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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엔딩, 동경의 봄

여행/샤넬라송 플라워노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7. 7. 31.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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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라송 플라워노트 10]

벚꽃 엔딩, 동경의 

 

  벚꽃이 흐드러진 동경 골목길을 거닐어 보셨나요? 계절에 따라 색색들이 변하는 벚꽃들이 골목길 곳곳에 피어나는 바로 일본의 길 말입니다.

 

  플로리스트 샤넬라는 지난 3월, 봄의 시작과 함께 생애 처음으로 일본 동경에 다녀왔습니다. 일본은 꽃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다녀와야 하는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정교한 손재주로 참 아기자기하게 꽃을 가꿔내는 젠(Zen)문화, 실물을 축소한 분재술(bonsai) 등 오랜 역사 가운데 발달된 꽃문화를 가지고 있어, 그 속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랍니다. 특히 일본 특유의 절대 과하지 않은 스타일링과 단 한 송이의 꽃이라도 그만의 존재감을 가장 극대화하는 연출 기법은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처음 동경에 도착하고 마주한 꽃집은 신주쿠역 내에 있는 작은 곳이었습니다. 분주하게 오고 가는 사람들 속에 오랫동안 멈춰 선채로 누군가에게 선물할 꽃을 고르고 있는 중년 여인 옆에서 저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꽃을 구경했습니다. 봄 제철 꽃인 ‘라넌큘러스’ 화분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기가 싱그러워서, 공항을 나서자마자 매캐한 공기 때문에 지끈거리던 머리가 조금은 나아졌지요.


  일본에 있는 동안 거의 뚜벅이 신세로 하루 종일 걸어 다니곤 했었는데, 곳곳에 조성된 공원과 길가에 핀 아기자기한 식물과 꽃들 덕분에 늘 행복했답니다. 굉장히 깔끔한 거리에 놀랐고, 눈만 돌리면 보일 만큼 흔한 꽃들과 옷집부터 음식점까지 꽃과 식물을 활용한 인테리어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코너를 돌면 꽃집이 보였고, 그 안에는 꽃을 사러 온 손님들로 북적거렸습니다. 포화상태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수많은 꽃집이 생기고 없어짐을 반복하지만, 늘 불황에 가까운 한국의 플라워 업계와는 다소 상반되는 광경이었습니다.

 

< 스위트피 꽃다발을 잡는 남자플로리스트 >


  샤넬라도 여행 첫날 저녁에 한 꽃집에 들러 꽃을 사 보았습니다. 음식점 근처에 있던 지하 1층 아주 조그마한 공간에 ‘나루세’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부부가 운영하고 있는 꽃집이었습니다. 헝클어진 머리로 저를 반겨준 남자 플로리스트의 안내에 따라 꽃을 구경했습니다. 그런데 꽃의 관리 상태가 정말 깜짝 놀랄 정도로 철저했습니다. 장미 한 송이, 한 송이를 비닐 포장지로 감싸 다른 꽃들과 부딪히지 않게 냉장고에 보관하고 있었고, 색깔 별로 다양한 종류의 꽃들이 마치 무지개처럼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저의 눈길을 끈 ‘스위트피’를 연분홍색, 연보라색으로 골라 포장을 부탁드렸습니다. 여린 스위트피의 꽃잎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러운 손길로 다발을 잡아, 어울리는 리본을 고르고, 빛 고운 포장지를 골라 아기 포대기에 싸매듯이 어여쁜 모습의 꽃다발로 만들어주었습니다. 그 5분여간의 퍼포먼스를 보고, 꽃다발을 안고 나가는 저의 마음속에도 꽃에 대한 소중함이 스며들었습니다. 그리고 스위트피 꽃다발을 들고 다니는 내내 풍기는 달콤한 향에 취해 행복한 기분으로 여정을 즐길 수 있었답니다.

 

캔을 화병삼아 >


  이 꽃다발은 남은 여정까지 숙소 한편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복숭아 맛 음료수를 마시고 나서 물을 채운 뒤, 스위트피를 꽂아놓았더니 마치 제 옷을 입은 것 마냥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었습니다. 긴 하루를 보내고 숙소에 들어오면 가득 풍기는 향기와 눈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자태에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시더라고요. 사실 스위트피는 굉장히 여리고 예민한 꽃이기 때문에 조금만 춥거나 건조해도 몇 시간 만에 축 처져버리곤 합니다. 하지만 일본의 스위트피는 4일 내내 생생했고, 그 향은 나날이 짙어져 갔답니다. 그렇게 여행 내내 사랑스러운 존재감을 뽐내주던 스위트피는 그 다음 이 공간을 마주할 그 어느 사람을 위해 고이 남겨두었습니다. 여행을 간다면 꼭 한번쯤 꽃을 사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여행을 행복하고 즐겁게 만들어주고, 그만큼 오랜 기간 여운이 남아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에 오래 추억할 수 있는 그런 시간으로 만들어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일본은 참 예민한 나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를 밝은 모습으로 최선을 다해 임하는 그들의 모습, 여린 꽃 한 송이라도 소중히 여겨 그 존재감을 최고로 끌어올려 주는 자세, 그럼으로 발전해 나가는 그들만의 문화적 완성도는 분명 배워야 할 점들인 듯합니다. 동경의 꽃, 그리고 꽃을 대하는 일본 사람들의 태도는 플로리스트로서 많은 영감과 부러움을 불러일으켜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그들처럼 일상 속에 꽃을 더 가까이함으로 더 여유롭고 감사한 순간을 만끽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답니다.

 

샤넬라송 플라워 송혜승
www.shanellasong.com
카카오톡 @shanellasong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 90호 >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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