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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으로 사는 삶

2018년 6월호(제104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8. 6. 10.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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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야기]

 

덤으로 사는 삶




나는 죽은 사람

안면도 거기서 죽은 사람 

그래서

인격도

자존심도

말도 없지


그런데

침묵 속에 솟는 평안을

너는 아니?

게걸스런 먼지바람도

그냥 웃어

좋아서 웃어

귀해서 웃어

바보 같다고 해도 웃어


세상 너머 이 평안함을

어떻게 말해 줄까

설명해도 모를 이 평안을

어떻게 줄까

움켜진 쥔 손 위로는

줄 수가 없어

덤으로 얻는

이 평안함

죽어야 얻는 

이 행복을.


  이 시는 제가 죽다 살아난 가운데 두 번의 삶을 살게 되면서 지은 시입니다. 18세 때 안면도에서 식중독으로 죽을뻔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친구는 저를 살리려고 자신의 집 소여물 끓이는 방에 눕혀놓고, 한여름에 방이 펄펄 끓도록 불을 지폈다고 했지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필름이 쭉 돌아가면서 내가 왜 죽어야 하냐고 버티다가 결국 타협하듯 순응한 그 순간에 아주 편안하게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지요. 바로 죽음의 그 절벽 앞에 선 느낌! 그것을 표현한 시입니다. 살고 싶은 느낌을 넘어서면 다시는 세상에 돌아가기 싫은, 그 평안이 있었기에 지금 두 번째 인생을 감사히 살고 있습니다. 

  이 사건 이후 시를 조금씩 써 왔었습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시를 쓴 것은 손녀 딸 하연이가 태어났을 때였습니다. 그 생명을 본 순간, 지금까지 사용했었던 단어들이 제 속에서 새롭게 태어난 단어들로 바뀌어 갔으니까요. 그리고 마치 이 아이가 저에게 오물오물 할아버지의 삶을, 살아 온 이야기를 들려 달라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써 놓은 시를 모으게 되었고 ‘조선 문단’에 내놓기도 했습니다. 

  저의 시는 산문시보다 함축적이고 은유와 비유적 시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그 함축적 단어를 보고 자유롭게 자신의 상황속에서 상상해 볼 수 있으며, 저보다 더 깊은 생각에 잠기는 것을 보기 때문이지요. 주로 산책을 할 때 시상들이 많이 떠오르는데 그 때마다 바로 녹음을 한 후 집으로 돌아와 글로 옮겨 고칩니다. 아주 여러번요. 이렇게 완성이 되면 제가 운영하는 ‘우리누리카페공방’에서 커피를 가르치기도 하지만 동시에 시를 사람들과 나누며 대화를 합니다. 그 때가 가장 행복한 것 같습니다. 시가 사람들에게 위로를 줄 뿐만 아니라 소망을 갖도록 해 주기 때문이지요. 또한 시를 깊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생각이 정리되고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시대에서 힘이 된다는 말에 저는 늘 과감하게 권합니다. “여러분도 한번 시를 써보실래요?” 라고 말이지요. 막상 쓰기 힘들다면 처음에는 시집을 많이 읽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써보라고 하지요. 처음에는 함축하지 말고 장문으로 쓰면서 시어를 생각하고 줄이고 또 줄여 한 단어로 표현될 때까지 써보라 합니다. 시를 기승전결 순서로 많이 쓰다보면 결론이 먼저 나와야 더 자연스러울 때가 있기도 하지요. 최근 제가 시집을 내었습니다. 그 이유는 누군가가 저의 시를 보며 자신의 삶도 정리하고 잠시 멈춰 시를 직접 써본다면 그 속에 작은 소망과 행복이 시작되지 않을까 싶어서입니다. 

  그럼, 여러분들도 한번 시작(時作)을 시도해 보시지 않으실래요? 
 

임희수

  lhs@chol.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04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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