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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지통(幻想肢痛)을 아시나요?

뇌과학 & IT/IT & 뇌과학 스토리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8. 1. 28.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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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이야기 6] 

환상지통(幻想肢痛)을 아시나요?


  최근 한 신문에서 AR(Augmented Reality, 증강현실)기술로 ‘환상지통’의 극복을 돕는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았습니다. 사고나 질병으로 팔이나 다리를 잃은 사람들이 심각한 통증을 호소하곤 하는데, 절단된 부분이 아직도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면서 마치 그 부위에 통증이 오는 것처럼 느낀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내 몸에서 없어진 내 머리 속의 가상의 부위에서 오는 고통이라고 해서 환상지통(幻想肢痛)이라고 합니다. 팔과 다리를 잃은 환자의 80% 이상이 이런 고통을 겪지만 그동안 정신병적인 원인으로 여겨져 치료법이 딱히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신경 과학자인 라마찬드란(V.S. Ramachandran) 박사가 1999년「뇌의 유령, Phantoms in the brain: Probing Mysteries of the Human Mind」이란 책을 내놓으면서 환상지통의 실체가 좀 더 명확하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얼굴을 긁으면 손가락이 시원해?

  책에는 기괴한 신경계 장애가 있는 환자들의 사례가 소개되었습니다. 한 환자가 잘려나간 손가락 부위의 가려움을 느끼고 그 잘려나간 부위로 우연히 얼굴을 긁으니 가려운 부위에 시원함을 느끼게 된 기이한 현상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환자들이 이런 다양한 현상들을 경험해왔지만 정신병자라고 취급될까봐 숨겨왔고, 증상이 심해 의사에게 강하게 어필해도 의사들은 외부 충격에 의해 발생하는 정신적인 이상으로만 여기고 환자들에게 명확한 설명과 치료법을 제시할 수 없었습니다. 초기 의사들은 이런 현상을 잘려나간 부위에 대한 환자들의 간절한 바람의 결과라고만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잘려나간 팔 부위의 신경말단부위가 팔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신호를 계속 뇌 쪽으로 보내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는 주장이 가장 단순하고 쉽게 설명할 수 있다는 이유로 최근까지 많은 의사들의 지지를 받아왔습니다.


뇌 속 신체 이미지의 변화

  하지만 라마찬드라 박사는 연구를 통해 이 현상의 원인을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 뇌의 두정엽 부근에는 감각신경과 운동신경이 모여 있는 부분이 있는데, 이 신경들은 우리 몸의 각 기관들(손, 발, 몸통, 얼굴, 입술, 혀, 발, 다리 등)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1951년 신경외과 의사였던 펜필드(W. Penfield)에 의해 이런 기관들의 지도인 신체 이미지(body image)가 공개되었고, 척추동물은 대개 이런 특징들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라마찬드란 박사는 이 기괴한 환자의 뇌의 두정엽 부근을 자기공명 영상으로 촬영해 본 결과, 잘려나간 손가락의 신경부위가 인접한 얼굴의 신경부위를 침범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즉, 원래 환자의 뇌는 손이 닿았을 때 손으로부터의 감각신호를 인지하였는데, 이러한 뇌 감각신경의 영역침범으로 인해 얼굴을 접촉하는 경우에도 손이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뇌가 믿은 겁니다. 이렇게 뇌가 속임을 당하고 있기 때문에 감각이 손에서 오는 것처럼 느끼게 됩니다. 이렇듯 통증은 다른 감각적 경험과 마찬가지로 뇌 구성의 착각으로부터도 올 수 있습니다. 이제까지는 뇌 속의 신체 이미지는 한번 형성되면 고정적인 것으로 생각해왔는데, 이런 전제가 무너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 몸은 환각상태인 뇌가 재구성한 결과물

