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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싱에 스매싱 당한 날

2023년 4월호(162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3. 12. 29.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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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싱스매싱 당한 날

 

미끼
‘엄마~ 나 폰 액정 깨져서 수리 맡기고 임시번호로 문자하고 있어요. 답장 주세요.’
이 문자 하나로 모든 일은 시작되었다.
“으잉? 이게 뭐야? 조심 좀 하지. 얘는 또~~ 지난달에 폰 떨어뜨려서 수리하더니 왜 또 고장 냈대”
그렇게 주고받기 시작한 문자. 
고장 난 폰을 수리하는데 드는 보험비를 내 통장으로 대신 청구하기 위해 나의 통장 번호와 비밀번호, 그리고 신분증이 필요하단다. 컴퓨터를 전공한 딸이라 그런지, 평소에도 기계나 인터넷과 관련된 것들은 물어보면 워낙 알아서 다 챙기고 척척 박사처럼 해주니, 이번에도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거니 하고 방심한 채 요구하는 정보는 다 불러주고 신분증도 사진 찍어서 보냈다. 내 스마트폰에 설치하라는 것도 다 설치하고…
‘엄마 폰으로 필요한 거 하느라 시간이 좀 걸리니까 폰 끄지도 말고 그냥 놔두세요~’
그 문자를 마지막으로 난 집안일을 이어갔다.

 



악몽
그렇게 2~3시간쯤 흘렀을까? “따르릉~” 집 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여보세요. 여기 OO은행인데요”
‘응? 뭐지? 갑자기 OO은행? 이거 은행을 사칭한 피싱 사기 전화 아니야?’
“고객님 지금 피싱 사기 당하고 계신 것 같아요. 스마트폰의 인터넷을 빨리 끊으세요!”
“네? 뭐라고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었던 거지?? 갑자기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되어 허둥지둥 스마트폰을 들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스마트폰은 나도 모르는 새 무음모드로 바뀌어 있었고, 인터넷을 끊으려고 상단의 메뉴를 끌어 당겼는데 와이파이를 끄는 버튼과 데이터를 차단하는 버튼이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어떻게든 와이파이와 5G데이터를 끄기 위해 스마트폰을 막 찾아보려고 윗부분을 당겼는데 자동으로 윗부분 창이 닫히는 게 아닌가? 뭐지? 왜 스마트폰 화면이 마음대로 움직이는 거야! 끌어당기면 없어지고, 또 끌어당기면 또 없어지고! 전원이라도 꺼야겠다 싶어서 전원버튼을 꾹 눌러서 종료버튼을 누를라치면 또 그 화면마저 사라져버렸다.  
“이거 데이터를 차단하는 버튼도 안보이고, 스마트폰을 끌 수도 없어요! 어떻게 해요~”
“집안에 다른 사람 없이 혼자 계세요? 지금 당황하셔서 안 되시는 것 같으니 차분히 다시 해보세요!”
그렇게 시작된 내 스마트폰 화면 위에서의 해커와 숨바꼭질. 몇 차례나 화면을 조작하려고 시도한 후에야 간신히 전원을 끌 수 있었다.


멍…
지금 나 뭐한 거지? 손이 떨리고 심장이 벌렁거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제야 딸내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OO야… 나 어떻게 하지… 피싱을 당한 것 같아”
귀신에 홀린 것 같았다. 뉴스에 액정이 고장 났다는 이유의 보이스피싱 기사가 나오면‘아니 저 수법이 언제 적 것인데, 아직도 저런 것에 당하는 사람들이 있네~’하고 생각했었는데 그것에 내가 당하다니… 생각해보면 뭔가 미심쩍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는데 왜 난 그걸 끝까지 의심하지 않은 걸까? 우리 딸이 나한테 존댓말을 쓸 리도 없고, 문자로 그렇게 많은 정보를 요구할리도 없고… 시간이 왜 이렇게 오래 걸릴까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왜 그 쉬운 전화 한 통화로 확인조차 하지 않았을까?

