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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 열 개의 별

2022년 3월호(149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2. 3. 9.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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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 열 개의 별

 

베퇴이유의 세느강-클로드 모네(1840~1926)

 

매일 아침 SNS에서 ‘과거의 오늘’ 알람이 뜬다. 과거의 나는 터키, 스페인, 뉴질랜드, 인도네시아, 홍콩, 마닐라, 제주에 있었다. 횡으로는 불가능한 동선이 종으로는 하루에 가능하다. 놀라운 축지법이다. 오십삼 년 동안 반복했던 ‘과거의 오늘’을 모아 글을 써도 한 편의 여행기로 손색이 없을 정도다. 
클로드 모네의 그림도 매한가지다. 그 순례작만 모아도 내 마음에 열 개의 별이 뜬다. ‘그림자에도 빛이 있음’을 보여준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를 사랑하여 오르세 미술관 5층에 자리 잡은 그의 그림을 보려고 넓은 역사를 헤맸던 17년 전이 떠오른다. 가쁜 숨을 내쉬며 그림 앞에 섰을 때, 빛이 쏟아져 나왔던 순간. UFO에서 지상에 빛을 쪼이듯 빛의 물살 세례가 퍼부어졌다. 눈물이 그렁그렁했었다. 
모네의 그림은 굳이 찾아다니지 않아도 미술관에 그의 그림이 꼭 한두 점씩 전시되어 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인연이 우리를 엮어주는 기분이다. 내 눈에는 늘 그의 그림이 들어온다. 다작의 작가인데다 명성이 높아서임을 감안한다 해도 나의 미술관 순례에는 언제나 그가 동행했다. 볼로뉴 숲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 오랑주리 미술관, 모네의 정원인 지베르니, 런던 내셔널 갤러리, 네덜란드 풍차 마을 잔세스칸스 박물관, 뮌헨의 노이에 피나코텍, 나오시마 지중미술관, 북서울 미술관,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
손으로 얼추 헤아려 보아도 금방 열 손가락이 채워진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품에 안고 오데트와 스완의 사랑이 펼쳐졌던 볼로뉴 숲을 찾았다. 노숙자 텐트가 여기저기 진을 치고 있다. 성당 아래서 느긋하게 잠을 취하는 노인이 평화롭게 보여 카메라에 담았는데, 노인은 갑자기 일어나 몹시 성을 냈다. 우리도 깜짝 놀라 도망치듯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소설 속 낭만과는 거리가 먼 볼로뉴 숲에 실망할 무렵,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을 만났다. 해돋이는 물론이거니와 그의 작품이 가장 많은 개인 미술관이다. 아무 계획 없이, 300점도 더 되는 작품을 감상하는 호사를 누렸다. 그는 어이하여 손에 잡히지도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람 같이 공중에 떠다니는 빛을 캔버스에 붙잡으려고 그토록 혼신을 쏟았을까? 미완성 작품이라고 비웃음을 당하고 끝없이 살롱에서 낙선을 하면서도 그는 어떻게 자신이 추구하는 그림을 끝까지 그려냈을까? 실명이 되는 순간까지 일본식 정원을 숱하게 그리며 그것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았던 화가! 흉내 낼 수 없는 예술가 정신이 문외한인 내 마음을 어루만지고 빛으로 감싸준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는 동안은 무중력상태에 빠져 있는 기분이다. 초등학교 4학년인 둘째 아들이 그림에 빠진 엄마를 위해 채근하지 않고 곁에 있어 준다. 
