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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 약골, 드디어 달리기 시작하다

2022년 11월호(157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3. 3. 19.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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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 약골, 드디어 달리기 시작하다

 

 

“아이쿠~ 발목아”
출근길 내려가는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또 오른쪽 발을 삐끗했다. 이번 발목 부상도 왠지 꽤 오래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저녁이 되니 발목이 퉁퉁 붓고 걸을 때마다 통증이 온다. 회사 근처 단골병원에 들러 X레이 사진을 찍고 진찰을 받았는데 선생님의 표정이 안 좋다. “이번에는 또 어쩌다가 다치셨어요? 자꾸 이렇게 다쳐서 어떡해요.” 발목에 인대가 또 늘어나 당분간 병원에 나와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발목 때문에 9개월 동안이나 도수치료를 받고, 치료를 받는 중간에도 괜찮아졌다가 다시 다치기를 반복하니 도수치료사 선생님도 이런 환자는 처음이라고 할 정도였다. 병원 직원들도 이제는 내가 병원 입구만 들어가도 알아서 접수를 해주었다. 
발목 힘을 기르겠다고 산 마사이족 신발, 쿠션이 좋은 운동화, 발목을 잡아주는 운동화, 발목 보호대, 발 마사지기, 힘줄과 연골 강화에 좋은 건강식품 보조제, 염증 치료에 좋다는 강황가루 등 발에 쓴 돈만 해도 몇백만 원은 되었다. 거기다 9개월 동안 받은 도수치료와 병원비 약 값까지 1년간 쓴 돈을 합치면 몇 달치 월급은 훌쩍 넘었다. 

원래 발에 살이 워낙 없고, 키에 비해 발이 작고 운동신경이 둔한 편이어서 어릴 때도 발목을 잘 접질리고는 했다. 그러나 성인이 되고 회사생활을 하면서 운동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툭하면 다치기 일쑤였다. 그것도 다쳤던 오른쪽 발목 한 곳만 계속 다쳤다. 그러다 보니 구두나 샌들은 엄두도 못 내고 여름에도 늘 운동화만 신고 다녔다. 

발목에 힘을 길러보겠다고 계단운동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다가도 다치고, 심지어 발목 스트레칭을 하다가도 발을 삐니 가족들은 물론 이제는 주변 친구들과 회사 동료들까지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몇 년간을 발목 때문에 운동도 제대로 못하고, 병원만 다니다 보니 체력은 급격히 저하되고 무엇보다 만성피곤을 달고 살았다. 매일 먹는 독한 정형외과 약 때문에 위도 많이 상해 항상 속이 쓰리고 얼굴도 창백했다. 발목이 안 좋아 절뚝거리며 다니다보니 나중에는 무릎마저 삐걱거렸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가야 하나?’, ‘나는 정말 괜찮아질 수는 있는 걸까?’ 의심과 절망감에 빠지기도 했다. 공원에서 파워 워킹을 하거나 조깅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해야 하는 40대인데 벌써부터 포기할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는 다른 사람들의 처방이나 조언을 따라 운동을 하고 치료를 했다면, 이제는 내가 나를 고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매일 같이 먹던 소염제와 진통제를 제일 먼저 끊었다. 대신 몸에 좋은 야채수를 마시며 속을 달래줬다. 그리고 남들 따라 어정쩡하게 하던 운동의 수준을 확~ 낮추었다. 발끝으로 서기, 한발로 버티기, 벽에 기대서 스쿼트 하기, 의자에 앉아 무릎 뻗기 등 재활운동에 들어갔다. 그렇게 3~4개월을 하니 발목이 확실히 좋아하지는 게 느껴졌다. 물론 중간 중간 다치기도 해서 병원에도 가야 했지만, 확실히 나아지고 있었다. 때로는 격렬하게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부러웠지만 섣불리 무리해서 달리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수준에서 조금씩 페이스를 올렸다. 중요한 것은 다친 부위들을 치료하고 서서히 체력을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그러다 올해 봄이 되며 라이딩을 하는 동료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초반부터 뒤쳐져 혼자 다니고,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다치기 일쑤였던 내가, 끝까지 함께 동행하리라 기대했던 사람은 나를 포함, 단 한 명도 없었다. 늘 혼자 되돌아오던 안양에서 한강 합수부길 54km를 놀랍게도 맨 꼴찌이기는 했지만 동료들을 따라갈 수 있었다. 일주일에 3번씩 평일에는 1시간, 주말에는 3~4시간씩 자전거를 타면서 다리에 근육이 생기니 발목도 예전처럼 쉽게 다치지 않았다. 
운동하기 전에는 부상을 예방하기 위해 근육테이프도 붙이고, 운동 후에는 스트레칭으로 뭉친 근육을 꼭 풀어주었다. 그동안 맨날 다치기만 한다고 내 발목을 미워하고, 치료는 하지만 마음속으로 불만을 가지고 학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몸에 대한 감사한 마음 없이 발목의 상태는 살피지 않고 무조건 원하는 만큼 쓰려고만 했던 것이다. 

체력이 어느 정도 올라오자 오랜 로망이었던 달리기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서서히 올라왔다. 처음 목표는 빨리 달리기보다 부상 없이 쉬지 않고 꾸준히 달리는 것이었다. 기록은 아쉬웠지만 완주를 했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괜한 욕심을 부리다 만성 부상에 시달렸던 것을 생각하니 끔찍했다. 다치지 않는 것이 기록보다 더 중요했다. 7.3km를 달릴 때는 페이스를 조금 더 올리고 힘든 언덕코스를 먼저 달리고 평지를 나중에 뛰는 것으로 나름대로 전략을 짜고 달리기 시작했다. 속도를 늦추면 다시 끌어올리기 힘들 것 같아 처음 페이스를 계속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네가 할 수 있다고?” 운동을 할 때마다 항상 크게 들려왔던 의심과 비웃음의 소리가 또 들려왔다. “시끄러, 나도 할 수 있어. 해낼 거야.” 달리면서 크게 확 소리를 지르니 비웃음이 한풀 꺾여 저~만치 도망갔다. 만회 할 기회를 엿보면서 잠시 딴 생각을 하다 보니 속도가 많이 떨어졌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마지막 스피드를 내고 골인지점으로 달려오니 어? 내가 세 번째로 일찍 들어온 것이 아니겠는가? “네가 웬일이야?”, “너 코스 다 돈 것 맞아? 어디 빼먹었지?” 믿기지 않는다는 동료들이 웃으며 놀렸다. 이런 결과를 내다니 나도 얼떨떨하지만 뿌듯했다. 체력이 좋아지면서 땀도 많이 흘리고, 힘도 세져서 무거운 짐도 쑥쑥~ 알아서 드니 주변 사람들도 놀란다. 

앞으로 근력운동을 더욱 체계적으로 해서 몸을 더 강하게 만들 계획이다. 발목 뿐 아니라 아직 완쾌하지 않는 왼쪽 무릎도 더 강화시켜야 한다. 올 가을 춘천 마라톤에서 하프마라톤 21.095km를 완주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늘 몸이 약하고, 툭하고 다치기 일쑤였던 분들이 계시다면, 우리 같이 해보자고 응원하고 싶다. 마음의 새로운 결심을 할 때, 실망시키는 말들, 심지어 조롱하는 사람들마저 생기지만 그런 일조차도 당연시 여기고, 무시하자고. 중요한 것은 한 단계씩 성장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거의 5년 동안 제대로 된 운동을 하지 못하고, 달리기는 엄두도 못 냈던 최강 약골이었던 나도 근육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서울 금천구 최인혜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57>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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