 

 


탈진
딸이 집에 와서 내 스마트폰에 설치된 이상한 프로그램들을 다 지워주고 나서야 그때부터 내 정신을 차리고 뒷수습을 시작했다.
OO은행에서 걸려온 전화로 중간에 중단하긴 했지만 통장내역을 조회 해보니 벌써 많은 돈이 지방은행의 전혀 모르는 계좌로 몇십만 원씩 수 십 차례 빠져나가 버렸다. 
범행을 저지르는 동안 방해받지 않으려고 핸드폰의 모든 알림도 다 꺼놓고 벨소리도 무음모드로 바꿔놓고, 잠금 화면의 비밀번호를 설정해놓았던 것도 다 없어져있었다. 아니 그런데 주고 받았던 문자가 어디 갔지? 이미 내 스마트폰을 그놈들이 마음대로 조작했기에, 증거를 없애려고 문자도 삭제해버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다음날 경찰서에 가서 신고를 하려 했는데 그것 또한 보통일이 아니었다. 모든 증거를 내가 다 수집해서 제출해야, 그때서야 경찰이 수사를 시작하는 것이란다. 피싱을 당했다는 결정적인 증거인 문자는 이미 삭제되어서 증명할 수 없었고, 내 모든 통장에서 빠져나간 내역들의 입출금 거래내역서도 은행별로 모두 다 준비해야했다. 통신사와 휴대폰 제조사의 AS센터에 가서 어떻게든 문자내역을 복구해보려 했지만 이래서 안된다, 저래서 안된다는 말만 듣고 결국은 사설 휴대폰 수리점에 맡기는 방법까지 찾아보았지만 문자를 복구하는 것은 실패해버렸다. 그래도 경찰에 꼭 범인을 잡아달라고 신고해놓고, 은행에 방문해서 알아보니 마이너스 통장에서 출금 가능한 금액을 모두 인출했을 뿐 아니라, 있는지도 몰랐던 휴면계좌를 이용해서 대출까지 받아 300만원이나 빼간 것을 추가로 발견했다. 아니! 대출이 이렇게 간단해? 대출을 이렇게 쉽게 해주면 어떻게 하냐고 은행에 따졌지만 기본적으로 신분증과 스마트폰이 있으면 비대면으로 대출이 가능해서 어쩔 수 없단다. 내 신분증과 스마트폰 관리를 못한 내 잘못이니…
그놈들이 인출해서 입금한 지방은행의 계좌를 신고하여 지급정지를 신청하고, 구글에 소액결제 해 놓은 것도 모두 신고하고, 신분증도 재발급하고, 그뿐 아니라 경찰서에서 안내 받은 대로 명의가 도용된 것은 없는지 알아보니 내 명의를 도용해서 알뜰폰으로 핸드폰을 세 대나 개통한 사실을 새로 알게 되었다. 모든 걸 다 해지신청 하고(아이고 머리야…) 핸드폰에 설치된 이상한 프로그램을 딸이 다 지워주긴 했지만 그래도 찜찜해서 휴대폰도 새로 바꿨다. 
하아~ 힘들다. 일주일 이상의 내 시간을 소비해버렸다. 

흉터
나의 불편함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인터넷뱅킹과 스마트뱅킹은 해커에게 또 악용될까봐 며칠간 정지되어서 나조차도 사용할 수 없었고, 내 신분증이 도용될 수 있기에 한동안 내 신분증이나 스마트폰으로 나 자신임을 증명하는 본인인증도 쓸 수가 없었다. 경찰에 피싱 당한 사실을 신고했더니 내 명의의 모든 은행계좌에서 현금출금이 정지되어서 며칠간 인터넷뱅킹이나 폰뱅킹으로는 꼭 필요한 계좌이체도 하지 못하고, 내가 필요한 현금을 찾기 위해 직접 은행에 방문해야했다. 그리고 핸드폰으로 오는 모든 카카오톡 알림과 문자를 하나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아… 피싱이 돈만 잃어버리는 게 아니었구나!

나름 똑 부러진다는 말을 들었던 나는 사기를 안 당할 줄 알았는데, 막상 피싱 사기를 실제로 당하고 보니 금전적인 피해도 문제였지만 그 이후 처리과정이 너무 힘들었다. 경찰서와 은행들을 돌아다니며 요구하는 모든 자료들을 준비하고, 연관된 모든 곳에 전화를 하고, 플레이스토어 때문에 피해를 본 구글 같은 해외기업에 필요하다고 하는 자료를 모두 준비해 이메일까지 보내고 했지만 정작 범인을 잡아서 대가를 치르게 했다거나, 내 피해본 금액들을 돌려받았다거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 피해보상을 받지는 못하더라도 그 범인이 다른 사람에게 또 다른 피해를 주지 못하게 막을 수만 있었더라도 좋았을 텐데, 이도저도 아니게 끝나버리는 것이 너무 무기력하고 허무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심리적으로 낯선 문자를 보면 호기심을 가지고 이게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 것보다 일단 경계부터 하고 무조건 의심을 하는 것이 더 심각했다. 내 밑바닥의 기본 신뢰 자체에 금이 가버린 느낌이었다. 이렇게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 자체를 불신사회로 만들고 인간관계의 가장 기본인 신뢰를 못하게 만드는 범죄는 정말 그 형벌을 강력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 

 

경기도 군포시 김은희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62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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