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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져도 사는 나라, 빚지면 죽는 나라

2020년 12월호(134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1. 12.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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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져도 사는 나라, 빚지면 죽는 나라

 

2020년 6월호 기사 ‘정부재난지원금 어떻게 생각하세요? 받아야 하나요? 어떻게 써야 하나요?’에서는 노력하지 않아도 정부에서 주는 돈, 정부재난지원금이 개인적 차원에서의 빚이라면, 이번호는 국가적 차원에서의 빚에 대한 내용입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나라들마다 대책에 분주합니다. 방역을 하고 정부재난지원금을 나눠줍니다. 부도에 직면한 기업들에도 대출을 해줍니다. 그런데 그게 다 돈이 드는 일입니다. 코로나 사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이기 때문에 이 돈들은 십중팔구 새로운 빚으로 쌓입니다. 정부가 돈을 쓰느라 국채를 발행하면 국가채무가 되고요. 이 돈으로 기업을 지원하면 기업의 빚이 불어납니다. 기존의 부채가 별로 없는 상태라면 GDP의 몇 십 퍼센트가 늘어나더라도 견딜만 하죠. 하지만 기존 부채가 이미 많이 쌓여 있는 상태입니다. 그 위에 예상치 않은 코로나 부채가 얹어져 상당히 불어났습니다. 2020년의 부채 통계가 아직 나와 있지는 않지만 올해 말쯤 되면 부채가 엄청나게 불어 있을 겁니다. 

 

월드뱅크가 2019년 12월에 세계의 부채 상황에 대해서 <글로벌 부채의 파도, 원인과 결과>라는 제목의 특별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코로나 사태 직전에 나온 보고서입니다. 이 보고서에서 2018년 말까지의 글로벌 부채에 관한 자료들을 볼 수가 있는데요. 그림에서 전세계의 부채 규모를 보면, 주황색이 민간부채, 빨간색이 정부부채, 까만색이 합계인 총부채입니다. 2018년 말 세계 모든 나라의 부채를 합치면 세계 GDP의 227%, 그중 각자 돈을 벌어서 갚아야 하는 민간 부채가 144.8%, 세금으로 갚아야 하는 정부부채가 82.2%입니다. 부채가 계속 불어난 결과입니다. 총부채를 기준으로 2000년에는 189.1%였는데 2018년 38%가 증가했습니다. 2010년과 비교하면 7%가 늘었습니다.

 

특히 주목해야 하는 것은 브라질, 러시아, 인도 같은 신흥개도국들의 부채입니다. 한국도 아직 이 범주에 속합니다. 2008년까지 총부채가 GDP의 95.7%였는데 2008~2009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급격히 늘기 시작해서 2018년 말에 165.1%까지 치솟았습니다. 중국이 들어 있어서 숫자가 커진 측면이 있지만 신흥국의 부채규모가 급증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위험한데 코로나 사태까지 겹쳐 신흥국들은 코로나 대응을 위해 제대로 돈을 쓰기도 어려운 지경입니다. 부채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국가부도사태를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번의 전세계적인 금융위기를 통해 많은 국가들이 고통스러운 국가부도를 경험하였습니다. 하지만 빚이 많다고 다 부도가 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부채는 신흥국보다 선진국 쪽이 더 많습니다. 일본의 국가부채는 GDP의 236%인데 국가부도 이야기는 안나옵니다. 반면 이미 8번이나 국가부도를 냈고 지금도 부도 상태에 있는 아르헨티나는 국가부채 비율이 53%에 불과합니다. 그러니까 부채액수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는 거죠. 


왜, 어떤 나라는 엄청난 부채가 있는데 멀쩡한 반면, 어떤 나라는 빚이 그리 많은 편도 아닌데 부도 위기에 처할까요. 올리비에 블랑샤르라는 경제학자가 흥미로운 판단법을 내놨습니다. 브랑샤르 박사는 IMF 수석이코노미스트를 오랫동안 역임한 실력파 거시경제학자입니다. 지금은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있습니다. 

