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공동체여행을 해보셨나요?(1)

여행/일본 규슈 공동체여행기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7. 6. 19. 19:57

본문

공동체여행을 해보셨나요?(1)

- 큐슈를  통한 일본여행 -

 

 

 

  아주 드물게 찾아왔던 5월 초의 긴 연휴기간을 어떻게 활용하셨나요? 저희들은 여러분들에게 매우 생소한 개념일 수 있는 ‘공동체여행’을 다음과 같이 시도해 보았습니다.

 

먼저, 여행기간의 일정조정은 어떻게 ‘창조’해 내었나?
  5월 3일(수, 석가탄신) 5일(금, 어린이날) 9일(화, 대통령선거)이라는 연휴의 일정이 갑자기 확정되자, 2년 전에 계획했다가 사정이 여의치 않아 시도하지 못했던 것을 전격적으로 실행했습니다. 공동체 여행에 동참하는 사람들 중에 이 날짜 중간에 끼어있는 일상 업무일(5/2, 4, 8일)은 전부 연차로 몰아서 사용하기로 했지요. 물론 그 전에 다른 직원들을 배려해 사전에 열심히 일하고 가능하면 전체 회사에 누를 끼치지 않도록 세심하게 조처를 취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여행 중간에 돌아와야 하는 경우도 몇 명은 있었지만, 5월 2~9일까지의 7박 8일 일정이 훌륭하게 ‘창조’되었습니다.

 

 ‘공동체 여행’이란?
  여행참가자들은 남녀는 물론이고, 연령대로는 14세 중학생들부터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 않는 착한 치매가 있으신 78세의 어르신(저의 장모님)도 포함되었으며, 1차 산업부터 3차 산업까지 모든 종류의 직업들과, 임시직에서부터 사장까지 직위도 무척 다양했습니다. 요즈음의 여행은 보통 개인 아니면 가족 혹은 친구끼리 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행복한 동네문화’를 만드는 일에 함께 동참하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이 모두 함께 일정을 잡아 여행하기로 하고, 1인당 1백만 원 정도의 공동기금을 준비했지요.

  이런 공동체 여행도 먹고 자고 움직이는 다른 여행과 마찬가지로 여행 도중의 매너리즘과 허탈감에 빠질 위험을 미리 예상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제일 중요한 것은 여행목적을 확실하게 설정하는 것인데, 저희들은 비록 짧은 일정이지만 과거 유럽에서 많이 시행하던 ‘문화여행’을 하기로 했습니다. 모짜르트가 대학을 다닌 적도 없지만 거의 대부분의 생애를 유럽 각지를 순회하고 연주하면서 동시에 그 지역에서의 수많은 만남과 경험을 통해 배우며 발전하고 최고의 실력자가 되었듯이 말입니다. ‘문화여행’이란 우리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다름을 총체적으로 만나 배우고 아는 여행이라고 정의해 보았습니다. 이전의 ‘다름’은 흔히 대적과의 만남이므로 정복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을 의미했지만, 우리가 열어야 할 지금의 우주시대에서의 다름은 오히려 다양함을 배우고 존경하며, 대화를 통해 위대한 통합으로 승화할 수 있는 여행을 하는 기회가 됩니다. 또  ‘총체적’이라는 말은 인간 삶의 모든 것을 한꺼번에 경험하는 여행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총체적인 여행에는 ‘사전공부’부터 ‘역사여행’‘자연여행’, ‘직업여행’‘대화여행’, ‘교육여행’‘사후공부’‘글쓰기’, ‘미래여행’과 ‘2018 대만을 통한 중국여행’까지 포함하는 것입니다.

 

문화여행?
그러면 ‘문화여행’의 실제는 무엇일까요?
  우선 ‘사전공부’로 여행을 ‘미리’ 해 본 겁니다. 물론 이것은 나중에 ‘사후공부’로 이어지도록 할 것입니다. 이번 ‘문화여행’을 위해서 저희들은 사실 오래 전부터 ‘일본’에 대해 공부해 왔지요. 먼저 일본어는 대부분 히라가나와 동사변화의 기본을 아는 정도로 공부했고, 한문을 아는 나이든 분들은 더 빨리 거리의 간판들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또 한국인과 결혼해 한국에 정착한 지 오래인 와타나베 미카 교수님을 모시고 일본문화 전반에 대해 격의 없는 강의를 들으며 토론을 주고받는 유익한 시간도 가졌지요. 우리 각자는 일본(인)에 대해 자신만이 포커스를 맞출 주제들을 미리 선정했습니다. 그것이 역사든, 지리든, 산업이든, 인물이든 상관이 없었고 이런 모든 관심들을 통합해 일본에 대한 하나의 거대한 상을 다 함께 큰 도화지 위에 그려보는 작업을 하려고 한 셈이었습니다.

