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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경천사 탑을 아시나요?

2018년 7월호(제105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8. 8. 4.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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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철의 역사칼럼 8]



국립중앙박물관 


경천사 탑을 아시나요?



 


올 여름에도 세계 여러 나라로 여행을 가겠지요. 유명한 미술관, 박물관도 들르겠지요. 혹시 외국 분들이 한국의 박물관을 묻는다면 어느 박물관을 소개시켜 주실 건가요. 박물관의 어떤 유물을 알려주실 주실 건가요. 생각이 안 나거든 이번 기회에 꼭‘국립중앙박물관’에 한 번 가보시기 바랍니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맨 먼저 눈에 띠는 건 1층 홀입니다. 박물관은 지하1층, 지상 6층이지만 중앙 홀은 통으로 뚫려 있어 웅장한 느낌을 줍니다. 홀 가운데로 걸어가면 비석이 하나 서있고 저 멀리 안쪽에 탑이 하나 보입니다. 아주 늘씬한 탑입니다. 시원스럽게 위로 쭉 뻗었습니다. 가까이 가보면 그 크기에 한 번 더 놀랍니다. 조각도 매우 뛰어나고 화려합니다. 돌도 일반 돌이 아닌 대리석입니다. 이국적입니다. 일반적인 사각형이 아닌, 사각형에 또 사각형이 툭 튀어나와 있습니다. 탑의 층수도 세기가 어렵게 기기묘묘합니다. 7층인 듯 10층 같고, 10층 인 듯 13층 같습니다. 보는 사람 맘입니다. 3층, 5층탑만 보다가 쭉 뻗은 탑을 보고 대단하다고 연신 탄성을 지릅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탑 앞에 있는 안내판을 들여다봅니다. 탑 이름은 바로 ‘경천사지 10층 석탑’입니다. 고려 충목왕 때 만들었습니다. 원래 개성 근처에 있던 탑인데 나라를 빼앗기기 3년 전인 1907년 일본 궁내부 대신 다나까(田中光顯)가 무단으로 자기 집으로 가지고 갔다고 합니다. 힘이 없던 백성들은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 분개한 외국인 베델과 헐버트 등이 신문에 다나까의 만행을 규탄하는 글을 싣게 됩니다. 이렇게 여러 사람의 노력 덕분에 이 탑은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안내판을 읽고 나서 다시 한 번 탑을 쳐다봅니다. 가슴 속이 찡합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탑을 보며 생각에 잠깁니다. 나라가 힘이 없어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가 겪었던 수난을 생각합니다. 


오늘 박물관에 오길 잘했다고 하며 스스로 뿌듯해 합니다.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해 진정어린 관심을 가져야 해외여행을 가도 자신 있게 말할 거리가 있지 않을까요? 외국인 중 누가 묻거든 “한국에 가면 국립중앙박물관에 꼭 가보세요. 경천사지 10층 석탑을 꼭 보세요”라고 말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잠깐! 그냥 가시면 안 됩니다. 이 탑에 또 다른 기구한 운명이 숨어있습니다. 다시 돌아가서 탑 1층에 쓰여 있는 글씨를 보아야 합니다. 이 탑은 원나라 황제와 황후를 위해서 세운 탑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탑을 만든 사람은 ‘강융’과 ‘고용봉’이라고 합니다. 둘 다 고려사람입니다. 강융은 자기 딸을 원나라 승상(국무총리)에 첩으로 바쳐 권세를 잡은 인물입니다. 고용봉은 원나라 환관으로 권세를 잡은 인물입니다. 둘의 권세는 고려왕을 능가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니까 고려가 원나라에 항복하고 원의 간섭을 받을 때 원나라에 붙어 권세를 잡은 대표적인 친원파들이 원나라 황제를 위해서 세운 탑이지요. 그런데 이러한 내용은 안내판에 한 줄도 쓰여 있지 않습니다. 다시 한 번 탑을 쳐다봅니다. 예전처럼 아름답게만 보이지 않습니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저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아름다운 것을 그 자체인 아름다움으로 보는 순수한 마음이 저에겐 없나 봅니다. 처음엔 이국적인 아름다움이라고 보았는데 왠지 조각도 불편해 보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탑은 화려한 조각을 좋아하지 않거든요. 조선시대 기록에는 이 탑을 원나라 장인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친원파가 원나라 황제를 위해 만든 탑을 원나라 장인이 만들었다고 하니 더욱 더 혼란스럽습니다. 이럴 경우 경천사 탑은 우리 문화재가 맞는 걸까요? 국립중앙박물관 중앙 홀에 세워 놓을 만큼 우리나라 역사를 대표하는 문화재일까요?


누구는 말 합니다. 원나라 간섭을 받을 때 원나라 황제를 위해서라고 쓰는 건 흔히 있는 일이라고요. 단지 형식적인 문투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원나라 황제를 위해서 만든다고 하면 그 다음에 상투적이라도 고려국왕을 위해서 만든다고 쓰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경천사 탑에는 원나라 황제만 나와 있고 고려 국왕은 보이지 않습니다. 누구는 또 말합니다. 1층탑에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평안하기를 바란다.’ (國泰民安,국태민안)고 쓰여 있으므로 경천사탑을 그렇게 부정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고요. 그런데 강융과 고용봉이 생각한 나라와 백성은 어느 나라이고 어느 백성일까요. 원나라 지배를 받고 있는 고려가 이대로 원나라 지배를 받아야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평안한 것이라면 그것이 진정한 태평과 평안일까요?


원나라 간섭기와 일제강점기는 상황이 똑같지 않지만, 만약 대표적인 친일파 이완용이 일본 천황과 국태민안을 위해 탑을 세웠다면 여기의 국태민안은 어떤 의미일까요? 먼 훗날 이완용이 만든 탑을 대한민국박물관 중앙 홀에 세워 놓았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렇다고 조선총독부처럼 경천사 10층 석탑을 어떻게 하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과거의 아픈 역사도 우리의 소중한 역사입니다. 당연히 경천사 탑은 소중히 보존해야 합니다. 소중히 보존은 하되 아픈 우리의 역사를 정확히 알려야 합니다. 탑이 아름답다고 해서 아픈 역사를 숨길 수 없습니다. 대리석으로 만든 탑이라 실내에 놓을 수밖에 없고, 탑이 너무 커서 박물관 홀에 세울 수밖에 없다면, 적어도 안내판에 이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 이 탑이 친원파가 원나라 황제를 위해서 지은 탑이라고. 그래서 탑을 보는 사람이 문화재가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합니다.


내년은 3.1운동 100주년이자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입니다. 올해부터 내년 준비가 한창입니다. 그리고 올해는 경천사 탑 반환 100주년입니다. 경천사 탑이 다시 돌아온 날이 1918년 11월 15일입니다. 무엇보다 내년이 오기 전에 바로 잡아야 할 부분입니다. 안내판 하나 바로잡지 못하면서 내년의 3.1운동 100주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지금 당장 안내판을 고친다 해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이러한 경천사탑을 영원히 박물관 중앙 홀에 세워 둘 수는 없겠지요. 마지막으로 이건 좀 어려울까요? 따로 별관을 만들어서 경천사 탑을 전시해야 하지 않을까요. 대한민국은 과거의 아픈 문화유산도 이렇게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명협 조경철 역사학자

naraname2014@naver.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05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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