오랑주리 미술관은 모네의 수련 연작이 벽면에 둘려 처져 있어 그 규모에 놀란 곳이다. 마르모탕처럼 기욤 부부도 작품을 수집한 뒤 기증하여 전시하고 있어서 별관에는 르느와르를 비롯해 세잔, 마티스, 로랑생 등 낯익은 그림들이 즐비했다. 며칠 전 오르세에서 보았던 ‘피아노 치는 여인들’이 오랑주리에도 있다고 눈 밝은 아들이 내게 말을 건넨다. 비슷한 주제로 여러 작품을 그린 듯하다. 수련의 ‘수’는 잠잘 수(睡)다. 물 ‘수(水)’가 아니라고 배웠는데 그림의 제목이 water lily다. 연못의 물과 늘어진 버드나무 잎사귀가 수련의 ‘수’보다는 물 ‘수’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콘크리트 공간을 연못으로 만들어버리는 모네의 위력에 압도된다. 위화의《허삼관 매혈기》에서 배가 고파 칭얼대는 자식들에게 온갖 음식을 이야기로 만들어 배고픔을 가시게 하듯, 붓질로 연못을 만들고 꽃들을 피워냄에 정원 속에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지베르니에는 정원사가 부지런히 장미를 가꾸고 있다. 정원사의 연봉이 7천만 원이라고 해서 내심 놀랐다(2012년 기준). 부엌에 놓인 가지각색의 조리기구는 그가 얼마나 미식가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층에서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어가면서도 끈질기게 추구한 일본식 정원이 보인다. 도랑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곳곳에 물고기도 노닐고 있다. 동네에는 아이스크림 가게도 있고, 자전거 대여하는 곳도 있고, 아담한 호텔도 있었다. 이곳은 모네로 인해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관광지가 되었다. 버스를 타고 다시 파리로 돌아오면서 다음에는 이곳에 숙소를 정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한적한 시간에 해돋이와 석양을 본다면 이 북적임에서 벗어나 호젓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듯했다. 허기가 진 우리는 한참 기다려 장터처럼 북적이는 곳에서 식사를 했다. 볼 만한 것이 많아 관광객들이 붐비겠지만, 그렇게 붐벼서는 모네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기가 어려웠다. 수제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지베르니를 떠났다.
내셔널 갤러리는 전철역에서 나오자마자 닿을 수 있다. 계단을 여러 개 올라가고 위용이 넘치는 대영박물관과 달리 문턱이 낮다. 입장료도 받지 않는다. 고흐의 해바라기도 실컷 볼 수 있다. 지하철만 타면 런던 갤러리에서 내리고 싶어진다. 세이렌의 노래처럼 기어이 나를 유혹하는 곳이다. 모네의 무심한 붓질이 툭툭 형상화되어 물 위를 떠다닌다. 중국의 풍경화만 모방하다가 우리나라의 산하를 그리기 위해 진경산수화를 추구했던 정선의 혁명적 정신처럼 모네가 그린 세느강과 템즈강, 생 라자르 역은 그림이 곧 혁명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생 라자르 역의 기차는 한복판에 놓인 검고 둔중한 물체가 두려움까지 풍긴다. 문명의 증기기관차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란 듯. 첫째 아들과 함께 간 첫 유럽 여행이라 준비가 허술했다. 런던의 상징이자 랜드마크인 ‘런던아이’도 태워주고 런던탑에서 보석도 보며 아이의 환심을 산 뒤 미술관으로 향하는 입장이라 내 생각만 할 수 없어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미술관을 나왔다.   
암스테르담의 근교 잔세스칸스는 풍차마을이다. 기차를 타고 치즈 냄새가 꼬리꼬리한 마을을 걸어갔다. 풍차박물관에는 초콜릿 공장도 있다. 그리고 거기서 뜻하지 않게 모네의 그림을 만났다. 네덜란드로 와서 그림을 그렸던 이력이 그림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문화의 중심지인 파리로만 몰려드는 풍토에서도 그는 기꺼이 근교, 지베르니로 떠나기도 하고, 네덜란드의 풍차마을로 화구를 들고 찾아오기도 했다. 그의 개척가 정신이 돋보인다. 일부러 준비해서 찾아 온 미술관이 아닌데, 그가 프랑스에서 그렸던 것과는 사뭇 다른 그림을 그려 낸 작품은 낯설고 이국적이어서 그림에 매혹되었다. 풍차로 물을 밀어내면서 육지를 확보해야 하는 숙명이, 그 끝없는 다툼이 그림 속에서 정중동의 모습으로 구현된다. 나막신, 치즈, 양을 보러 왔다가 모네 그림을 보며 눈을 씻었다. 화장실을 가겠다는 아이를 데리고 표지판을 살피니 남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제3의 성(性)인 남녀 공용화장실도 있었다. 