 

역사여행
  그리고 ‘역사여행’을 했습니다. 저희가 여행한 일본의 큐슈는 한반도와의 역사적 관계가 매우 많은 지역입니다. 백제패망 이후에 벌어졌던 백촌강전투(663)에 파병된 일본군들은 여기서 출발했을 것입니다. 임진왜란(1592)과 정유재란(1597)에 동원되었던 158,000명의 병사 중에서 3/5인 약 9만 명 가량이 큐슈에서 징발되었지요. 또 명치유신(1868)과 을사늑약의 주역들(대표적 사람이 이토 히로부미)이 대부분 일본의 동부가 아닌 서남, 특히 큐슈를 중심으로 한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천년 이상의 한일관계 역사를 조용히 공부해 가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머물렀던 나가사키 공항 근처의 ‘오무라’大村 지역에서는 임진왜란 때에 무려 1만 명이 징발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지요. 우리가 만난 수많은 일본인의 선조들은 우리의 선조들과 직접 싸운 사람들이었을 것이라는 ‘섬뜩한 진실’ 앞에 서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그들과 우리가 원수가 아닌 진정한 친구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21세기의 ‘하나의 아시아’One Asia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한반도에도 백제, 신라, 고구려가 있었지만, 지금은 우리 모두 한국인으로 살면서 이전의 원한들은 용서하고 잊으며 새 출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20~30년 후에는 달나라나 화성으로 신혼여행까지 가게 되는 시대에서 살 텐데, 이제는 ‘아시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넘어서 70억의 세계인이 한 국가의 국민인 것과 같은 ‘세계인’, ‘우주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져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만난, 마음을 열고 친절하게 우리를 대해주신 고마운 일본 분들은 이런 목적 하에 하는 이 여행의 취지에 크게 동감할 뿐 아니라, 기꺼이 도우며 동참하겠다고 반응함으로 저희들 가슴이 뜨거워졌지요. 물론 원폭의 직격탄을 맞은 나가사키의 중심지에 마련된 ‘평화공원’에서 그들이 평화라는 ‘결과’를 외치기 전에 해야 할 일은 일본에 의해 피해를 당한 아시아의 여러 민족들이 갖는 그 고통의 ‘원인’부터 찾아야 하는 것이 마땅하며 이것을 이들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어려운 현실 앞에 우리가 서 있긴 합니다. 자신들이 피해를 준 사람들의 관점이라곤 자리할 곳 없게 조성되었고, 더더구나 맑은 초여름의 하늘 아래 한가로이 놓인 공원이었기에 우리는 여기서 일종의 ‘위선’을 본 거지요.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위안부에 대해서 모르고 심지어 부인하는 것이 너무 이상하여 더 깊이 조사해 보니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기도 했습니다.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 같은 저명한 학자들이 아주 오래된 일본문서인 ‘고서기’古書記 속의 일본어에 과거나 미래라는 개념은 약하고 ‘현재’에 집중되어 있다고 지적한 겁니다. 이런 태도가 일본인들의 ‘현재 중심적 태도’와 연관될 수 있다는 거지요. 지난 일을 자꾸 왈과왈부하는 것이 현재 어떤 의미가 있느냐는 겁니다. 그러므로‘문’文을 중심으로 역사를 민감하게 생각하는 우리와는 많이 다르게, ‘무’武를 중심으로 살아왔으며 이런 현재중심적인 성향을 가진 일본(인)을 비난하기 전에, 또 일본(인)은 지리적으로라도 우리와 절대로 떨어질 수 없기에, 우리가 먼저 이들의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건강한 미래관계를 만들기 위해서 필수적인 것은 분명합니다. 물론 저희가 일본에 있을 때 우리에게 열심히 강의해 주었던,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후 은퇴해 고통당한 조선인에 대한 관심을 가졌던 후미요상과 같은 용기 있는 분들은 과거에 대해 죄송하다고 했지요. 또 이분은 우리 중에 자신의 부모님이 큐슈 북부의 탄광에 징용으로 죽을 고생을 하다 겨우 돌아와 지금도 살아 계시다고 했을 때 또 다시 용서를 빌어서 우리 모두가 감동하기도 했습니다.

 

자연여행
  그 뿐 아니라 ‘자연여행’을 시도했습니다. 나가사키는 우리 일행 중 몇몇이 살았던 부산과 지리적으로 유사한 면이 많아 친숙했지만, 우리가 주로 경험한 큐슈 서부 뿐 아니라 일본 전체에 일반적으로 화산이 많아 그런지 노년기 지형을 가진 한반도와 뚜렷이 대비되었습니다. 특히 아소산과 그 영향 아래 있는 구마모토시는 한반도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현상을 직접 경험하는 장소가 되었지요. 작년에 이 활화산이 분화되어 산봉우리 근처까지 케이블카로 올라가서 직접 유황 냄새를 맡으며 용암의 흔적을 없었고, 단지 영상으로만 만난 것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 분화와 함께 발생한 지진의 여파로 멀리 떨어진 구마모토성은 많이 붕괴되어 자연의 힘이 얼마나 큰지 절감하게 되었지요. 막상 도착해보니 무너진 성에는 입장조차 할 수 없었고 단지 우리에게 매우 고통스러운 기억을 안겨준 ‘가토 기요마사’加籐淸正의 신사밖에 방문할 수 없었답니다. 우리가 숙박하는 주인은 우리와 같은 단체를 받은 적이 없었고, 수압도 낮아 매일매일 여정이 끝나면 저희가 온천에 가서 씻고 오는 금액은을 숙박비에서 제 한다고 했습니다. 한국에 있으면 거의 10년에 걸쳐 했을 아주 좋은 일본의 온천욕을 이번 기간에 다 한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좋아라 하며 특히 여자들은 2시간 정도 오래 있으며 때 빼고 광내는 습관이 여기서도 발휘될까봐 1시간 반으로 목욕시간을 정해주었지만, 나중에는 모두 지쳐서 1시간도 채 안되어 다 나와 있기도 했었지요.


2편에서 이어집니다.

 

행복한 동네문화 만들기 운동장(長) 송축복

segensong@gmail.com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92호 >에 실려 있습니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