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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알리는 꽃 노루귀(破雪草)

2018년 2월호(제100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8. 3. 4.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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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해설사 이야기 17]

봄을 알리는 꽃 노루귀(破雪草)


  꽃샘바람이 불어올 때쯤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은 긴 동면에서 하품을 하며 깨어날 준비를 하고, 계절의 전령사인 야생화들은 언 땅을 헤치면서 싹을 틔울 준비로 바쁩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땅속의 소리를 들어보면 땅의 기지개 소리와 잠자던 씨앗들의 기상과 겨우내 움츠리고 있었던 뿌리들이 발을 뻗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복수초, 현호색, 바람꽃, 노루귀등과 같이 키 작고 부지런한 식물인 충매화(蟲媒花)들은 아직도 잔설이 분분한데 추위를 무릅쓰고 꽃을 피우기 위해 가녀린 고개를 내밀죠.   


  이 가녀린 꽃들이 이토록 부지런히 꽃을 피우는 이유는 숲이 우거지면 나뭇잎에 가려 광합성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곤충들의 눈에 띄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랍니다. 이 작은 꽃들의 소망은 튼실한 후손들을 널리널리 퍼트리는 것이에요. 그래서 큰 나무들의 잎으로 숲이 우거지기 전에 일찍 꽃을 피우는 것입니다. 이렇게 꽃을 피우는 야생화들은 사진작가들의 훌륭한 소재가 되기도 합니다. 특히 봄에 일찍 꽃을 피우는 노루귀는 사진작가들이 애호하는 꽃이랍니다. 가녀리고 긴 꽃대와 엄지 손톱만한 꽃은 흰색, 자주분홍색 등 여러 색깔로 피는데요. 바람에 흔들리는 꽃을 보고 있으면 가엽기도 하고 애잔하여 보호해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을 불러일으킨답니다.


  꽃대와 잎에 유난히 많은 솜털을 가지고 있는 노루귀는 우리나라의 산지와 습기가 많은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꽃샘바람을 헤치고 눈 쌓인 바위틈에서 작은 꽃망울을 터뜨리기 때문에 ‘파설초’(破雪草)라고도 불리어집니다. 꽃을 먼저 피우고 수북이 올라오는 잎들이 노루의 귀와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노루귀’지요. 그 노루귀에는 이런 전설이 있답니다.


  수원 봉담 분천리에 있는 노루고개에는 ‘노루귀’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옛날, 이곳에는 나무꾼 함평 이씨가 살고 있었습니다. 나무를 내다 팔아도 가난을 면할 길이 없었던 그였지만 착한 마음과 부모를 공양하는 지극한 효심에 동네사람들에게는 인심을 얻고 있었답니다. 꽃샘바람이 유난스럽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산에서 나무를 하던 그에게 노루 한 마리가 헐레벌떡 달려와 그가 해 놓은 나무더미 속으로 숨어 들어갔습니다. 뒤이어 총을 든 포수가 달려왔습니다. 숨을 몰아쉬며 포수는 나무꾼에게 도망가는 노루를 보지 못했느냐며 물었어요. 이씨는 그제야 사태를 파악하고 모른다고 시치미를 뚝 떼었답니다. 이씨 덕분에 목숨을 건진 노루는 머리를 끄덕이며 고맙다고 인사를 하더니 그의 옷자락을 물고 자꾸 이끄는 게 아니겠어요. 이씨는 이상한 일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노루가 이끄는 곳으로 따라갔습니다. 산 중턱 양지바른 곳에 이르자 노루는 멈추어 섰고 앞발을 들어 땅을 치더니 드러눕는 시늉을 했습니다.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노루는 똑같은 몸짓을 몇 번이고 반복했습니다. 그 광경을 한참을 바라보던 이씨는 노루의 몸짓이 명당을 알려주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노루의 몸을 쓰다듬어 주고 행운을 빌었습니다. 이씨는 그 곳을 표시해 두었다가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그 자리에 묘를 썼습니다. 그 후로 함평 이씨의 집안에는 자손들이 번창했고 가문을 빛내는 공신들이 많이 배출되었다고 합니다. 이씨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사람들은 노루와 만났던 그 곳을 ‘노루고개’라 불렀습니다. 그 후, 그 곳에는 꽃샘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작고 예쁜 꽃들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보송보송한 털이 있는 꽃대는 이씨 때문에 목숨을 건진 노루의 긴 목을 닮았고, 꽃이 진 다음 올라오는 잎들은 노루의 귀와 닮았습니다.

  온순한 성격을 지닌 노루는 겁도 많고 나약합니다. 보호수단이라고는 뛰는 것 밖에 없어 맹수들에게 자주 습격을 당합니다. 매서운 꽃샘바람에 흔들리는 노루귀꽃을 보고 있으면 마치 사냥꾼에 쫓기고 있는 노루와 흡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올해는 이렇게 연민을 불러일으키지만 생명의 용기가 가상한 ‘노루귀’를 만나러 가까운 산에 추위를 무릅쓰고 한 번 올라가 보지 않으실래요?

시인, 숲해설사 장병연
bomnae59@hanmail.net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 100호 >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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