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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4000km 유럽 출장기(2)

2023년 1월호(159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3. 6. 24.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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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4000km 
유럽 출장기(2)

자꾸 의심하게 만드는 유럽의 네비
독일에서 네덜란드로 들어와 고속도로로 달리며 네이게이션을 세팅했습니다. 암스테르담 외곽에서도 30km의 거리가 나오더라고요. 이쯤 되니 또 네비게이션이 의심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전시장은 암스테르담시 외곽으로 알고 있는데 시내 중심가로 안내를 하고 있었죠. 아니나 다를까 역시… 도착한 곳은 큰 교회 건물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엑스포를 하는 것일까요? 이곳이 전시장일리는 만무하고, 다시 시 외곽의 임의의 주소를 찾아 차를 몰고 달렸습니다. 그랬더니 스키폴 공항 서쪽에 위치한 큰 벌판 한 가운데 덩그러니 온실 같은 곳이 나타났습니다. 다시 여기가 전시장인가 의심이 들 정도였죠. 보통 코엑스나 킨텍스 같은 컨벤션 센터 하면 생각나는 이미지가 있는데 이곳은 그런 곳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우리나라나 동아시아 3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곳에 전시장이 덩그러니 있었습니다. 아무튼 전시장으로 진입, 짐을 대략 풀었습니다. 저녁 8시가 넘어가니 빨리 나가라고 재촉을 하더군요. 그래서 세팅은 내일 하기로 하고 일단 철수를 했습니다. 

세계를 주름잡았던 네덜란드
늦은 저녁이라 제대로 식사도 못하고 고속도로에서 간단히 먹은 후, 숙소로 향했습니다. 이번에도 또 네비가 이상한 곳으로 알려주길래 이제부터는 감각적으로 찾기 시작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찾은 숙소는 아주 오래된 건물이었지만 실내는 산뜻하게 장식한 네덜란드식 숙소였죠. 한국에서 싸 온 간편식을 데워 저녁을 해결했는데, 마실 물이 없어 차를 타고 20여 km를 달려 고속도로 휴게소 같은 곳에서 물을 샀습니다. 한국적 상황에서는 이렇게 물을 사야하나 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지만, 이곳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부근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전시장으로 출발 전 잠시 드론으로 주변을 촬영했는데 정말 멋진 곳이었습니다. 호수 주변은 길게 뻗은 작은 항구들(?)로 가득한 곳인데 요트 선착장이 있고, 그것들이 길게 뻗어 있어 선착장과 집들도 같이 있는… 이곳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호수에서 배로 출발해 운하를 따라 암스테르담까지 갈 수 있고, 다시 암스테르담에서 바다로 나갈 수 있는 그런 수로 시스템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내륙으로 고속도로와 철도가 발달한 반면 저지대인 네덜란드는 해수면보다 낮은 지형으로 물이 들어온 것을 이용해 이렇게 배를 타며 항해하는 해양민족이 되었던 거죠. 이들은 이미 대항해 시대가 시작된 이후, 지중해 시대가 막을 내릴 때쯤, 세계를 제패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로 나갔고 우리가 잘 아는 임진왜란 이후, 1640년경 동인도회사를 세워 일본과 본격적인 무역을 할 정도로 항해술과 무역, 상업에 탁월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네덜란드 화가 반고흐 작품 중에 일본풍의 작품들이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암스테르담에서 3일간, ‘Wolrd of eMobility’ 전시회를 했습니다. 규모의 중국, 기술의 대만, 최고급의 독일, 그런 전시회에 비하면 규모가 보잘것 없었지만, 2025년부터 내연기관 금지라는 강수를 두고 전 세계를 리드해나가는 상징적인 곳이었습니다. 전시회 첫날 저녁 모처럼 시간을 내어 암스테르담 시내를 방문하기로 했었죠. 구 시가지를 방문했는데 말로만 듣던 운하들과 운하들 사이로 집들이 가득하고 수많은 개인 배들이 오가는 곳이었어요. 그리고 자전거! 이곳은 자전거 천국이었습니다. 유명브랜드의 전기자전거가 도로를 질주하고, 무심히 도로변 자전거 주차장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물론 그 자전거는 도난방지로 유명한 제품이긴 했지요. 구 시가에서는 자동차보다 자전거가 더 많고, 전차로 이동하며, 운하를 따라 배를 타는, 어찌보면 2025년에 내연기관차를 사지 못하더라도 살아갈 수 있는 곳 같았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한국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커다란 대형 창을 달아놓아 집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집을 보았습니다. 얇은 커튼조차 없는 투명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사는 곳 같았죠. 이곳이 말로만 듣던 네덜란드 목사님의 집이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이리 생각한 이유는 그 지역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 10년 이상 공부해야 겨우 될 수 있는, 그리고 삶이 모든 사람에게 투명하게 공개되어도 거리낌이 없는 인재가 목사가 되는 곳이 이곳 네덜란드라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분들로부터 배움을 받아 한 때는 세계를 주름잡던 시절도 있었던 네덜란드였던 것 같습니다.