 


블랑샤르 박사의 기준은 이렇습니다. 경제성장률이 조달금리보다 낮으면 국가부채가 위험할 수 있다. 그러나 성장률이 금리보다 높다면 부채가 크더라도 파국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라는 내용입니다. 왜 그럴까요? 아주 단순화해서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성장률이 금리보다 높을 경우 시간이 지나면서 경제규모가 성장해서 부채비율이 점점 작아지게 됩니다. 그 덕분에 부채 문제가 자동적으로 해결되는 거죠. 


그러나 성장률이 조달금리보다 낮으면 경제규모에 비해서 원리금 합친 비율이 점점 더 커지게 되어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겁니다. 현실은 이보다 훨씬 복잡하지만 일차적인 판단기준으로는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금리는 순간에 뛸 수도 있는 것이어서 블랑샤르의 기준만 믿을 수는 없는 거죠. 그래서 블랑샤르 자신도 이것을 하나의 논쟁의 주제로 삼을 만하지 않느냐고 제안했습니다. 어떠하든 선진국보다 신흥국들의 부도 위험이 높은 것은 사실입니다. 이코노미스트지가 자기들 나름의 방식으로 부채 상태를 평가한 결과에서도 이들 신흥국들이 머지않아 부도 사태가 날 가능성이 높은 위험한 나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블랑샤르의 기준이나 이코노미스트의 평가로 보면 위험한 나라가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신흥국에서 부도 사태가 발생하면 우리나라도 얼마든지 그 유탄을 맞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의 국채금리는 1.3%로 낮아져 있지만 안정된 것이 아닙니다. 2018년 2월 1일에는 이것의 두 배도 넘는 2.8%로 치솟기도 했습니다. 언제 다시 그렇게 될지 모릅니다. 지난 3월 19일 한미통화스와프를 체결하기 전까지 자본이 유출되고 환율이 급등하는 현상 기억하시죠. 이건 우리가 특별히 잘못해서가 아니라 세계 경제의 위기 상황에 유탄을 맞는거죠. 그래서 부채를 늘리는 것은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문재인 정부 이전까지 부채를 잘 관리해 왔습니다. 국가부채비율이 40%를 넘지 않게 잘 절제해왔죠. 40%에 특별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마지노선 덕분에 부채를 안전한 수준에서 관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그 선이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36%이던 국가채무비율이 급격히 증가해서 올해는 46.5%가 될 것 같아 보입니다. 그린뉴딜이니 디지털뉴딜이니 해서 수십조의 돈을 퍼붓고 있는데요. 이것이 성장률을 높인다면 다행입니다만 현재로서는 그렇게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소득주도성장이니 혁신성장이니 하며 돈을 엄청나게 퍼부었는데도 성과는 거의 없었습니다. 성장률은 계속 추락하고 빈부격차마저 악화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가 그리스를 닮아가는 것 같아 불안합니다. 그리스는 원래 재정이 건강한 나라였습니다. 1980년 국가부채비율이 20%에 불과할 정도로 국가부도와는 거리가 먼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1981년 파속(PASOK)이라는 사회주의 정당이 집권을 하면서 국가부채가 급격히 늘어나 1993년, 12년만에 100%를 넘어갑니다. 

 

그 후 EU 가입 덕분에 근근히 버티다가 2008년 세계경제위기를 맞아 국가부도사태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정부가 빚내서 돈을 쓰는데 그것이 기업의 활력을 돋우고 노동자의 생산성을 높인다면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금리를 낮게 주더라도 투자자들이 한국의 국채를 사고 싶어하는 상황으로 변해간다면 그 또한 바람직한 방향입니다. 그러나 빚내서 돈만 쓰고 기업들은 좀비가 되어 간다면, 그리고 노동자의 생산성은 떨어져간다면 큰일인거죠. 투자자들이 한국 국채를 사는게 불안해진다면 대한민국이 아르헨티나, 그리스, 브라질, 러시아처럼 되어 가는 겁니다. 그러니 눈을 부릅뜨고 살펴 봐야 합니다. 나라가 바른 길로 가도록 국민이 감시하고 잔소리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김정호(서강대 겸임교수, 김정호의 경제TV 크리에이터)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34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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