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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룻, 나를 ‘지휘자’의 삶으로 이끌다

2022년 3월호(149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2. 3. 10.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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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룻, 나를 ‘지휘자’의 삶으로 이끌다

 

초등학교 때부터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던 저는 학교 대표로 독창대회를 나가 곧잘 입상을 하고는 했습니다. 음악을 좋아해 피아노도 배우고 싶었지만 제가 자라던 시골에는 교회에만 피아노가 있을 정도로 흔하지 않았죠.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며 돈을 벌게 되었을 때 첫 월급을 받자마자 배우기 시작한 것이 바로 피아노였습니다. 그렇게 10년간 피아노를 배우던 중 교회에서 오케스트라 연주가 있었는데, 많은 악기 중에서도 유독 플룻 소리가 제 마음을 설레게 할 만큼 감동이 되었어요. 그날 들은 플룻의 아름다운 선율이 제 귓가에 자꾸 맴돌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결혼도 했고 늦은 나이지만, 늘 마음에 품고 있던 풀룻을 배우고 싶다는 꿈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지요. 육아와 학업을 병행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연습할 수 있는 시간도 일반 학생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부족한 상황이었지요. 그러나 남편이 많이 도와주고 지원을 해주어 너무 고마웠어요. 저보다 나이 어린 학생들과 공부를 하다 보니 경쟁심리도 있었지만, 오랜 꿈이었던 플룻을 공부할 수 있다는 설레임이 더 컸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없는 오전 시간, 남들이 자는 밤늦은 시간부터 새벽까지 피아노 학원을 대관해서 혼자 플룻 연습을 했습니다. 만학도로서 남들보다 못하면 웃음거리가 된다는 생각에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다닐 때도 항상 공부를 했지요. 그렇게 열심히 한 결과 장학금을 받으며 수석으로 졸업을 했습니다.


소리, 소리를 찾아서!
단순히 예쁜 소리가 아니라 깊은 소리, 가슴을 울리는 감동의 소리를 탐구하다 보니 대학원에 진학해 계속 공부를 하고 싶었습니다. 플룻으로 석사를 마쳐갈 즈음 마침, 한국에 왔던 가스파네 스폰티니 공립음악원의 ‘줄리아노’ 교수님의 지휘 마스터클래스를 받을 기회가 저에게 주어졌어요. 이 레슨을 통해 ‘아! 이분에게 지휘를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래서 단기간이라도 줄리아노 교수님께 지휘 레슨을 받자는 마음에 이태리로 가게 되었지요. 지휘로 박사과정을 시작하며 한국에서는 이론을, 이태리에서는 실기를 배우는 3년 과정으로 공부하는데 현재 2년째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이태리에서 하루 12시간 이상, 씨름했던 1개월
이태리에서 한 달 동안 아침 8시부터 밤 9시까지 쉬지 않고, 하루에 12시간 이상을 공부를 했던 그때는 돈과 시간이 아깝지 않을 만큼 가치가 있었죠. 
레슨을 받을 때면 혹독하게 들었던 말이 ‘강시’, ‘시체’, ‘죽어있다는 것’이었어요. “살아있는 음악을 해봐!, 너의 감정을 넣어봐!, 너 송장이니?, 강시니?, 죽어있어?”라며, 심지어 한국에 있는 지휘법 책은 다 태워버려야 한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줄리아노 교수님은 통역에게 표현할 수 있는 모든 단어로 저에게 전달하라고 했어요. 이론만 있지, 곡에 대한 이해가 없는 죽은 음악이라는 것이었어요. 한국에서는 작곡가에 대해, 곡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고 진도 나가는 것에만 집중되었던 반면, 이태리에서는 테크닉보다는 음악을 자신만의 것으로 표현하는 것에 더 중점을 두더군요. 교수님께서는 학생이 아무리 암보를 잘 해도 음악이 죽은 음악인지, 살아있는 음악인지를 바로 아시더라고요. 생명력이 없으면 암기를 잘 해 악보를 틀리지 않고 외운다 한들 무슨 감동을 줄 수 있겠냐는 뜻이었어요. 
이태리에서의 그런 혹독한 시간을 보내고 나니 이제는 감동을 줄 수 있는 음악이 뭔지, 영혼이 있는 음악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지휘를 공부하지 않았다면 음악의 깊이를 이렇게까지는 몰랐을 거예요.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테크닉적인 면에서 가르치는 경우가 많아서 감정, 영혼을 넣으라는 요구를 이태리에서처럼 받아본 적은 없었죠. 한국에서는 음악의 깊이를 생각하지 않고 틀리지 않게만 하려고 했다면, 이태리에서의 유학 이후 음악의 사상과 철학까지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음악교육의 현실과 한계
지금 우리가 처한 음악의 한계를 넘어가기 위해서는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기계적으로 악보를 대하는 태도를 바꾸고, 음 하나하나를 어떤 소리로 낼 것인지, 내가 호흡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고 소리로 표현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해요. 우리나라는 시험성적에만 급급하다 보니 빨리빨리 문화가 음악교육에도 고스란히 묻어 있죠. 그래서 음악을 대하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고, 교육자가 먼저 쉬운 곡부터 접근하면서 학생들에게 맞는 적용점을 찾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휘를 공부하게 된 이유
피아노와 플룻을 연주하던 제가 지휘를 공부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 계기는 플룻 앙상블 인원이 많아져 지휘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또 교육기관에서 아이들을 일 년 동안 잘 가르치며 공연준비를 해도 막상 공연을 할 때 새로 온 지휘자 선생님의 음악적 해석에 새롭게 맞춰야 했습니다. 지금까지 아이들과 함께 만들고 표현했던 것들과는 달리 지휘자에 따라 음악의 방향이 바뀌니 아이들도 혼란스러워 했습니다. 그래서 지휘의 필요성을 더욱 느끼게 된 것이죠.  


연주자에서 지휘자로 
연주자였을 때는 내 파트에만 집중하며 연주했는데, 지휘를 공부하니 모든 악기의 곡을 다 듣게 되고 전체를 보게 되었어요. 음악의 정의를 몸으로 느끼며 알게 되었고, 감동을 주는 음악이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개인 레슨과 플룻 앙상블, 오케스트라 모임도 하며 지휘자와 플룻 연주자로서 섬세한 소리로 다른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음악가의 길을 걷고자 합니다. 무엇보다 음악을 하는 제자들에게 본인만의 감동의 소리를 찾아갈 수 있도록 깊이 생각하는 힘을 키우려 합니다. 

 

 

경기도 의왕시 정경아
jka7031@naver.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49>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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