 

전시회 이틀째 날에는 네덜란드 소형전기차 업체와 미팅을 했습니다. 수소연료전지 파워트레인에 급 관심을 가지면서 급기야 저녁초대를 받기까지 했었죠. 네덜란드 사장은 한 친구를 데리고 왔는데 네덜란드 한국통 사람이었습니다. 암투병으로 고생을 많이 했고 지금 겨우 활동하고 있는데 한국에서 꽤 오랜 기간 근무를 하였고 심지어 북한도 방문 해봤을 정도로 한국통이었죠. 아무래도 네덜란드 업체에서는 저희가 어떤 업체인지 파악하기 위해 이 친구를 데려온 모양이었습니다. 아무튼 한국통인 네덜란드 사람은 저희를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비즈니스를 해보자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라인강을 따라 남쪽 알프스 산맥으로
전시회 마지막 날은 점심쯤 짐을 싸서 전시장을 나왔습니다. 그날 700km를 달려 독일 현지 엔지니어가 사는 독일 남부까지 가야만 했습니다. 이번에도 제가 네덜란드에서 독일로 넘어가는 운전 차례가 되었습니다. 한참을 달리니 거대한 산림지역이 나타났어요. 우리나라는 큰 산들 사이에 숲이 우거지는데, 이곳은 지평선이 보이는 넓은 평야 지역에 뜬금없이 숲이 빽빽이 들어서 있었던 것입니다. 지도를 보니 네덜란드의 아른헴(Arnhem) 지역이었습니다. 2차대전 전쟁영화를 많이 봐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 숲을 중심으로 2차대전 초기 독일군의 프랑스 진격과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마켓가든 작전, 아른헴해방작전과 벌지 전투까지 다양한 전투가 이곳과 주변에서 일어났습니다. 특히 파리나 런던에서 육로로 베를린까지 가는 길목이며, 독일 입장에서도 벨기에와 파리로 가는 길목으로 이곳을 통과할 수밖에 없는 지역이었죠. 그래서 작전상 중요한 지역이었던 것입니다.‘밴드 오브 브라더스’라는 드라마에서 한 미군 소대장이 아른헴 숲속 참호 속에서 한 대사가 생각이 나네요. 소대장이 말하길 “심지어 이곳은 게르만족들이 로마제국으로 침투하던 길목이었다.”라는 대사를 하며 자신들의 처지를 한탄하는 곳이었습니다. 나중에 이곳을 시간 내어 방문한다면 꼭 둘러보고 싶은 곳이기도 합니다. 


4일 전 다시 왔던 길을 되짚어 프랑크푸르트를 지나 슈투트가르트, 그리고 빌링엔-슈베닝엔까지 달렸습니다. 고속도로 저 멀리 오른쪽에는 라인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 강은 북으로 흘러 네덜란드에 도착, 발강이 되어 북해로 흐릅니다. 이 라인강의 발원지는 스위스의 알프스산맥이 되겠지요. 고속도로는 아우토반, 속도가 무제한이라 알고들 계시지만 완전 무제한은 아닙니다. 구간별로 속도표시가 있습니다. 물론 속도표시가 없는 곳에서 시속 160km에 1차로를 달려도 뒤에서 쌍라이트를 맞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네비는 엉망인 이 자동차는 나름 성능 좋은 볼보의 피가 흐르는 길리(지리)자동차였습니다. 중국 기반 자동차라 하루 운행거리 제한이 없어 이번 여행의 동반자가 되었죠. 게다가 반자율주행이라 처음에는 기능을 알지 못해 사용하지 못했으나 며칠 지나고 나니 사용법이 익숙해져 운전대에 매달려만 있으면 거의 자동으로 운전을 해서 덜 피곤하더군요. 이 정도 장거리 운전할 일이 또 있을까, 생각하지만 탐나는 기능이긴 했습니다. 


독일 북부에서 남부로 달릴수록 구릉지가 생기더니 높은 산들이 하나, 둘씩 나왔습니다. 점점 알프스 산맥이 가까워진다는 얘기겠죠. 건축양식도 점점 고풍스러워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거대한 성당들도 많이 나오고요. 유럽의 북부로 갈수록 종교개혁이후 개혁교회들이 많이 등장해 거대한 성당건물은 보기 힘든 곳이 많으나, 남부로 갈수록 로마 카톨릭의 영향을 받은 옛스런 형태의 마을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빌링엔-슈베닝엔은 두 도시가 합쳐져서 하나의 이름의 도시가 된 곳으로 자동차 부품 및 전자부품으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서쪽으로 50km 정도 가면 프랑스 국경의 환경도시로 유명한 프라이부르크가 있고요. 남쪽으로 50km 정도가면 스위스 국경이 있는 도시입니다. 시내 중심에는 우리나라식으로 말하자면 읍성이 위치한 곳으로 성곽으로 둘러 쌓여있는, 옛 마을이 그대로 보존된 곳이었습니다. 시내 중심부는 외곽만 차량 진입이 가능하며, 내부에는 정말 자전거 같은 것들만 들어갈 수 있도록 되어 있고, 도로에는 진입금지 봉들이 올라와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회사에서 제품 소개 시 항상 하는 말로, 이제 너희는 유럽에서의 법이 골목에 차를 댈 수 없게 했으니 물건배송은 이제 ‘카고바이크’로 해야 한다고 설명했는데, 막상 많은 짐을 들고 차에서 내려 시내로 걸어가려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습니다. 저희는 숙소에 너무 늦게 11시쯤 도착해 카운터에 직원이 없는 호텔에서 우여곡절 끝에 열쇠를 받아 겨우 하루 밤을 묵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날이 밝은 빌링엔-슈베닝엔은 제가 보았던 독일 여타 도시들의 현대식 건물들이 즐비한 곳이 아닌,‘정말 유럽이구나’를 느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여행으로 왔다면 구석구석 하나하나 보고 싶었지만, 바로 이탈리아 출장 준비와 전략 미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너무 아쉬웠습니다.

이번 글에서도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방문하지 못했네요. 다음호에 마지막으로 스위스와 이탈리아 출장에 대해 써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린휠 최승호
ceo@greenwheel.kr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59>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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