  더 놀라운 사실이 또 다른 환자에 의해서 밝혀지게 되는데, 팔이 잘려나간 지 48시간도 채 되지 않아서, 신경부위의 새로운 연결이 일어난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겁니다. 그것도 인접한 부위가 아닌 멀리 떨어진 부위로 말입니다. 이와 같은 신체 이미지의 재구성은 이제껏 의학지식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한 부분입니다. 이것 또한 외부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기이한, 소위 ‘뇌신경의 가소성’을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습니다. 라마찬드란 박사는 우리의 신체 이미지, 감각, 통증 등의 경험은 우리가 세상에서 생존하는 데 필요한 형태의 신체지도로 구성되는데, 아마도 우리는 실제가 아닌 일종의 환각(illusion) 상태에 있으며 이것을 뇌가 인식하는 것일 수 있다라고 주장합니다. 즉, 우리의 몸은 유령이며, 뇌가 단순 편의에 따라 일시적으로 구성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거울에 속는 뇌

  라마찬드란 박사는 팔이 잘려나가기 전에 학습을 통해 뇌의 신체이미지가 구성되었으므로, 다시 학습을 함으로 뇌를 속이면 통증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간단한 거울속임수를 사용해서 환자들의 ‘환상지통’을 치료하였습니다. 이런 거울속임수를 통해서 뇌가 얼마나 과거에 학습한 것과 지금 눈으로 보며 경험하는 것을 비교하며 또 의지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뇌는 컴컴한 두개골 속에 갇혀서 오감을 통해 들어오는 감각을 센싱(sensing)하며 외부세계와 소통합니다. 그 소통이 바로 신경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뇌는 철저하게 감각적, 경험적, 과거지향적인 실체인 셈입니다. 



본 고로 믿느냐?

  신약성서에 보면 예수가 한 제자에게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했습니다. 그 제자는 스승에 대해서 “내가 눈으로 보고 직접 경험해 봐야 믿겠다”라고 끝까지 우겼지요. 보고 느끼고 경험되어야 믿는 것은 이 제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뇌를 가진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일 것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믿는다’라고 하는 믿음은 감각과 경험을 의지한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뇌의 차원을 넘어서서 믿는 믿음’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성서에서 얘기하는 감각이나 경험과 상관없이 절대적 가치를 믿는, 그래서 수많은 사람이 영원한 가치있는 삶을 이루었던 믿음과, 경험을 통해서 확인되어야만 믿는 상대적인 변화무쌍한 믿음이 얼마나 다른가를 뇌과학의 사례를 통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또 다른 환상지통의 시대

  뉴스 기사에서처럼 AR(증강현실)기술이나 VR(가상현실)기기를 사용하면, 양쪽의 팔이나 다리가 절단된 환자라 할지라도 ‘환상지통’의 치료가 가능하다 합니다. 이런 기술이 환자의 치료 등 긍정적인 목적으로 사용될 수도 있지만,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다양한 가상기술의 발달로 오감을 대신하는 기술들이 개발되어질 때, 우리의 뇌는 쉽게 그 가상에서 얻은 감각과 경험을 현실로 여기게 되고, 더 나아가 그런 가상현실에 맞게 뇌가 재구성되어 버린다는, 무시무시한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런 변형된 뇌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룰 미래의 사회를 생각할 때 매우 암울해 집니다.

  특히 우리는 ‘산만한 감각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오감을 자극하여 유혹하는 수많은 기술, 제품, 서비스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그것을 철저히 점검하고 인간을 쇠락하게 만드는 부정적인 것에 저항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어느 하나도 집중하기 어려운 산만한 삶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렇게 격변하는 주위의 환경에 아무 점검도 하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수동적으로 맞추어서 산다면, 점점 더 감각과 본능만에 충실한 동물적 삶을 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결국 그 환경에 맞게 우리 속의 뇌조차도 재구성되어 우리는 점점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상실할 위험에 처할 것입니다. 영화 월E(WALL-E)에서처럼 중독에 빠져서 개인셔틀 없이는 비대해진 몸을 자기 혼자 힘으로 가누지도 못하는 추한 인간의 모습이 곧 우리의 현실이 될 수도 있겠지요. 이렇게 되면 우리는 결국 인간성 상실로 인한 또 다른 ‘환상지통’ 속에 살아가는 미래를 만들지도 모릅니다. 



추광재

iryatyahweh@gmail.com

010-9018-0225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 87호 >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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