’이란 도장이 찍혀 있습니다.

장무상망長毋相忘 우리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

 

명협 조경철, 연세대학교 사학과 객원교수
나라이름역사연구소 소장

naraname2014@naver.com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34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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