네덜란드에 와서 놀란 부분이다. 세상에는 남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남자이면서 여자이기도 하고, 여자이면서 남자이기도 한 그런 지대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뮌헨의 피나코텍은 알테, 노이에, 데어 모데르네로 나뉘어져 그림을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 패스를 사면 한 장 값으로 세 곳을 다닐 수 있다. 워낙 방대하여 입장료 아끼려다가 숨넘어갈 뻔했다. 노이에 피나코텍에서도 모네를 보았다. 고흐의 파란색 바탕 해바라기가 유명하다 하여 그것을 찾아다니느라 모네의 그림은 일별한 것이 아쉽다. 어디서건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수련! 기품 있게 공간을 변화시킨다. 다만, 제복을 입은 관리인들이 유독 유색인에게만 여러 번 표 검사를 해서 불쾌하게 만들었다. 유색인들은 미술관을 공짜로 들어오기나 하는 것처럼 냉랭하다. 미술 선생님이 아이들을 이끌고 데생 연습을 시키는 것을 보면서, 한 점에 천문학적인 가격의 그림들을 직접 감상하고 그림을 일상적으로 그리는 것이 부러웠다. 이 아이들은 그림 속으로 드나들고 그림처럼 살겠구나 싶어서.
나오시마 지중미술관은 안도 다다오가 건축했다. 노출 콘크리트 외벽 건물을 지닌 특별한 공간이었다. 그 안에 모네, 제임스 터렐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데, 가장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모네의 그림을 감상할 때 인원수를 제한하여 충분히 그림과 대화할 시간을 확보해 준 점이다. 한가람 미술관에서 관중에 밀려 발도 제대로 붙여보지 못하고 휩쓸려 나왔던 씁쓸한 경험에 비추었을 때, 이러한 시스템이 본받을 만했다. 손톱만 한 대리석을 잔잔하게 바닥에 깔아 관람객의 발소리를 줄여주고 그림을 넋 놓고 감상해도 재촉하는 사람이 없었다. 지금까지 감상한 모네의 그림 중 그 숫자는 가장 적었으나 여운은 가장 깊게 남아 있다. 화가를 존중하면서 관람객도 그 못지않게 대접해주는 세심한 손길이 아직도 찡하다.
그리고 북서울 미술관! 합격 소식을 들고 찾아 온 고3 제자와 나들이 한 곳! 빛이란 주제로 백남준부터 데이비드 바첼러, 터너, 모네 등등 대작들이 즐비했다. 데이비드 바첼러의 라이트 박스는 아크릴판도 예술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전시였다. 그리고 모네의 센강! 그의 그림은 가슴을 환하게 밝히고 눈을 번쩍 뜨게 해준다. 형용할 수 없다. 단 한 번도 비껴가지 않는다. 빛이 쏟아져 나오고 내가 선 자리를 연못으로 강으로 다리 아래로 바꿔놓는다. 그림과 교접하는 순간이다. 
모네를 찾을 때 동행했던 사람들은 때마다 다르다. 최다 출연은 둘째 아들이다. 지금은 대학생이 되어서 친구를 더 좋아하지만 그때만 해도 내 치마꼬리를 잡고 떨어지지 않았다. 첫째 아들, 남편, 언니, 제자가 그 뒤를 잇는다. 그 순간 함께 했던 소중한 이들이 부재한다면 모네는 그때 그 느낌으로는 와 닿을 수 없다. 그러니 나의 감상과 완전히 일치되는 누군가를 만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심지어 열 번의 모네 그림을 보았던 나 자신과도 다르다.
내 마음이란 우주에 모네란 열 개의 별이 뜬다. 그 별 옆에 각각의 위성을 거느리고 또 다른 추억을 품으며 작은 별들이 유영한다. 끝이 없다. 이제 남은 나의 삶에 새로 태어날 신성과 그리고 사라질 별똥별을 떠올려 본다. 
비가 내려 축축해진 파리의 방사선 거리, 버터 향이 그윽했던 크로와상의 감칠맛. 어디선가 헤밍웨이가 굳은 얼굴로 피카소에게 시비를 걸 것만 같은 빨간 차양의 아름다운 카페는 덤이다. 
안녕, 유럽! 안녕, 나오시마! 안녕, 서울! 아, 그리고 모네! 어디선가 언제나 그랬듯 불쑥 나타나 나의 눈에서 기어이 눈물을 낼 그 사람!

 

 

의정부시 효자고등학교 교사
《그 겨울의 한 달》저자 박희정
hwson5@hanmail.net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49>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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